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1)
도깨비가 도착하기 전, 시아는 태주에게 연락을 받았다.
[누나, 정한씨가 도깨비와 직접 대화를 할 방법이 있을까요?]
꽤 적나라한 의도의 질문이었고, 시아는 그 질문에 그렇다 답했다. 당사자의 동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기 있으라고요? 제가요?”
“네. 이곳에 계시면 됩니다.”
시아는 짧게 말했다.
“이 안에 도깨비가 들어갈 거라면서요?”
“예, 그럴 겁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은 한층 더 표정이 구겨졌다.
“그런데도 이 안에 있으라고요?”
정한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물었다.
“그 태주 씨라는 분이 위험하니까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 아닌가요?”
“예, 하지만 위험한 건 도깨비지, 이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사자는 위험할지라도 동물원은 위험하지 않은 법이 아니겠습니까?”
시아는 자신 있는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안전 대책은 확실히 있습니다.”
시아는 어떤 방법으로 정한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설명했지만, 그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도 여전히 미묘한 표정이었다.
“저… 제가 꼭 그곳에 있어야 하나요?”
안전 보장이 확실히 되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여전히 그래야 할 이유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도깨비 앞에 서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무서운데요.”
“물론 원치 않는다면 안 그러셔도 됩니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시아는 정한에게 물었다.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시아의 말에 정한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얼굴을 찌푸리고는 고민했다.
시아는 사람을 설득하는 재주는 별로 없다. 그저 거리낌 없이 할 말을 전할 뿐이다.
“직접 마주하면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궁금한 걸요?”
정한은 어느 정도 마음을 굳힌 듯 물었다. 시아는 역시 태주의 예상대로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문을 가지고 계신 건지는 저도 모르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필요하시다면 직접 질문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도깨비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겠지만요.”
“…그럼 할게요.”
정한은 두려운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각오를 조금 한 얼굴로 말했다.
견딜 수 없는 호기심 하나가 정한에겐 있었던 것이다.
* * *
“뭐지?”
방 안이 맨 처음 도깨비가 본 것과 달리 넓어지기는 했으나 드라마틱할 정도로 커진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한 평 정도도 못 되는 공간이다.
아무리 도깨비라도 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그런 작은 사이즈의 공간.
하지만 그만한 공간이면 사람을 숨기는 데는 충분하다. 사람 한 명이 그 안에 있을 것이라 도깨비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쭈뼛거리는, 그러나 자기 발로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도깨비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도깨비가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일주일 정도를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 알아볼 수 있었다.
“놀랐죠?”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한은 한참 먼저부터 도깨비를 보고 있어서인지 꽤 적응한 듯 보였다. 하지만 도깨비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언제부터지?”
도깨비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당연한 걸 물었군.”
“네. 그야 당연히 처음부터입니다.”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맨 처음 도깨비가 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장치는 되어있었다.
“시아 씨의 안내를 받아서, 당신이 이 방 안에 들어온 데는, 그리고 방에 월이가 먼저 들어가 정해진 자리에 선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죠.”
시아가 먼저 도깨비가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방 안을 살폈고, 일이 아주 잘못되더라도 정한을 보호할 수 있도록 월이가 그 사이에 서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월이는 계속 도깨비를 노려보기는 했지만, 도깨비의 말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허… 감쪽같이 속았군.”
속았다고, 도깨비는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날 골탕 먹이려고 이런 건 아닌 거 같고.”
도깨비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물었다.
“뭐 하러 이런 짓을 했냐?”
도깨비는 물었다.
“반쯤 장난입니다.”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화내지 않았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헛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장난? 도깨비에게?”
“도깨비만 장난을 치라는 법은 없죠. 세상에 그, 거의 없는 사람이 여기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말문이 막힌 듯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반은 장난이 아니란 말이군?”
태주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다른 이유로는 두 사람이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냥 하면 되잖아?”
“그러기엔 문제가 하나 있었거든요.
“문제?”
도깨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한 가지 착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어요.”
가장 큰 오해이자, 이 일의 시작이었다.
“당신과 약속을 한 사람은 이미 죽었어요. 말씀을 드린 대로 병으로 죽었죠.”
“그래. 그건 말했었지.”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하는 말에서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도깨비는 별 의심 없이 믿었었다.
“그럼 저건 누군데?”
도깨비는 정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적의가 없음에도 정한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확실히 처음 봤을 때처럼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 분은 정한 씨라는 분입니다.”
“아, 이름은 됐어. 어차피 들어도 기억 잘 못 해.”
도깨비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름 따위는 도깨비가 궁금해할 정보가 아니었다.
“나는 저게 분명 나와 약속을 했던 당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저건 누구야?”
“약속한 당사자는 아닙니다. 그저 상자를 묻을 때 같이 있었던 사람 중 하나죠.”
“그럼 아예 관계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군.”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헛웃음을 쳤다.
“하, 거짓말은 안 했다 이거냐? 장난치고는 조금 짓궂은데.”
“솔직히 당신이 흥분하지 않고 지금의 설명을 받아들이게 할 방법이 별로 없었거든요.”
“끙”
도깨비들이 대체로 극단적인 면모를 가졌다는 점은 도깨비 자신들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도깨비는 침음을 한 번 흘릴 뿐이었다.
“짓궂다 해도 저희가 당신을 속여서 부당한 이득을 취한 건 아니니, 장난으로 쳐 주시죠.”
어느 정도는 궤변에 가까웠지만, 도깨비는 그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지 끄덕일 뿐이었다. 계산했던 반응이었다. 도깨비는 최소한 장난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자신들도 늘 하는 짓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굳이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태주는 슬쩍 뒤쪽을 보며 말했다. 지금의 말은 눈앞의 도깨비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균형을 좀 잡고 싶었거든요.”
“균형이요?”
태주의 의도대로 이번에는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한이 질문한 것이다.
“예, 아무래도 도깨비와 만난 인간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반면 도깨비는 좀 만만해 보이는 사람만 보면 장난질을 하려 할 테니까요.”
그러니 도깨비에게 먼저 장난을 쳐서 다른 장난을 칠 수 없는 분위기로 만든다.
반대로 사람은 도깨비에게 익숙해지게 만든다. 특히나 소극적인 정한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면했을 때 도저히 제대로 된 교섭이 불가능할 것이다. 한쪽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끌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름 계산을 하고 이 짓을 했다는 말이구나.”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당신이 이 안으로 너무 얌전히 들어와 주셨다는 거였어요.”
태주의 말에 시아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놀랄 만큼 쉽게 이루어졌다. 도깨비는 좋게 말하면 대범하게, 나쁘게 말하면 별생각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도깨비인 당신이 하는 말을 정한 씨는 충분히 들었고, 이제 당신은 당신이 약속을 지키라고 했던 사람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도깨비는 태주의 말을 듣고는 정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월이가 나타나 도깨비의 시선을 차단했다.
“아, 저놈 저거 참 방해가 심하네.”
“…흥.”
월이는 조금 짜증나는 듯 작게 콧김을 뱉었다.
“당신이 노려보는 건 그 자체로 협박이니까요. 참고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태주는 먼저 도깨비에게 물었다. 사실 알면서도 물은 것이다. 정한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지키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가든, 죽은 이의 가족에게 가든. 어떻게든 나는 약속한 걸 받아내려 하겠지.”
도깨비의 말에 정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태주는 그 말 자체에는 별 감상이 없었으나, 한 가지 지적만은 분명히 했다.
“그런 점이 협박이라는 말입니다. 뭐, 본인은 이해 못 하겠지만요.”
도깨비의 저 말은 악의 없는 진심이라는 점이 골치 아프다.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는 않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온건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사람이 보기에는 겪은 일을 지인과 가족이 똑같이 겪게 해 주겠다는 협박과 다르지 않다.
“어쨌든 그래서, 도깨비가 당신에게 나타난 건 대상을 착각했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기도 합니다.”
태주는 정한에게 말했다.
“결국은 당신도 이 일의 관계자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어떤 의미로는 차라리 다행이다. 도깨비가 아직 참을성이 있을 때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금 이 상황은 시간문제였다는 말이죠. 그래서 지금, 정한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를요?”
“약속을 지키고 싶으십니까? 참고로 지금 묻는 건 가능 불가능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저 본인의 의지가 어떤지 듣고 싶네요.”
태주의 질문에 도깨비도 숨을 죽였다.
“가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하셨죠.”
정한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여전히 그 가치 있는 게 뭔지를 모르겠어요.”
정한은 시선을 조금 떨어트리고 말했다.
“분명 뭔가 좀 대단한 거겠죠.”
정한의 말에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아직은 답변하기가 조금 어렵다고, 정한은 생각했다.
“그러면 좀 정리가 되네요.”
태주는 말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험한 건 사실 둘 뿐입니다. 도깨비와 그 정환 씨라는 분 말이죠.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친구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손님도 상황을 잘 모르는 걸 보면 빼더라도 별 차이는 없겠죠.”
태주의 말에 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서, 한번 약속할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죠. 그때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나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물었다.
“저… 혹시 이야기 전에 한 가지만 제가 질문드려도 될까요?”
정한은 손을 들고는 말했다. 처음으로 하는 질문이었다.
긴장은 했지만 처음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한참을 대화하는 것을 보니 익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더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당신이 그때 그분인가요?’
정한의 질문에 도깨비는 정한을 똑바로 쳐다봤다.
“상자를 묻을 때 저희를 도와주셨던…”
“그래, 맞다.”
도깨비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때 그게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