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2)
“사람의 머리요?”
태주는 조금 당황했다. 사람의 머리라니, 갑자기 나오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머리요.”
편지나 기타 잡동사니 같은 것들도 우수수 떨어졌지만, 정한은 그 사람 머리밖에는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게 혹시 실제 머리는 아니었죠?”
태주는 최근 뉴스에서 머리만 있는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보지 못했다. 정한 역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눈이 마주쳤거든요.”
마지막 순간, 머리는 눈을 떴다.
“그 머리는, 그러니까 이 표현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거였어요.”
정한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태주의 눈치를 봤다. 태주가 제 말을 믿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좀 허무맹랑하죠?”
그러나 태주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뇨, 전혀요. 그러니까 상자 안에 있던 머리는 분명히 살아있었다는 말이죠?”
정한은 태주가 단번에 믿은 것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주를 쳐다봤다.
“전혀 의심하지 않으시나요?”
“네, 전혀. 이곳은 괴담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 분은 찾아올 수 없거든요. 여기 오셨다는 게 이상한 일을 겪었다는 증거예요.”
이곳은 그런 괴이한 사건에 엮인 사람이 아니면 찾을 수조차 없다, 그렇게 되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건 정작 정한의 입장에서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러나 미친 사람으로 보는 편보다 확실히 나았다. 정한은 조금 안심했다.
“그나저나,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죠?”
“그게….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태주의 의문에 정한은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말씀드리기 좀 민망하지만, 그러고 난 뒤 기절했거든요.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습니다.”
“저런.”
납득이 가는 이유다. 갑자기 사람의 머리가 그런 식으로 튀어나온다면 기절할 만큼 놀랄 수밖에 없다.
“몸은 괜찮으셨나요?”
태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한은 쓰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넘어지면서 멍든 것 빼고는 문제없었습니다. 사실 몸이 문제는 아니었지요.”
하긴 그렇다. 몸에 멍이 조금 들고 타박상이 조금 생긴 건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있는 머리에 비하면 가벼운 일이다.
“그 머리에 대한 건 그럼….”
태주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 뒤는 모릅니다. 깨어나서 친구들에게 물으니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머리를 보았냐는 정한의 질문에 친구들은 “이 XX 또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나 한다!”며 욕설로 화답했다고 했다.
“그 이후엔 몸이 허해서 그런 거라는 친구들의 등쌀에 장어도 좀 얻어먹었고, 딱히 몸에 문제는 없어서 그냥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 시작이었다. 태주는 손님이 처음으로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 이후로 환청이 계속 들리시는 거군요?”
“네. 그러고 머리를 본 다음 날 저녁부터요. 분명 그 머리에 이상한 힘이 있었던 거겠죠.”
어디쯤에서 들려오는지 거리감을 파악할 수 없는 그런 기묘한 소리가 계속해서 정한에게 들렸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그런 이상한 말.
“말씀드릴 이야기는 이게 다입니다. 저는 일주일이 넘게 그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고요.”
정한의 말을 모두 들은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 상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태주의 질문에 정한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자요? 그건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쓰러지는 바람에 일단 그 자리에 두고 절 병원으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친구들이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니 상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태주는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쓰러졌을 때 상자 따위를 신경 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그 상자부터 찾아야 하겠군요.”
“네? 머리도 아니고 상자를요? 지금 와서요?”
정한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지만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몇 가지 확인할 문제가 있어서요. 일단 그 환청의 원인은 머리인가? 혹은 상자인가 하는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해요.”
만약 상자 자체가 사람에게 환각을 유발하는 물건이라면, 머리를 본 것도, 소리를 듣는 것도 다 상자가 원인이다.
“이 경우 머리를 찾는 건 바보짓입니다. 있지도 않은 머리를 찾는 꼴이 될 테니까요. 물론, 그랬다면 상자를 묻을 때도 잡음이 꽤 있었을 테니… 이 가능성은 아주 낮긴 합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상자를 찾는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태주는 자기 음료로 살짝 목을 축인 뒤 말했다.
“만약 머리가 환청을 일으킨 원인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머리는 왜 손님께 환청을 들려주는가? 그리고 머리는 왜 그 안에 들어있었는가? 어느 쪽이든 상자가 힌트가 되겠죠.”
태주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새벽에 산에서 잃어버린 물건이다 보니 찾을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글쎄요… 그걸 찾을 수 있을지.”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지만, 찾는다면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한 가지 더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뭔가요?”
“그 약속을 지키라는 말에서, 약속이 뭔지 혹시 아십니까?”
“글쎄요. 짐작이 가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요? 사실 저는 그냥 환청만 안 들리면 상관없는데요.”
정한은 이제 머리 때문에 기절한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일은 그대로 끝난 일이었다.
“머리는 아무래도 좋아요. 당시엔 기절하긴 했어도 지금은 꽤 무뎌졌거든요. 지금 와서 저한테 더 심각한 문제는 환청이에요.”
지금 정한이 원하는 건 그저 앞으로 환청이 들리지 않는 것뿐이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머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머리에 대해 깊게 파헤치지 않으면 그게 어려울까요?”
“사실 이게 마지막 이유였는데… 네, 제 생각에 그게 그냥 환청이 아닐 수도 있을 같아서 그렇거든요.”
조금은 걱정스러운 태주의 말에 정한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환청이 아니라고요? 혼자 있으면 들리는 목소리가요?”
“어쩌면 차라리 환청인 게 나을 수도 있죠. 그, 환청은 없는 소리가 들리는 거잖아요?”
태주가 진지한 표정을 짓자,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든 정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 그, 그럼….”
“몇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경우 중에서 마지막입니다. 애초부터 당신이 듣고 있는 건 환청이 아니고, 정말로 당신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바라는 누군가가 있는 경우 말이에요.”
“구, 귀신이나 뭐, 그런 걸까요?”
얼어붙은 목소리로 하는 정한의 질문에 태주는 자신의 말을 조금 정정했다.
“그렇네요. 사람은 아니니 누구보다는 무언가라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태주는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린 채 덧붙였다.
“만약 그런 거라면 목소리는 상자 속에 들어있던 그 머리 자신이거나, 음….”
태주가 여러 가능성을 따져 보는 사이 정한이 혼잣말을 하듯 물었다.
“아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머… 머리가 살아서 굴러다니고 귀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아니죠.”
태주는 순순히 인정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일도 가끔 일어납니다. 본인이 겪은 일은 상식적이셨나요? 혹은 그냥 착각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정한도 어렴풋이 그게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진짜 괴물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다는 건 그냥 뭔가 잘못 들은 것보다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그, 그럼 이게 왜 저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걸까요?”
정한은 소름이 돋은 팔을 쓸었다.
“왜 하필 저죠?”
“글쎄요. 이유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알 수 없죠.”
태주는 안타까운 눈으로 정한을 보며 말했다.
“확실한 건 지금 손님은 전혀 미친 게 아니고, 듣는 게 그냥 환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사실 가능성도 가장 높게 보고 있고요.”
정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왜 환청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정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은 아직도, 정한은 스스로 조금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태주가 상대를 정상이라 여기는 근거 중 하나였다.
하지만 태주는 굳이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른 근거를 들었다.
이쪽에서 해 줘야 할 설명은 다른 것이다.
“손님이 겪으신 일은 옛이야기에선 흔한 구조의 내용이에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사람이 어떤 것과 만났고, 그 결과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닥쳤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조금 다른 부분들이야 있지만….”
조금만 요약해도 전형적인 괴담의 구조가 된다. 무언가를 만졌고, 그 결과로 뭔가 이상한 것과 만났다는 구조이다.
태주의 설명에 정한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그 상자는 저희가 묻은 겁니다. 그러니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10년은 깁니다. 관련이 있는 사람도 많고요. 변수는 많습니다. 그러니 확신할 수 있는 것 없죠. 상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하나 있었네요.”
맨 처음에는 그게 문제가 없는 물건이었을지 몰라도, 중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단 보장은 할 수 없다
정한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기세를 몰아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앞서 한 예상 중 어느 게 맞는지는 몰라도 상자는 아주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러나 상자는 지금 없다. 정한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태주는 이어 말했다.
“물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상자가 없더라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은 있을 테니까요.”
상자가 없더라도 그 상자에 대해 알아볼 방법은 있다.
“혹시 상자를 땅에 묻던 당시를 기억하시나요?”
“네?”
정한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지 곰곰이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상자를 마지막에 묻은 건 다 같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용물도 아시나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면 내용물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요. 제가 넣은 것 정도야 기억하지만, 나머지 내용물은 저도 잘 모릅니다.”
“본인 것 이외에는 모르게 했나 보군요.”
태주의 질문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캡슐을 묻을 때 종종 사용하는 방식이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걸 봉인한 사람은 있겠군요.”
“예, 그랬습니다. 그…!”
정한은 무언가 생각난 듯 뒷말을 더 이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태주는 정한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상자를 마지막에 닫은 사람에게 연락하면, 최소한 상자의 내용물이 뭐였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태주가 대답을 재촉했지만, 정한은 뭔가를 말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 그 상자를 마지막으로 닫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한은 목이 타는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어갔다.
“맨 처음 타임캡슐을 하자며 준비한 사람이고, 그 캡슐 안에 모든 것을 다 그 친구가 넣어 뒀습니다. 각자 뭘 넣었는지는 비밀로 하자고 했고요.”
“그럼 그분께 연락한다면 내용물을 알 수 있겠군요.”
태주는 잘 되었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정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연락할 수 없습니다.”
“왜죠?”
태주는 미간을 좁혔다. 정한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친구에게 연락할 수만 있다면 많은 걸 알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네.”
“하지만 그게, 그 친구는 죽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