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비상
1.
필립은, 린다는, 또 황궁 만찬에 불려 나온 또 다른 관료들은 미칠 것 같았다. 그나마 필립은 원리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만큼 겨우겨우 주먹을 틀어쥐며 참을 수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머릿속은 더 캄캄했지만.
‘베스퍼는 어떨지 모르겠군.’
제 옛 연인을 기리며 아직도 성에 처박혀 있는 그자도 이 자리에 나왔다면 이런 꼴이 되었을까, 그러니까, 저 하얀 생물에게 이렇게까지 홀려 버렸을까. 머리가 사라지고 대신에 성기와 배 속이 거의 뇌가 되어 버린 것처럼.
필립은 장관 한 명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성을 놓아 버릴 뻔했고, 상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했다. 만찬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고 있었다. 안될 걸 알면서도, 아무리 죽여 봤자 늦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왕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다 그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 정복을 차려입고 나와서는, 유일하게 만찬 내내 왕과 시선 한 번 교환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은 자. 뻔뻔하게 다른 참여자들과만 이야기를 나누며 제 식탁 위의 식기나 매만져 대던, 지금도 태연하게 목이 긴 잔을 들고 투명한 과일주나 마시고 있는 인간.
아무리 숨겨도 소용없었다. 하얀 생물과 저 흑발의 청년은 이제 완전히 갈 데까지 간 게 틀림없었다. 둘이 서로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예의상의 인사도 말도 나누지 않는 건 모두 위장을 위한 공작이고 표면을 침묵의 베일로 덮어 비밀의 체취에 더욱 신경을 집중시키려는 연출이다. 최소한 만찬의 참가자들은 모두 그렇게 느꼈다.
장관들과 보좌관, 부처 대변인들은 그러나 막시밀리안에게는 오히려 위해를 가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고 슬퍼서 그 청년 쪽으로 시선이 닿기만 해도 심장이 으깨어질 듯이 아팠기 때문이다. 비유 같은 게 아니라 조금만 오래 쳐다보아도 실제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미 왕을 가져 버린 자는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은 모두 생각했다.
그자는 너무도 빛이 나서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으며 하물며 손을 대는 건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머리털 하나 다치게 하기도 전에 이쪽이 먼저 눈과 심장이 터져 버릴 것이다. 저 청년은 이미 왕과 함께 신성의 반열에 올라 버렸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안 돼.’
필립은 자기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는 데에 놀라면서도 몇 번이고 되새겼다. 자괴감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너무도 당연한 공리처럼 그 문장만이 온통 핏속에서 벌떡거렸다. 다른 자들은 절대 안 된다.
왕께 눈빛 하나 대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아니, 감히 그 마음으로 왕을 원하는 것도.
‘감히.’
필립은 관료들 하나하나를 돌아보며 생각했고, 살의에 까마득해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추슬렀다. 동시에 그는 며칠 전부터 머리 한구석을 지배하던 절망에 완전히 눌려 버렸다. 이렇게 멸망하겠구나.
지금은 존안을 직접 뵙는 자들에게만 퍼진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법부 장관 린다 투트 크라흐트는 긴 테이블의 맨 끝에 앉아서도 눈물을 참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거의 이십 년 전, 프란첸 본성의 온실. 그 하얀 천사는 구세주로 보였었다. 린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던 그녀 안의 불행을 모두 치유해 줄 수 있는 존재, 말 그대로 열락의 입구.
그리고 그녀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소년이 급히 온실 안으로 뛰어 들어와 그 천사를 껴안아 버렸을 때의 온몸이 다 부서지는 듯한 패배감을 기억했다.
그때보다도 적어도 수십 배는 더 증폭된 고통이 몸 안쪽에서부터 끊임없이 주먹으로 치듯이 엄습해서 그녀는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으며 입에 뭔가를 넣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포크가 식탁보 위로 떨어지는 걸 하릴없이 내려보며 린다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그때 막시밀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왕께 아무런 인사도 올리지 않고 혼자 대식당홀을 떠나 저녁 기운에 다소 어두워진 복도로 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 자리의 모두가 이해했다. 그는 왕의 신하가 아니라 연인이니 그래도 된다.
그가 나가고 나자 왕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모여 있던 관료들은 숨을 헉 몰아쉬었고, 속옷이 젖어 버린 데에 당황했다. 왕 혼자만은 천진하고 무구한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식기를 달그락거리며 소꿉놀이 같은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농림부 장관이 그에게 멍하니 시선을 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자꾸…….’
곱씹으며 농림부 장관은 전혀 모르는 생물을 바라보듯 왕을 살폈다.
생각해 보니 실제로 전혀 모르는 생물이기는 했다. 자신들이 멋대로 저 자리에 데려다 놓고 역할을 주고 왕으로 삼은 것뿐이지. 생물이 시선을 눈치챈 듯 장관 쪽을 보더니 방긋 웃는 바람에 장관은 피가 달아오르다 못해 두려워져서 얼른 시선을 피했다. 다른 관료들도 금방 식탁 위로 고개를 처박았다.
‘이제는 힘을 제대로 거둬 주지조차 않는군.’
필립 역시 차마 제 옆자리로 시선을 주지 못한 채 뇌까렸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요른은 막시밀리안과 가끔씩 눈이 마주칠 때만 모습이 변했고, 시선이 떨어지면 금방 순결하기만 한 ‘왕’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주변인들의 정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막시밀리안이 아예 방을 떠나 버린 후에도 기본적으로 계속 저 모습이다. 사람들이 겨우겨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조금 완화해 주었을 따름이다.
곧 왕은 종일 저 모습으로만 살게 되리라. 이를 악문 채 필립은 왕이 잔을 들어 올려 만찬의 끝을 알리는 기념사를 하는 동안 생각했다.
‘알아봐야겠다.’
수도의 민중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물론 전 같으면 그는 왕께 청했을 것이다. 그들 속마음 이런저런 부분을 읽어 내서 민심이 어떤지 알아내 달라고. 하지만 이제는 부탁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직접 옛 방식으로 조사해서 알아내야 한다, 수상은 되뇌었다. 요 며칠 공화국 수도의 술집에서나 민박에서 싸움이 얼마나 잦아졌는지, 살인은 얼마나 늘었는지. 혹시 이미 다른 지역까지 번져 간 건 아닌지 오늘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철저하게 파악해 둬야 한다.
방책을 세울 수 있든 없든 사태는 파악하고 있어야 할 테니까. 필립은 절망한 채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편 만찬이 파하고 복도로 걸어 나오면서 요른은 혼자 실실 웃었다. 원래대로라면 호위병 둘이 따라와야 하지만, 그네들은 지금 각각 복도 양쪽 벽에 딱 달라붙어서 숨어 있었다. 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창으로 찔러 대고 싶어질까 봐 멀찍이 떨어져서. 마왕은 걸음에 맞춰 휘파람을 불 듯이 뇌까렸다.
‘몰래 사귀는 거 좋네. 되게 재밌다.’
다음 단계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혼인식을 하겠다고 발표하면 또 어떤 표정들이 될까, 무슨 짓들을 하려고 들까.
‘막시랑 둘 다 해 보기로 했으니까. 처음에는 아닌 척 몰래 즐기기, 그다음에는 내놓고 놀기.’
물론 겉으로 내외해 봤자 이미 다들 눈치채고 있긴 했지만, 바로 그 맛이 아니겠는가. 눈치챘으면서도 차마 눈치챈 척은 할 수가 없기에 그자들의 고통과 질투는 고요한 가운데 짐승들의 땀처럼만 허공에 냄새를 풍긴다.
맛있었어. 마왕은 킥킥대며 3층의 침소로 들어갔지만, 옷을 갈아입혀 줄 사람들은 없었다. 왕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도망쳐 버린 듯했다. 궁의 사람들은 왕의 새로 깨어난 힘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면서도 아무튼 느끼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마왕은 침소 한가운데에 서서 제 손으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지금 입고 있는 건 예복이라, 막시가 벗기기 힘들어 할 것이다. 이런 풀기도 힘들게 칭칭 감아 놓고 단추도 줄줄이 딸린 옷 말고 낙낙한 잠옷 같은 걸 입고 가서 벗겨 달라고 해야겠다.
막시는 남의 옷 벗기는 데에는 서툴다. 동정이니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요른은 괜히 헤실헤실 웃었고, 얼마든지 옷을 그저 잿가루로 변하게 해 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시의 서툰 손길을 흉내 내어 열심히 손으로 끄르고 풀어 보았다.
하긴 막시는 자기 옷도 늘 편하고 단순한 것만 입고 살았다. 요른은 새삼 돌이켰다. 평생 검만 쓰느라 군복에, 예복도 기사 정복에, 사복도 움직이기도 갈아입기도 편한 것만 입었지, 조금이라도 복잡한 예쁜 옷은 입어 본 적이 없다.
‘나 때문에 용사 된답시고 그렇게 단련했었지.’
귀여운 놈.
귀여운 놈, 예쁜 내 거. 요른은 자신이 백색의 신왕으로서 기억을 천천히 되찾아가던 무렵 막시에게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던지 돌이켰다. 착하고 곧게만 컸을 어린애가 자신을 만나서 인생이 뒤틀려 버렸다고.
하지만 지금 요른은 천 자락을 빙빙 돌려 벗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로 그게 맛 아냐? 온실 속 난초처럼 올곧게만 컸을 어린애가 마왕을 만나 뒤틀려 버렸고, 결국 자기 자신을 이중으로 죽이면서 회귀까지 했다. 생각만 해도 침이 줄줄 흘러나올 거 같다.
돌이키다가 요른은 문득 막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살짝 엿보았다. 그는 이미 사택에 돌아가서 욕실 안에 옷을 벗고 서 있었다. 왕은 잠깐 고민하다가 단추고 뭐고 그냥 옷을 다 뜯어 발겨 내팽개친 채로 이동했다.
“놀자.”
맨몸의 마왕이 물에 풍덩 빠져들었다.
막시밀리안이 속이 깊은 원통형 목제 욕조 안에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있다가 얼굴에 물이 튀자 미소 지었다. 마왕은 살짝 실망했다. 이제 놀라지도 않네.
막시와 자는 건 이제 나흘째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는 요른이 여기저기 짠 나타나면 놀라서 눈 정도는 동그랗게 떠 줬는데, 벌써 적응해서는 그러려니 한다. 요른은 다리를 벌리고 그 벗은 아랫배 위에 올라타서는 상대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뺨을 핥고 귓불을 쪽쪽 빨아 대며 칭얼댔다.
“놀자, 놀자. 얼른.”
“응. 씻고 나서.”
“다 섰잖아.”
요른은 금세 제 사타구니를 꽉 채우며 부풀어 오른 것을 느끼며 졸랐다.
“얼른 줘.”
“요른.”
막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천천히 가자, 응?”
“맨날 그래.”
“난 네가 가는 걸 보는 게 더 좋은걸.”
막시밀리안이 손을 올려 제 연인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말캉한 게 크림 향이나 꽃내음 같아서, 손으로 만졌는데 이상하게 입 안에 단맛이 고였다.
“너 손으로도 잘 가잖아. 그게 덜 아파. 네가 좀 더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렇게만 하자.”
“싫어.”
요른이 분통을 터뜨렸다.
“나흘이나 됐는데, 주지도 않고. 맨날 손으로만…….”
“손은 싫어?”
“싫은 건 아니고.”
“내 손가락 싫어?”
막시밀리안이 상대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묻자 요른은 입을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아니고…….”
답하면서 생물은 상대의 손이 이미 제 엉덩이를 더듬고 있는 걸 느꼈다. 암회색 눈동자가 우스울 정도로 진지하게 요른의 얼굴만을 향해 있었던지라 몰랐는데, 어느새 그는 한쪽 손으로는 살집을 벌려 잡고, 다른 쪽 손으로는 골까지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요른은 저절로 다리를 좀 더 넓게 벌렸고 뒤로 골반을 곧추세웠다.
요른의 허리까지, 막시밀리안의 가슴 바로 밑까지 차오른 따뜻한 물이 찰랑거렸다. 중지가 입구를 덧그리기 시작하자 요른은 몸을 꼬았다. 하지만 주름을 건드릴 때마다 물고 싶어서 움찔거리는데도 그건 좀처럼 들어와 주지 않았고, 주변만 실컷 애무하다가 곧 허리로 올라가 버렸다.
생물은 불평하려다가 꾹 참았다. 막시밀리안이 양팔로 상대의 등허리를 꽉 안아 끌어당겨 입술에 키스했다.
“응…….”
요른은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기다렸다. 혀를 섞다 보니 사타구니 밑에서 막시밀리안의 것이 무섭도록 커졌기에, 요른도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보드라운 회음부로 누르듯이 스치면서 부추겼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막시의 커다랗고 굳은살로 온통 까슬까슬한 오른손이 다시 엉덩이로 내려오긴 했지만, 오히려 닫아 주듯이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려 주고는 끝이었다. 생물이 결국 물었다.
“왜 안 해?”
“싫어하는 거 같아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로 떨어졌다.
“오늘은 앞만 해 줄게.”
“내가 언제 싫댔어?”
“좋다고도 안 했잖아.”
막시밀리안이 달래듯 하며 생물의 목에 다정하게 입 맞췄다.
“네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로 안 해, 요른.”
말하면서 그는 요른의 척추에서 엉덩이골로 떨어지기 직전의 보조개 같은 곳을 검지와 중지로 아슬아슬하게 어루만졌고 그 밑으로는 더 내려가지 않았다. 요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비슷한 말을 청년은 첫날에는 분명 안타까울 정도로 진심으로만 했었다. 극도로 조심하느라 그는 요른이 확실하게 좋다고 말해 주지 않는 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옷을 벗기는 거든 애무든 동작 하나하나마다 말로 허가를 구한 다음 답을 받고야 진행하길래 요른은 솔직히 애가 탔고, 어쩔 수 없이 져 주기는 했지만 답답해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똑같이 진심을 담은 채로도 막시밀리안은 나흘째에 벌써 노는 법을 익혀 버렸다.
―능구렁이 같은 놈.
마음속으로 전하면서 요른은 원통형 욕조를 사방으로 부수어서 깨어 버렸다.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통이 사라졌는데도 막시밀리안은 자세가 무너지지도 놀라지도 않은 채, 젖은 몸으로 제 연인을 여전히 꼭 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안은 팔에 힘이 더해졌다. 요른은 상대가 제 정수리 냄새를 맡으며 머리카락에 키스하는 걸 느꼈다. 마왕은 그러나 등허리에 감긴 손을 탁 쳐서 떨어내고는 상대의 배 위에서 몸을 일으켜 몇 걸음쯤 멀어졌고, 바닥에 카펫이 덮인 곳, 욕실을 지나 침실에 속하는 공간에 도달해서야 무릎을 꿇고 하체를 바싹 들어 올린 채 엎드렸다.
“여기.”
“응?”
“여기 넣어 줘.”
“잘 안 보여.”
막시밀리안이 나긋나긋하게 전해 왔다. 그는 어느새 요른을 따라와서 바로 뒤에 자세를 낮춰 앉아 있었다.
“난 아직 많이 서투르고, 네가 싫어하는 짓은 정말 하기 싫어. 그러니까 어디에다 뭘 어떻게 해 주면 좋은지 확실하게 지시해 줘야 해, 요른.”
“여기, 여기다 넣어 달라고.”
마왕은 쏘아붙이듯 하면서도 제 한쪽 손으로 살집을 당겨 입구를 드러냈다. 뒤에서 막시가 혼자 갸웃하는 게 느껴졌다.
“응, 그래. 거기다가 뭘?”
요른은 그러나 그렇게도 여상스레 말하는 청년의 배 속 감각을 뻔히 읽어 냈기에 어이가 없었다. 야,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정도면 벌써 퍽퍽 박다가 두세 번은 갔겠다.
저건 아주 꼭지가 돌 거 같은 순간 꼭 철저하게 냉랭해져서는 자기 통제를 해 버린다. 지 거시기가 마검이야 뭐야, 습관은 개도 못 주나. 요 며칠 이거저거 읽어서 머릿속 준비는 다 해 놓고도 저런다. 생물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네 몸에 달린 거 아무거나 넣으라고.”
마왕은 땅을 짚고 있던 다른 쪽 손도 뒤로 돌려, 머리를 카펫에 박으면서까지 있는 대로 벌려 보인 채 명했다.
“여기다가 네 손가락이든, 두 개든 세 개든 주먹이든 다 넣으란 말이야. 어서.”
“그러니까, 안 싫고 좋다는 거지?”
“빨리…….”
말하는 동안 젖은 것이 천천히 파고들었다.
요른은 얼른 막시의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눈으로부터 보고 느꼈다. 그는 이럴 때가 좋았다. 막시밀리안이 자신을 보는 걸 보는 것. 긴 중지의 맨 마지막 굵은 마디가 입구에 가볍게 부딪혔지만, 곧 뿌리까지 푹 들어찼다.
“응, 앗…….”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해서 요른은 가볍게 소리를 냈고, 향유에 젖은 손끝이 안에서 호두알같이 가볍게 부풀어 오른 부분을 찾아내어 건드리자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더 높이 쳐들었다. 금세 하나가 더 들어왔다.
“여기 괜찮아?”
“…….”
요른은 앞이 바짝 선 채로도 어이가 없어서 눈썹을 찌푸렸다. 막시한테 아까부터 머리로 다 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딜 만지면 어떻게 느끼는지 그대로 다 전달해 주지 않았더라면 첫날엔 뭐가 뭔지,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을 동정 놈이 뭘 굳이 뻔뻔하게 자꾸 말로 물어 오는 걸까. 요른은 일부러 답을 하지 않자 상대가 금방 손가락을 뺄 듯이 힘을 풀며 해명했다.
“말로 안 해 주면 잘 몰라. 감각 전해 주는 건 오히려 지나치게 섬세해서 그래.”
“변태야, 너 그냥 내 목소리 좋아서 그러는 거잖아.”
“응, 그것도 있고.”
막시밀리안이 검지와 중지로 번갈아 건드리던 곳을 비껴 바로 옆만 덧그리기 시작했다. 요른은 스스로 자세를 틀어서 아까 그 지점에 닿게 해 보려고 애썼지만, 실패하고 결국 뱉어 냈다.
“아까 거기가 좋아.”
―너 이 멍청아, 목소리로 듣는 게 그렇게 좋아?
“거기 해 줘.”
“그렇구나.”
막시밀리안은 요른이 마음속으로 전한 건 못 들은 척하고는, 손가락 세 개로 깊이 파고들었다.
워낙 굵고 단단한 손가락들이라 입구가 이미 터질 듯이 꽉 찬 채였다. 요른은 허리를 살짝 휘면서 골반을 더 벌렸다. 안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건반을 짚듯 한 지점을 눌러 대기만 하던 움직임이 멈추고 곧 앞뒤로 오가기 시작했다.
요른은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성기 끝이 축축해졌고, 유두가 빳빳하게 일어섰다. 직장 안에 원래 부풀어 있던 부분이 점점 더 크게 부풀어 올랐고, 그만큼 찾기 쉬워진 탓인지 손가락들도 점점 더 매만진다기보다는 아예 아플 정도로 콱콱 찔러 들어왔다.
“아, 앗, 으응…….”
요른의 목소리가 젖어 들어갔다. 정말로 아픈 듯한 투였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막시밀리안은 여기서 멈추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는 도리어 속도를 높였다. 아픔이 금방 역치를 넘어 쾌감으로 변하면서 요른의 성기가 아랫배를 탁탁 칠 정도로 일어나 묽은 액을 바닥 여기저기 흘려 댔다.
길고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들이 파묻혔다가 그 지점을 지독히도 정확히 확 긁으며 빠져나갔고, 요른은 결국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나, 더, 더 굵은 거.”
다시 안으로 들어온 것에 정신없이 찔리면서도 요른이 열심히 빌었다.
“으, 아, 나 네 거, 줘. 오늘은, 줘. 앗…….”
“너무 좁아.”
달래며 막시가 다른 쪽 손으로 요른의 성기를 쥐었다.
“오늘은 이렇게만 가자.”
“시, 싫어.”
앞뒤로 매만져지고 찔리면서 요른은 허리를 뒤틀었다. 그러나 앞을 만지는 손을 피하려 들면 뒤의 결합이 더 깊어졌고, 몸속에 들어온 손가락을 피하려면 여지없이 귀두의 가장 예민한 부분이 문질러지고 밑동부터 쓸어올려졌다.
요른은 필사적으로 절정에 이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한편 허벅지를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었다. 그도 이 몸을 직접 써서 행위를 해 본 건 나흘째에 불과했다. 골목에서 이름을 불리고 손을 잡았던 순간부터 막시밀리안의 머릿속 모양대로만 만들어서 그대로 자라난 몸인데, 저 변태가 처음부터 이쪽 감도도 좋으라고 빌어 둔 게 틀림없었다.
“싫어, 네 걸로 가고 싶, 으, 야, 이 바보야!”
허리가 바들바들 떨리면서 아무래도 곧 가 버릴 것 같자 요른은 억울해졌다. 왜 저 멍청이의 죄책감 때문에 매번 먹지도 못하고 가 버려야 하는가.
“난 상관없다고 했잖……!”
계속 묽은 액만 줄줄 흐르던 성기에서 마침내 백탁액이 터져 나왔고 요른은 말 대신 신음만 몇 차례 흘리다가 늘어져 버렸다. 막시밀리안이 허리를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으리라.
“으, 응…….”
사정 후에도 여운이 남아 배 속도 앞도 찡했다. 수축이 가라앉지를 않는 바람에 아직 꽂혀 있는 손가락을 입구로 마구 물어 대다가 요른은 역시나 억울해졌다. 막시의 성기가 들어 있었으면 이렇게 기분 좋게 오물거려 줬을 텐데, 손가락은 물어봤자 무슨 소용인가.
막시밀리안이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고, 요른은 겨우 돌아보았다. 요른은 등도 배도 땀과 체액에 젖었는데 청년은 깨끗한 나신으로 입술만 파리해져 있었다. 아까 상대의 머리로부터 어떤 상념들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요른은 말로 달래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이런 내용은 목소리로까지 듣고 싶지는 않아 하리라. 게다가 요른은 여전히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라서, 영 틀린 말만 해 버릴 거 같기도 했다. 바보야, 네 거가 훨씬 예쁘거든?
아니다, 이건 아마 위로가 되지 않으리라. 요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상대가 읽어 내지 못하게끔, 생각이 제대로 된 문장으로 굳어지기도 전에 다음 대안으로 넘어갔다. 네 거가 더 맛있게 생겼어. 아니다, 아무래도 이것도 틀린 거 같았다. 야, 다른 세계 요른 얘긴데 뭐 어때? 그건 내가 아니란 말이야.
‘이게 낫겠다.’
요른은 내심 끄덕거렸다. 베스퍼에게 강간당한 요른은 자신이 아니다. 막시의 지난 생애, 이미 문이 닫혀 버린 세계 속의 요른이지.
이쪽 요른도 물론 이제는 그쪽 요른이 겪었던 일들을 대충 읽어서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둘이 동일자라는 뜻은 아니다. 생판 동떨어진 장소에 사는 다른 생물의 기억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또 다른 요른의 기억도 읽어 들였을 뿐이지.
‘게다가 그건 베스퍼지, 막시도 아니잖아. 왜 자기가 저질렀던 일인 양 겁을 내는 거야.’
“한 번 더 해.”
“응.”
“아니, 나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이번엔 네가 가라고.”
요른은 막시가 또 손을 앞세우고 다가오려는 걸 발로 차서 밀어내며 쏘아붙였다. 막시밀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다르게 해 줄게.”
“알아. 빨아 줄 거잖아. 너 밑에 건 없어? 있잖아. 왜 안 써.”
입으로 해 주는 건 싫어? 막시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어 오길래 요른도 발을 구르듯이 전했다. 다 좋지만 이제 제발 네 것 좀 쓰라고! 하지만 상대는 역시나 진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너무 좁아. 안 들어갈 거야.”
“그럼 언제까지 안 할 건데?”
“네가 좀 더 익숙해질 때까지.”
“너, 자꾸 그러면 사지 마비시킨 다음 그것만 살려서 내가 위에 앉아 버릴 거야.”
“그리고 사실 꼭 삽입할 필요도 없잖아. 네가 못 가면 몰라도, 손이나 입으로도 충분히 잘 간…….”
―네가 겁에 질려서 그러는 거잖아!
요른은 머릿속으로 천둥처럼 외쳐 전하고 말았다.
―이 똥개야, 여기서 벌써 질리면 어떡해!
그리고 마왕은 상대에게 아무 틈도 주지 않고 한 찰나에 그 머릿속에 앞으로의 놀이 계획을 따박따박 욱여넣었고, 상대가 완전히 허옇게 질리고 성기도 수그러들어 버린 후에도 그만두지 않았다. 막시밀리안이 한참이나 침묵하고 있다가 더듬거렸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난 다 먹고 싶다고 했잖아.”
요른이 낭창한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그런 거 저런 거 다 해야 되는데 여기서 벌써 진도를 못 나가면 어떻게 해? 빨리 날 강간해.
표현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낸 걸 마왕은 잠깐, 아주 잠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진짜로 후회한 것도 아니었다. 상대가 정말 새파랗게 핏기가 빠져 맛이 가 버린 꼴을 보고 있으려니 짜릿했다. 요른은 무심코 아랫입술을 핥으며 명했다.
“아프게 해. 피 나도 돼.”
“싫어.”
“어차피 평생 실컷 아프게 했었잖아.”
요른이 냉랭하게 말하면서 모습도 바꾸었다. 눈이나 피부색, 체형은 물론 실험실 사고 때문에 온몸에 번졌던 흉터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나서 마왕은 상대의 안색을 살피며 조금씩 눈치를 보았다. 마음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너무 대담했나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막시밀리안은 겨우 버티고 있었다. 요른이 속삭여 머리로 전했다.
―너 나 괴롭히면서 조금은 좋았지?
“아냐.”
―거짓말. 꿈도 몇 번이나 꿨잖아. 이쪽 요른을 안는 꿈.
“아니야, 꿈에서도 보기만…… 했……고 건드리지는 않았, 고, 그건, 내가 원해서 꾼 게 아니라…….”
―앞으로는 꿈만 꾸지 마.
요른이 검푸른 입술로 웃으며 종알거렸다.
―나한테 다 해 줘. 대신 이젠 남 시키는 건 절대 안 되고 네 손으로만 해. 채찍질도, 물통에 머리를 처넣거나 배를 차고 뺨을 때리고, 모욕을 주고 폭언하는 것도. 강간도 물론 네가 직접 하고.
맛있겠다. 조곤조곤 전하면서 요른은 앞이 충혈된 채 배 속도 떨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일을 해 줘야 할 막시밀리안이 다 식은 채 금방이라도 깨져 버릴 창유리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요른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당장 다 하라는 거 아냐.”
요른이 무릎으로 기다시피 다가가서는 상대의 입술에 쪽 키스했다.
“천천히 하자. 하지만 다 해 줄 거지?”
“난…….”
“실컷 저질러 놓고 싹 입 닦아 버릴 거야? 너무하잖아.”
삐쩍 마른 생물이 탁하고 흐리멍덩한 은회색 눈으로 상대의 눈동자를 뚫어 보았고, 부러 칙칙한 음성을 흘려 놓았다.
“이제 와서 너는 다정한 사람이기만 한 척 덮어 버리려고?”
“…….”
“서로 다 주기로 했잖아.”
마왕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날 봉인시키고 네가 나한테 했던 짓들, 다시 다 해. 제대로 해. 난 그쪽 너도 좋아. 재밌었어. 다 먹고 싶어.”
“난…….”
마왕은 청년의 마음을 읽어 냈다. 하고 싶어서 했던 건 아냐. 변명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도 괴로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왕은 혀 밑이 달콤하게 차오르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막시밀리안은 요른을 학대하면서 매일같이 괴로워했고 상대가 아파할 때마다 저도 미칠 듯이 고통받았으며, 제 안에 조금이라도 즐기는 듯한 감각이 새겨질 때마다 혼이 다 부서져 버릴 듯 흔들렸다. 그 청년은 그런 자다.
그러니까 맛있는 거잖아. 요른은 방글방글 웃으며 다시 제 반려의 입술에 키스했고, 아랫입술을 일부러 송곳니로 깨물어 뚫어 놓고는 상처 난 곳을 핥았다. 앞으로 그는 반려가 된 인간에게 다양한 짓들을 시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청년은 괴로워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언젠가는 그도 조금은 같이 즐겨 줄 수도 있지만, 그걸 깨닫는 순간 더더욱 괴로워할 거다. 그럼 요른은 제 몸속에서는 얌전히 당하는 동시에 청년의 핏속을 떠돌며 그의 쾌감도 고통도 후회도 다 쪽쪽 빨아 먹을 것이다.
생각하다 보니 견딜 수가 없어졌다. 요른은 주저앉아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청년의 뺨에 키스했고, 입술, 목과 우아한 어깨, 무시무시하게 단단한 가슴팍이며 갈비뼈 위를 촘촘하게 뒤덮은 복사근에도 쪽쪽 키스하다가 아래로 쑥 내려가서 입을 벌렸다.
막시밀리안이 그 머리를 밀어 냈다. 요른이 투덜거렸다.
“왜 또.”
“너 입 너무 작아. 아플 거야. 내가 해 줄게.”
“싫어.”
“요른.”
“싫다니까.”
일부러 또렷하게 뱉어 놓고서 마왕은 살포시 웃었다.
“나한테 뭘 할 거면 강제로 해.”
말하며 요른은 막시의 손을 피해 얼른 그의 아랫배를 핥았다. 매끄러운 피부 아래 혀끝으로도 느껴질 만큼 깊이 갈라져 나온 근육의 결, 남근이 자리한 부분으로 이어져 내려가며 도드라진 힘줄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너 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단련했지. 마왕은 생각하면서 동시에 상대에게도 전했다. 다 나 때문에 만들어진 몸이야. 살결 한 점 한 점, 핏줄 하나하나가 다 내 거란 말이야.
게다가 너 이것도 꿈속에서도 나 때문에만 섰지. 요른이 다시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달려들었지만 막시가 또 밀어냈다.
바보. 마왕은 부러 입맛을 짭짭 소리 내어 다시면서 상대의 속을 읽어 냈다. 사실 읽어 낼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은발이 흐드러진 정수리에 닿은 손끝이 이미 헤매며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조심스레 좀 더 멀리 밀어 낼 듯이, 그러나 또 금방이라도 그 머리칼을 확 감아쥐고 당겨 버릴 듯이.
제 안에 그쪽 욕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 요른이 청년의 단아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조잘댔다.
“알잖아. 완전 진짜로 하라는 건 아냐. 그랬다간, 나야 상관없지만, 네 정신이 망가지잖아. 놀이로만 하자는 거야.”
“…….”
“네가 읽었던 책에도 나오잖아? 필립이 가져다 놓았던…….”
“안 읽었어.”
막시밀리안이 웅얼거리듯이 흘려 내자 요른이 금방 타박을 주었다.
“좀 읽어.”
“요른, 제발…….”
“너, 그쪽 놀이 공부 안 하면 오히려 날 진짜 심하게 다치게 할걸?”
―그럼 또 혼자 질질 울 거 아냐.
전하면서 요른은 결국 상대의 손을 피해 막시밀리안의 성기에 쪽 키스했다.
이미 표피 밖으로 불거져 나온 귀두를 구멍 주변을 노려 할짝거려 주니 금방 눈에 띄게 부어올랐다. 막시의 손이 또 이마 쪽에 닿아 오자 요른은 얼른 끝부분을 입에 넣어 버렸다. 이러면 치아를 다칠까 봐 쉽게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
요른은 한동안 붉은 살덩이를 사탕처럼 쪽쪽 빨았고, 입 안이 터져 나가다 못해 목젖까지 쿡쿡 찔릴 정도로 불려 놓고 나서야 천천히 입술 밖으로 놓아 주었다. 그리고 상대의 허벅지 위로 답삭 올라앉아 제 배 위로 길게 올려놓고는 만족스러운 듯 방긋 웃었다.
왕은 딱히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는데도 막시밀리안의 것은 그의 사타구니에서 배꼽을 지나 거의 위장 밑까지 올라왔다. 요른이 재차 졸라댔다.
―이제 얼른 강간해 줘.
“…….”
―너 초보자니까 오늘은 봐줄게. 진짜로 다치게 해도 돼. 많이 다치면 내가 상태 너무 나빠지기 전에는 고쳐낼 테니까, 베스퍼가 그쪽 요른한테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프게 해도 돼. 네가 더 아프게 해서 지워 버리면 되잖아? 너는 그냥……. 아 진짜.
요른이 한숨을 내쉬고는 막시밀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바보.”
마왕은 청년의 거의 흐느끼다시피 떨리기 시작한 입술에 키스하며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그냥 예쁘고 착하게 안아 주는 건 할 수 있어?”
“……다음에…….”
“너 오늘 그것도 못 하면 나 진짜 화낼 거야.”
요른이 엄하게 선포했다.
막시밀리안이 슬쩍 바닥에 눈물을 떨궈 버리려고 했지만 보드라운 손이 막아섰다. 아까운 걸 어디다 버려. 요른은 양손으로 상대의 얼굴을 붙잡고는 뺨을 다 싹싹 핥아 먹었고, 젖은 눈두덩에도 입 맞추었다.
사실 울 걸 모르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울려보려고 그랬지. 앞으로 얼마나 더 재밌을까.
얼마나 더 맛있을까. 막시밀리안은 얼마나 요른 자신 때문에 더, 더 아파하면서도 이렇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미치게 행복해할까. 환열에 들떠 마왕은 선심을 쓰듯이 허락했다.
“자, 그럼 오늘은 네 걸 써서 착하게만 안아 주는 거야. 응?”
“……응.”
“대신 착하게 해 주려면 하나도 안 아프게 해 줘야 해. 아프면 너 나빠.”
“응.”
막시밀리안이 진지하게 끄덕거렸다. 요른은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사실 막시 건 크긴 하다. 게다가 한번 피가 들어차고 나면 제 몸의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거의 금속성으로 단단해진 채 꿈틀거린다.
그걸로 어디 얼마나 안 아프게 잘하나 느껴봐 줘야겠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막 울어야지, 봉인이 풀리기 전 회백색 꼬챙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서 꾹꾹 참는 티 다 내면서 울어 버릴 거야. 그러면서도 막시가 그만두려고 하면 머릿속에서는 막 화내면서 구박해야지.
요른이 속으로 신나서 킥킥대는 걸 알면서도 막시밀리안은 제 허벅지 위에 올라앉은 자의 뺨을 쓰다듬었고, 헝클어진 백발을 귀 뒤로 넘겨주고는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늘 그렇듯 우습도록 경건한 태도라 왕은 또 웃음을 참았다.
키스해 놓고도 막시밀리안은 한참이나 요른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눈앞의 기적이 사라지지 않는지 확인하듯이. 그러다가 상대가 목에 팔을 감아오자 마침내 받들 듯이 안아 올려 침대로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