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9)
“뭐야, 놀래키려고 했더니.”
도깨비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조금 재미없다는 듯한 그런 말투였다.
“어떻게 알았냐?”
도깨비는 평온한 태도로 물었다. 순수하게 장난을 치지 못했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외모가 이런 털복숭이 아저씨가 아니라면, 장난꾸러기 소년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엔 좀 참고하게 알려주라.”
“사람처럼 자는 척을 하시니 그렇죠.”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숨을 안 쉬던 것이 갑자기 숨 쉬는 시늉을 하면 당연히 알아채지 않겠습니까.”
어느 순간 갑자기 숨소리가 들리고, 호흡하는 것처럼 가슴이 움직였다.
“자는 척을 하려 하셨다면 계속 가만히 계시는 게 맞았습니다.”
“사람은 숨을 쉬잖냐.”
도깨비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저희는 당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평범한 사람에게라면 통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월이 역시 도깨비가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그렇군, 아쉽게 됐어!”
도깨비는 태주를 마주 보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에잇 젠장, 사람인 척은 잘 한 거 같은데 사람인 척을 해서 들키는 건 좀 너무하잖아! 그나저나 너희는 뭐냐?”
도깨비는 그제야 태주의 정체를 물었다. 실로 도깨비다운 순서였다.
상대방의 정체보다도 왜 자신의 장난이 통하지 않았는가를 더 궁금해 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도깨비다.
“내가 도깨비라는 걸 알고도 놀라지 않은 걸 보면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온 것 같은데,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도깨비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오늘 낮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일어나는 걸 기다리고 있었죠.”
“기다려? 나를?”
“예. 자는 사람… 사람은 아니군요. 어쨌든 자는 도깨비 깨우는 건 예의에 좀 어긋나는 것 같아서.”
“큼, 이상한 데서 예의가 바른 녀석이구만. 과할 정도야.”
도깨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주가 싫지는 않은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얼굴이 험상궂어 부드러운 인상보다는 기분이 좋은 산적같이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부탁이나 소원 같은 건 안 들어준다. 지금은 먼저 관심 가진 일이 있어서 말이야.”
“부탁이나 소원은 없습니다.”
“거짓말 같은데. 아무런 이유 없이 도깨비 앞에 나타나는 인간이 어딨냐? 그 반대도 아니고.”
도깨비는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도깨비에게 장난을 치는 간 큰 인간은 별로 없겠죠.”
태주는 그렇게 답하며 말했다.
“용건이야 있긴 한데 앞서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닙니다. 소원 같은 거와 상관없는 용건이 하나 있을 뿐이죠.”
“허.”
도깨비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게 나를 잡겠다는 말 같은 건 아니겠지? 옛날에는 그런 놈들이 있었는데. 명예니 뭐니 하면서 날 잡겠다고 하는 녀석들 말이야.”
“요즘은 그런 일이 명예 비슷한 것도 안 됩니다. 물론 돈도 안 되고요.”
“그래? 그런 것 치고는 만만찮은 걸 데려왔는데.”
도깨비는 월이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하긴 날 잡으러 왔으면 자는 틈에 어떻게든 했겠지. 그럼 용건이 뭔데? 뭐 하러 온 거야?”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흐음, 그냥 물어볼 게 있다고?”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호기심이 인 듯 물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말을 하러 온 거라면 저런 걸 데려오진 않았겠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런 것까지 데려온 거야?”
두 번이나 저런 거라고 불린 월이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하지만 지금 성질부릴 수는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표정만 험악하게 바뀌었을 뿐이었다.
태주는 도발에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죠. 제 이름은 태주라고 합니다. 당신 같은 존재와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돕기 위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돕는다고? 그게 나를 돕기 위한 건 아닐 거 같은데.”
도깨비는 미심쩍다는 태도로 말했다.
“넌 사람이잖아. 사람을 돕는 게 네 일 아니냐?”
“대체로 맞는 말이네요.”
태주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 편을 들게 될 때가 많지요. 하지만 그 이유는 보통 상대편과 말이 안 통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말이 통하니까 일단 대화부터 한다는 거냐? 너 말 참 어렵게 하는구나.”
도깨비는 질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굳이 싸울 필요 없다면 싸우지 않겠다는 거잖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대화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싸우지 않을 이유 중 하나다.
“당신처럼 말이 통하는 존재라면 대화로 풀 수 있으니 훨씬 편하죠. 오해가 있다면 풀 수도 있으니까요.”
태주는 의미심장하게 오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태주의 말장난이 도깨비는 재미있는지 조금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오해하는 뭔가가 있다? 하하하! 어디 들어나 보지. 그 오해할 만한 일 말이야.”
태주가 의도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태주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태주의 목적은 ‘거짓말은 아니지만 상대를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단어 한 단어에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도깨비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뜬금없는 말이었기에 놀란 듯싶었다.
“이 집 주인이 장례식장 간 거랑 연관이 있는 거야? 그럼 죽은 사람이야 있겠지.”
“그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제가 죽었다 말하는 것은 당신과 약속을 한 사람입니다. 아니, 아마 그 죽은 사람이 당신과 약속을 한 사람일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태주는 말했다.
“전 그래서 온 겁니다.”
태주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결론만 말했다. 다른 설명보다는 도깨비가 가장 충격을 받을 한 마디면 충분했다.
“무슨 소리야? 죽었다니.”
도깨비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들먹이며 말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왜?”
“듣기로는 병이라는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늘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갑자기 죽는 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전에 봤을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도깨비는 허탈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곧 도깨비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뭘 합니까.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그놈에게 의뢰를 받았을지도 모르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게 해 달라고.”
도깨비의 태도는 흉흉했다. 월이는 자연스럽게 도깨비의 앞으로 나섰다.
태주는 더 앞으로 나서지 말라는 의미로 어깨에 손을 한번 툭 얹으며 말했다.
최소한 아직은 싸울 때는 아니었다.
“그럴 거라면 자는 틈에 뭔가 했겠죠.”
도깨비 역시 그 말이 맞다 생각했는지 태주의 말을 더 의심하지는 않았다.
“알아서 어련히 약속을 지키겠거니 싶어서 내버려 두고 있었던 게 문제인가. 그놈 그거 기절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도깨비는 역시 정한이 약속을 한 사람이라 착각하고 있다.
태주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착각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니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사실이 티가 날 수 있었다.
“어쨌든 저는 그 소식을 전하러 온 겁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질문을 몇 개 하러 온 거죠.”
“뭐 일단 화는 나지만 너한테 화내봐야 소용없는 일이니 그러지는 않으마.”
도깨비는 한껏 얼굴을 흉흉하게 찌그러트린 채 말했다.
“그래, 질문이라는 게 뭐냐?”
“혹시 당신이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까?”
태주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을 물어보듯 말했다. 태도에 비해 내용은 조금 중요한 질문이었다.
“날 의심하는 건가? 아니! 난 죽이지 않았어. 약속을 지킬 사람을 내가 왜 죽인다는 말이야?”
도깨비는 어처구니없고 억울하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나름대로 신사적으로 기다려 주기까지 했는데 내가 이런 의심을 받아야 한단 말이야?”
“예, 그 말은 믿겠습니다. 저도 도깨비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태주는 도깨비의 말을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저도 그 사람의 죽음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이 집 주인에게 약속을 지키라는 말이 들린다는 말은 들었거든요.”
“그래. 내가 매일 말했으니까 말이야.”
“혹시나 해서 관련이 있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당신이 아니라고 하시니 믿겠습니다.”
태주는 도깨비가 살인범이라 의심하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생색을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 그래도 도깨비에 대해 좀 아는 놈이구나?”
도깨비는 자신을 믿는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예. 중간에서 중재하는 사람이 도깨비에 대해 아예 모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태주도 그렇게 말하며 따라 웃었다. 그러나 도깨비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곤란한데. 그럼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당연히 이대로라면 약속을 지킬 수 없겠지요.”
도깨비는 태주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스스로 중재하는 역할이라 했으니 그 이야기도 하려고 온 거라 생각이 되는데.”
도깨비의 날 선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당신에게 약속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건 압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게 하려 들 거라는 것도 알고요.”
그랬기에 도깨비가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당신은 찾아갈 수 있겠죠. 가족이나 친구가 대신 갚아야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요.”
“잘 아네.”
도깨비는 찌푸린 채 말했다.
“그리고 넌 그게 맘에 안 들겠지?”
“저도 사람이다 보니 그게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도깨비에 대해서 아니까요. 당신의 그 행동은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것도 압니다.”
태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당신과 죽기살기로 싸울 생각은 저희도 없어요. 그래서 그게 심각한 문제 있는 약속이 아니라면 대신 지키려는 시도는 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잘 됐군, 어설프게 무조건 지키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어.”
“그래서 지금 그 약속을 좀 확인해 보려 합니다.”
“뭐? 너희 이 약속이 무슨 약속인지를 모르나?”
“예. 고인이 그 약속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혀를 한번 쯧 찼다.
“죽은 놈 욕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무책임한걸.”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다. 태주는 그저 어깨만을 한번 으쓱한 뒤 다시 물었다.
“원래의 약속이라는 게 대체 뭐였습니까?”
태주는 조금 긴장한 채 물었다.
이 대답 여하에 따라 이후 일의 난이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속은 간단했어. 어른이 돼서 상자를 다시 파내고 나면 내게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기로 한 거야.”
도깨비는 그렇게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치 있는 거요?”
“그래. 그러니까 그 녀석은 나한테 가치 있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있어.”
태주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뭔가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본인이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니까. 나는 그게 뭔지 몰라.”
도깨비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 녀석은 내게 가치 있는 걸 보여주기로 약속했어. 그게 뭔지는 아직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