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0)
사무소에 돌아온 태주는 오자마자 자신 몫의 커피를 내렸다.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정신은 조금 피곤했다.
도깨비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수다스러웠고, 그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건 꽤 귀찮은 일이었다.
동시에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서, 오해는 유지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그건 꽤 복잡한 일이었다.
그래도 제 발로 걸어왔으니 태주의 피로가 의미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한숨 돌렸네.”
태주는 한숨을 후 내쉬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뒤쪽 문이 덜커덕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리긴 뭘 돌려?”
시아는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아, 벌써 끝났어요?”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끝났다고 할까… 끝내 준 거라고 할까… 이상할 정도로 협조적이었지.”
시아는 조금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말을 안 들으려 할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협조적이니까 오히려 벙찌는 느낌이던데.”
“무슨 느낌인지 알겠네요. 저한테도 그러던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깨비는 한번 그러기로 한 뒤에는 지나칠 정도로 말을 잘 따라줬다.
그저 좀 수다스러울 뿐이었다.
“사건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경계 속에 있어 달라고 말하니까 이런 식으로 가두는 걸 인간들 드라마에서 봤다나 뭐라나 하면서 좋아하던데.”
“수사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라도 본 걸까요? 재미있게 봤나 보네요.”
태주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하긴 몇백 년을 묵는 동안 TV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면 그편이 더 이상했다.
애초에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존재들이니, 도깨비에게 드라마는 확실히 최고의 오락거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는 어떻게 저 안에 들어가라 설득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들어가더라.”
시아 입장에서 편하지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뭐라 할까, 거의 경찰놀이에 참여한 꼬맹이 같은 수준이던데.”
도깨비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희희낙락하며 순순히 사무소 사람들의 지시에 따랐다.
시아는 그 밖에도 한동안 의심 가는 것이 있거나 더 협조해 줘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도깨비는 그 모든 말에 웃으며 답했다.
“와하하하! 좋아 좋아! 거 참 재미있네!”
얼떨떨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나쁜 일은 아니었다. 보통은 사람조차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태주는 커피를 살짝 홀짝이며 말했다.
“뭐, 협조적이라니 좋은 일이죠.”
“그래. 좋은 일이긴 한데.”
시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에 준비한 비상 상황에 대한 준비는 거의 다 무의미했다.
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한 준비지만 정말로 안 써버리니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아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든 다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는 거겠죠.”
다만 그건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아도 만만한 술자는 아니다.
“반대로 약속을 지켜주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건 참 찜찜해.”
“그래도 나쁠 건 없죠.”
태주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 특히나 이번 일은 빨리 진행해야 하니까.”
이번 일은 길게 끌면 끌수록 손해다. 상대는 십 년 단위로 가만히 버틸 수 있는 존재고, 그런 대상을 상대로 장기전을 거는 것은 바보짓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월이는 뭐 하고 있어요?”
“도깨비랑 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노려보고 있는 것 같던데.”
시아는 어차피 그곳에 있어야 하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말했다.
“평소보다 기분이 좀 나쁜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시아의 말에 태주는 월이가 왜 그러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아마 저것이라는 호칭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뭐, 조금요. 조금 민감한 부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찔렸다고 할까요.”
도깨비가 별 악의 없이 한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월이는 조금 사납게 굴 뿐 도깨비에게 대놓고 욕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을 감출 생각은 없는지 표정이나 행동에서 그 기분이 다 드러났다.
더 환장할 노릇은 도깨비는 아마 솔직하니 좋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그걸 전하면 월이는 더 화가 날 것이 분명했기에 굳이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아는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어느 정도는 손님한테 듣기는 했지만, 자세한 건 하나도 모르겠던데.”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죠. 어차피 비슷한 이야기를 안에서도 하게 될 테니까요.”
태주는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말했다.
“그래도 손님 오늘 안에는 집에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바깥에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아예 지금 들어가지.”
* * *
사무소 사람들이 카페방, 혹은 유사카페라 부르는 공간 뒤편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이다.
그저 평범한 방으로 보이지만 당연히 평범한 장소는 아니다.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는 것은 쉽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다.
사람이 아닌 것에 한해서 말이다.
그 방 한가운데에 도깨비는 앉아 있었다.
이곳에 들어가면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제 발로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도깨비는 아무 말 없이 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심리적으로 불편할 법도 하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너,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안 귀찮냐?”
도깨비는 그냥 한가운데 마련된 자리에 편히 앉아 있었다. 의자는 좀스러우니 됐다고 거절했지만, 방석 정도는 거절하지 않았다.
정작 더 불편하게 있는 것은 도깨비를 감시하겠답시고 서 있는 월이였다.
“내가 실수라도 했냐? 뭐 그렇게 골이 나 있어?”
몇 번을 말을 걸어도 월이는 조용히 도깨비를 노려볼 뿐이었다.
도깨비는 월이가 화가 났다는 건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왜 화가 났는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라. 심심한데.”
그러나 도깨비의 그런 태도에 월이는 그저 좀 더 날카로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결국, 도깨비는 더 이상 말을 걸기를 포기했다.
“거 참, 박수도 양손이 맞아야 치는 법인데….”
도깨비는 투덜거리며 다시 삐딱하게 몸을 기울였다.
마침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왔냐?”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도깨비는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도깨비는 배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저희끼리 할 이야기도 좀 있었거든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온 겁니다.”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도깨비의 앞에 섰다.
“편하게 계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태주는 도깨비가 제집 안방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상자 속보다는 훨씬 편하니까. 여기는 거기에 비하면 대궐이지, 대궐! 으하하!”
도깨비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월이는 문 쪽에서 그게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벽에 기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철저히 감시만 할 뿐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말씀드려서 갑갑해 하실까 걱정했습니다.”
“글쎄, 나가고 싶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으니 갑갑할 이유가 없지.”
이미 십 년 정도를 상자 안에서 잘만 버티던 도깨비였다.
“그래서, 이게 그 취조인가 뭔가 그건가?”
도깨비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굳이 표현하면 청취에 가깝지 않을까요.”
“청취? 뭐야, 취조와는 다른 건가?”
“예. 취조는 용의자에게 하는 것이고, 이건 그저 ‘이야기를 듣는다’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용의자보다는 폭탄을 대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태주는 굳이 그걸 입 바깥으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아, 그래? 아쉽네. 그 취조라는 거 한번 받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쩝.”
“취조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질문을 드리는 건 똑같습니다.”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결국 해야 할 일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질문에 답해주려고 난 여기 있는 거니까. 마음껏 물어봐!”
도깨비는 이 상황과 사무소 사람들의 약속을 지키려는 태도 모두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가득 지었다.
“너희가 성의를 보이려 하니 나도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하겠지. 성실한 인간은 마음에 들거든.”
태주는 도깨비의 대답에 살짝 웃어준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당신이 했던 약속입니다.”
“그렇지. 그것부터 물어보는 게 맞지.”
도깨비는 맞장구쳤다.
“돌아가신 분이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는 게 약속이었다고 말 하셨죠? 그 가치 있는 것이 뭔지는 정해지지 않은 거고요.”
태주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약속의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가치 있는 것.”
도깨비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해진 답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정해지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지.”
“그런 걸 약속이라 할 수가 있나?”
시아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한소리 했다.
“하지만 보여주기로 한 이상 약속이다. 십 년 뒤에 나에게 분명히 보여줄 거라 말했어.”
그러나 도깨비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 단호한 말투였다. 하지만 도깨비에게는 그거면 충분했을지 몰라도 사람에게는 아니었다.
태주는 말했다.
“그건 약속이라 하기가 좀 그런데요.”
“하지만 보여주겠다고 말했으니 그건 약속이지.”
“약속이라는 말 자체가 틀리지는 않겠지만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그 약속에는 문제가 좀 있잖아요?”
태주는 찬찬히 설명했다.
“제게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당신에게는 가치 없는 것을 보여드리면, 그건 약속을 지킨 걸까요?”
“글쎄, 그건 아니지. 그렇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나?”
태주의 지적에 도깨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단순히 가치 있는 건 세상에 많잖아? 금이나, 뭐 그런 거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건 그 녀석이 약속한 게 아닐 거야.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거든.”
도깨비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분명 의미가 있는 것이라 했어. 나는 정확히 그게 보고 싶은 거야. 대체 그렇게 호언장담한 게 뭔지 궁금하거든.”
“그렇다면 아무거나 가치 있는 물건을 보여드리는 건 당신이 원하는 건 아니겠군요?”
“당연하지! 십 년을 기다렸으니 굉장히 특별한 걸 기대하고 있다고.”
도깨비는 조금 퉁명스럽게 답했다.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
태주는 잠시 생각했다. 조건이 조금 붙었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다. 차라리 정해진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어디 가서 구해보기라도 하겠지만, 이대로는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아시는 건 없고요.”
“그래.”
“그러면 다음 질문을 드리죠. 약속하신 분은 무엇을 받은 건가요?”
“내가 뭘 해 줬느냐는 말이지?”
태주의 질문에 도깨비는 웃으며 답했다.
“그 산이 사람들에게 파헤쳐지는 속에서도 캡슐이 그대로 있을 수 있도록 지킨 게 나다. 그곳에 묻을 수 있도록 땅을 파 준 게 나고, 잡것들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던 게 나다.”
도깨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한번 그 장소를 싹 갈아엎는 와중에도 왜 이 상자는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겠냐? 내용물의 손상이 어떻게 전혀 없을 수 있었을까? 그건 다 내가 힘을 썼기 때문이다.”
“그 타임캡슐을 지켜줬다는 말이군요.”
“그래. 나도 보고 싶었으니까. 십 년 뒤에 이걸 파내면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했던 가치 있는 게 말이야.”
강제로 봉인을 당한 것이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상자 안에 들어있다거나 하는 것이 약속의 조건은 아니었다는 말이군요.”
“넌 다 좋은데 말을 너무 어렵게 한다.”
질린듯한 도깨비의 말에 태주는 조금 말을 풀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상자 속에 있었던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상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거죠?”
“그래. 그것만 이유는 아니지만, 나머지는 사소하다. 겸사겸사 그랬던 셈이지.”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의문이 조금은 풀렸네요.”
“그래서, 이 정도면 판단은 할 수 있겠지.”
도깨비는 태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나?”
도깨비의 질문에 태주는 마찬가지로 도깨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건 제가 드릴 수 있는 말도 아니고요.”
“뭐?”
도깨비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곧바로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말을 하던 태주가 갑자기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 대답을 드릴 수 있는 분은 따로 있죠.”
태주는 씩 웃으며 말했다.
벽에 기대만 있던 월이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니다. 그것은 도깨비의 착각이었다.
월이는 가만히 서 있었다. 실제로 움직인 것은 월이가 아니라 벽이었다.
“뭐야?”
도깨비는 이곳이 보이던 것보다 넓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