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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5화 (5/269)

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5)

“나 왔다고!!”

“흙 털고 들어와!”

태주의 말에 소녀는 멈칫하고는 곧바로 입구 쪽에 있는 매트에 신발을 털었다. 그리고는 약간 투덜거리며 말했다.

“예민하긴, 어차피 좀 있으면 바닥 청소할 거면서.”

“야, 월아. 청소를 누가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암튼 내 일은 아니지! 휴가 중인 사람 불러놓고 그 정도도 안 봐줘?”

그렇게 말한다면 또 할 말이 없었기에 태주는 입을 다물었다.

월이는 평소와 달리 오버핏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소에는 귀찮다고 교복을 안 갈아입고 돌아다니면서, 또 갈아입으니 나름 어울렸다. 약간 회색빛이 도는 긴 머리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

결국 태주의 말에 월이라는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후후, 날 뭘로 보고? 나름 상자까지 찾아놓고 왔다 이말이야!”

가능하다면 찾아보라고 했지만 정말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뭐? 그걸 찾았다고? 어떻게?”

태주가 당황하자 월이는 더 뿌듯해하며 자랑했다.

“한참 거기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관리하는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하는 분이 이 시간에 뭘 하느냐고, 뱀 나오니까 위험하다고 빨리 집에 가라더라고! 그거 좀 물린다고 별일 없는데.”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은 별일 있거든?”

태주는 그렇게 지적하며 월이의 다리 쪽을 살폈다. 바지 밑단 쪽에 작은 구멍이 둘 뚫려 있었다.

“…설마 그새 물렸냐?”

“응? 살짝 따끔하고 말던데. 어쨌든 뱀이야 뭐 걱정할 거리는 아니지. 어쨌든 그… 할아저씨? 걱정해 주는 거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한발 늦은 거지!”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뱀한테 물린 걸 무슨 모기 물린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조금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나저나, 그게 어떻게 상자랑 이어지는 거지?”

시아의 질문에 월이는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암튼 아직 어린 학생 어쩌구 잔소리하면서 경비실 비슷한 곳으로 데려가더라고. 뭐 따라오라니까 따라갔지.”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밤에 산을 헤매는 사람을 보면, 심지어 그게 겉으로 보기에 여려 보이는 여학생이라면 보호하려 들 만도 하다.

“근데 거기 상자가 있었어. 나한테 설명해 준 거랑 완전히 똑같아 보이는 상자가 말이야.”

월이는 팔짱을 끼고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물어볼걸. 괜히 발목 가렵게.”

다른 사람이라면 꽤 걱정해 줄 만한 일이지만 본인 태도가 저래서야.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그럼 아예 상자를 받아오지 그랬냐.”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아저씨한테 그 상자 어디서 났냐니까 나한테 이거 주인이냐고, 아니면 뭐 아는 사이냐고 막 뭐라 하시잖아! 공원 파 놓고 사라지면 원래 경범죄라고 하면서.”

“…그건 생각 못 했던 부분인데.”

“그래서 내 꺼 아니라고 했지! 주인 알면 데려오라더라. 본인 아니면 못 찾아간대.”

“그래. 설마 찾을 거란 기대는 안 했었는데…. 어쨌든 잘했어.”

“뭐? 기대를 안 했다구?!”

충격받은 표정의 월이를 뒤로 하고 태주는 생각에 잠겼다.

상자가 아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소식이었다.

상자는 내일 정한과 함께 찾으러 가면 될 거다.

“별 기대 없는 줄 알았으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었는데…. 억울하다. 뱀에도 물릴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투덜거리는 월이를 보며 시아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아까 네 입으로 그건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아, 안 들리거든요.”

월이는 입을 삐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휴가도 반납하고 기대받지 않은 일을 하는 저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말았거든요?”

태주는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시킨 일은 잘 해 왔네. 이거 끝나면 하루 정도 다시 놀러 가게 해 줄게. 물론 지금은 안 되고.”

“흥이다. 그 정도는 나도 알거든.”

* * *

“다시 나오시는 동안 별일은 없으셨던 거죠?”

삐져버린 월이를 어설프게나마 달래주던 사이 정한에게 전화가 왔었다.

[예. 별일 없었습니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요.]

어색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정한은 방에서 멀쩡하게 나올 수 있었다.

“그래요. 예상대로긴 하지만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상자는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정말요?]

정한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정한 역시 다시 상자를 찾는 걸 포기하고있던 상황이라 더 그랬다.

“네. 그쪽 시설을 관리하시는 분이 챙겨 놓으셨더라고요. 당장 저희 손에 있는 건 아니지만, 분실 염려는 지금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공원 훼손 같은 거로 취급되면 과태료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그 정도야 상관없는데요.]

정한은 그게 얼마나 하겠냐며 말했다. 게다가 사실 원래대로 돌려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궁금해진 듯 정한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낮에는 경황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요.]

“네, 말씀하시죠.”

[제가 혹시 상담비나 이런 걸 못 드렸는데 제가 얼마를 어떻게 드리면 되는 건가요?]

처음에 곧바로 괴담 이야기로 넘어가 버려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경 쓰인 것이다.

[혹시 비용이 너무 비싸면 조금 곤란할 것 같아서요….]

“아, 그러고 보니 그 말씀을 안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태주는 사과하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일이 끝나고 나서 비용을 책정합니다. 저희 소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비용을 손님께 직접 받으러 가죠.”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말인가요…?]

불안한 듯 정한은 말했다. 태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예. 하지만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는 경우는 드물어요. 본인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의 무언가를 내시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가요?]

정한은 그러나 불안감이 영 해소되지 않는 듯 말했다.

“예, 뭘 가져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그것만은 보장 드릴 수 있어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태주는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예상치 못하게 상자를 찾았으니, 이제 상자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요.”

상자와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이 도깨비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확인해야 할 것이 그리 많지 않다면 무식한 방법이 가장 빠르다.

“그래서 미리 물건 리스트를 만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금 전화로 연락할 당시에 물어봤으면 좋았겠지만, 전화할 당시에는 상자를 이렇게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정한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어후, 전화 길게 하는 것도 생각보다 피곤하네요. 쉴 틈이 없으니 원.”

태주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앞에서 구경하던 시아 역시 대답했다.

“이곳에서 사람 대하는 일 잘하는 건 너뿐이잖니. 그러니 뭐, 어쩌겠어.”

시아는 버릇처럼 전자담배의 뚜껑을 탁 여닫으며 말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괴담 같은 건 금방 파악하지만, 사람은 잘 모르니까.”

“적재적소라는 게 있으니까요. 현대사회의 장점이 분업화 아니겠어요?”

이곳에 자기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아는 태주에게 질문했다.

“그래, 그래서 네가 보기에 이번 손님은 어때?”

태주는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글쎄요. 누나도 어느 정도는 느꼈잖아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알겠더라. 그 사람, 자신이 뭔가에 겁먹는 걸 꺼림칙하게 느끼는 것 같아.”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겠지만 그랬죠.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자존감이 낮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해요.”

“흐음. 다른 부분?”

시아는 태주의 말에 집중했다. 태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사실 제가 맨 처음 궁금했던 부분은 그 지점이었어요. 왜 일주일이나 참았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별일 아닌가 보다 싶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보니 점점 더 이상한 부분이다.

“그렇잖아요? 두려움이란 건 익숙해지기 전이 가장 커요.”

세상 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라도, 두 번 세 번 보다 보면 무뎌지게 된다.

“아무래도 그렇지?”

“정한 씨도 분명 맨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두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굳이 일주일이나 견뎌낸 뒤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태주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용무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사는 게 바빴던 걸 수도 있지 않나?”

시아의 지적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손님이 스스로 미쳤을지도 모른다고까지 고민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 이상해요. 자신이 미쳤다는 의심이 드는데 그걸 확인하는 것보다 급한 용무라는 게 있을까요?”

미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미지의 공포다. 자신이 하는 생각을 일부라도 믿을 수 없는 시점에서 사람은 끔찍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거야… 생각해 보니 없긴 하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더 빨리 해결하려고 했겠지.”

시아는 인정했다.

“바쁜 용무라고 해봐야 회사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더 이상하죠.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데, 중요한 일이 있는 회사에 그냥 간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미친 짓이에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라면 쉬는 게 맞는 것이고, 일하러 나갔다 해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일주일이나, 심지어는 강심장도 아닌 사람이 그러는 건 조금 의문이에요. 겁먹어 놓고 겁먹은 걸 부정하고 싶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그냥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일 수는 없나?”

“글쎄요, 이게 빨래나 청소 같은 건 아니잖아요?”

시아도 혹시나 해서 던져 본 말이었는지, 태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십 년 전에 묻은 캡슐을 찾겠다고 친구들을 모을 정도라면, 사실 꽤 적극적인 사람일 거야. 그런 사람이 굳이 일주일이나 자기 일을 미루지는 않겠지.”

“솔직히 타임캡슐을 파내지 않더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걸요? 그건 그만큼 귀찮은 일이었어요.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 분명히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을 거예요”

“확실히 그렇게 보면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애매하구나.”

“뭐, 이거 말고도 특이점은 많아요. 대화하면서 파악한 것도 또 따로 있고요.”

태주는 이전에 정한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나는 그다지 이상한 건 못 느꼈는데.”

“물론 하나하나 놓고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죠.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런 게 여러 개 모이면 그건 그냥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니까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손님의 태도를 어떻게 하면 함축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가장 이상하게 느낀 점은 양립하기 힘든 특징 두 개가 동시에 있다는 점일까요? ‘행동력은 있는데 자신감은 없다.’ 이건 보통 동시에 나오지 않는 특징이에요.”

“확실히, 듣다 보니 이상한데.”

시아는 한 번 더 전자담배 케이스를 찰칵거렸다. 뭔가 깊게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아마 실내가 아니었다면 이미 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건 그 자체로는 큰 문제는 아니야. 이 사건과 관련 있는 건지도 알 수 없고.”

“그건 그렇죠. 하지만 이런 추측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결국, 그 이상의 판단은 타임캡슐을 보지 않은 채로는 내릴 수 없다.

태주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궁금하긴 하네요. 죽은 사람이 묻은 물건은 대체 뭐였을까요?”

“그래 봐야 당시 학생들이었으니 비싼 물건들은 아니었을 거 같긴 한데.”

“그 정도 추론은 월이도 할 걸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기지개를 켰다.

“자기 전에 월이 좀 달래주고 자야겠네요. 아직 삐진 거 다 안 풀렸던데.”

태주가 전화하는 사이 월이는 먼저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뭐, 그래도 사과했으니 내일모레쯤엔 까먹지 않겠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단순한 게 월이니까.”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뭐, 그래도 사과는 해야죠. 괜히 쉬는 날에 일 시킨 것부터 미안한 걸요. 그나저나, 누나는 자러 안 가요?”

“난 이거 한 번만 빨고.”

시아는 달칵거리던 전자담배를 흔들어 보였다. 태주는 못마땅한 얼굴로 물었다.

“…저번이 시즌 몇 번째 금연이었죠?”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지.”

시아는 명언처럼 말한 뒤 곧바로 바깥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태주는 그 모습을 잠시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럴 거면 금연한다는 소리를 하질 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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