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6)
“젊은 사람이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야지! 뭘 하면 갑자기 까무러쳐?”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정한은 삼십 분째 훈계를 듣고 있었다.
자신을 관리소장이라고 소개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지치지도 않는지 엄한 표정으로 정한을 다그치고 있었다.
“예… 제가 하필 그때 쓰러져서요. 죄송합니다.”
“에잉, 원래는 과태료나 뭐 그런 거라도 내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봐 주는 거여! 뭐 여기서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 하니.”
정한은 중간부터는 차라리 돈 내고 나오면 안 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이 잔소리가 진심 어린 걱정에서 비롯되는 것을 알기에 노인의 말을 차마 뿌리치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눈앞의 노인은 은인이다. 도깨비 문제가 아니더라도 상자를 잃어버린 것은 꽤 아쉬운 일이었기에 이미 그것만으로도 정한은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이럴 일 있으면 미리 말을 해! 묻을 때야 신고할 사람이 없었다 쳐도, 파낼 때는 신고할 데가 있었잖아. 그러면 서로 좋았을 거 아녀?”
“맞는 말씀입니다. 옛날 어릴 때 생각만 해서 이런 게 생겼다는 걸 몰랐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목청이 크신 것 같은 이 할아버지는 꽤 엄청난 다혈질이었다.
“언제까지 옛날 생각만 하고 살 건가! 젊은이가! 시설물 안내 같은 거 보면 다 쓰여 있어! 아무도 안 읽어서 그렇지….”
정한은 끄덕거리며 노인의 말을 들었다. 속으로 이러다 또 쓰러지는 거 아닌가 걱정할 때쯤 노인은 상자를 넘겨주며 말했다.
“이제 가! 또 물건 잃어버리고 가지 말고!”
드디어 잔소리가 끝이 난 것인지 상자를 들고 가라며 노인은 손짓했다. 정한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나와서 보니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다. 진이 빠진 정한은 조금 비틀거렸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그나마 혼자라면 그래도 낫겠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보니 또 미안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네요.”
정한은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정말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네요.”
이건 금방 나올 줄 알고 바깥에서 대기하던 태주에게도 날벼락이었다.
“그래도 상자는 꽤 멀쩡한 모양이네요.”
“예…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들도 다 챙겨서 주셨으니 감사하죠.”
잔소리만 조금 줄여주셨다면 완벽했을 텐데. 정한은 피곤한 눈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니, 안에서 듣던 본인은 어땠을지 눈에 훤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야 상자를 좀 볼 수 있겠네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런데 저기… 저분은 뭐라고 불러야 하죠?”
태주는 무슨 말인지 잠시 의아해하다, 월이에 대해 말하는 것임을 깨닫고 미소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못 보셨군요?”
월이는 자기소개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가만히 서 있었다. 낯을 가리는 것이기도 했고, 또 어젯밤 삐진 기분이 좀 남아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하긴 애초에 월이가 저러는 건 반쯤은 본능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태주는 굳이 불러서 인사를 시키지는 않았다.
“저 친구 이름은 월이입니다. 손님을 보호할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데려왔습니다.”
“월이…라면 외자인가요?”
“예, 조금 특이한 이름이죠?”
태주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태주 역시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이름이 저런가 하고 생각했었다. 입 바깥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저래 보여도 저희 사무소에서 가장 믿음직한 친구예요.”
“믿음직하다고요?”
아무리 잘 쳐줘도 그냥 조금 활력이 있어 보이는 여학생일 뿐이다. 정한은 조금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월이는 순간 정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보셔도 뭐 바뀌는 건 없는데요.”
월이는 조금 까칠하게 대했다. 태주는 머리를 짚었다.
“너, 그 태도 좀 어떻게 안 되냐?”
“안돼.”
쓸데없이 단호한 태도다. 저런 태도 때문에 보통은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은 데리고 가지는 않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다.
“어휴. 어쨌든 평소에는 저래도 조금 있다 큰일이 날 것 같으면 곧바로 저 친구 뒤로 가시면 될 거에요. 공사 구분 정도는 하니까요.”
정한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간적으로 멈췄다.
“…큰일이 날 수도 있나요?”
“그야 날 수도 있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 어쩌면 오늘 만나러 갈 수도 있으니까요.”
* * *
한국의 공원이라면 으레 있는 정자 같은 구조물로 향한 세 사람은 상자 속 물건을 죽 펼쳐 놓았다.
상자 안에는 작은 편지, 문방구 앞에서 팔던 작은 책자들, 당시 유행하던 장난감이나 인형, 그리고 옛날에 쓰던 구권 지폐 등이 있었다.
십 년 전 당시에도 잡동사니였던 물건이니 하나같이 별 쓸모는 없었지만, 하나같이 추억은 되살릴 수 있는 물건이다.
어떤 물건은 태주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반대로 어떤 물건은 태주에게도 추억의 물건이었다. 반면 월이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었다. 지루한 모양이다.
“자, 그럼 이게 전부인데.”
태주는 어젯밤 정한이 만들어 둔 리스트를 한번 쭉 살핀 뒤 말했다.
“별 건 없네요.”
“그러게요.”
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사소한 물건들이네요. 이렇게 보니까.”
태주는 살짝 미소지었다.
“아뇨, 잡동사니라도 이만큼 추억이 쌓이면 사소하진 않죠. 하나같이 추억의 물건인걸요. 문제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점일까요?”
어젯밤에 정한은 리스트를 완성해 왔다. 사실 하루, 그것도 저녁밖에는 시간이 없는데도 모두에게 그새 연락을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문제는, 그 리스트에 없는 물건이 없다는 점이다.
“뭔가 하나, 리스트에 없는 물건은 있어야 하잖아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는 친구들의 물건은 뭔지 알 수 있었지만, 죽은 친구가 넣어둔 물건이 무엇인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나오지 않았으니까.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나중에 없어진 건지도 모르겠고, 특별히 문제가 있는 물건이었는지 알 방법 따위는 없을 것 같네요.”
“…상자에는 이상이 없나요?”
정한의 질문에 태주는 상자를 한번 힐끗 살핀 뒤 말했다.
“네. 최소한 도깨비를 봉인할 만한 주술이 있었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자세히 살핀 건 아니지만, 상자는 특별히 이상한 물건은 아닌 것 같네요.”
이미 꺼내면서 확인한 부분이었다.
“뭔가 특별한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면 그게 뭐 하는 주술인지 모를 수는 있지만 그게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저도 알 수 있거든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더 할 수 있는 건 없는 건가요?”
“예, 그 돌아가신… 그러고 보니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태주는 아직도 고인의 이름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 친구 이름은 정환입니다. 그러고 보니 말씀드린 적이 없었네요.”
“정한이요?”
태주는 정한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동명이인이셨나요?”
“아니, 환자 할 때 환입니다. 발음은 거의 비슷하죠. 저랑 이름이 비슷한 게 빨리 친해지게 된 계기였어요.”
태주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 정환 씨의 물건을 찾는 건 당장은 포기해야겠네요.”
단서도 없고, 우선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걸 알기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아쉽긴 하네요.”
단순한 호기심도 있었고, 먼저 죽은 이에 대한 안타까움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역시 그리움이다.
이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그때 생각이 났다. 정한은 문제의 해결과는 별개의 이유로 정환이 넣은 물건이 뭐였는지 알고 싶어졌다.
“혹시 분실했거나… 다른 사람이 가져갔을 가능성은…”
정한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러나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가져갔을 리는 없죠. 차라리 단순 분실 쪽은 가능성이 있지만요”
당시 십 대 학생이었던 그들이 값비싼 물건을 넣었을 확률은 낮다. 다른 물건들 역시 현금가치가 높지는 않다. 실제 돈이긴 한 구권 지폐조차 천 원짜리라 큰 값어치가 있지는 않다.
“역시 그렇겠죠. 애초에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고요.”
태주 역시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정환 씨라는 분이 뭔가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물건을 넣어 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예 아무것도 없는 건 좀 의외네요.”
“나라도 뭔가 넣긴 넣었을걸?”
대화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월이는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태주는 끙 소리를 냈다.
“발소리는 좀 내, 사람 놀란다. 그래서 뭐라고?”
“나라면 넣었다고. 그 사람이 이걸 하자고 했다면서! 이걸 처음에 하자고 한 사람이면 자기가 하고 싶으니까 하자고 말한 거 아니겠어?
그다지 논리적인 전개는 아니지만 그럴듯하긴 했다. 계속 말해보라는 의미로 태주는 침묵을 지켰다.
“재미있는 일을 하자고 말한 사람이 남들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자기만 빠진다고? 나라면 절대 그렇게는 안 해! 분명 자기가 처음에 넣고 싶은 물건이 있으니까 그런 걸 하자고 한 걸 거야.”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소리다. 누군지는 몰라도 하다못해 돈이라도 넣은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
“틀린 말은 아니네. 우리야 지금 이걸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그냥 즐거운 체험이었을 거야. 그렇죠?”
태주는 정한에게 물었다. 정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밤에 그렇게 고생하면서 묻었는데도 즐거웠습니다. 사실은 당시에는 어떻게 파낼까에 대한 고민도 안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파낼 때 고생을 좀 했지만요.”
뒤를 생각하지 않는, 정말 그 나잇대에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정한은 그때 생각을 하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정환 씨라는 분이 자신의 물건을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을 이유는 없겠죠?”
“장난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굳이 그런 장난을 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 월이라는 분 말이 맞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물건은 있었고, 중간에 없어진 거라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일까요.”
그러나 없어진 물건을 찾는 건 무리가 있다. 시간이 많으면 천천히 조사해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태주는 잠시 고민하다 정한에게 물었다.
“고인은, 정환 씨는 어떤 분이셨나요?”
태주의 질문에 정한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친구는… 굉장히 좋은 친구였죠. 타임캡슐을 하자며 사람들을 모은 것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우리들의 중심이기도 했고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망설임 없이 중심이라 말하는 것을 보며, 태주는 이들 안에서 정환이라는 친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