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6)
“…그런 걸 어디서?”
정한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생각보다는 간단한 방법이에요. 유행성 질병으로 사람이 죽었다면 기사 같은 게 한두 개 정도 안 남아 있을 리 없잖아요?”
정한은 당시 유행하던 독감 때문에 정환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 관한 기사 정도도 당연히 남아 있다.
“심지어 학생이 전염병으로 죽은 것이니 대서특필되지 않을 리 없죠.”
당시 사망자의 수는 백 명에 가까운 수십 명 정도였다. 단순 독감으로 사망한 것치고는 꽤 많다.
“물론 사망자 대부분은 고령자였죠. 당시 십 대 사망자는 단 셋뿐이었습니다. 그중 두 명은 여자였고, 한 명은 남자였고요.”
이쯤 되면 뻔한 일이다.
“익명으로 쓰여 있기는 했지만, 기사에는 그 병이 어디서 어떻게 옳아서 몇 사람에게 옳았는지도 다 나와 있더군요. 그러니 친구분의 사망 직전까지의 동선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러 고등학교에 있는 친구들이 함께 스키장에 갔다는 내용, 그리고 스키장에서 독감이 크게 번졌다는 내용은 신문 기사만 조금 뒤져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전원이 다 독감을 앓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중 중태에 빠졌던 건 두 사람이었고요.”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기사는 더 찾기 어려웠으니, 조금 심한 감기 정도로 떨치고 넘어갔을 것이다.
“누가 중태에 빠졌는지 실명이 적혀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학교의 학생인지 적혀있어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당신과 정환씨죠.”
그리고 결국 그중 한 사람은 죽었다. 반전이랄 것도 없다.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었다. 슬픈 일입니다. 살아남은 쪽 역시 마냥 기뻐할 수 없죠.”
태주가 말하는 동안 정한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유지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비극이긴 하지만 이상한 부분은 아닙니다. 이상한 건 친구가 죽은 데 당신은 어떤 부채의식이라도 있는 것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병으로 죽은 것이니 그런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에요.”
사고사라면 모를까, 병사에 책임감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죄책감을 가질만한 이유 중 생각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었다.
“혹시 그곳에 가자고 주장하신 것이 당신인가요?”
“…아니요. 가자고 한 건 정환이었습니다.”
태주는 역시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극적인 정한이 가자고 했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당신이 맨 처음 병을 옮긴 사람이라도 되나요?”
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그저 하얗게 질렸을 뿐이었다.
“…확신은 없어요.”
정한은 덜덜 떨며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의심을 떨쳐내지는 못하시는군요.”
태주는 그 생각이 맞거나, 혹은 틀리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런 의심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이제 조금 납득이 되는군요.”
태주는 정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왜 굳이 적성에도 맞지 않는 관계의 중심을 자처하는지 말이에요.”
“제가 중심이라고요?”
정한은 물었다.
“당신이 중심이 아니면 누가 중심입니까? 인간이 아닌 도깨비조차도 당신을 중심으로 본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죠.”
“…”
정한이 혼란스러워하자 태주는 말을 이었다.
“실례지만, 손님의 집에 들어갔을 때, 저는 친구분들의 연락처나 기타 잡다한 것들을 조금 봤습니다. 제 직업병 같은 거죠.”
“제 집안을 뒤지신 건가요?”
정한이 눈을 찌푸리자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말했다.
“뒤졌다고 말씀드리기는 조금 그렇네요. 그냥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을 뿐입니다.”
태주는 능청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책상 위에는 종이 달력이 있었죠. 그리고 그 테이블에는 이런저런 날짜들에 대한 정리가 다 되어 있었고요. 메모도, 포스트잇도 잔뜩 붙어있더군요.”
솔직히 말해, 단서를 찾기 위해 방을 뒤지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태주는 이번에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그곳에 널려 있는 것들을 보고,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주 역시 답변을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거긴 그냥 일하는 곳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업무 강도도 그리 낮지 않아 보이는 수준이었고요.”
달력엔 빡빡하게 일정이 채워져 있었고, 혹시라도 놓치는 것이 없도록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월이는 정한이 피곤하게 산다고 평했다. 태주도 표현에 당황하긴 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당신의 달력 위에는 스케줄이 꽉 채워져 있더군요. 심지어 본인이나 가족의 것이 아닌 경조사까지 전부 적혀 있었어요.”
누군가의 생일, 누군가의 제사, 누군가의 아버지의 기일 등 달력에는 빈칸 보다 채워져 있는 칸이 더 많았다.
챙겨야 할 날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보다 많다면, 그건 이미 일이나 다름없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정한은 항변했다.
“문제까지는 아니지만, 분명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죠.”
그건 단순히 성실한 것이 아니다. 집착에 가까웠다.
“정상적인 범주의 행동이 아니에요.”
그 행동은 그저 스스로를 몰아넣기 위한 행위에 가까웠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시겠죠.”
태주는 정한이 할 법한 말을 먼저 했다.
“제가 보기에 그건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태주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도 그럴게,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자책하면서 하고 있잖아요?”
정한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죽은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도깨비의 등장은 정한에게 엄청난 비극은 아니었다. 이미 정한의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저 고통뿐인 관계라면, 차라리 끝내는 게 본인에게는 나을 겁니다.”
태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것도 방법의 하나다. 물론 상대가 받아들일 방법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래요.”
정한은 말했다.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네, 그렇겠죠. 저는 당신 같은 분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죽은 이가 남긴 것은 산 사람에게는 고통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이가 너무 소중했기에 산 사람은 그걸 결코 내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결코 도깨비에게 그 가치 있는 걸 보여줄 수 없는 겁니다.”
정한에게는 이미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종의 고행이다.
“본인이 이미 그 관계의 유지 자체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태주는 그래서 안타까웠다.
정한이 경험한 일은 어떻게 말하면 흔한 비극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그때의 정한은 너무 어렸다.
* * *
정한에게 정환은 누가 뭐래도 가장 친한 친구였다.
빈말로도 사교적이라 할 수 없는 정한에게 정환은 학창시절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네 이름이 정한이라고? 이야, 나랑 비슷하네!”
“으…응.”
정한은 중학생 시절의 첫 대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잊을 수는 없다.
계기야 단순했지만 원래 친구 사이라는 건 그런 법이다.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더 친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두 사람은 서로 너무나도 잘 맞는 관계였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두 사람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을 뿐이다.
물론 성격의 차이는 있었다. 그러나 성격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이 멀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한은 정환 덕분에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정환은 정한 덕에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두 사람이었으나 함께 어울리며 놀다 보니 사람은 점점 늘었다. 최종적으로 열 사람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그 집단은 누구나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끈끈한 모임이 되었다.
정한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혼자서는 결코 만나지 못했을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들이 중학생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고등학생이 되며 학교가 갈라졌다.
아직 연락은 다들 잘 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전처럼 놀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어느새 십 대 중반의 나이는 후반의 나이로 흘러갔다.
정한과 정환도 다른 학교에 갔다. 어떤 친구들은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일부는 자주 보기가 힘들었다.
모일 핑계를 만들기 위해 타임캡슐을 묻어 보기도 했지만, 그건 묻어봐야 다음에 모이는 건 십 년 뒤의 일이다.
그래서 겨울 방학에 다 같이 놀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이 아니라면 모일 수 없을 것이라고, 무리해서라도 꼭 모이자고 정환은 말했다.
일부는 바로 동의했으나 일부는 조금 꺼렸다. 조금 급하게 추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다 같이 가면 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정환은 열심히 친구들을 설득했다.
“생각해 봐, 지금 아니면 몇 년 뒤가 될지 몰라. 우리 중 아무도 재수 안 하면 좋겠지만, 만약 누구 하나가 하게 되면 그땐 또 모이기 힘들어질 거야. 아니면 누가 미국 대학이라도 가게 되면 어떻게 해! 어, 물론 축하할 일이겠지만…. 아무튼! 사정은 계속 생길 거고, 내 생각엔 지금이 가장 한가할 나이라는 거지!”
결국 정환의 주장에 모두 설득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놀 수 없을 거라는 위기감이 모두 조금은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돈을 모으는 과정은 길었다. 다사다난했지만 결국 열 사람 모두 빠짐없이 스키장에 갈 수 있었다. 노는 김에 3박 4일로. 제대로 작정하고 놀러 간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즐겼다.
누군가는 썰매를 탔고, 누군가는 스키를 탔으며, 조금 운동신경이 좋은 이들은 보드를 탔다.
그날 정환은 정한에게 스키와 보드를 알려줬고, 정한은 대체로 정환에게 끌려다녔다. 알고 보니 자신에게 운동신경이 없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정한은 그때 처음 알았다.
친구들은 더 이상 스키장에 들어갈 수 없는 시간대까지 스키를 탔다. 리프트를 몇 번을 탔는지 셀 수 없었다.
야간 개장이 된 다음에도 한참을 타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놀다가 컵라면 하나를 먹고 다시 논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그들은 라면만 먹고 다시 놀러 나갔다.
다시 그렇게 놀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내저을 만큼, 그들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놀았다.
그 중심에는 정환이가 있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추억 만들기는 확실히 성공했다. 이보다 더 즐거운 여행일 수는 없었다.
단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한다면.
“헷취!”
“누구냐? 기침 이상하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