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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8화 (8/269)

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8)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정한은 아주 먼 길처럼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리 애착이 있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집에 가는 게 꺼림칙한 적이 없다.

“긴장을 별로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부러운 듯, 그리고 대단하다는 듯 정한은 말했다.

“저는 지금도 손이 조금 떨리는데요.”

아마 혼자라면 절대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옆의 두 사람이 없었다면 자신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하, 저도 긴장합니다. 그냥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에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태주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그렇게 보인다면 다행이네요.”

물론 정한만큼 긴장한 건 아니지만, 태주 역시 어느 정도 감정을 통제하고 있었다. 만약 태주가 당황한다면 자칫 옆 사람까지 공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월이는 둘의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맑은 하늘을 보며 걷고 있었다. 정말로 자연스러운 건 사실 저 태도가 아닐까.

“당황하거나, 겁먹거나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태주는 대뜸 말했다.

“네?”

“당연한 거라고요. 애초에 사람이 두려워하는 거나 이상해하는 것들이 바로 괴담이니까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잠시 당황했다. 정한이 말문이 막힌 사이 태주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감정을 느끼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한 가지만 지켜주세요.”

“어떤 것 말인가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그냥 천천히, 뒤로 물러나 주시면 됩니다. 겁을 먹어도 좋고, 당황해도 좋아요. 비명은… 안 지르시는 편이 좋겠지만 지르신다면 어쩔 수 없죠.”

태주의 말에 정한은 의문이 생긴 듯 물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지 않으면 좋을 뿐이에요. 그걸 어떻게 통제하겠어요?”

태주는 조금 웃었다.

“그냥 스스로 더 위험한 길로만 가지 마세요. 패닉에 빠진 사람은 종종 그런 짓을 하거든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어딘가 소름 끼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한사람 봤네요. 간신히 막긴 했는데, 그땐 저도 식겁했죠.”

태주의 말에 정한은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디쯤인가요?”

태주의 질문에 정한은 정신 차린 듯 말했다.

“아, 이쪽입니다.”

정한은 작은 주택 앞에서 멈췄다. 겉보기에도 이미 그리 정상적인 집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태주의 질문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이 안에 원룸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안쪽 집입니다.”

“그리 넓지는 않겠네요.”

“그렇죠. 이곳이 회사 근처에서 집세가 가장 쌌거든요.”

아마도 편법으로 증축한 건축물로 보였다. 확실히 집세는 쌀 것 같다.

말한 대로 가장 안쪽으로 향하자 문이 하나 보였다.

“이 집인가요?”

태주의 질문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문은 제가 열어드려야겠네요.”

정한은 문손잡이를 쥐고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던 집이었지만, 안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되어버렸다.

삑. 삑. 삑. 삑. 삐빅- 철컥.

문이 열렸다. 정한은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한은 신발장에서 더 들어가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지만, 태주는 재빨리 월이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재빨리 정한을 뒤로 끄집어냈다.

“괜찮으신가요?”

태주는 작게 속삭였다. 정한은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안에… 안에 누가 누워 있어요.”

정한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패닉에도 빠지지 않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하셨습니다. 잠시, 뒤에 계세요.”

태주는 벌벌 떨고 있는 정한을 월이에게 부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태주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급하게 삼켰다. 최대한 조용히 해야 했다.

정한의 말처럼 누군가가 방 한가운데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덩치가 조금 크고 건장한, 추리닝 차림의 젊은 남자였다. 들었던 대로 수염은 조금 많았다. 만약 이것이 도깨비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태주조차 그저 사람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숨을 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눈을 찌푸린 채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두 사람에게 말을 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속삭이듯 말했다.

“도깨비가 맞습니다. 일단 잠시 바깥으로 나가죠.”

태주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관으로 나왔다.

“어떤 상태야?”

월이가 물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이었다.

“넌 곧 볼 텐데… 어쨌든 너도 같이 듣던가.”

태주는 월이에게 그렇게 말한 뒤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방금 손님이 보신 대로 도깨비가 방 한가운데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이런…”

정한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저런 게 지금까지 제 방에 있었던 건가요?”

정한은 소름이 돋은 듯 부르르 떨며 말했다. 집 안에 도깨비가 있다는 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예. 아마 저게 원래 모습이 맞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물건으로 변해 있었을 테지만요.”

“도깨비가 어떻게 자고 있었는데?”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말 그대로 대자로 크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뭐? 아예 대자로 자고 있다고?”

월이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태평하게 잘 자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직은 들어가지 말고.”

“그렇게 말하니까 더 들어가 보고 싶은데!”

월이가 도깨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사이 정한이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쩌죠?”

불안한 표정이었다.

“생각과는 다른 상황 아닌가요?”

“참, 저렇게 누워 있을 줄은 저도 모르긴 했는데… 그렇다고 뭔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도깨비가 저렇게 있는 게요? 도깨비가 아니라 사람이 저렇게 누워 있어도 경악스러운 일인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말씀드렸잖아요. 도깨비가 집 안에 있을 거라고요.“

태주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집에 혼자밖에 없다고 저렇게 잠들어버린 꼴이라니.

“어떤 의미로는 저희 계획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겁니다. 중간에 누군가가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준 거죠.”

정한은 침착한 태주의 태도를 보고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참, 아무리 그래도 저 모습은…”

그래도 찬찬히 뜯어보면 처음에 놀란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태주는 진정한 정한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웃었다.

“네, 저도 좀 의외네요. 최선은 저 녀석을 자는 사이 사무소로 옮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저런 걸 옮긴다고요?”

“저 모습 그대로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놀라는 정한의 표정을 본 태주는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도깨비가 물건의 모습으로 변한 채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숨어 있었을 테니까요.”

처음 집에 들어올 때도 작은 물건으로 변해 집 안에 섞여들어 왔을 것이다.

인제 와서는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처음 태주가 난관이 될 거라 생각했던 부분은 도깨비가 무엇으로 변해 어디에 숨어 있는가를 맞추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차라리 낫긴 하네요. 도깨비를 찾는 수고를 덜었으니까요.”

게다가 아직 시간적인 여유도 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은 남았다.

도깨비를 찾기 위해 투자해야 했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면, 시간은 오히려 넉넉한 셈이다.

“흠,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지막엔 도깨비를 사무소로 데려가는 편이 이야기가 편할 것 같은데….”

태주가 잠시 고민을 시작하려던 찰나 정한은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생각을 조금 해 봤는데요.”

“네?”

“도깨비는 나쁜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죠?”

“그랬죠.”

“그럼 혹시 그 약속이 사기나 거짓말이 아니라면 사실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는 걸까요?”

정한은 태주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정환이는 절대로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정한은 단언했다. 그런 자신감이 조금 의외였기 때문에 태주는 약간 놀라며 말했다.

“물론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태주 역시 정한의 말대로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 태주 입장에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태주는 정한에게 말했다.

“친구분께서 하셨던 약속이 사기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게 본인만 지킬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건 약속할 때는 사기가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으니 도깨비는 사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건 사람에게는 통하는 변명이겠지만, 도깨비에게는 통하지 않거든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도깨비가 잘 속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약속 역시 잘 지키는 존재라 해도 본질은 괴물입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해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얼어붙고 말았다.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지만 우습게 볼 녀석들은 아니니까요.”

태주의 마지막 말 이후로 정한은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태주 역시 정한을 조금 새삼스러운 눈으로 봤다.

정환이 대체 어떤 친구였기에 저렇게까지 신뢰를 보내는 걸까. 저 모습은 단순히 좋아하는 친구를 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일종의 신앙심에 가까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월이는 시의적절하게 대화를 끊었다.

“어쨌든 도깨비한테 뭘 하려는 거 아니야?”

“그래. 그게 문제지.”

태주는 월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업어가도 모르게 자고 있던데…. 어쩌면….”

태주가 말끝을 흐리며 은근히 눈치를 주자, 월이는 질색하듯 고개를 휙 돌렸다. 진짜로 하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반쯤 장난이었기에 태주는 월이의 머리를 손끝으로 톡 치고는 떠보기는 그만뒀다.

“그럼 깨워야 할까요?”

정한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그래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자는 사람을 깨워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잠자는 도깨비를 강제로 깨운다니, 별로 현명한 방법 같진 않네요.”

강제적인 수단은 쓰자면 쓸 수 있지만, 잘못하면 주변 피해가 좀 크게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도깨비를 사무소로 데려갈 만한 별 뾰족한 수가 생각이 안 나는 건 사실이었다.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월이는 지루한 듯 말했다.

“저놈 팔다리 멀쩡하잖아? 그냥 좀 있다가 자기 발로 걸어오라고 하면 안 돼?”

“그게 말이…”

태주는 일축하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쁠 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되네?”

“되는 거야?”

월이는 말해놓고 자기가 놀란 듯 토끼눈을 떴다.

“될 거 같은데.”

말만 잘 한다면 도깨비를 제 발로 사무소로 걸어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겠다.”

태주의 말을 들은 정한은 얼굴에 화색을 띠며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까?”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늦게까지 시간은 괜찮으실까요?”

“그거야 당연히 괜찮죠! 그럼 그동안 저는 사무소 쪽에 있으면 될까요?”

“예. 그쪽으로 가시면 시아 씨의 지시를 꼭 따라주세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설령 화장실에 가더라도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화, 화장실도요…?”

태주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 * *

정한이 사는 곳은 작은 단칸방이었다. 그 가운데 도깨비가 자고 있으니, 두 사람은 좁은 방에서 어색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방안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지만, 집안이 그리 넓지는 않아 금방 끝나 버렸다. 정한이 떠난 지는 이미 세 시간이 넘었고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꽤 지루한 일이었다.

“그 손님은 뭐 하고 있을까?”

결국 월이는 지루한 듯 물었다. 이미 몇 시간을 좁은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좀이 쑤신 것이다.

“글쎄. 누나랑 서로 말 한마디 안 하고 어색하게 있지 않을까?”

일에 열중한 시아는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마 한창 도깨비가 들어가도 괜찮은 경계를 만드느라 정한을 신경 써 줄 여유는 없을 것이다. 정한 역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니 그저 어색하게 앉아있지 않을까.

“그래도 여기보다는 편하겠지.”

유사카페라고는 해도 널찍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이곳처럼 한 사람이 살기에 딱 적당한 공간에 세 명이 있는 것보다 몸은 편할 것이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업어서 나르는 것도 생각해 볼 걸 그랬어.”

월이는 지루한 듯 벽에 기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아니야. 중간에 깨면 일이 오히려 이상해질 수도 있잖아. 물건으로 변한 상태라면 그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사람 형태라면 좀 더 어려울 거야.”

아무리 그래도 바깥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감당하기 힘들다.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심심하단 말야. 그런데 이 방,”

“말 많이 하면 깰 수도 있는데.”

태주가 그렇게 말했지만 월이는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상관없잖아? 그 정도는. 어차피 이제 곧 깰 때도 됐고.”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태주는 더 제지하지 않았다. 월이는 하려던 말을 이어 했다.

“어쨌든 먼지가 좀 있긴 한데 그래도 꽤 깔끔하다. 그치?!”

“그러게. 혼자 살면 지저분해지기 쉬운데 이 정도면 깔끔하지.”

“솔직히 내 방보다 깨끗해. 평소에 이 정도까지 정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구.”

월이가 보기에는 그 점이 가장 이상했던 것일까. 태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는 종종 있어. 물론 이 사람 정도면 혼자 사는 사람치고는 굉장히 깔끔한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어엄청 성실한 사람 같아.”

“그러게…. 그래 보이네. 넌 이 방 보고 느끼는 거 없냐?”

“피곤하게 산다?”

“…성실하게 산다가 아니라?”

태주는 집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자는 척 그만하고 일어나시죠.”

“……”

“일어날 시간이 된 거 압니다. 사람인 척해도 통하지 않고요. 저희는 당신이 도깨비인 것을 알고 왔거든요.”

도깨비는 눈을 번쩍 뜨고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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