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17화 (17/269)

1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7)

환절기 감기는 흔한 일이다. 그래서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땀에 절어서 그렇게 눈을 굴러다녔으니, 감기 정도는 당연하다고 다들 생각했다.

그렇게 단순 감기라 생각했기에 그저 작은 기침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었다.

“야, 어째 기침을 안 하는 놈이 없냐?”

“생각해 보면 그렇게 놀고 누구 하나 안 쓰러진 게 신기하긴 해.”

이때까지는 모두가 웃었다.

집에 돌아간 뒤 누군가는 기침이 심해 곧장 병원으로 향했고 누군가는 그냥 집에서 쉬었다.

그러나 병원에 바로 가지 않은 사람들은 증상이 심해졌다. 단순히 감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TV에서 나왔다.

맨 처음 환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스키장에서 옮았으리라 추측할 뿐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독감을 옮긴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정한은 홀로 불안해했다.

스키장에 가기 직전부터 정한은 재채기를 좀 했다. 콧물도 좀 나고, 그로 인해 기침도 좀 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환절기 때마다 겪는 비염의 증상과 다른 바 없었다.

그래서 목감기약을 먹고, 기침약을 사서 먹고 놀았다.

아주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놀러 갔다 올 수 있을 정도라 생각했다.

그것이 독감이었던 것인지, 평소와 같은 비염이었던 것인지 정한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증상을 그저 비염이라 생각해 병원에 가지 않았던 정한이 먼저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다음은 정한과 가장 오래 붙어 있었던 정환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고열 정도로 끝날 뿐 최악의 상황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두 사람의 몸 상태는 별 차이가 없었다. 두 사람에게 나타난 유일한 차이는 한 사람은 살았다는 것이고, 한 사람은 회복하지 못해 죽었다는 것뿐이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잠깐 정신을 차릴 때마다, 정한은 혹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긴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염은 늘 있는 것이었고, 자신 역시 스키장에서 옮은 것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독감을 모두에게 옮긴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원인이 아니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기에는 체력도 모자랐고 정신도 몽롱했다. 정한은 그저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잃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다.

정한이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가족들이었고, 그다음은 친구들에 대한 것이었다.

“애들은 어때요?”

“지금 남 걱정하지 말고 너부터 빨리 나아야 하지 않겠니?”

부모님은 정한에게 네 걱정부터 하라고 말했다. 정한은 부모님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는 것을 봤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추궁하기에는 몸이 너무 힘들었다.

정환의 죽음을 전해 들은 것은 그로부터도 이틀 뒤였다.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귀에 이명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정한은 그 자리에 다시 누웠다.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실감도 잘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 병문안을 왔다. 상태가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정한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기다리던 친구들이 왔지만, 그중에 정환은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학생이 왔다 갔다. 하지만 한 번도 정환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정한은 조금씩 실감이 났다.

분명 정환이라면 가장 먼저 왔을 텐데, 오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퇴원한 뒤 정한은 정환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부모님은 조금 망설이다가 정환은 이미 화장된 뒤 추모관에 있다는 소리를 했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허탈했다.

정한은 친구의 장례식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한창 장례식이 진행 중일 때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전염병이 유행하던 시기라 조문객도 제한적으로만 받았다. 그러니 정신이 멀쩡했다 하더라도 그 장례식에 참가할 수 있었을 리는 없었다.

정한은 차마 정환이 있다 하는 추모관에 가보지 못했다. 정환의 부모님도 찾아뵙지 못했다. 중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니 양가 부모님도 서로의 얼굴을 알았다.

차마 그곳에 갔다가 혹시라도 그분들을 만나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음에 마음의 정리가 끝난 뒤에 가보겠다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아무도 정한에게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여럿이 함께 들어있는 메신저 앱은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정한은 차라리 누가 욕해줬으면 편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 리는 없다.

아무도 정한이 맨 처음 일행에게 독감을 옮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정한은 허탈한 마음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왔다.

정한은 자신의 세상이 엄청나게 변할 줄 알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졌으니 그러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학교도 갈라졌으니 정환이가 없어져도 학교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일상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저 정환이 예상했던 대로, 앞으로는 친구들이 만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할 뿐일 것 같았다.

“안돼….”

정한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환이가 있었다면 이 메신저 앱이 조용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정환의 죽음에 작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정한은 정환이 하던 일의 일부라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한은 절대로 정환처럼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분위기와 텐션을 올릴 수 없었다. 말 한두 마디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이 집단을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관계를 보조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정한은 그렇게 했다.

꾸준히 안부를 묻는다. 경조사를 챙긴다. 일이 생기면 자신이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선다. 그것이 성과는 있었는지 친구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처음 정환이 예상한 대로 재수를 하고, 또 누군가는 삼수를 했다. 그리고 친구들 모두가 군대에 가고 전역하는 그 순간까지도 연락이 끊어진 이는 없었다.

누군가는 빠르게 결혼을 했다. 누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누군가는 다쳐 병원에 가고, 누군가는 삶이 술술 풀린다. 그 모든 일을 정한은 곁에서 지켜봤다.

그러나 정한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였을 뿐이다. 자신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정한은 정환의 빈자리를 느꼈을 뿐이었다.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던 정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느낄 뿐이었다.

‘정환이라면, 종종 술자리도 마련했겠지, 또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모임을 만들었을 거야. 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한은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정한은 결코 정환이 하던 것처럼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그리고 정한은 정환이 주도했던 일 중 하나가 떠올랐다. 아직 정환이 남긴 일이 하나 있었다.

타임캡슐이었다.

* * *

정환의 이야기가 끝났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그저 시아가 조금 연기를 빨아들이고 다시 뱉었을 뿐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도깨비와 만났군요.”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정한이 지금까지 차마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던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전부 말하고 나니 시원해진 듯, 그리고 여전히 착잡한 듯 정한은 말했다.

“네. 결국, 저는 정환이가 해 둔 일을 마무리조차 하지 못한 거죠.”

정한의 말을 들은 태주는 이 사람에 대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정환이가 있었다면, 도깨비에게 그 약속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텐데요.”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정한은 그런 소리를 했다. 태주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 말했다.

“몇 가지, 굉장히 잘못 생각하고 계신 점이 있습니다.”

태주는 먼저 가장 큰 한 가지를 지적하기로 했다.

“지금 상황은 만약 돌아가신 분께서 살아 돌아온다 해도 그다지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아니, 저보다는 잘 했을 게 분명해요.”

정한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태주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건 이미 일종의 환상이었다.

“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질 건 없어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해 두고 이미 죽은 가상의 상대와 비교하여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기혐오와 엄격함이 있었는지 태주는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이 연락을 잘 안 하고, 못하는 건 당연하죠. 옛날과 같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에요. 한창 자기 먹고 살기 바쁜 걸요.”

정환이 사람들을 이끄는 데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관계는 그런 것으로 유지되는 시기가 지났다.

“십 대와 이십 대가, 같은 마음가짐으로 만날 수 있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이십 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그렇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기 꺼려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취업한 이는 취업을 한 대로, 취업하지 못한 이들은 하지 못한 대로. 모임에 기꺼이 나가기가 어렵다.

사람이 여럿 있다면, 혹은 많지 않더라도 한두 사람 연락이 두절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런 흔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정한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옛날처럼 활발한 모임은 아니고, 즐거운 모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연락이 끊긴 친구는 없었다.

모를 일이지만 정환이라는 사람도 이렇게 해내지는 못할 거라고 태주는 추측했다.

“옛날 같지 않다고요?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 본인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리라.

“당신도 그걸 아니까 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자를 파내러 세 명이 나왔을 때, 정한은 오지 않은 이들을 원망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단한 일을 해내신 겁니다. 그저 이번에는 그게 너무 과했고요.”

태주는 정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조금 더 사람들을 잘 모았다면, 내가 조금 더 사람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조금 더, 정환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잘되지 않았다면, 편해지실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차라리 잘 안되었다면 그만둘 수도 있었을 텐데, 어설프게 일부나마 실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정한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당신이 한 일을 무시하는 건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미 당신은 엄청난 일을 해낸 거라고요.”

매 분기 꾸준히 연락하고, 친구들에게 경조사가 발생하면 챙긴다.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을 챙기고, 기쁜 일을 널리 퍼트린다.

이미 그건 엄청난 희생이었다.

“저는 남의 집 제사 날짜까지 체크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요.”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한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태주는 잘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백 명 중 하나도 없을 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