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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2화 (12/269)

1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2)

십 년 전엔 열 명이었다.

아직 돈보다는 시간이 많은 나이었기에, 그리고 남는 게 체력이었기 때문에 열 명 모두 빠지지 않고 올 수 있었다.

열두 시는 진작 넘어 새벽인 시간이었지만,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산을 올랐다. 익숙한 장소이기도 하고 사람이 열이니 더 겁이 없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시작한 삽질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야 이거 우리 날 새기 전에 땅 다 팔 수 있냐?”

“나도 몰라.”

누군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게 누구였는지, 정한은 기억나지 않았다.

“야, 제대로 된 삽도 못 들고 왔으니 이게 될 리가 있냐.”

어떤 요령도 없는 와중에 들고 온 것이 모종삽이니 그게 될 턱이 없다.

“맨손보단 낫지!”

“맨손보다 낫긴 숟가락도 맨손보다 나은데. 이런 걸로 대체 땅을 어떻게 파라는 거야?”

“그냥 다음에 삽 하나 얻어 와서 다시 하면 안 돼?”

“다음에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데다, 집에 삽 있는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얻어오려고?”

누가 하는 말인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기억할 수 있었다.

정환이었다.

이 시간에 사람들을 모으고, 캡슐을 준비한 장본인이었다.

“오늘 아니면 다음에는 힘들걸. 조금 더 힘내보자. 여기까지 해놓고 포기하긴 아쉽지 않아?”

아쉽긴 하다. 하지만 모두가 점점 지쳐가던 그때였다.

“지금 그게 뭐 하는 거냐?”

“우왁, 깜짝이야.”

예상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목소리에 모두 놀랐다.

아무도 이 남자가 언제 나타났는지 몰랐다.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였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야밤에 산에서 삽질 중이니 모습이 수상해 보인다는 자각은 있었다. 괜히 찔려 아이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남자의 태도는 특별히 학생들을 의심스러워하거나 혼을 내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남자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뭘 묻으려고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경계심 가득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런 말투에도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흐음, 하긴 땅을 파려면 그런 이유밖에는 없겠지. 그런데 고작 그런 거로 땅을 팔 수나 있겠냐?”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남자에 대한 경계심과는 별개로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의외로 호의적인, 그러나 낯선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서로 누가 말을 할지 눈치를 봤다. 하지만 누구도 흔쾌히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계속 질문을 무시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정환이 앞에 나서서 대답했다.

“땅이야 시간만 들이면 어떻게든 파겠죠. 그런 건 왜 궁금하신데요? 저희 나쁜 짓 하는 게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리로 가라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냥 갑자기 땅에 뭘 묻는 게 이해가 안 가서 그런다. 딱 보기에도 그다지 귀중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남자는 정환의 말에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아이들의 행동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자 정환 역시 당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순수하고 호의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대놓고 저리로 꺼지라는 둥의 말을 하긴 어렵다. 게다가, 지금이야 호의적이지만 떡대가 장난이 아닌 이 남자가 화를 내면 보통 큰일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이 상황을 좋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말을 잘 해야 했다.

“지금 묻는 건 타임캡슐이에요.”

결국, 다시 말하기 시작한 것은 정환이었다.

“타임캡슐?”

“네. 뭔지 몰라요?”

“잘 모르는데.”

“진짜로요?”

정환은 남자가 정말로 타임캡슐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바르게 이해한 건지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다 같이 물건을 모은 뒤 나중에 다시 캐낸다는 거지?”

“캐내다뇨. 산삼도 아니고.”

정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야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처음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이상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 여길 뿐이었다.

“저것들이 십 년 뒤라고 비싸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겠죠. 설령 비싸져 봐야 얼마나 더 비싸지겠어요?”

그나마도 나중에 가치가 유지될 만한 물건들은 고작해야 반절도 채 되지 않았다.

특히나 편지 같은 것들은 무사히 보존되더라도 추억 이상의 가치는 없다.

그러나 그 추억이면 충분한 것이라 정한은 말했다.

“애초에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럼 금고에 보관할 테니까.”

그러나 남자는 타임캡슐이 뭔지는 이해했지만, 왜 하는지는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궁금한 거야. 왜 귀하지도 않은 물건을 이렇게 묻는 건지.”

“이걸 묻는 건 귀중한 물건이라서가 아니에요.”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이었기에 정환은 찌푸린 얼굴로 답했다.

“그럼?”

“귀중한 물건으로 만들기 위해 묻는 거죠.”

“음? 비싸지지 않는다면서?”

“당연히 비싸지진 않죠. 하지만 그…. 의미가 있잖아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한 정환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의미라?”

“우리는 한 십 년 뒤에 이걸 열어보기로 약속했어요. 다 같이요.”

남자는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굳이? 왜?”

“십 년 뒤에도 우리 우정은 계속될 거다…. 뭐 그런 거죠.”

정환의 말에도 여전히 남자는 의문투성이인 듯했다.

“모두 다 함께? 안 될 것 같은데.”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십 년은 긴 시간이거든. 물론 짧다면 짧지만 어린 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지. 정말 그때 모두가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분명 모두 올 거예요. 설령 모두가 오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사람은 죄다 올 거예요.”

정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런 말이나 할 거면 그냥 가세요. 도와줄 것도 아니잖아요?”

“도와주면 여기 좀 있어도 되는 거냐?”

“네?”

정환의 말을 듣자마자 남자는 앞으로 쭉 걸어왔다.

“잠시 줘봐.”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삽 하나를 빼앗았다.

안 그래도 작은 모종삽인데 남자가 집어 드니 조금 큰 숟가락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작아 보였다.

그러나 남자에게 그런 작은 사이즈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엇 하는 사이에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삽을 땅에 꽂았다.

큰 몸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삽인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남자는 움직였다.

그리곤 순식간에 꽤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엄청나다…”

누가 한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마치 괴물 같은 속도로 남자는 땅을 팠다.

그렇게 채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땅을 파는 것은 끝이 났다.

“자, 그러면 이제 나는 너희들을 도와준 셈인데.”

남자는 정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난 그럼 이제 여기 있어도 되나?”

“...네, 그렇네요.”

이 정도면 작은 도움이라 할 수 없었다. 이미 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뻘짓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을 오 분도 채 안 돼서 마칠 정도면 엄청난 도움이었다.

“감사합니다.”

정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몇 발 떨어져서는 말했다.

“그럼 구경 좀 하고 있으마.”

그다음부터는 일이 훨씬 쉬웠다.

상자를 안에 넣고, 흙을 위에 덮는 건 단단한 땅을 파내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상자를 완전히 묻고, 나무에 표시했다.

“정말 그게 다군. 뭐 특별한 거라도 더 하나 싶었는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당연히 특별할 게 없죠. 특별한 일은 십 년 뒤에 있을 예정이니까요.”

정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그럼 이제 해산하자고 말했다.

원래는 그 뒤에 뭐라도 더 할까도 했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고 사람들은 피곤했다.

뿌듯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피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모두가 알아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한 사람만 빼고.

“잠깐, 이야기 조금만 더 하지.”

정한은 남자가 정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뒤에서 두 번째로 자리하고 있던 정한만이 그 말을 들었다.

“조금 궁금한 게 있거든.”

정한은 뒤를 돌아봤다. 맨 뒤에 있던 정환이는 먼저 내려가라 손짓을 했다.

곧 오겠지 싶어 먼저 갔지만, 정환이가 내려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래도 별문제는 없었다. 다음날 다들 피곤해서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걸 제외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게 정한의 당시 기억이었다.

* * *

이제 와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남자가 바로 이 도깨비였다.

“당시 무슨 약속을 했다면 아마 마지막의 그 순간이었겠죠.”

정한은 더듬거리면서도 기억나는 모든 사항을 말했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거랑도 다르지 않아.”

도깨비는 틀린 점은 없었다며 말했다.

“한 가지 기억과 다른 점은 있네요.”

정한은 도깨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시에는 수염이 없으셨던 거 같아요.”

그렇기에 그때 그 남자와 도깨비를 연관 짓지 못했다.

“난 원래 밀어. 상자 안에만 있느라 이번에만 못 민 거지.”

도깨비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어 말했다.

“네가 생각한 대로 약속은 그때 했었다.”

십 년 뒤에 나타난다면 당신에게도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정환은 말했었다.

“그런 약속이었다. 정작 약속을 한 본인이 죽어버릴 줄은 몰랐지만.”

도깨비는 입맛을 쩍 다시며 말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더 잘 된 게 맞구나. 분명 연관이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렇네요. 그러면 우연이겠지만 그나마 제가 약속을 대신 지키는 데 알맞은 사람이었네요.”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 우연히 널 고른 건 아니었는데.”

그러나 도깨비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연이 아니라고요?”

“말했잖아. 너를 그 녀석이라고 착각한 거라고.”

“그게 우연이 아니라고요?”

정한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네가 그중에 그 녀석이랑 가장 유사했거든.”

“그럴 리가 없는데요.”

외양적으로는 동원이 더 닮았을 것이다. 키가 크고, 쾌활하다. 운동신경도 좋다.

목소리가 크고, 유쾌하기로는 대엽이가 더 닮았을 것이다. 외모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면, 누가 뭐라 해도 그 친구로 착각할 만했다.

하지만 외모도, 성격도, 말투조차 다른 정한에게 도깨비는 약속을 지키라 종용했다.

“솔직히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들어서 알겠지만, 정환이를 저랑 착각한 건 말이 안 돼요.”

“뭐가 말이 안 돼?”

도깨비는 이상한 말을 다 듣는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는 말했다.

“네가 그 중의 중심이었다.”

도깨비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그래서 네가 그 녀석일 거라 생각했다.”

“제가 그 중 중심이었다고요?”

“그래.”

도깨비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야 좀 적어졌지만 그래도 역할이 같으니 같은 놈일 줄 알았다.”

그 말에 정한은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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