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4)
도깨비와 친한 친구라니!
정한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외쳤다.
“…짐작 가는 게 전혀 없는데요. 저한테 그런 친구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겠지요. 사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저희보다는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셨을 테니.”
시아의 말대로다. 애초에 정한은 이번 일을 겪기 전까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고, 다른 친구들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중이었다.
요즘 시대에 진지하게 도깨비를 믿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제 친구들이 그럴 리가….”
“그건 모를 일이에요.”
태주는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손님이 도깨비를 만났을 거라고 다른 친구들 역시 생각 못 할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분이 계신다고 해도 손님이 모르실 수밖에는 없어요.”
틀린 말은 아니기에 정한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일단은 한번,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부탁 말인가요?”
“지금 연락 가능한 친구분들께 전화를 조금 돌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도깨비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조금 떠봐 주시면 되겠네요.”
친구에게 직접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조금 돌려서, 이야기를 전달하기만 하더라도 의미는 있다.
“도깨비에 대해 아는 친구가 있다면 일이 편해지니까요.”
정한은 조금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만약 아는 친구가 없다면요?”
“그럼 조금 곤란해지죠.”
태주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돌아가신 친구분이 도깨비와 연관이 있는 거라면…. 어휴, 정말이지 골치 아픈 일이 되겠네요”
* * *
“도깨비라, 본격적인 도깨비는 오랜만인데.”
손님이 잠시 나간 틈을 타 시아는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얼음 하나를 입에 문 시아는 얼음을 깨물며 말했다.
“세상에 그런 도깨비가 남아있긴 했나 봐?”
“그러게요.”
태주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래도 도깨비라면 악의는 없으니 차라리 낫네요. 어떤 의미로는요.”
“반대로 말하면, 악의 없는 행동이라 대하기 어렵지. 상황에 따라 놀랄 만큼 쉽게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상황이 꼬이기도 하니까.”
손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그런 대놓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이야기들이다.
“어쨌든 상대가 도깨비라면 월이가 필요하겠는데.”
대화가 통하는 상대이기에 오히려 더 강한 물리력이 필요하다. 협상 비슷한 것을 하려면 서로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태주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그게 도깨비가 맞는다면, 확실히 그렇네요. 막나가는 녀석들이니까요. 에휴, 휴가 간 애한테 연락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이곳은 늘 인력 부족이다. 실질적으로 이곳에서 사건을 맡아 일하는 사람은 셋뿐이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건물 층수보다 일하는 사람이 적은 거지? 4층밖에 안 되는 건물인데.”
시아의 한탄에 태주 역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소장도 놀고 있는 건 아니겠죠. 어쨌든 월이는 불러 놓을게요. 미안하긴 하네요. 걔 지금 오랜만에 가족들 만나러 간 건데.”
태주의 말에 시아는 끙하는 소리를 냈다.
“원래 언제 온다고 했지?”
“음, 글쎄요. 원래 하루 더 자고 온다 하기는 했는데, 언제든 연락하면 오늘 저녁때는 돌아올 수 있을 거라 하긴 했어요.”
태주의 말에 시아는 혀를 한번 차고는 말했다.
“그럼 저녁에 오라고 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도 전해 주고.”
어쨌든 월이가 필요해지는 건 도깨비와 직접 만날 일이 생긴 다음의 이야기다. 지금은 두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거 원, 사람을 더 늘리든 해야지.”
“그렇다고 이런 곳에서 공채를 할 수도 없잖아요. 그냥 소장이 또 어디 돌아다니다 누구 하나 주워오기라도 바라야죠.”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여전히 투덜거렸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나 데리고 올 수는 없었다. 결국, 정말로 소장이 적절한 누군가를 데려오기만 바랄 수밖엔 없다.
“그럼 월이 연락은 조금 있다가 제가 따로 할게요. 어쨌든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죠.”
태주는 그렇게 운을 띄운 뒤 말했다. 착잡한 표정이었다.
“역시, 그 죽은 사람이 한 약속이겠죠?”
“그건 전화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시아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상자와 가장 연관이 깊은 사람이잖아요.”
정한은 다 함께 상자를 묻었지만, 내용물 정리와 상자를 준비한 사람이 그 죽은 친구라고 말했다.
“거기서 다른 사람이 도깨비와 약속을 했다 말하는 것도 아무래도 좀 웃기지 않을까요?”
시아는 끙하는 소리를 냈다. 꽤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 사람이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까?”
시아는 태주의 의견을 물었다.
“예. 높은 확률로요. 당연히 의도 같은 건 아직 모르지만요.”
단순히 우연인지, 혹은 어떤 악의가 담긴 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건 상자에 가장 많이 관련된 것은 바로 그 죽은 친구다. 그러니 가장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 생각대로라면 조금 곤란할 것 같은데.”
“그렇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요.”
“이번엔 네가 틀리길 바라야겠는데.”
“하지만 아마 그렇진 않겠죠.”
태주는 별 기대는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건 꼭 이런 일이 있으면 쉽게 풀린 적이 없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
“만약 돌아가신 분이 한 약속이라면 이번 일도 쉽지는 않겠네요.”
“...”
시아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정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다 끝났습니다.”
“꽤 오래 걸리셨네요.”
태주는 한참을 통화한 정한의 목이 조금 아플 것 같아 따뜻한 꿀물을 건네주며 물었다.
“전화는 어떻게 하셨나요?”
정한은 꿀물을 조금 홀짝이고는 말했다.
“혹시 상자를 묻을 때 특이한 사건 기억나는 게 있는지 물어봤어요.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아는 건 없었습니다.”
“약속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시아의 물음에 정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놓고 도깨비에 대해 물을 수는 없어서 혹시 그때 한 약속 기억하냐는 식으로 암시를 주었지만, 다들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슬쩍 눈을 마주쳤다. 결국은 예상대로다.
“짐작이야 했지만…. 그렇다면 역시 그 돌아가신 분께서 한 약속일 확률이 높겠네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만약 죽은 사람의 약속이라면, 제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정한은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할 일도 아니죠.”
하지만 태주는 단언했다. 각오했던 일인 데다, 여태까지 이런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귀찮아졌을 뿐이다.
“잠시 쉬고 계세요. 저희도 방법을 조금 생각해 볼 테니까요.”
“흠, 마침 앞으로 몇 시간만 있으면 저녁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시아의 말처럼 해가 뉘엿뉘엿했다. 곧 정한이 말한 그 ‘목소리’가 들릴 때가 되었다.
“이곳에서 목소리가 들린다면, 혹은 들리지 않는다면 또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겠군요.”
시아는 느긋한 태도로 말하며 웃었다. 그 태도가 어쩐지 믿음이 가서 정한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한 시간정도, 기다려보겠습니다. 밤은 도깨비의 시간이니 주변에 있다면 분명 변화가 생길 겁니다.”
* * *
밤이 도깨비의 시간이라 말한 것이 무색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목소리 비슷한 것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혼자 있는 것이 조건인가 싶어 사무소의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워봤지만, 역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는 않았네요.”
태주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자세로 말했다. 정한은 머쓱한 채 대답했다.
“조금 민망하네요. 분명히 원래 이 시간대면 소리가 들리는데 말이에요.”
“그동안은 집에만 계셨다 했으니 중요한 건 시간뿐 아니라 장소도 중요한 거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예… 솔직히 그 전까지는 밖에 나가 볼 생각을 못 했으니까요.”
환청을 듣는데 감히 밖에 나갈 생각을 못 했다고 정한은 말했다. 자신이 혹시 바깥에 나가서 사고라도 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추측을 할 수 있겠습니다.”
시아의 말에 정한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시아는 그 시선을 마주 보며 말했다.
“도깨비는 당신의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예?”
정한은 당황해 말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입니다. 도깨비는 멀리서 목소리를 전하는 재주 같은 건 딱히 없기 때문이지요.”
도깨비는 기본적으로 호탕하고 당당한 스타일이다. 그러니 도깨비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정말로 가까이에서 말할 때뿐이다.
“짐작이긴 하나, 그 목소리는 분명 소리치거나 고함치는 것과는 달랐을 겁니다.”
“그랬죠. 소리치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거든요.”
정한의 말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는 변신의 귀재이니 분명 물건으로 변해 집안 어딘가 숨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도깨비는 일단은 당신을 해칠 생각은 아닐 테니.”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요?”
정한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굳이 해칠 생각은 없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만.”
시아는 태주와 했던 대화를 적당히 어느 정도 걸러서 전달했다. 정한은 어느 정도 이해한 모양이었다.
“아직은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다행이네요.”
정한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정한이 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예? 제 집에 도깨비가 있는데 돌아가라니요?”
정한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차라리 모를 때는 괜찮았지만 안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이렇게 비유하면 조금 심한 감도 있지만, 마치 자취방에서 발견한 바퀴벌레와도 같다.
보지 않았다면, 몰랐다면 상관없으나 알아버린 이상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어려운 일이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건 안 될 일입니다.”
“왜죠?”
“갑자기 자리를 비우면 도깨비는 분명 바깥으로 나가서 당신을 다시 찾을 테니까요.”
정한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지는 둘 있습니다.”
시아는 손가락을 둘 펴며 말했다. 그것을 본 정한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첫째. 그냥 집에 들어가서 모른 척하고 잔다.”
심리적인 문제만 없으면 사실은 가장 나은 선택지였다. 도깨비에게 특별한 자극을 주지 않을 수 있고 현상유지가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과연 거기서 잠들 수 있을까요?”
정한은 불안한 듯 물었다.
“권장하는 방법이긴 합니다. 만약 도깨비가 당신이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쳤다고 생각해버리면, 참을 이유가 없어질 수 있으니까요.”
시아의 말에도 정한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보통은 견디지 못할 일이기는 했다. 도깨비의 존재를 안 이상은 힘들다.
시아도 말은 했지만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게 힘드시다면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 곳에나 방을 잡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물론 그래도 집에는 한 번 돌아가야 합니다.”
“결국은 집에 한번은 가야 하는 거네요.”
정한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에 방을 미리 잡으시고, 집 근처에 도착하시면 태주에게 연락을 주시지요. 그리고 태주가 지시하는 대로 연기를 하십시오.”
“연기요?”
정한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조금 기묘하게 들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연기력이 그리 좋지는 않은데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사람 얼굴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녀석이 그런 구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하십니까.”
시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연기력이 아니라 말해야 할 내용입니다. 바깥으로 나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무가 있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도깨비에게 알리기만 하면 됩니다.”
도깨비도 납득할 수 있는 용무로 자리를 비워야 하며, 하루 이틀 안에는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집에 한번 가시되, 그 앞에서 전화를 거십시오. 그리고 태주의 지시대로 따라 주십시오. 그럼 도깨비는 절대 분노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한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정한은 태주에게 전화번호를 받은 뒤 곧바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두 사람은 긴장한 몸을 풀고 잠시 늘어졌다.
“월이 올 때까지 잠시 쉬도록 할까?”
“그거 좋네요. 한 삼십 분은 쉴 수 있겠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했던가, 마침 난폭하게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왔어!!”
“에이, 삼십 초도 안 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