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막시밀리안은 요른이 앞에서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계단을 올라갔다.
이미 탑을 오르는 입구로 들어간 건지, 아직 성내 복도들을 연결하는 층계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하얀 마법사는 복도의 방문 하나를 열었으며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어 던지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 바람에 막시밀리안도 엉겁결에 같이 뛰어들어 버렸다.
체중 때문에 침대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끄떡도 없었다. 원목틀은 우직하게 견고한 가운데 좋은 향기가 났고, 말꼬리 털과 거위 깃을 섞어 속을 채운 매트리스도 높고 널찍했다. 시트도 뜨거운 물에 빨아 햇볕에 말린 다음 라벤더와 같이 넣어둔 듯 좋은 냄새가 났다.
막시밀리안은 곧 이곳이 둘이 혼인식을 올린 날 밤을 보냈던 호텔의 객실인 걸 알아챘다. 요른이 누운 채 곧 제 다리를 막시밀리안의 다리에 감았고, 둘은 서로를 만지며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일 년 반쯤 전, 길드 주관으로 혼인식을 치루고 난 후 둘은 페랑 수도 외곽 지대로 한참 말을 달려 큰 호숫가 호텔에 도착했다. 객실 수가 적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고급 호텔로, 3층에는 특히 커다란 다락형 객실 하나밖에 없었기에 다른 사람 눈에 띌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다만 방음은 완벽하지 못해 소리는 참아야 했다.
둘은 고급 길드원으로서 특별 할인을 받아 3층 객실을 빌렸다. 그리고 빌린값을 톡톡히 하려는 듯 이박삼일 내내 그 방 안에서 뒹굴기만 했다.
아침이나 이른 오후에는 둘은 몸을 일으켜서 목욕 가운을 걸치고 움직여 다녔다. 호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기도 하고 서로의 입에 넣어 주며 조곤조곤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오후와 저녁, 밤과 새벽에는 서로를 그저 안팎으로 만졌다.
카펫 위로 뒹굴면서든, 커튼을 세 겹이나 쳐서 가려 놓은 창 앞에서든, 욕조의 물속에서든 욕조 밖 타일 바닥에 앉거나 서거나 엎드려서든, 전신거울 앞에서든 탁자에 올라앉거나 소파에 기댄 채로든 둘은 그저 서로를 만졌다. 침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가끔 정신이 들 때면 막시밀리안은 방 꼴을 보고는 근심에 사로잡혔지만, 요른은 떠나기 직전에 청소해 주고 가면 된다고 장담했다. 자신이 마법으로 깨끗하게 할 테니 막시는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머무는 동안에도 시트를 아무래도 빨아야겠다 싶었던 적이 세 번은 있었는데, 사람을 불러 맡길 필요도 없이 요른이 대충 물과 불 계열 정령 마법을 써서 알아서 욕조에서 빨고 말려 주었다.
둘이 꼭 서로의 성감대만 찾으려 들었던 건 아니다. 머리카락에도 속눈썹에도, 눈두덩과 콧날과 귀밑, 쇄골과 날개뼈와 울대에도 그저 키스하기 위해 키스했고, 손가락으로 손가락을 얽었고, 혀로 혀를 핥고 팔다리로 허리와 배를 감았고 둔부와 종아리, 발꿈치를 깨물었다.
몸이 서로 분간이 되지 않을 때까지 만지고 또 만지다가 다른 곳에도 손이 닿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기와 항문도 건드렸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움직였지만, 바로 절정에는 이르지 않고 일부러 늦추면서 서로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옆으로 나란히 누운 채 허리를 움직이다가 요른의 배가 여러 번 물결쳤다. 막시밀리안이 앞을 가볍게 만져 주자 요른은 그 손안에 뱉어 낸 후 기절하듯 바로 잠들었고 막시밀리안도 그대로 잠시 졸았다. 안에 넣은 채로, 손으로는 여전히 상대의 성기를 감싼 채로.
자다가 깨어나서 요른이 막시의 손바닥에 제 성기를 비비며 조르듯이 희미한 숨을 쉬었고 막시밀리안은 다시 안에서 커진 채로 내장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듯이 움직였다. 그러다 결국 제일 예민한 부분을 찧으며 몰아붙였지만, 요른이 아주 가 버릴 것 같으면 멈췄으며, 어느 순간 부스스 일어나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상대도 제 위로 마주 앉혀 놓고서 속도를 높이곤 했다.
쾌감에 못 이겨 요른이 입을 벌리면 막시밀리안은 손가락을 넣어 그가 교성을 참게끔 도와주었다. 요른은 마디를 깨물고 빨며 스스로도 허리를 돌리다가 상대의 배 위로 후두둑 뱉어 냈고 막시밀리안은 그 체액을 손으로 쓸어다가 핥아먹었다.
한 번 사정한 후에도 요른은 입구를 움찔대며 막시의 위에서 움직이려 애썼다. 막시밀리안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각도만 조정해 주다가, 요른의 앞에도 다시 피가 돌기 시작했다 싶자 그를 침대 위에 똑바로 눕혔고, 양 허벅지를 한 손에 하나씩 잡아 벌린 채 위로 올라갔다.
비부가 말랐기에 오일을 뱃속에 짜 넣기 위해 막시는 잠시 성기를 빼내었다. 그러나 항문에서 액이 뚝뚝 떨어질 정도가 되자 금방 다시 푹 쑤셔 넣어 상대의 지나치게 긴장한 뱃가죽에 굵은 뱀이 지나다닌 듯한 길이 생길 정도로 가차 없이 오갔다.
시트를 양손으로 구겨 잡은 채 요른은 성기 끝으로 묽은 액을 한없이 흘려 내다가 비명 대신 허리를 확 띄우며 사정했고, 막시밀리안도 요른의 안을 가득 채우듯이 토해 낸 후 빼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숙여 요른의 상체를 안았다. 요른도 마주 팔을 뻗어 막시밀리안의 목과 등을 껴안았다.
그런 채로 키스하고 애무하다가 둘은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정한 후 안고 잠들었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또 움직였고 가벼운 절정에 이르렀다.
너무 더워지고 땀으로 축축해지면 둘은 욕실로 가서 서로 몸을 씻겨 주었으며, 씻겨 주는 동안에도 손장난을 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시트를 가는 동안에도 혀를 넣거나 넣지 않고 키스했다. 욕실부터 거실을 거쳐 침실까지 돌아다니는 길에 둘은 또 아무 데서나 서로를 안고, 넣고 삼키고, 들어가고, 나오고 다시 들어갔으며 엉망으로 수축하다가 허리와 골반을 부들부들 떨며 유두가 빳빳하게 부어오르고 온몸이 얼룩진 채로 무릎이 꺾였다.
그래도 요른은 넘어지지는 않았다. 늘 막시가 받쳐 주었고 어떨 때는 아예 들어 올리다시피 한 채로 마저 보내 주었다.
이박삼일을 그렇게 보냈다. 말 그대로 신혼이었고, 그 사흘 동안은 다른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둘이 약속했었다. 특히 요른이 막시한테 예식 전부터 그렇게 단단히 다짐시켰다.
마지막 날 아침까지도 둘은 침대 위에 서로 얽혀 있었다. 요른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막시밀리안이 다시 그 위로 덮치듯이 엎드린 채였다. 둘은 오른손과 오른손을, 왼손과 왼손을 깍지꼈다. 그리고 깍지낀 오른손을 요른의 아랫배로 돌려 성기를 만졌다.
커다랗고 단단한 타인의 손에 붙잡힌 제 손바닥이 이틀 내내 거의 한순간도 빼지 않고 충혈되어 있던 귀두 끝을 스치자 요른은 신음했고, 막시밀리안이 새삼 안에서 꿈틀거렸다. 요른은 왼손을 마저 끌어당겨 제 뱃가죽 위로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눌러 애무하다가 척추를 파드득 튕겼다. 막시밀리안이 반려의 귀 뒤와 드러난 목덜미에 키스했다.
더 그렇게 들러붙어 있다가는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서 둘은 마지막으로 절정을 맞은 후에는 천천히 서로에게서 떨어져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마주 보지 못했다. 닿지 않고 얼굴만 보는 게 왠지 억울하고 서먹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면서 다른 곳을 만지고 핥고 스치면서 밀어 넘어뜨려서 또다시 마주 보고, 질척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들락거리면서 또 수도 없이 더 마주 보고 키스하고 싶었다. 온몸으로 서로를 만지느라 시선으로도 건드리고 닿는 행위의 일환으로 삼고 싶었지, 그저 보기만 해야 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방을 떠나면, 문을 열고 나가면 복도부터는 이제 얼굴을 보는 건 오히려 서로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행위로 남는다. 시각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응시. 알고 있었기에 둘은 조금 울적해진 채 각자 몸을 씻고 옷을 챙겨입었고, 묵묵히 시간을 들여 방을 청소하고는 짐을 챙겨 나왔다.
그래서 신혼은 조금 슬픈 느낌으로 남아 있다. 객실 문을 열고 요른을 따라 고성의 복도로 다시 걸어 나오며 막시밀리안은 되새겼다. 그 사흘 동안은 현재뿐이었다.
그때 그 객실에서만은 돌이킬 것도 되새겨 후회할 것도 아무것도 기억나지조차 않았다.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어떤 틈새가 열리거나 발밑이 비어 버릴 것 같으면 상대의 피부에 더 밀착했고 붉게 수축하는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러면 다시금 그 방 안의 서로밖에 없었다.
둘은 경사진 복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요른이 어느 문 앞에 멈춰선 바람에 막시밀리안도 같이 멈춰 섰지만, 문을 한번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요른은 사라지고 없었다.
막시밀리안은 놀라지 않았다. 문고리 모양과 명패에 새겨진 호수를 보고 날짜를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넉 달쯤 전의 어느 봄날, 의뢰 하나를 마치고 근처 소도시 호텔에서 하룻밤을 쉬었던 때의 2층 객실이다. 무심코 입 안에서 어금니를 악문 채로 그는 문을 열었고 밤공기를 등으로 맞으며 창가에 떠올라 있는 하얀 마법사를 보았다.
“요른.”
원래 밖에서부터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려던 와중인 듯했으나, 막시와 시선이 마주치자 요른은 창틀을 밟고 선 채로 머물렀다. 밤빛에 은 마스크가 희뿌연 광택을 냈다.
2층까지 올라온 거야 부유 마법을 썼을 테고, 창의 빗장은 광물계 정령 마법으로 열었으리라. 막시밀리안이 차마 잔소리는 못 하고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보고만 있자 요른이 대충 설명했다.
“이 호텔은 식당 한쪽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방으로 못 올라와. 그러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에 띄느니 이편이 낫지 싶어서.”
“응.”
“내려갈까?”
“…….”
막시밀리안은 고개를 숙이며 웅얼거렸다.
“좋을 대로.”
높이와 지속 시간에 명백한 한계야 있었으나 오행 술법을 익히면서 요른은 제 몸을 공중에 띄울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막시밀리안은 의뢰를 처리하는 중에든 일상에서든 단 한 번도 부유 마법을 쓰는 요른에게 내려오라고 해 본 적이 없었다.
봄인데도 창으로부터는 스산한 공기가 스며들어 왔다. 막시가 다시 머리를 들자 어느새 창문은 닫히고 커튼까지 쳐져 있었지만, 요른은 여전히 그 창 앞에 떠오른 채 후드와 마스크를 벗고 낙낙한 옷자락을 날개처럼 남실댔고, 막시와 시선이 닿자마자 명령했다.
“내려오라고 해.”
“응?”
“나보고 내려오라고 해. 얼른.”
어조는 밝고 나긋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그 안에 차가운 심지가 숨어 있는 걸 눈치채고는 얌전히 그더러 내려오라고 명했다. 요른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바싹 다가와 바닥에 발을 대더니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막시밀리안은 물러서려 했으나 요른이 그의 멱살을 쥐다시피 하고 제 쪽으로 끌어당겨 키스했다. 사타구니가 허벅지에 닿아 온 탓에 막시는 요른이 이미 흥분해있다는 걸 알았다. 맞닿은 입술을 혀로 열고 상대의 앞니 끝을, 아랫입술 안쪽과 점막의 특히 축축하고 따뜻한 부분을 한참이나 훑은 끝에야 요른은 속삭였다.
“해.”
“…….”
“지금 해. 얼른.”
“……쌓였어?”
“그래. 며칠 노숙했잖아. 오늘은 하자. 빨리.”
소리는 안 낼 테니까. 말하면서도 요른은 막시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막시가 제 손으로 그를 침대 쪽으로 집어 던지고 자세를 잡아 주어야 했다. 상체만 침대 위로 기대어 엎드린 채 엉덩이를 바짝 들고 두 발로 서게끔. 그리고 아랫도리만 끌어내린 채 별다른 전희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받아들이며 요른은 주먹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울었지만, 워낙 처음부터 바짝 서 있었던지라 금방 가 버렸다. 그러나 한번 사정한 정도로는 아직 무릎이 풀리지 않았기에 막시밀리안은 계속 몰아붙였다. 상대가 도저히 자세를 유지하지 못할 때까지 쑤셔 박았고, 요른이 수 번이나 마른 절정에 떨다가 두 번째로 사정하면서야 다리를 꺾고 무너지는 걸 골반을 잡아 받쳐 주면서 저도 그 안에 사정했다.
막시밀리안이 물러났다. 침대 곁에 주저앉은 채 요른이 숨을 쌕쌕거렸고 항문에서는 정액이 흘러나와 마룻바닥을 적셨다. 사흘을 노숙했으니 피곤할 거다, 막시는 생각했다.
오랜만의 실내 숙소니까 오늘은 그냥 편안하고 따뜻하게 푹 재워 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요른의 눈에 가끔 이상한 이채가 돌 때가 있다. 그 청은색 눈동자 속에 어두운 피가 번지면서, 막시가 거절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종의 광기처럼 달아올라 요구해 올 때가.
막시밀리안은 얼굴을 살펴 반응을 일일이 확인해 가며 하는 걸 선호한다. 요른도 보통은 기꺼이 응해 주지만, 그렇게 눈이 새파랗게 달궈진 때만은 잘라 거절한다. 혹은 차라리 금지해 버린다. 아무것도 살피려 들지 말고 전희도 후희도 없이 그냥 찔러 대라는 것이다. 날기는커녕 서 있을 수도 없을 때까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요른은 침상을 짚고 일어나 막시밀리안을 돌아보지 않은 채 욕실로 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와서 요른은 평소와 다름없이 말갛고 천진한 표정으로 막시에게 키스했고, 낡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기는 했으나 챙겨 온 책을 몇 페이지 넘겨 보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막시밀리안은 곁에 앉아 한동안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를 담요째 들어 올려 침대로 옮겨 놓았다.
막시밀리안은 눈을 떴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기억이 없었다. 돌아보니 요른이 어느새 방문 앞에 서서는 막시밀리안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둘은 다시 고성 안의 복도를 따라 걷다가 계단을 올랐다. 어느 순간 요른이 계단참 한쪽 벽의 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열었고, 막시밀리안은 빨려들 듯이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성 3층의 부부침실, 남쪽으로 뚫린 창에는 반투명한 속커튼만 드리워 초승달이 박하 빛으로 비쳐 보였다.
2주 전 성에 처음으로 도착해서 짐을 푼 이튿날 밤이다. 막시밀리안은 그날 오후 짐마차를 끌고 시내로 나가서 며칠 전에 미리 주문해 두었던 식재료나 과자, 서적, 침구와 장식재, 램프 등을 받아왔다. 가장 가까운 보관소도 짐마차로는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곳에 있었던 데다가 배송 내역에 몇 가지 오류가 있었기에 늦저녁에야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요른도 성내에서 짐 정리를 도왔다. 부유 마법에 전송 마법의 좌표 계산을 결합하니 어렵잖게 짐들을 방과 복도, 창고 여기저기 배치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서야 둘은 침실로 올라갔는데, 문지방을 넘자마자 요른이 막시를 벽 쪽으로 확 밀어 버렸다.
그 정도 손길이야 종이부채로 바람을 부는 것만큼도 기별이 오지 않았지만 막시밀리안은 고분고분 밀려나서 벽에 등을 대고 서 주었다. 요른은 무릎을 꿇는 동시에 막시밀리안더러 앞섶을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리라고 명했고, 드러난 성기에 혀를 댔다.
“요른, 오늘은 피곤할 텐데…….”
“너 없는 동안 실컷 쉬었어.”
요른이 요도구 근처에서부터 표피가 까진 가장자리까지 핥아 올리다가 툭 뱉고는 다시 집중했다. 막시밀리안은 상대가 손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는 시선을 내려 그 등을 살폈고, 입술에 금방 핏기가 빠져 버렸다. 요른은 상자 포장에 썼던 끈으로 제 양 손목을 등 뒤로 묶어 둔 채로 막시의 성기를 빨고 있었다.
스스로 묶은 탓인지 헐거워 보이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요른은 막시가 어느 정도 부풀어 올랐다 싶자 입을 떼고 명령했다.
“네가 더 조여서 묶어 줘. 내가 빠는 동안.”
“요른.”
“기껏 성에 왔잖아. 이런 거 하려고 사들인 거 아니야?”
요른이 칭얼거렸다.
그 하얀 마법사는 한참 전부터도 가끔 꿈처럼 얘기하긴 했었다. 만약 정착할 수 있다면, 호텔방만 떠도는 게 아니라 우리 집과 방이 있어서 남의 눈도 귀도 신경 안 쓰고, 시간도 도구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해 볼 텐데.
그러니 요른이 졸라 대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 유의 놀이부터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사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막시밀리안이 망설이자 요른이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속닥댔다.
“너 나가 있는 동안 도서실에서 책을 좀 봤어. 이 성 자체의 역사나 지역사 자료도 샬로테가 꽤 들여놨더라고. 알아? 마물이 들끓기 전에 이 부근엔 짐승이 꽤 많았대. 너무 위험한 큰 짐승 말고 주로 귀족들이 사냥하기 좋은 짐승들. 사슴, 여우, 뭐 그 정도.”
달빛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더 깊은 밤을 불러오듯 웃었다.
“르핀이 멸망한 후 이 지역은 워낙 사람이 오갈 일이 없어져서 몰락했지만, 그전에는 바로 이 성 주변에서 귀족들 사냥회도 자주 열렸대. 덫을 놓아서 사슴을 잡고, 새도 잡고, 사냥 후 곧바로 손질해서, 저녁 식사로 뷔페를 열어 뼈까지 다 발라 먹었다는 거야.”
막시밀리안은 반려의 눈동자와 미소가 제 안을 층층이 파고드는 걸 느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그는 생각했다. 저 눈길은 어느 교정과 실험실과 지하실과 어두운 골목길까지.
요른이 다시 몸을 구부려 상대의 성기 끝을 입에 넣고 굴렸다. 뒤로 서툴게 묶인 손의 손가락들을 마치 재촉하듯 조금씩 안으로 꺾어 움직이면서.
싫어.
묶기 싫어. 너 손목 다쳐.
말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뱉을 수는 없었다. 요른이 인간 어린애의 모습으로 남았을 때, 아직 혼자서는 회복 마법도 제대로 못 쓰던 시절에 그를 엉망으로 다치게끔 방치했던 세월이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너는 다정한 사람이기만 한 척 덮어 버리려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유리 조각처럼 뇌의 살점을 긁었고 상대의 목구멍에 처박힌 성기가 꿈틀거렸다, 막시밀리안은 숨을 고르고는 상체를 구부려 반려의 양 손목을 감은 끈을 조이고 매듭을 더 빠듯하게 묶어 주었다.
요른이 곧 성기를 입에서 빼내고는 기침을 해 댔다. 목젖이 찔려서 그런지 뺨에는 자연스레 눈물이 흘러 있었다. 그렇게 파랗게 들뜬 두려움을 담고 젖어 든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보며 그는 일부러 작은 짐승처럼 떨었다.
그 눈을 마주 내려다보며 막시밀리안은 옛 시절의 자신을 흉내 내어 유려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쿠션 세 개를 가져와서는 카펫 위에 여기저기 놓고 요른의 몸을 그 위로 무릎 꿇려 자세를 잡아 주었다. 양 무릎 밑에 각각 하나씩 쿠션 두 개, 머리 밑에 하나.
손을 짚지도 못해 쿠션에 머리만 깊이 처박은 채,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린 채로 요른은 덜덜 떨었다. 낙낙한 튜닉 아래로 바지와 속옷이 금세 발목까지 끌어 내려져 벗겨지고 허벅지가 커다란 손에 잡혀 넓게 벌어지자 그는 비로소 목소리를 내어 애원하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 하지 마.”
막시밀리안은 아까 짐에 섞어 가져왔던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질감이 연고에 가까운, 손가락 사이에 넣고 문지르면 실처럼 질척하게 늘어나는 무향의 액체였다.
오일 대용으로 한번 시험해 볼까 해서 주문했지만 성에 온 지 이튿날 밤에 벌써, 그것도 데울 짬조차 없어 이렇게 차가운 채로 쓰게 될 줄은 몰랐었다. 액체를 입구에 바르고 안에도 가득 부어 넣은 다음 그는 바로 상대의 안으로 들어갔다.
요른이 신음하며 묶인 손을 등 뒤로 버르적거렸다. 아프지 않을 리는 없었다. 손으로 한참을 풀어 주고 들어가야 요른은 비로소 느껴서 처음부터 허리를 띄우곤 하는데, 지금은 고통으로 땀이 바짝 돋아 버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막시밀리안은 일부러 저항을 짓이기듯 유린했고 요른은 침과 눈물로 쿠션을 적셨다. 싫다고, 제발 그만하라고 수도 없이 빌고 울면서.
“앗, 응.”
그러나 어느 순간 요른은 채찍으로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등을 파드득 휘고, 성기가 아플 정도로 구멍을 마구 조이더니 안에서부터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싫다면서 허리를 틀었지만 발음이 새었고 비음이 섞였다.
막시밀리안이 요른의 이미 반쯤 일어선 성기를 아랫배에 붙여 올린 후 세차게 문지르며 속도를 높였다. 요른은 거의 흐느낌 같은 쇳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틀었으며 묽은 액으로 푹 젖어 있던 요도구로 진득한 흰 액체까지 토해 내고는 늘어져 버렸다.
막시밀리안은 성기를 빼고 물러났다. 요른 자신의 손목 굵기쯤은 되는 게 빠져나간 후 항문은 어쩔 수 없이 여전히 손가락 하나만큼은 빠끔 열려 있었고, 발그레한 한가운데에서부터 연고를 흘려 냈다.
회음부와 허벅지 안쪽이 연고로 흠뻑 젖은 후에야 주름이 온전히 다시 맞물렸다. 그러나 그 선홍빛 입구를 스스로 옴쭉대며 요른은 이제 제 쪽에서 허리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까와 똑같은, 그러나 이제 전혀 의미가 다른 소리를 뱉어 내면서.
“싫어, 더, 응, 넣어 줘.”
그는 쿠션을 침으로 적셔가며 어눌하게 말했고 하체를 높이 들고 골반을 벌려 상대에게 입구를 보이려 애썼다.
“싫어요, 더, 주인님, 좋아요, 넣어 주세요, 아앗, 제발, 더…….”
제 성기를 어딘가에 비비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요른은 엉덩이를 흔들고 주름을 풀고 또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막시밀리안이 다가가 살집 사이로 연고를 덧발라 주기 시작하자 그 손길만으로도 하얀 짐승은 엉망으로 흥분해서는 체액을 줄줄 흘렸으며, 막시밀리안이 푹 꽂고 들어가자 그야말로 광기에 들뜬 비명을 질렀다.
상대가 제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요른은 그 동작에 맞추어 저도 허릿짓을 하려 애썼지만, 너무 흥분해 있어서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그저 꽂아 주는 대로 들썩거리기나 했다.
“앗, 좋아, 너무, 아앗, 좋아요, 주인님, 계속, 앗…….”
“얌전히 있어.”
막시밀리안은 요른의 성기를 꽉 쥐어 멋대로 절정에 이르지 못하게 했으며 유두를 두어 번 잡아 뜯듯이 비틀었다. 그러나 하얀 짐승은 그마저도 더 흥분되기만 한다는 듯이 교성을 내질렀고 실제로 뱃속을 연이어 조여대며 사정 없는 절정을 반복했다.
성기에서 묽은 액이 뚝뚝 떨어져 카펫에 웅덩이를 이루다시피 했다. 힘이 빠져 허리를 들고 있는 것만도 힘겨워하면서도 요른은 일부러인지 우연인지 쿠션을 비껴 머리를 아예 바닥에 이겨대며 계속 빌었다. 좋아요.
“좋아, 앗, 주인님이 해 주시는 건, 다 너무, 좋아요. 응, 더, 언제, 까지나…….”
포획되어 길들임이 완료된 짐승 안에 주인은 사정했고, 제 뱃속에 주인의 것이 들어차는 걸 느끼고는 짐승도 더없이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기절해 버렸다. 막시밀리안은 빠져나와 요른의 상태를 살피고는 몸을 씻겨 주려 욕실로 데려갔다.
셋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고 둥근 사기 욕조에 물을 받고 마법으로 덥힌 다음, 손을 넣어 온도를 확인하고 나서 막시밀리안은 요른을 안고 들어가 제 바로 옆에 기대어 앉혀 놓았다. 가슴 바로 밑까지 물이 찰랑찰랑한 채로 요른이 문득 실눈을 뜨고 웃었다.
역시 아까 기절한 듯 보였던 건 연출이었던 거다. 막시밀리안도 픽 웃어 버렸고 요른은 숫제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더니 막시의 얼굴 쪽으로 물을 마구 끼얹어 댔다. 둘은 씻고 키스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에서 손을 맞잡은 채 잠들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새벽에 잠시 깨어 반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나아가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다. 얼마나 앞으로 가든 그만큼 뒤로 가리라. 얼마나 올라가든 그만큼 더 깊이……. 언젠가 꿈에서 스친 듯한 반짝이는 약속이 문득 뇌리를 수놓았다.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는 생각을 털어 버렸다. 그런 탑을 원할 수는 없다.
그건 비열하다. 타락에 불과하다. 이쪽이 옳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낙하하는 게.
이쪽이 옳다. 막시밀리안은 눈을 감고 새벽이면 언제나 찾아오는, 바닥없는 밤 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에 몸을 맡겼다.
눈을 떠 보니 다시 새벽이었다. 다만 같은 날의 새벽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날씨가 달랐다.
창유리에는 이슬이 뿌연 이끼처럼 끼어 있었고 내다보인 공기는 가을처럼 아늑했다. 고성에 들어온 후 둘은 간혹 커튼을 아예 치지 않은 채 잠들기도 했는데, 어제도 그런 날이었나 보다.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지?
여기는 어디지? 막시밀리안은 눈을 깜박이다가 자신이 쿠션 더미에 등을 기댄 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요른이 자기 몸 위에 앉아 있다는 걸. 무게가 없는 잔물결처럼 찰랑이는 백발을 귀 뒤로 넘긴 채 하얀 자가 빙긋 웃었다.
“드디어 올라왔네.”
* * *
역시 내 탓도 있기는 했구나.
막시밀리안이 눈을 감은 채 환각 속에서 이 방 저 방을, 혹은 이날 저 날을 다니며 요른과 몸을 섞는 동안 현실 속의 요른은 그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채 반성했다. 현실에서야 막시밀리안은 사지와 성기를 조금 움찔거리면서 질문을 받아 몇 마디 답하는 말을 흘렸을 뿐이었다. 시간도 삼십 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이런저런 놀이를 좀…… 많이 시키긴 했지.’
요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느라 죄책감을 부추긴 면도 있을 거야. 아니, 그런 면이 적다고는 할 수 없…… 에이, 그래. 내 탓이 크다.’
하지만 재밌는데 어쩌라고. 요른은 막시밀리안의 성기 밑동을 살살 부추기며 투덜거렸다.
너무너무 재밌는데. 아까 자신이 반려의 눈가리개를 벗겨 내고서 내걸었던 약속을 떠올리자 아까워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 그런 놀이도 자제해야 하는 건데, 내 입으로 그런 약속을 했다니.
나름대로 결심을 한지라 우습도록 자신감 넘치는 투로 건네주었지만, 지킬 수 있는 약속이기나 한 걸까. 내가 도무지 진심으로 그걸 이루기를 원하기나 하는 걸까.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해 버렸을까.
순간 요른은 막시가 그 약속을 잊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자신에게 짜증도 나서 이래저래 복잡한 심정으로 그는 제 반려의 뺨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 딱 열흘 전날 밤 속에 있는 거 같은데, 그만하면 이제 깨워도 좋으리라.
“막시, 올라와.”
손끝으로 두드리다가 반응이 늦길래 요른은 상대의 뺨을 아예 손바닥으로 갈겨 대기 시작했다. 막시밀리안이 마침내 눈을 크게 떴다. 어떤 문을 벌컥 열고 나오듯이.
요른은 침대 옆에 탁자 위에 켜 두었던 등잔의 조도를 높였다. 막시밀리안의 동공이 좁아지면서 초점이 요른의 눈동자 한가운데에 맞아 떨어졌다. 곧 그가 주변 사물과 천장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더듬어 훑는 모습을 보며 요른은 상대가 마침내 현실로 돌아왔다고 짐작했다.
“나 보여?”
“응.”
“여기 어디야?”
“우리 침실……인데.”
“그래, 그래.”
막시밀리안은 뭐라 더 물으려다가 자기 아랫배쯤을 내려다보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신의 성기가 나긋한 양손 안에 빠듯하게 잡혀 꺼덕이고 있었고 요른이 아래를 홀랑 벗은 채 그 밑의 고환 위로 제 성기를 비비며 주저앉아 있었다.
“막시, 나 할 말 있어. 그런데 잠깐만.”
요른이 조잘대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를 반쯤 들고 일어나더니 상대의 귀두 끝부분을 제 뒤쪽 입구에 맞추었다.
막시밀리안은 다리를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못 하게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잘못 부추겨 버린 듯, 요른이 급히 푹 주저앉으면서 비명을 참았다.
더럽게 아프네. 이를 꽉 악문 채 요른은 어쩔 수 없이 눈에 가득 고여 버린 눈물을 막시밀리안의 배 위로 털어 냈다.
그러나 방금은 입구가 무슨 질그릇처럼 깨지는 거 같았다면 이제는 배 속이 뒤늦게 온통 쑤시는 바람에 보람도 없이 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감추길 포기하고 고개를 들자 막시밀리안이 단정한 이목구비로 입술도 침착하게 다문 채로 상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서 주먹을 올렸다가 그만두고는, 요른은 대신 시트 위에 꿇은 무릎을 축으로 삼아 골반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못해 처먹겠네.’
그러나 고작 너덧 번쯤 애쓴 끝에 멈춰 버렸다. 막시밀리안이 살살 달랬다.
“요른, 빼자. 괜찮아. 내가 빼 줄게.”
“내가 해 주는 건 싫어?”
상대가 허리쯤으로 손을 뻗어오는 걸 탁 쳐내며 요른이 쏘아붙였다.
“너만 잘하는 줄 알아? 얌전히 좀 있어.”
손으로 제 엉덩이를 벌려 잡은 채 그는 다시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무 감흥도 없이 탁자 위 회중시계 바늘의 움직임에만 따라 일 분 일 초 흘렀다. 그냥 아팠고 더럽게 아팠다. 윤활제를 충분히 발라 두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위아래로 삽출할 때는 물론이고, 앞뒤로 돌리듯이 움직이기만 해도 자꾸 눈물만 나오려고 했다.
성기를 몸속에서 아무리 돌려봐도 대체 어떻게 해야 그걸로 자기 성감대를 자극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항문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스스로의 내장을 느끼며 강제로 해부학 수업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늘 막시가 알아서 해 줬었지. 요른은 새삼 돌이켰다. 이런 체위를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럴 때도 막시가 들어서 제 위에 앉히면서 각도며 탄력을 조절해서 꽂아 넣고는, 다 넣은 후에도 배로 배를 누르고 허리랑 엉덩이도 꽉 붙잡고 조율해 줬으니까. 요른 스스로 움직여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시는 이 방면으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거 같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는 건 물론이고, 모형까지 사서 요른 몰래 이리저리 찌르고 누르며 연습하는 꼴도 봤었다. 그에 반해 난 2년간 뭘 한 게 없구나. 깨닫고 나자 요른은 조금 막막해졌다.
‘젠장,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막시밀리안이 또 빼라고 할까 봐 일부러 시선을 돌린 채 요른은 속으로만 뇌까렸다. 윤활제가 마르기 전에 상대를 가게 해 주는 건 이미 다 틀린 거 같았기에 입이 툭 튀어나온 채 마법사는 생판 다른 소리나 꺼내 놓았다.
“그거 내가 그랬던 거야.”
“뭘.”
막시밀리안이 불안하게 요른의 상태를 살피다가 얼른 반응해 왔다. 요른은 내장이 불편하다 못해 구역감까지 치솟는 걸 간신히 참으며 이어 갔다.
“일주일 전에 함정에 빠져서 못 나온 거. 사실 나 하강하는 도중에도 부유 마법 쓸 수 있었어.”
“알아. 원리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누구라도 그런 순간에 실제로 마법을 쓰기는…….”
“떨어진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어. 한쪽 팔 부러졌다고 부유 마법 못 쓰는 거 아니야. 다르게 인을 맺는 방법도 있어. 게다가 나 사실 비상용 치유 마법진도 갖고 있었어. 혀도 고치려면 고칠 수 있었단 얘기야.”
막시밀리안은 딱히 표정이 변하지는 않았다. 원래 얼굴만은 늘 차분한 인간이다. 그러나 뱃속에서 성기는 착실히 식어 가길래, 요른은 그야말로 턱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고는 열심히 위아래로 들썩거려 겨우 세워 둔 후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난 네가 데리러 오는 걸 기다리고 싶었어. 침대에서 하는 놀이랑 비슷한 거야. 내가 함정에 빠져 있고, 못 날고…… 아니, 스스로 안 나는 걸 선택해서 무력한 채로 갇혀 있어. 말하자면 봉인되어 있는 거지. 그런데 네가 오는 거야. 미래를 약속했으니까, 그 미래가 오면 어김없이 날 도로 꺼내 주는 거야. 용사처럼. 그리고 네 성으로 도로 데려가 주지.”
막시밀리안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성기도 역시나 쪼그라들었다. 항문을 옴쭉대며 애써 보다가 포기하고 요른은 계속 털어놓았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이루어지지는 못했던 일이지만, 네가 약속했고 내가 기다렸던 건 사실이잖아.”
“…….”
“전에도 말했지만 내겐 너랑 함께했던 건 뭐든 다 소중한 추억이야. 그런데 난 이제 뭐랄까, 기억하는 방법이 달라져 버렸으니 돌이키기 어려운 부분도 있거든. 전에 선명하게 보였던 게 흐려지고, 왜곡되고, 아예 안 떠오르고 등등.”
요른이 한쪽 검지로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려 보이며 이어 갔다.
“그래서 그냥, 재현해서라도 반복하고 싶었어. 함정에 떨어진 순간 그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어. 형태는 다를지언정 다시 한번 겪어볼 기회였으니까.”
“……응.”
“하지만 다신 안 할 거야.”
요른이 막시의 답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채어가듯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런 짓은 이제 다시는 안 할 거야.”
“무슨 소리―.”
“내가 잘못했어.”
막시밀리안은 소스라쳐서 저항했다. 둘의 관계에서 요른이 잘못한 쪽이어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른이 잘라 내며 입을 막아 버렸다.
뱉어 놓고 요른도 속으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지난 2년 남짓 동안 단 한 번도 잘못이라는 말을 입에도 머릿속에도 담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왕이던 시절이야 당연하지만, 사람이 되어 놓고도 지금까지도.
요른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자기 입술을 생경하게 매만지다가 손을 넣어 혀까지 만져 보았다. 그렇군.
이런 느낌이구나.
‘죄책감…… 그래. 이런 식인가 보다. 사람들은…… 막시는, 이렇게 사는구나.’
“잘못된 집착이었어. 다시는 그런 식으로 억지로 돌이키려 들지 않을 거야. 그러느니 나는 이제 더 올라가고 싶어. 좀 더, 훨씬 더 높이. 그래서…….”
즐거운 건지 허탈한 건지 스스로도 모를 미소를 띤 채 그는 환각 속의 막시밀리안에게 내걸었던 약속을 현실에서 한 번 더 반복했다.
“……평온하게 다 잊어버릴 수 있는 곳까지. 난 거기 도달할 거야. 그리고 내가 너도 꼭 데려가 줄게.”
막시밀리안이 뭐라 반응하려다가 문득 눈이 깊어졌다. 꿈속에서 스친 실들이 제 안에 남겨 놓은 그림자를 더듬듯이. 요른이 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손으로 눈두덩을 덮어 주었다.
용서해 줄게.
황궁에서의 혼인식 날 요른은 막시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건 선포라기보다는 아직 약속이었다. 당시의 요른은 용서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어 죄니 용서니 하는 것들의 의미를 깨닫고 나면 용서해 줄 수 있으리라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후 2년, 답을 얻지 못한 채 점점 미궁에 빠져 가는 듯도 했다. 요른의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잊혀버렸지만 어떤 장면들은 오히려 더 생기를 얻었다. 궁의 집무실에서 막시밀리안과 몸을 겹쳤을 때, 자신이 그의 갈비뼈에 손톱을 꽂았던 장면이라든가.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당시에도 이해할 수 없었던 만큼 돌이켜 봤자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간혹 꿈에도 나올 만큼 점점 더 선명하고 강렬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해하는 대신 그저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막시밀리안을 미워한다.
사랑하지만 미워한다. 그가 요른 자신에게 과거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십 년도 넘게 소위 나쁜 짓을 잔뜩 했기 때문에. 그래서 요른은, 최소한 요른의 어떤 부분은 막시밀리안을 미워하면서야 사랑한다.
그렇게 멋대로 진행되어 버리는 논리의 체계며 감정의 흐름, 심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저 주어져 있는 사실인 양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그렇게 받아들이다 보니 점점 더 책임감이 느껴지기는 했다. 자신이 그를 미워하고 있다면 역시 용서도 자신밖에 해 줄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요른은 결국 그 미움을 다시 반복하고 있었고, 반복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 흥분과 고양감은 진짜였다. 못 견뎌 잠자리에서 막시밀리안에게 이런저런 역할을 시켜서 당하고 또 당할 때면 너무 좋았고, 쾌감 때문에 말 그대로 미치기 직전까지 치닫곤 했다.
좀처럼 표정이 무너지지 않는 막시의 아름다운 얼굴이 안색만 파리해지는 것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으며 그가 행위 후 사흘쯤은 밥도 잘 못 먹고 못 자고, 위장이 망가져 가끔 피까지 토하는 것도 귀여워서 돌 것 같았다. 애잔하게 가여우면서도 또 더 괴롭혀서 거의 죽어 갈 때까지 몰아붙이고 싶기도 했고, 시름시름 앓을 꼴을 상상하노라면 아래도 같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난 역시 즐기는 거 아닌가? 요른은 여러 번 곱씹었다. 역시 나는 이게 재밌는 거다. 너무 좋다. 그러면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 이름이 미움이든 말든 상관없이 이건 어쨌거나 내가 너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방식의 일부인 거 아닌가?
‘하지만 포기해야겠지.’
그게 용서인지 뭔지 하는 거 아닐까.
간직하는 게 아니다. 모든 걸 끝까지 함께 기억해 가는 게 아니다. 마왕이면 몰라, 사람은 그런 걸 할 수 없다. 막시밀리안도 그렇고 이제는 요른 자신도 마찬가지다. 손을 잡고 살아가려면 도저히 놓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첨예한 과거마저도 망각해야 한다.
어떤 것들은 완전히 포기하고 놓아 줄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아까워. 아까워. 아까워 미치겠다. 솔직히 과연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열불이 나고 억울하다. 그러나 요른은 손을 떼고 막시밀리안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부탁했다.
“그러니까…… 좀 가르쳐 줘.”
막시밀리안은 답이 없었다. 여전히 약기운에 먹힌 채 그의 눈은 검고 어두웠고, 충격에 젖어 젖어 있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한 거 같지 않았다. 요른이 그의 양 손목을 잡아다가 제 허리에 감아 놓고는 을러 대듯 청했다.
“이거 말이야, 이거. 난 못 하겠어. 네가 좀 잡아서 움직여 줘. 막 다 해 버리진 말고,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고. 응?”
“…….”
“얼른, 멍청아.”
결국 주먹을 올리긴 했지만 검지만 가볍게 튕겨서 이마를 때리면서 요른이 투덜거렸다.
“가르쳐 주면 앞으로는 나도 해 주고 싶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