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
분명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이미 남자는 몇 번이고 확인을 마쳤다. 자신을 제외하면 이 방엔 아무도 없다.
- 약속을 지켜라!
하지만 그렇다면 이 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는 거지?
“또….”
-약속을 지켜!
남자는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미 며칠씩이나 듣고 있는 이 음산한 목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귀를 막아도 보고, 음악을 크게 틀거나, 다른 데 집중하는 것으로 막아 보려고도 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만….”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다. 정한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귀를 틀어막았다.
그저 내일은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정한은 조용히 자는 척을 했다.
- 지켜야만 한다.
* * *
딸랑.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한 젊은 남자가 손님이 들어온 것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손님은 자신이 맞게 들어온 건가 싶어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판이 없는 건물로 들어오라는 글을 보고 찾아 왔는데, 아무리 봐도 이 안은 카페처럼 보였다.
그저 이곳엔 카페의 사장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와 구석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젊은 여자 한 명이 있을 뿐이다.
“그, 제가 잘못 찾아 왔나 봐요.”
조금은 살풍경한 광경을 예상했던 남자는 자신이 잘못 들어온 것 같아 당황했다.
그러나 사장처럼 보이는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제대로 오신 게 맞으니까요.”
손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러운 태도다.
“이쪽으로 와 앉으세요.”
손님은 조심스럽게 남자 근처의 바 테이블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 둘은 마주 보며 앉을 수 있었다.
남자는 약간 갈색빛을 띠는 머리에 캐주얼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분명히 외모는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어째서인지 날카로움이 섞여있다.
손님이 자신을 살피는 것을 눈치챈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는 태주라고 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태주가 주는 묘한 느낌에 잠시 넋을 놓았던 정한은 질문을 받자 곧 정신을 차렸다.
“…제 이름은 정한이라고 합니다. 김정한이요.”
정한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많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그 전단지에 있던 곳 맞나요? 사무소라 하는…?”
꽤 용기를 낸 질문이었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했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에서 한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전단지는 잘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여기는 사무소라고 합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정한은 어쩐지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혹시 다른 이름 같은 건 없나요?”
“네?”
태주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어, 아니 그러니까 이름 같은 거요. 무슨 무슨 사무소 하는…”
“글쎄요. 따로 정해 놓은 이름은 없는데요.”
태주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괴담에 관련된 일을 겪는 사람을 돕는 사무소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전혀 이름 같지는 않지만요.”
태주는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뭐, 이런 곳은 이름 같은 게 중요하지 않죠. 이름 팔아서 장사하는 곳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손님은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결국은 처음에 들었던 질문이다. 언제까지나 망설이기만 할 수는 없다. 정한은 마음을 굳혔다.
“이런 말을 여기서 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 그러니까…. 요즘 밤만 되면 환청이 들려요.”
정한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 같은 태도다.
“환청이요?”
태주는 그다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말했다.
“어떤 환청이 들리셨나요?”
“약속을 지키라는… 그런 내용의 환청이 들립니다.”
“약속이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태주는 손님이 맨 처음 환청을 호소할 때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들리는 쿵 소리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공포 이야기의 주요 소재고, 사실 그 대부분은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리는 환청이 의미가 있는 말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태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건 확실히 특이하네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란 말이죠?”
태주의 표정이 변하자 정한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다른 소리는 없었나요?”
“네. 그 말만 반복적으로 들려요. 말투 정도는 바뀌지만, 내용은 변하지 않아요.”
“같은 내용이라.”
그렇다면 단순히 잘못 들은 것일 확률은 없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고 태주는 생각했다.
“그 목소리가 항상 들리는 건가요? 예를 들면 지금도?”
“아뇨, 지금은 괜찮아요. 밤에 혼자 있으면 그런 소리가 계속 들리더라고요.”
태주는 얼굴을 찌푸렸다.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밤, 혼자서, 목소리… 온갖 불길한 내용은 죄다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진지하게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주를 보며 정한은 하소연하듯 말했다.
“사실 처음엔 정신과를 찾아가야 하나 생각도 해봤는데 말이에요! 환청 말고는 문제가 없으니 제가 진짜 미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는 말을 하며 계속 얼굴을 쓸어내렸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보아 지금도 상당히 긴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주는 침착한 목소리로 정한에게 물었다.
“이것만으로는 뭔가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제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굳이 말하자면 처음부터겠네요.”
“처음이요?”
정한은 당황한 듯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면 분명 계기가 있을 테니까요. 그 부분부터 말씀해 주세요.”
태주는 무언가 망설이는 것 같은 정한의 모습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허무맹랑해도 상관없으니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수정하지 마시고요.”
태주의 당부에 정한은 잠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건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침착해진 모습이다. 태주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뭐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할까요? 음료는 뭐가 좋으신가요?”
이곳이 카페로 영업을 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겉보기에만 카페처럼 만들어 놓은 곳도 아니다. 간단한 음료 정도는 만들어 내어 줄 수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따듯한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립니다.”
태주는 정한에게 줄 커피를 준비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켜 녹음을 시작했다.
정한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 녹음은 어디에 쓰는 건가요?”
“아, 제가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녹음하는 거니,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녹음되어봐야 별 곤란할 이야기도 아니기는 하다. 그저 조금 기묘한 이야기일 뿐이다.
“자, 커피 나왔습니다. 그럼 이제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태주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 * *
새벽 한 시.
세 남자가 삽을 들고 산을 헤메고 있다.
찬바람이 부는 날씨지만 세 사람의 이마에는 땀이 가득했다.
“그걸 묻은 게 몇 년 전이더라?”
“몰라. 십 년은 확실히 넘었지. 그게 우리 고등학교 1학년 때 일 아니냐. 그래도 십일 년은 아직 안 된 것 같은데.”
정한의 질문에 그의 친구 대엽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정한아, 지금 중요한 건 언제가 아냐. 어디인지 라고. 진짜 어딘지 기억 안 나냐?”
“글쎄, 이 장소가 너무 많이 변해서….”
정한은 대엽의 말에 대꾸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전혀 익숙한 느낌이 없다.
동네 뒷산이라도 십 년이면 이렇게까지 변하는구나.
조금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찾기 어려울지 몰랐는데.”
“몰라? 야, 새벽에 올라와서 이 짓을 하는데 쉬울 거라 생각했던 거야?”
대엽의 갈굼에 정한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니,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더 쉽지 않네.”
“이 근처 어디인 건 맞지?”
의심스러워하는 대엽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 진짜 다 같이 찾으면 좀 편했을 텐데. 열 명 중에 세 명? 너무 타율이 적은 거 아냐? 야구도 아니고 말이야.”
대엽은 들고 있던 삽을 바닥에 꽂으며 주저앉았다. 정한은 그 모습을 보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옆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몇 사람쯤은 더 왔으면 했는데.”
“뭐 별수 있냐. 슬슬 다들 사는 게 바쁜데. 아무래도 타임캡슐을 캐러 다니기엔 다들 좀 힘든 시기지. 세 사람만 해도 기적 아니냐?”
대엽의 말도 맞다. 정한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 온 놈들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이러다 죽겠다 진짜. 난 이제 못 가.”
대엽은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운동 조금 안 했다고 어째 벌써 몸이 이렇게 됐냐.”
대엽은 한숨을 후 내뱉었다.
“십 년이 길긴 길어. 이곳도 이렇게 변한 걸 보면.”
이전에 그저 야산이었던 곳은 나름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대엽은 그것도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 듯 주저앉아 불평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꾸밀 거면 좀 제대로 꾸미던가 하지 이게 뭐냐 진짜.”
“왜. 원래 동네 뒷산이라는 게 그렇지.”
대엽의 말에 정한은 그렇게 달랬다. 그러나 대엽의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예쁘게 싹 꾸민 것도 아니고, 산책하기 좋은 것도 아니고. 이럴 거면 그냥 그대로 둬도 되지 않았겠냐? 그럼 우리도 좀 물건 수월하게 찾고, 다 좋잖아?”
“몸이 지치니까 세상만사 불쾌한가 보네.”
학생 때와 달리 체중이 많이 불은 친구를 보며 정한은 조금 웃었다.
“야, 웃냐? 우리 웃을 틈에 좀 찾자 진짜.”
대엽이 불평하던 차에, 멀리서 크게 두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리로 좀 와봐!”
뒤처진 두 사람보다 훨씬 먼저 앞서 돌아다니던 친구 동원이였다.
“왜! 나 지쳐서 못 걸어!”
정한은 소리쳐 대답했다.
“개소리 말고 와! 찾은 거 같으니까!”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마주 보고 난 뒤, 벌떡 일어나 앞서나간 동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이미 지쳤기에 뛰지는 못했다. 조금 빨리 걸을 뿐이었다.
동원은 뛰지도 못하고 헉헉거리는 정한과 대엽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헬스 좀 오라니까…. 어쨌든 이거 우리가 그때 흠집 냈던 거 아니냐?”
동원은 나무에 난 상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상처를 자세히 살핀 정한은 웃으며 말했다. 나무가 자라며 모양이 조금 일그러지긴 했지만 확실하다.
“이야, 맞는 거 같다. 용케 찾았네, 진짜.”
내색은 안 했지만, 정한 역시 이 짓을 포기해야 하나 싶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결국 찾아낸 것이다. 정한은 전율마저 느꼈다.
대엽은 나무 주변을 삽으로 툭툭거리며 말했다.
“주말에 이게 뭔 짓이냐 진짜. 찾았으니 다행이지.”
동원과 정한 역시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지, 세 사람의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 빨리 파보자. 빨리 파야 집에 가지.”
방금까지 불평하던 대엽은 언제 활력을 찾았는지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정한이 놀리듯 말했다.
“다 죽어가다가 갑자기 활기찬 것 봐. 안이 궁금하긴 한가 봐?”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기대 안 된다는 것도 거짓말 아니겠냐? 아, 참고로 상태 보면 알겠지만 난 삽질 못 한다. 대신 밥 사줄 테니까 누구 딴 놈이 좀 해라.”
대엽의 뻔뻔한 말에 정한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돈으로 사려고?”
“인당 십만 원까지 맘대로 시켜도 된다. 콜?”
“어휴, 그 정도면 나를 사기 충분한 돈이지.”
결국 남은 두 사람 중 삽질하기로 결정된 것은 정한이었다. 자신은 위치를 찾아낸 공로가 있다 주장하는 동원의 말에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새벽 두 시를 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캉!!
삽이 쇠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찾는 데 다섯 시간이 살짝 넘게 걸린 것과 달리, 삽질은 십 분 만에 끝났다.
“이야, 잘 팠네.”
정한은 삽을 집어 던지고 구덩이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정한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야, 나도 여기까지다. 여는 건 너희가 해.”
간신히 상자를 꺼낸 정한은 대엽에게 던져주곤 힘이 다해 퍼져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나무 옆에 기대앉았다.
“오, 이거 아직도 멀쩡하네?”
대엽은 가볍게 뚜껑을 열어보려 손에 힘을 줬다.
“야, 근데 이거 왜 안 열리냐?”
하지만 상자는 생각보다 쉽게 열리지 않았다.
상자는 금속 재질이었고, 그 새 약간 녹이 슨 탓 같았다.
“야 이거 원래 이렇게 튼튼하냐? 너 삽질하다 망가트렸지?”
“야, 니가 파고 그딴 소리 하던가. 아 말 걸지 마. 말할 힘도 없어.”
동원은 그런 대엽을 보곤 그것도 못 여냐 핀잔을 주며 뺏어 들었다.
“흡! 흐읍!! 에이, 씨 이거 진짜 왜 안 열리냐?”
쉽게 열릴 것처럼 생겨놓고 안 열리니 오기가 생긴 건지, 둘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상자 열기에 열을 올렸다.
정한은 두 사람이 지렛대의 원리니 뭐니 해가며 상자를 여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했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이 낑낑대며 힘을 쓰던 도중,
팡!
갑작스럽게 상자의 뚜껑이 튕겨 나가며 열렸다. 체중까지 실어서 눌러대니 결국은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
평범하게 열린 것이 아니기에 충격을 받아 내용물이 흩뿌려졌다.
장난감들이 쏟아져 나오고, 종이쪼가리들은 눈처럼 흩날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정한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처럼 쏟아지는 잡동사니들 가운데, 단 하나만 보였다.
사람의 머리.
그 안에서 온전한 형태의 사람의 머리가 하나 굴러 나왔다.
그리고 그 머리는 데굴데굴 굴러 정한의 발밑까지 굴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