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5)
“살아있냐?”
월이와 시아가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태주는 계속해서 뭔가를 찾고, 조사하고 있었다.
“간신히요.”
태주가 나온 것은 두 사람이 식사에 설거지까지 마친 뒤 잡담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태주는 그래도 당장 할 일은 마쳤는지 비척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조사는 끝냈냐?”
시아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핵심적인 부분은 대강 알 것 같아요.”
“그럼 잠시 쉴 수 있겠군.”
“그게, 그럴 수도 없네요.”
태주는 이미 준비되어 있던 식사를 간신히 뱃속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았거든요.”
저녁이 되기 전까지, 아직 할 일이 태산이었다.
“내일 바로 끝내도록 하죠.”
* * *
오후 여섯 시, 여의나루역 앞에서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단함과 피로, 그러면서도 미소가 가득 차있다.
아무리 일주일 중 최악으로 꼽히는 월요일이라지만 퇴근 시간만큼은 즐거워 보였다.
정한은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 한들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교하는 밝은 표정의 아이들과 퇴근하는 밝은 표정의 직장인 사이에 나이를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자신이 즐겁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때도 정한은 하교가 별로 즐겁지 않았으니, 지금의 퇴근도 즐거울 리 없다.
정한은 그저 피곤했다.
오늘도 그렇게 잠을 잘 잔 것 같지는 않았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개운하게 자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딱히 그렇지 않았다.
사실 정한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그다지 개운하게 잔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리든, 그렇지 않든 정한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정한은 문득 도깨비는 한때 신비 그 자체라고 들었던 설명이 기억났다. 그리고 도깨비와의 만남은 정한에게 신비한 경험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인 일이다.
그런 신비로운 일을 겪어도 본인의 삶에 크게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게나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는데도 그랬다.
“하….”
정한은 오늘 하루가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뭔가 바뀌는 점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르지 않았다. 정해진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다시 정해진 일을 했다.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정한은 핸드폰을 계속해서 힐끗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 퇴근 후 사무소로 와 주세요.]
정한은 사무소에 가야 했다. 그러나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약속도 반대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다. 지키고 싶다. 하지만 지키지 못할 게 분명하다.
자신은 도저히 정환이가 했던 것처럼 모두를 모을 수가 없었다. 정환에게 그 약속은 분명히 쉽고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모을 수 있었던 건 고작 세 명이다. 열 명과 세 명.
그 차이는 도저히 메꿀 수 없다.
‘정환이가 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정한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아주 작게 방울 소리가 한번 났다.
“어?”
정한은 당연히 그곳에 태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시아는 손에 전자담배를 들고 있었다. 입에 물고 있지는 않았지만, 묘하게도 하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페는 실내 금연이 아니었던가?’
정한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곳은 진짜 카페가 아니었다.
정한이 들어오다 멈칫거리자 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있는 게 의외 셨나 봅니다.”
시아는 이전과 같은 복장이었다. 손목에 매달아 둔 장신구 역시 그대로였다.
전자담배를 손에 쥐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완전히 그대로였다.
“아, 아뇨. 의외까지는 아니었는데요.”
정한은 횡설수설했다.
“그냥 저한테 연락했던 게 태주 씨였으니까요. 그분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시아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의외라는 말로 들립니다만.”
맞는 말이었기에 정한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농담입니다. 잠시 장난을 좀 쳤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태주가 나오는 게 맞았을 겁니다.”
그러나 아직 태주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시아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잠시 다른 용무를 보러 갔거든요.”
“아, 바쁘신가 보네요.”
정한은 어색하게 말했다.
차라리 태주가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저번에 헤어지기 전에 했던 대화 때문에 정한은 태주가 조금 껄끄러웠다.
“예, 이번 일을 해결하려면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시아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 뒤면 돌아올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부터 약 십 분 정도 뒤면 돌아올 것 같군요.”
“그런가요?”
이곳에서 시아와 있었던 것도 처음은 아니니, 아예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보지 않은 월이라는 사람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 이 기계들은 다룰 줄 몰라서 차를 내 드리긴 어렵겠습니다.”
시아는 별로 미안하지 않은 투로 그렇게 말했다. 딱히 차를 얻어 마시러 온 것도 아니었기에 정한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에….”
정한은 일단 저번에 앉았던 자리로 가 앉았다.
시아는 자연스럽게 한번 연기를 쭉 빨아들인 뒤 뱉었다. 의외로 냄새는 거슬리지 않았다. 아주 약한 과일향이 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궁금하신 게 있다면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궁금한 거요…?”
궁금한 것은 많았다.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것이라 하면 정해져 있었다.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한은 그것부터 물었다.
“도깨비는 어떻게 할까요?”
반쯤 공포로, 나머지 반쯤은 호기심으로 정한은 물었다.
신비한 존재인 도깨비라면 분명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자신은 대체 어떤 일을 겪게 되는가. 정한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시아의 대답은 정한의 기대에서 벗어나 있는 종류의 대답이었다.
“사실 별일은 못 할 겁니다.”
“네?”
“그야, 그 녀석은 안에 갇혀있으니까요. 도깨비가 만만한 녀석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정한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본인에게 가는 피해는 없을 거라고 시아는 말했다.
“도깨비는 그렇게 되면 결국 죽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네요. 요즘 보기 힘든 종이라서요.”
멸종위기종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시아의 말투에 정한은 조금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그렇군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게 왜 궁금하시죠? 손님은 분명히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만요.”
그러나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한번 지금 연락이 닿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볼까도 고민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다들 지금은 한창 바쁜 시기다.
“저한테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요.”
고작 이런 일로 부를 수 없다. 정한이 그렇게 말할 때 딸랑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군요.”
시아는 문 쪽을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약간 늦었네요.”
태주는 한눈에 보기에도 피곤해 보였기에 정한은 조금 놀라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정한은 어색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태주는 인사를 받기보다 먼저 말했다.
“보자마자 이런 말씀 드려서 조금 죄송합니다만, 방금 ‘저한테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태주의 눈 밑은 검었지만 그래도 눈빛은 살아있었다.
“…네.”
정한은 망설였지만 그렇게 말했다. 솔직하게 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태주는 조금 눈을 가늘게 뜰 뿐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도깨비에게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겠네요.”
태주는 냉정하게 말했다. 정한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이대로는 안 되겠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잠시 정한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요?”
“네? 저요?”
“네. 당신이요. 도깨비 문제는 잠시 미뤄 두고 이야기를 조금 해 보죠.”
“제 이야기는 갑자기 왜….”
“이상한 점이 있었거든요.”
정한은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태주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말했다.
“제가 처음 이상하게 느낀 점은 당신의 반응이었습니다.”
“네? 반응이라니….”
사무소에 온 정한은 분명히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의 작은 실수에 집착하며 자신이 끊임없이 모자라다 느꼈다.
“처음엔 우울증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 하기엔 또 뭔가 달랐죠.”
태주는 이상하다 느꼈던 점을 하나하나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울한 사람의 대부분은 의욕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요. 하지만 당신은 의욕이 없다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일을 해냈어요.”
일의 발단부터 그랬다. 사람을 모아 타임캡슐을 파내는 일을 주도하는 것을 하는 것은 꽤 많은 의지가 필요했다.
참가만 하는 일도 그런데, 직접 주도하여 사람을 모을 정도라면 더할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당신이 원래 활발한 사람이지만 이상한 일을 겪어 의기소침해진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정한은 원래부터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본인 역시도 그런 자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당신은 사실 의욕이 없어요. 자기 일조차도 해결할 의지가 매우 적어요.”
“그건….”
정한은 반박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태주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환청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일주일을 그냥 있으셨죠. 왜 이상한 일을 겪자마자 해결하러 오지 않았나요?”
사람을 모아 타임캡슐을 파러 가기로 한 사람과는 도저히 동일인물이라 생각할 수 없다.
“당신의 일부 행동은 굉장히 주도적인데, 나머지는 그렇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죠.”
처음엔 이 모든 점은 조금 의아한 정도에서 그쳤다. 하지만 파고들수록 이상했다.
“지금 제가 보기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답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저 어린 날의 치기 어린 우정에 대한 희망적 관측.
고작 그런 것이지만 그런 것조차 정한은 지금 도깨비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제가 전에 여쭤본 적이 있었죠.”
“뭐를요?”
“정환 씨가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 말입니다.”
태주는 정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한에게 물었었다.
“그때 당신은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없을 리 없는 단점 하나조차 나오지 않았죠. 그리고 마치 지금도 그분이 친구들의 중심인 것처럼 말했죠.”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친구가 지금 모임의 시발점이었던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중심일 리는 없다.
“한 가지 단언하지요. 그 관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건 당신입니다.”
도깨비가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요, 도깨비가 아무 이유 없이 착각할 리는 없었던 거죠.”
“잘 모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정한은 태주가 이야기하는 동안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정환이에 대해 잘 모르시잖아요.”
“정말로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태주는 되물었다.
정한은 순간 당황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할 텐데 태주의 태도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혹시, 태주는 정한이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정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요, 이번에도 아무 말 안 하시는군요.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으니, 저희도 나름 조사를 했습니다.”
태주의 말에 정한은 태주를 쳐다봤다. 무슨 조사를 했느냐는 눈빛에 태주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할 뿐이었다.
“뭐, 조사라 해도 별 건 아니었습니다. 만일 제가 틀린 말을 한다면 지적해 주세요. 그냥 추측한 것도 있다 보니.”
“추측이라고요?”
정한의 질문에 태주는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아예 망상은 아닙니다. 말씀드렸잖아요. 나름 조사는 했다고요.”
태주는 정한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약 9년 전, 당신은 친구들과 스키장에 갔을 겁니다. 그때는 아직 정환 씨가 살아있었겠군요.”
“무슨…?”
“그리고 그곳에서 독감에 옮았을 겁니다. 아니면 옮겼거나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입을 떡 벌린 채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고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