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복속(2부) (13/30)

제II부 새장

-1장 복속

목이 잘려도 머리에는 잠시 생각이 남는다.

그러나 뇌에 남은 피와 산소를 모두 소진하는 작업이니 효율적으로 굴어야 한다. 말로는 직선으로밖에 사고할 수 없으니 자꾸 길어져서 불리하다. 막시밀리안은 다행히 말없이 갈망하는 법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목이 잘리기 전부터 빌던 것을 잘린 후에도 한 찰나 더 빌 수 있었다. 돌아가고 싶어.

도와줘, 요른.

* * *

오후의 가을 햇살이 프란첸 본성의 성벽 안으로도 밀려들었다. 금빛이 속눈썹에 맺힌 채, 대련을 마치고 여덟 살짜리 막시밀리안은 검술 선생에게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선생은 순간 못 이겨 몇 걸음 훌쩍 다가가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뻔했다. 하지만 겨우 선을 지켜 마주 꾸벅 인사만 해 보이고 물러 나왔다.

‘정말 곱게 생긴 애야.’

선생은 속으로 되뇌었다.

‘부친은 크고 엄하게만 생겼는데, 어머니를 닮은 건가. 닮았대도 어째 더 곱게 닮았어.’

이목구비가 섬세한 건 유디트를 닮긴 했지만, 유디트는 아무래도 천상 장난꾸러기 같은 느낌이다. 막시밀리안은 훨씬 티 없이 맑다. 제 어머니를 이룬 질료를 좀 더 보송보송하게 반죽해서 도자기처럼 말갛게 다듬어 놓은 듯한 얼굴이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이는 건 결코 아니다. 눈매가 워낙 깊고 눈빛도 단아해서 이지적인 인상을 주는 데다가, 언동은 한 치도 비굴하거나 오만하지 않은 선을 지켜 그저 꾸밈없이 공손하다. 게다가 어린애가 벌써 그 검술 실력이라니.

뭐가 되려고 저러나. 선생은 한편으로는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평화로운 시대에 더 어울릴 아이인데 어쩌다 이런 시절에 태어나 곧 마검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까.

검술 선생이 고개를 저으며 성을 나서는 동안 막시밀리안은 땀만 대충 닦아 낸 후 하인 한 명을 찾아 부엌 창고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평소에도 자주 말을 섞고 지내던 하인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프란첸 주인님.”

창고에서 건조품을 정리하고 있다가 하인이 석연찮게 답했다. 하인은 자신에게도 늘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이 어린 주인이 귀엽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좀 불편하기도 했다. 막시밀리안이 물었다.

“잘 지내셨어요?”

“네네, 어제 뵈었는걸요. 매일 똑같죠, 뭐.”

“그렇구나. 부탁드렸던 거 혹시 가져오셨어요?”

“가져오기는 했는데요…….”

하인이 말끝을 괜히 길게 끌었다.

막시밀리안은 참을성 있게 하인을 가만히 올려다만 보고 있었다. 하인은 이 꼬마 주인이 무리해서 조르지는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인이 거절하면 딱 한 번만 더 표현을 가다듬어 청해 올 테고, 그래도 안 통하면 깨끗하게 돌아설 터였다. 슬픈 표정을 잘 숨겼다고 철석같이 믿은 채로 말이다.

그놈의 슬픈 표정. 하인은 저번에 거절했을 때 어린 주인의 실망감 가득 찬 눈을 기억했다. 어깨가 축 처져 버리고 쬐끄만 입술도 삐죽 튀어나오는 주제에 안 들킨 줄 알지. 하인은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정말로 방에서만 입어 보실 건가요?”

“네,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막시밀리안이 진지하게 끄덕거렸다. 하인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하인에게는 막시밀리안 또래의 아들이 둘 있었다. 며칠 전 이 어린 주인님은 그에게 그 아들들 옷을 한두 벌만 가져다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해 왔다. 평민 옷이 궁금해서 한번 입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사례는 충분히 치르겠다면서, 그 공작가 독자는 하인에게 동화를 세 닢이나 내밀었다.

거짓말이다. 동화를 얌전히 받아들면서도 하인은 그때 이미 확신했다.

이 꼬마는 그렇게 받은 옷을 챙겨 입고서 쫄래쫄래 시내로 나가 버릴 것이다. 전부터 소위 평민들의 생활상이 궁금하다면서 하인 여럿에게 열심히 물어보고 다녔는데, 이제는 제 발로 암행해 보고 싶은 거다.

소년이 하인에게 굳이 그 속내를 밝히지 않는 이유도 뻔했다. 성의 고용인이 이런 일에 다 알고서 ‘가담했다’고 여겨지면 공작 부부로부터 벌을 받을 테니까 지켜 주려는 거다. 이 조그만 주인님은 자꾸 이런 식으로 배려를 해 주려고 애쓴다.

‘솔직히 아무 쓸모 없는 배려지.’

하인은 생각했다. 프란첸 공작 부부가 하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옷을 가져다줬다고 믿어 줄 리가 없다. 어린애가 속내를 숨길 거야 뻔한 일이니, 어른인 하인 쪽에서 당연히 알아채고 막았어야 했다고 오히려 더 엄한 벌을 줄 것이다.

고용인을 배려해 주려면 그냥 쓸데없는 짓을 안 하고 공작가 독자답게 굴면 된다. 제 고집은 하나도 안 버리고, 결국 하고 싶은 짓은 다 하려 드느라고 이리저리 눈치 보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인가.

‘제가 착하게 구는 줄 아는 사고뭉치 같으니.’

“……곧 간식과 함께 방으로 올려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막시밀리안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곱다. 하인은 세 번째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애는 지나치게 사랑스럽고 예쁘다. 온실 속에서만 키워 갓 봉오리를 맺은 백합처럼. 불편하고 짜증이 나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그대로 예쁘게 지켜 주고만 싶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아무래도 저 웃음을 보기 위해 자꾸 못된 부탁을 들어줘 버리게 되는 것 같다고 하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는 동안 막시밀리안은 창고를 떠나 한달음에 도로 일 층으로 올라갔고, 이 층 방으로 향하는 계단참에서 유디트를 마주쳤다.

“어머니.”

막시밀리안이 예를 표해 보였다.

“성안에서는 뛰어다니지 말렴.”

“예,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외출하세요?”

“응.”

“잘 다녀오세요.”

막시밀리안이 반짝 웃으며 인사했다. 유디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 보였고, 문득 아이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줘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듯했지만, 망설임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자리를 떴다.

막시밀리안은 위층으로 올라가 제 침실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돌아서던 모습 때문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을 다스렸다. 괜찮아.

내가 더 사랑해 드리면 돼.

한 시간쯤 후에 하인이 간식을 가지고 올라오는 척하면서 옷가지를 가져다주었다. 고맙다고 전한 후, 하인이 떠난 후에야 막시밀리안은 보자기를 펼쳐 보았다. 낡긴 했지만 산뜻한 냄새만 남은 천 조각이 잘 개켜져 담겨 있었다.

‘씻어다 주신 거야. 괜히 세탁하게 만들었구나.’

초가을의 물은 차가우리라. 자기 집에서 세탁했다면 마법사에게 부탁할 수도 없을 테니 찬물을 그대로 썼을 터다.

‘내가 어리석어서, 또 다른 사람에게 고생을…….’

가슴이 참기 힘들 정도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양손으로 검을 잡은 듯한 자세를 취한 채 감정을 다스렸다. 기사 수련을 할 때와 같은 방식이다.

올해 말에 그는 왕국 기사 학원에 들어간다. 거기서는 3학년 때부터 마검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금까지도 그는 물론 성에서 아버지와 가정 교사로부터 매일같이 기사로서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 왔다. 손가락 하나조차 멋대로 경련을 일으키지 못하게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기 의지에 철저하게 복속시키는 방법을. 경지에 달한 기사는 심장 박동조차 통솔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마검은 애초에 자기 몸이 아니라 남의 몸, 그것도 지극히 이질적인 생물의 몸으로 된 물건이다. 그 복속은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복속에 실패하면 역전당한다고 들었다. 마물에 전염되어 자아를 잃고 끔찍하게 변형되어 버린다고.

‘그런 건 싫어. 안 돼.’

막시밀리안은 생각했다. 공포는 없었다. 긍지와 자부심만이 가슴을 채웠다.

‘지지 않을 거야.’

언제까지나 그는 생의 주인으로 남으리라. 자신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어머니가 그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어머니를 충분히 사랑하면 그만이다. 영지의 백성이 잘살지 못하면 그가 살펴서 잘살게 해 주면 되고, 성황국 국민이 마물 때문에 위험해 처하면 그가 지켜가면 된다. 상대가 어떻든 자기 자신이 충실하게 도를 지키면 흔들릴 게 없다.

“기사도를 지켜서.”

막시밀리안은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기사도의 세 기본 원칙을 되새겼다. 평생 바르게 살 수 있기를.

그는 다다음 날까지, 그러니까 부모가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늦게 귀가하는 날까지 기다렸다. 오후 네 시쯤 가정 교사들 수업이 다 끝난 후에야 막시밀리안은 뒷문으로 몰래 성을 나섰고 뒤뜰의 담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시내로 접어드는 한적한 녹지까지 다다른 후에야 한구석 그늘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소년은 원래 입고 있던 옷은 가방에 넣었고, 일부러 같이 가지고 나왔던, 이제 키가 안 맞아 못 입게 된 옷들은 잘 개켜서 나무 그늘에 놓아 두었다. 하인들한테서 들은 바가 맞다면, 이 정도만 해 두어도 노숙자가 알아서 집어 갈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설레는 마음에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서 막시밀리안은 시내로 접어들었고 서쪽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역시나 중고 시장이 열려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조심스레 여기저기 좌판을 돌아보다가 사람들의 엉덩이며 허리에 밀려서 넘어질 뻔했다. 단련된 몸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금방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이리저리 구경해 봐도 마음을 끄는 게 없자 막시밀리안은 조금 반성했다. 성에 앉아서 선별된 주문품만 받아보다 보니, 감각을 다 잃어버려서 민중이 어떻게 물건을 고르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군주가 될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

프란첸가의 영지는 수도 일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들도 몇십 년 후면 다 막시밀리안의 백성이 되는 셈이다.

그 백성의 마음을 몰라서야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시내를 혼자 돌아다닐 결심도 한 것이다. 프란첸가의 독자는 쭈뼛거리다가 좌판 하나 앞에 멈춰 섰다. 사람이 제일 적은 좌판이었기 때문이다.

‘이왕 뭔가 사려면 장사가 잘 안 되는 사람 걸 사 주는 게 좋을 거야.’

생각하며 그는 좌판 위에 널린, 볼품없어 보이는 종이 더미를 내려다보았고 책이구나, 하고 금방 깨달았다. 집에 있는 고급 장정본과는 다르지만 분명 책이다. 막시밀리안은 너절한 종잇장들을 끈으로 묶어 둔 걸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이 단행본은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1굴덴.”

행상이 퉁명스럽게 뱉었다. 막시밀리안은 얌전히 동화를 내밀고 받아 갔다.

그가 자리를 떠난 후 상인들은 서로 마주 보며 킥킥 웃었다. 시집 한 권에 1굴덴이라니, 미쳤지.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제 아버지를 돕던 신입 한 명이 물었다.

“쟤는 뭔가요?”

“몰라, 근처 성이나 별장에 사는 애겠지.”

책을 팔던 상인이 답했다.

“딱 어린 귀족 놈이 평민 생활에 관심이 있으셔서 나다니시는 거구만. 호위병이 어디서 한숨 푹푹 쉬면서 지켜보고 있을걸?”

“역시 그렇죠? 애가 생긴 것도 그렇고, 몸가짐이고 말투고…… ‘이 단행본은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라뇨. 맙소사.”

“저게 어디 어린애 모양새냐? 향수 하나 안 발라도 고급 장미 향 같은 게 풀풀 나는 게, 저쪽 놈들은 다 아주 징그럽다, 진짜.”

책장사꾼이 고개를 젓자 신입도 픽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열 배로 받아 내신 건 좀 심하지 않아요?”

“상대적으로 봐야지. 쟤한테 1굴덴은 내 2페니 가치도 안 될 텐데.”

상인들이 떠드는 동안 막시밀리안은 광장을 잠시 벗어나 가로수 그늘에 서서 책장을 넘겨 보았다. 한 페이지에 너덧 줄밖에 없을 만큼 작은 판형에 문장도 단순했지만, 갑자기 요람 속 갓난애를 새긴 큼직한 판화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막시밀리안은 순간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유디트는 몇 달 전 또 아이 하나를 잃었다. 이번에는 배 속에서 잃은 게 아니라, 만삭이 되어 낳기까지 했는데 그만 죽어서 나왔다.

어머니는 워낙 강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그녀는 앞으로 석 달은 바짝 말라갈 것이고, 결국 옷 치수를 하나는 줄이고 말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오늘 외출할 때도 유디트 폰 프란첸은 상복이라도 입은 양 어둡고 슬퍼 보였다. 화창한 녹색과 연보라색이 섞인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도.

고용인들은 멋대로들 쑥덕거리곤 했다. 이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자꾸 유산하시는 건 안 됐지만, 작은 주인님을 생각하면 둘째가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유디트 폰 프란첸은 마법사로 키울 수 있을 만한 아이가 태어나면 장남은 아예 본 척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막시밀리안은 입이 툭 튀어나오곤 했다. 왜들 그러는 거야.

날 뭐로 보는 거람.

그건 자긍심이 상한 고통이었다. 그는 어머니도, 태어날 동생도 얼마든지 사랑해 줄 자신이 있었다. 그가 둘 다 사랑하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 아닌가.

어머니는 물론 막시밀리안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형식적으로는 충분히 노련하게 모친의 의무를 다해 주고 계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동생이 태어나서 마법에 조금이라도 재능을 보이면, 어머니는 마침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식을 갖게 되는 거다. 그러면 그녀는 행복해지리라.

당연히 막시밀리안은 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줄 동생의 존재에 미리 감사했다. 그 애가 태어나기만 하면 형으로서 아주 많이 사랑해 주리라. 자신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만큼, 그 애를 대신 아주 사랑하고 잘 보살펴서 되돌려 드릴 것이다.

그렇지만 그 동생은 죽어서 태어났다.

한 번만도 아니고 벌써 세 번이나 죽어 버렸다.

시내 가로수 그늘에 서서, 평민의 옷을 입은 채, 갓난애 판화가 담긴 페이지를 내려다보는 동안 어두운 상념이 막시밀리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 때문이야.’

사실은 나는 질투하고 있었어. 그 마음이 전해져서 그만 저주가 되어 버린 거야. 내가 더러워서, 사실 아주 추악한 인간이라서, 그래서 내 동생들이 그렇게…….

막시밀리안은 숨을 멈추었다. 눈앞이 검어지면서 자신이 괴물로 변해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도 발도 얼굴도 순식간에 전염되어 삐뚤삐뚤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다스렸다. 그만해.

검을 잡은 자세로 양손을 굳히며 그는 전신을 다스렸고 마음을 정화했다. 이 몸의 주인도, 마음의 주인도 나야.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

그런 인간이어서는 안 돼.

막시밀리안은 성기사가 될 육신을 가느다란 혈관 끝 하나하나까지 마름질하듯이 정돈했다. 그 손에 당장 마검이 들려도 잠식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철저하게. 그러고 나서야 그는 눈을 떴다.

시야는 다시 맑아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며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잔돈으로 바꿔올걸.

아까 행상은 거짓말을 했다. 이런 책이 1굴덴이나 할 리는 없었다. 막시밀리안은 서적에는 특히 관심이 많아서, 부모 몰래 온갖 시내 잡화점 카탈로그를 다 구해다가 가격도 종류도 꼼꼼히 들여다보곤 했다. 이 <요람 머리맡 이야기>는 아마 5페니, 어쩌면 3페니 정도나 하는 물건이리라.

막시밀리안은 자신이 준비가 부족했다고 느꼈다. 아무리 옷을 이렇게 입었대도 얼굴이나 몸가짐으로 보아 부호 자식이나 귀족가 애로 보였겠지. 그러니 저런 소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행상은 당연히 바가지를 씌우려 들었던 것이다.

‘씀씀이가 큰 사람이 아닐 텐데, 1굴덴짜리를 통째로 줘 버렸으니 나눠서 쓰려면 힘들겠다.’

하인이 옷을 세탁해서 가져다 준 걸 알았을 때처럼 또 가슴이 뜨끔거렸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또다시 사지가 물컹대며 잠식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막시밀리안은 숨을 고르며 되뇌었다. 더 배우면 돼.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사람들을 더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련하게 배려할 수 있게 되어야만 해. 그러면 바르게 살 수 있어.

부디 바르게 살 수 있기를. 그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전에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무색의 새가 별처럼 시야에 맺혀 들었다.

사실 막시밀리안이 그게 새라는 걸 바로 눈치챈 건 아니었다. 처음에 그것은 하얀 점처럼만 보였다. 그런데 순식간에 아래로 낙하하듯이 내려오면서 모습을 갖추었고, 그런 속도를 내면서도 마치 진공을 뚫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새는 막시밀리안의 거의 머리 바로 위 허공까지 접근했다가 선회해서 골목길로 사라졌다. 종은 알 수 없었다. 깃털이나 얼굴, 부리 모양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하얀, 거의 백색의 광채에 가까운 인상만이 여덟 살 소년의 뇌리에 남았다.

막시밀리안은 저도 모르게 새를 따라갔다.

걸음을 재촉하다 못해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빽빽한 숲속 길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달리다 보니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사방이 쿰쿰한 냄새가 나는 벽들로 막혀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 오물 냄새가 났다. 거기에 또 다른 악취가 한 줄기 겹쳐지자 소년은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

벽 한쪽에 시체가 썩어 가고 있었다.

어린애 시체였다. 서너 살 정도나 될까. 새집같이 헝클어진 금발 아래로 눈은 이미 없었고, 까마귀가 쪼아먹은 듯 뺨과 목도 살점이 파헤쳐진 채 입 속에는 벌레가 득시글거렸다. 벽들이 내려보낸 텁텁한 그늘 속에서 막시밀리안은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고 나가서 보고해야겠어.’

네 살 때부터 단련해 온 덕에 막시밀리안은 저런 작은 시체 하나 정도는 골목 밖으로 끌고 나갈 자신이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부모나 형제가 애닳게 찾고 있을 터다. 얼른 시신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막시밀리안은 그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새가 더 빨랐다.

흰 새가 시신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을 때 막시밀리안은 새삼 확신했다. 책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라는 걸. 동식물학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그쪽 타블로는 이미 웬만한 마도 학원 중급생만큼은 줄줄 외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새는 시신의 머리를 콕콕 쪼더니 금방 녹아들었다.

시신의 금발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고, 새벽하늘 같은 청색이 드리운 은빛 눈동자가 눈꽃 피듯 뜨이면서 미소가 복숭앗빛 투명한 안색을 물들였다. 생물은 몸을 일으켰고 등의 날개를 펼쳐 금방 날아가려고 했다. 막시밀리안이 불러세웠다.

“요른!”

왜 하필 그 이름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한참 후에야 돌이켜 생각했다.

두 번이나 이미 유산을 한지라 공작 부부는 세 번째 아이가 만삭이 될 때까지도 이름을 지어 놓지 않았다. 태어나면 생각해 볼 거라고 했다. 막시밀리안도 일부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까 나무 그늘에서 들여다보았던 너절한 이야기책에는 아기 이름이 찍혀 있었다. ‘요른’이라는 갓난아이의 요람 머리맡에서 어머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의 소설.

귀족에게는 잘 붙이지 않는 이름이지만, 입 밖으로 뱉은 순간 막시밀리안은 그 이름이 무척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태어나자마자 죽어 버린 아기의 이름으로 딱 어울렸으리라고. 그러자 울컥 눈물이 나왔다.

막시밀리안이 일껏 불러 놓고 눈물만 쏟고 있자 하얀 생물이 돌아보았다. 예쁘다. 소년은 생각했다.

천사일까, 악마일까. 천사처럼 아름답지만 악마처럼 홀린다. 생물에게 그대로 복속되어 버리고 싶은 듯 소년의 마음이 애틋하게 구부러졌다. 생전 처음 겪는 차라리 고통에 가까운 감동에 압도당한 동시에 그는 자신이 성기사 후보로서 첫 시험에 들었다고 느꼈다. 

이건 마검이다. 갑자기 손안에 들어와 버린 마검. 

소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그 아무 종에도 속하지 않는 새의 형상, 시체마저도 잠식시켜 되살려 낸 능력, 광기에 가까운 아름다움. 저 생물은 마물이다. 개중에서도 아주 강한 종류이리라.

지면 안 돼.

막시밀리안은 생물의 무심한 은빛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나 생물은 흥미가 떨어진 듯, 곧 눈을 돌리고는 다시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 돼.’

소년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런 위험한 게 아무 데로나 날아가 버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란첸가의 독자는 오른손을 허공으로 내민 채 다시 목청을 높여 불렀다.

“요른!”

생물이 살짝 돌아보았다. 묘하게도 아까부터 부르면 반응은 해 준다.

“이리 와!”

막시밀리안은 필사적으로 손을 뻗은 채 외쳤다.

“내게 와.”

동시에 소년은 깜짝 놀랐다. 무언가가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건 언어조차도 아니었고, 머릿속에만 전해져 왔다고 하기도 힘들었다. 섬세한 감각과 감정이 전신의 살갗과 혈관을 찌르르 타고 흐르다가 심장과 목 바로 밑까지 파고들어 와 두근거렸다. 그리고 곧 막시밀리안 자신의 기분과도 구분하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막시밀리안은 숨이 막힌 채로도 겨우겨우 머리를 굴렸고, 억지로 그 감각을 ‘왜?’ 정도의 질문으로 번역해 냈다. 그리고 급히 더듬거렸다.

“그게, 그러니까 내가…… 널 행복하게 해 줄게.”

생물이 키득대기 시작하자 그 웃음이 그대로 상대의 뇌리를 간질거렸다.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소년은 말했다.

“진짜야. 나랑 있으면 행복하게 해 줄게. 어딜 가는 것보다도 더.”

말끝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막시밀리안은 자신이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 스스로 놀랐고, 동시에 심장에 추가 달려 쿵 떨어지는 듯 아득한 느낌을 받았다. 두렵지만 결코 차갑지만은 않은 무게. 할 수 있어. 소년은 다시금 또렷하게 발음하며 손을 뻗었다.

“내게로 와.”

말끝에 막시밀리안은 흠칫했다. 그 생물이 자신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와 헤집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가슴을 오히려 더 쭉 펴고 깊이 열어젖혔다. 자신이 있었다. 이 마음은 진짜니까. 하얀 생물이 막시밀리안의 심장 안을 나비처럼 파닥파닥 떠돌았다. 그리고 몸으로도 곧 상대 쪽으로 휙 날아들며 전했다.

―좋, 아.

서툴렀지만 그 사고는 어느새 제법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내 머릿속을 뒤지면서 순식간에 배운 걸까, 소년은 생각했다. 생물이 조그맣고 달콤한 입술 사이로 킥킥 웃으며 덧붙였다.

―네 ‘요른’, 그거. 되어 줄게. 행복, 하게 해, 줘. 재미, 없으면 바, 로 가 버릴 거.

생물이 날개를 접고 막시밀리안의 코앞에 두 발로 서는 거의 동시에 변화했다.

생물의 용모는 좀 더 인간다워졌고 서너 살 어린아이에 가까운 윤곽을 갖추었다. 막시밀리안은 놀랐다. 그 생물은 그가 어렴풋이만 마음에 그렸던 동생 ‘요른’의 모습을 아까보다도 훨씬 더 꼭 닮아 있었다. 마치 그의 속을 읽어 내어 그대로 복제해 빚은 것처럼.

―이제 뭘, 할 거?

막시밀리안이 멍하니 서 있자 생물이 채근하듯 전해 왔다. 소년은 무심코 손을 내밀어 생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자기 성으로 가자고 말하려고 했다. 놀이 상대로 고용해 달라고 부탁드리면 부모님도 들어 주시리라고. 그러나 하얀 생물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에 숨이 턱 막혀 운을 떼지 못했다.

시체를 살려 낸 몸이다. 살갗도 머리카락도 너무 새하얗고 투명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따스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막시밀리안이 한동안 손만 조물대고 있자 ‘요른’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저도 거울처럼 상대의 손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내 성으로 가자.”

막시밀리안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우리 성 크고 재밌어. 정원도 예쁘고, 조각도, 그림도 책도 많거든. 성에서 매일 놀자.”

말하다가 그는 문득 이 생물이 어차피 자기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조금 억울해져서는 되물었다.

“넌 왜 말 안 해?”

―왜?

“나만 내 목소리도 마음도 다 들려주는 거야? 너도 목소리 들려줘.”

생물은 귀찮은지 답이 없었다. 막시밀리안이 짐짓 엄하게 졸랐다.

“내 거 해 준댔잖아. 목소리도 줘.”

생물은 뚱하니 있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어.”

예쁘다. 막시밀리안은 새삼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들어 보는 새하얀 음성 때문에 뭉클하게 혼곤해진 채 막시밀리안은 왼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오른손을 그 폭포수처럼 흐르는 머리카락에 가져다 댔다. 수정에서 뽑아낸 실타래처럼 찰랑거리는 달빛. 그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그만 그대로 꼭 끌어안아 버렸다. 심장으로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조그만 몸.

꼭 행복하게 해 줘야지. 공작가의 자긍심 높은 독자는 다짐했다.

물론 이 심장 소리도 가짜라는 걸 소년은 잘 알고 있었다. 죽은 걸 도로 살려 낸 거니까 생명도 가짜, 모습도 이름도 가짜다. 이 마물의 정체가 뭔지 그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는 그가 주인이니까, 이 생물이 뭐든 막시밀리안 자신이 길을 잘 들여 주면 되는 것이다.

내 요른.

속으로 더듬자 막중한 책임감이 무척이나 따스하게 프란첸가 어린 후계자의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막시밀리안은 제가 복속시킨 기괴하고 아름다운 마물의 몸을 풀어 주고는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가자.”

생물도 가만히 손을 내밀어 응해 왔다.

요른을 성에 들이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막시밀리안은 요른을 성에 데려온 후, 공작 부부께 부탁드려 아이의 부모를 찾는 벽보를 주문해다가 시내 곳곳에 붙였다. 사례금을 약속하자 온갖 자들이 다 몰려들어 자신이 그 요른이라는 아이의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우겨대기 시작했다.

막시밀리안은 개중 사정이 제일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애를 골라서 요른더러 그녀를 자기 어머니로 지목해 달라고 부탁했다. 요른은 시키는 대로 해 주었다. 공작이 그 소녀에게 아들을 프란첸가의 시동으로 달라고 청하며 동화 한 주머니를 주었더니, 그녀는 당장 받아들고 인사를 꾸벅 해 보인 후 사라졌다.

요른의 거처는 막시밀리안의 침실 바로 옆 하인방에 마련되었다. 빈민가에서 데려온 애가 이렇게까지 예쁘다니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고용인들은 옷가지를 가져다주고 침구를 정리해 주었다.

“너, 너무너무 귀엽다. 응?”

아이를 목욕시키러 데려가는 길에 하녀가 그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막시밀리안은 그 양을 주시하면서, 혹시라도 그 하얀 생물이 순식간에 커다란 도마뱀 같은 걸로 변해서 그녀를 캬악 잡아먹어 버리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요른은 막시밀리안이 미리 일러둔 대로 얌전히 하녀를 따라 걷기만 했지만.

그렇게 모든 게 준비되었다. 하지만 정작 데려온 생물을 길들이는 건 쉽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요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제법 얌전하게 굴어 주었다. 하지만 막시밀리안의 눈만 닿으면 갑자기 반짝 웃더니 온갖 장난을 다 쳐 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막시밀리안은 처음 열흘쯤은 과외고 뭐고 내팽개쳐두고 밤낮으로 요른만 따라다녀야 했다. 개구리새로 변해서 정원 호수 위로 날아다니면 안 된다, 물고기쥐로 변해서 진흙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런 알록달록한 나비잠자리로 변했다가 진짜 새한테 먹히면 어떡할 거냐, 잔소리에 잔소리를 해 댔지만 그 요상한 생물은 도무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도망치는 것도 뛰거나 나는 것만도 아니라 여기서 펑 없어졌다가 저기서 짠 나타나 버리는 통에 아주 죽을 맛이었다. 막시밀리안이 열심히 발로 뛰어 쫓아다니다가 헉헉대고 있노라면 요른은 어느새 바로 곁의 허공에 나타나서는 깔깔 웃어 댔다. 그러다가 조그맣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막시밀리안의 머리를 톡톡 치면서 전해 오는 것이다.

―너 귀여워, 바보.

게다가 요른은 어느 날 더 무서운 짓도 저질러 버렸다. 고용인이 변신을 목격하고 꺅 비명을 지르자, 그 머릿속을 주물러서 기억을 바꿔 버린 것이다.

늙은 하인이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주저앉아 오줌이라도 쌀 듯이 덜덜 떨어 놓고는 방긋 웃으며 털고 일어나 걷는 걸 보고 막시밀리안은 오싹해졌고, 요른의 양 손목을 잡아 서재로 질질 끌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또 그 생물이 펑 사라져 버리기 전에 얼른 엄하게 명했다.

“앉아, 거기 앉아서 내 말 좀 들어.”

―왜?

“너, 방금 한 건 진짜 나쁜 짓이야. 그러면 안 돼. 남의 머릿속에 손을 대는 건 진짜로, 정말로, 안 되는 거야!”

―왜.

요른이 투덜거렸다.

요른은 여전히 입으로 말을 뱉는 건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에 살게 된 후로 막시밀리안의 머리는 물론, 자꾸 다른 고용인이나 공작 부부의 머릿속도 읽어 대서 그런지, 속으로만은 금방 말을 배운 듯했다.

그래서 그 애는 이제 막시밀리안에게는 제법 문장을 만들어서 생각을 전해 오곤 했고, 표정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냈다. 하얀 꼬마는 입을 삐죽대며 막시밀리안의 뇌 속에서 투덜거렸다.

―멍충이 막시, 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대.

“내가 너 행복하게 해 준댔잖아.”

―그래, 그랬잖아!

꼬마가 바닥에 드러눕더니 팔다리를 파닥대기 시작했다. 막시밀리안은 관자놀이가 찌르르 하는 느낌에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요른이 요즈음은 주로 말로 생각을 전하긴 한다지만, 언어가 아닌 것도 한꺼번에 다 같이 전해져 오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 애는 굳이 말만 전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덕분에 막시밀리안의 머릿속에서는 생물이 조잘대는 문장이 점멸하는 동시에 관자놀이에서는 맥이 팔딱거렸고, 심장은 따끔거렸고 눈앞은 빨갰고 손끝은 저렸고 아무튼 모든 게 답답하고 불만스러웠다.

―행복하게 해 준대놓고, 이것도 못 해, 저것도 못 해. 너 뭐야. 나 딴 데 가 버릴 거야!

“바보야. 사람이 옳은 일을 해야 행복해지지.”

소년은 겨우 마음을 다스리며 타일렀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어떻게 행복해져? 너는 그 감이 너무 없으니까 도덕 감각부터 철저하게 익혀야 해. 말했잖아. 내 선생님께 부탁해 둘 테니까 윤리 수업도 입문부터 듣고, 골라 놓은 책도 읽으라고.”

막시밀리안은 그러나 골을 가득 울리는 웃음 때문에 그만 머리를 싸쥐고 말았다. 요른이 머릿속에서도 웃고 입 밖으로도 신나게 웃어 댔던 탓이다.

―너, 막시밀리안, 바보, 멍충이, 진짜 웃겨!

“뭐…… 왜…… 왜 그래.”

―바보, 너 진짜 바보다.

요른이 다가오더니 막시밀리안의 뺨에 쪽 입 맞췄다.

―행복해?

“뭐가, 대체, 무슨 소리야.”

―애정 결핍 주제에. 안됐다, 안됐어. 아빠는 엄하기만 해요, 엄마는 아예 너를 안 좋아해요, 기본적으로 둘 다 바빠 죽어요. 내가 조금만 잘해 주면 되게 좋아하잖아, 너.

“그렇지 않아. 놔.”

―특히 요렇게, 요렇게, 만져 주고 뽀뽀해 주면 좋아 죽지.

“그만해, 그런 거 아니란…… 놓으라니까!”

막시밀리안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는 품에 꼭 안긴 몸을 떼어 냈다. 목덜미까지 오소소 소름이 돋은 채였다. 요른은 그러나 킥킥 웃으며 다람쥐와 고양이, 그리고 양이 섞인 듯한 작은 생물로 변해서는 막시밀리안의 어깨로 뛰어올랐고, 보드라운 등허리 털로 소년의 뺨과 귀를 쓸었다.

―나쁜 짓도 나쁘지 않아.

생물이 전해 왔다.

―난 알아. 넌 나쁜 짓, 아니,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짓들 덕분에 무척 행복해하기도 하는걸. 너야말로 많이 배워야겠다, 막시. 내가 다 가르쳐 줄게.

“그럴 리가 없잖아. 내려와, 요른.”

―왜? 네 어깨 위는 ‘옳은’ 장소가 아냐?

막시밀리안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답하자, 요른도 바로 놀려 대는 투로 응했다. 그러고는 그 보드라운 생물은 소년의 귓바퀴를 거친 혀로 깔짝깔짝 핥아 대기 시작했다. 막시밀리안은 그것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잡아서 자기 앞의 바닥에 내려놓았다.

“얼른 제 모습으로 돌아와, 요른.”

―왜, 또 왜.

“말했잖아. 바르게 살려면 자기 행동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해.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도록 해. 네가 뭘 하든 바로 그렇게 생긴 사람이 하는 일이 되게 말이야.”

―그럼 꼭 이 모습이 아니라도 되잖아?

요른이 투덜대면서도 도로 네 살짜리 아이 모습으로 변했다.

―이런 쪼끄만 애새끼 모양으로 뭘 해. 그럼 다른 거로 변해서 그걸 유지하지 뭐. 꼭 사람일 이유도 없고, 이왕 사람일 거면 편하게 어른에 귀부인 같은 게 낫잖아.

“안 돼. 지금 그 모습으로 해.”

―왜?

“왜냐면…….”

막시밀리안은 요른을 바라보며 말을 골랐다. 동시에 그는 요른이 자기 안에 들어와서, 그 속에서부터 ‘요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거짓말은 할 수 없다. 그러자 숨이 턱 막혔다. 거짓말을 할 생각도 전혀 아니었고, 분명 옳은 말만 해 주리라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 입 밖으로 나가려던 말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막시밀리안은 하얀 생물의 얼굴만 빤히 응시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요른이 배시시 웃었다.

예쁘다.

그 감각만이 순식간에 소년의 전신을 어지럽혔다.

―바보.

생물이 다가왔다. 물결치는 맑디맑은 수정 같은 머리카락이 소년의 뺨을 스쳤다. 체온이 어깨와 목덜미에 달콤하게 번졌고, 숨결이 귀에 닿았다. 어린애 특유의 빠르고 급한 박동이 가느다란 갈비뼈 너머로 선홍빛 그대로 전해져 왔다.

막시밀리안은 자신의 눈이, 귀가, 코와 살갗이 모두 정교하게 가다듬어진 렌즈와 같다고 느꼈다. 이 아이를 향해서만 최선을 다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제로 아이의 육신 모든 부분이 그저 말할 수 없이 선연하게 핏속에 배어들었다.

소년은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겨든 생물을 제 팔로는 안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을 이용해서 이렇게까지 혼자서 멋대로 기분이 좋고 행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요른이 또다시 자기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았다.

하얀 생물이 소년의 핏속을 남실대며 그가 요른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느끼고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깨달았다. 아아.

기뻐하네.

그제야 막시밀리안은 요른의 몸을 가만히 껴안았고, 손으로 머리칼과 등을 쓸어 주었다. 생물의 마음이 그의 안에서 점점 더 진하게 환희에 떨었다. 소년은 더욱더 팔에 힘을 주었다.

마침내 요른이 먼저 팔을 풀고 떨어져 나갔다. 막시밀리안은 왠지 부끄러워서 상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다만 요른이 키득대며 머릿속으로 전하는 걸 들었다.

―알았어. 변하지 않을게.

“어, 응?”

―예뻐, 그거.

멍하니 들은 말을 곱씹다가 막시밀리안은 깨달았다. 내 안의 네가 마음에 들었다는 거구나.

그러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면서 얼굴이 귀까지 화끈거렸다. 그 와중에도 소년은 무심코 생각하고 말았다. 저런 말은 목소리로도 듣고 싶은데. 요른이 금방 뚱하니 운을 떼었다.

“말, 조, 조조금…….”

신경질이 났는지 그는 입을 도로 꾹 다물고는 머릿속으로 쏘듯이 전해 왔다. 조금 더 연습한 다음에 해 줄 테니까, 기다려. 그러더니 제멋대로 서재를 나가려고 들었다. 막시밀리안이 놀라서 일어났다.

“요른.”

―걱정 마. 이상한 짓 안 해.

머릿속에 문장이 맴돌았다.

―어차피 다 너 재밌으라고 하는 건데, 너 안 보는 데에서 뭐 하러 해.

“어……?”

―아무튼, 안 변한다고 했잖아. 네 ‘착한’ 요른으로 남아 줄 테니까 안심해.

창문으로 안 날아가고, 벽이나 천장도 안 통과하고 기껏 문으로 나가주고 있는 거 보면 몰라? 면박을 주다시피 하더니 요른은 복도로 총총 걸어 나가 버렸다.

10월 말의 일요일, 고용인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막시밀리안이 제 놀이 상대 시동과 뛰어노는 양을 바라보았다.

프란첸가의 그 의젓한 독자는 서재를 뛰쳐나와서 작은 표범처럼 복도를 달리다가 1층 살롱으로 들어갔고, 제 시동을 따라잡아 품에 꽉 안더니 제풀에 카펫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둘은 마냥 깔깔대며 뒹굴다가 잠시 나란히 앉아서 엉망으로 피아노를 쳤지만, 곧 살롱에서도 빠져나올 듯한 기미를 보였다. 요른은 창문으로 나가자고 졸랐고, 막시밀리안은 문으로 나가자고 열심히 설득했다. 둘은 결국 두꺼운 문짝을 활짝 열어젖히고 복도로 튀어나왔다.

홀릴 듯이 예쁜 아이와 백합같이 고운 소년은 곧 저택 정문을 통해 정원으로 빠져나와 낙엽 더미에 한 번 파묻혔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다투는 듯한 소리가 울렸지만 곧 웃음소리로 잦아들었고, 둘은 머리가 새집같이 된 채로 마침내 장미 정원 한가운데의 둥그런 정자로 달려들었다. 벤치에 뛰어오르자마자 막시밀리안이 못 견디고 아이를 꽉 안았다.

달리는 내내 요른은 막시밀리안의 안에 있었다. 그의 안에서만 자신을 보고 느끼고 만지면서 요른은 소년이 기뻐하면 함께 기뻐했고, 그가 입으로는 뭐라 의연하게 반대하면서도 실은 재밌고 즐거워서 콩닥대고 있으면 놀려 대면서도 함께 즐거워했다.

정자에 앉아서 아이를 안은 채 막시밀리안은 생각했다. 그렇게 뛰어다녔는데도 요른의 심장은 지극히 차분하게만 뛰고 있었다. 신체 구조가 다르거나, 뭔가 마법을 쓴 거다.

막시밀리안은 생물의 몸을 더 잘 느껴 보려고 자기 가슴에 꽉 붙여 안은 채 좋은 향이 나는 정수리를 킁킁거렸다. 초겨울이라 해도 지금 자기 몸은 땀이 살짝 돋아 있을 텐데, 이 애는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송보송하기만 하다.

‘이렇게까지 예쁘면 위험할 수도 있어.’

세상에는 어린애를 이상한 방식으로 좋아하는 어른들도 많다. 전에 시동으로서 특별 대련에 데리고 나갔을 때, 실제로 기분 나쁜 눈으로 요른을 쳐다보던 기사도 있었다. 조심해야겠다고 막시밀리안은 다짐했다.

아니, 사실 자신이 조심할 필요도 없다. 요른이 훨씬 더 강하니까, 알아서 조심하라고 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소년은 고민하며 요른의 조그만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네게 손을 대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도마뱀으로 변신시켜라, 아니면 네가 도마뱀으로 변해서 캭 먹어 치워 버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히려 너무 세니까 문제네. 사실 맘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애잖아.’

막시밀리안은 새삼 깨달았다. 요른은 정말로 자기 의지로만 내 곁에 있어 주는 거구나.

이 모습을 유지하면서 함께 자라 주는 거고.

가슴이 찌릿하면서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황홀경 같은 게 심장 한가운데에서부터 새하얗게 입을 벌리면서 막시밀리안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고, 양팔을 콱 조이며 품 안의 몸을 으스러뜨릴 듯이 안아 버렸다. 소년 자신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우득거릴 정도로. 요른이 키득거렸다.

―야, 나니까 괜찮지, 진짜 애면 찌부러진다?

너잖아. 막시밀리안은 속으로만 되뇌며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떨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이 애를 안으면 늘 이렇게 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뛰어놀 때가 더 낫다. 요른도 눈치챘는지 품에서 몸을 쑥 빼내며 대신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어, 안 돼, 요른. 날개는 접어.”

―나는 거 저번에 엄청 좋아했잖아? 또 태워 줄게.

“안 돼.”

―넌 네가 좋아하는 일도 꼭 안 하려고 그러더라?

“안 되는 일이니까 그렇지. 사람이 타고난 본분대로 걸어야지, 왜 날아?”

막시밀리안이 침착하게 답했다.

“어긋남이 주는 즐거움에 중독되면 결국은 행복할 수가 없게 돼.”

―멍충이.

면박을 주는 말만이 아니라 어떤 서늘하고 음습한 기운이 막시밀리안의 안에 함께 흘러들어 왔다. 심장이 덜컹했다. 요른은 상대의 반응을 알아채고 얼른 마음을 거두어 주었지만, 소년은 이미 창백해져 버린 후였다.

요른은 늘 그렇다. 말을 입 밖으로 뱉는 데에 서투른 건 물론이고, 머릿속으로도 말만 따로 전하는 걸 극히 어려워한다. 또렷한 문장의 배경에는 늘 물컹하고 축축한 감정과 감각의 잔여물이 어찌 보면 문장 자체보다도 더 강렬하게 넘실대곤 한다.

게다가 막시밀리안은 언젠가부터 눈치채고 있기는 했다. 자신과 함께할 때 요른이 전해 오는 어두운 여광은 그 애의 감정이 아니라, 차라리 몹시도 순수한 거울이 반사해 낸…….

‘알아.’

요른은 사실 막시밀리안이 정말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곱씹으며 소년은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 꼴을 보며 요른이 혀를 쯧 차더니 날개를 접었다.

―그래, 그래. 걸어가자.

생물은 다시 한번 손을 쭉 뻗어 오며 말했다.

막시밀리안은 그 조그만 손을 맞잡고 괜히 조몰락거렸다. 그러고 있다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요른도 막시밀리안의 안에 들어와서는, 소년의 손을 통해 자기 손의 생김새를 아직 덜 익은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느끼며 킥킥 웃었다. 그러고는 재촉했다.

―얼른. 뛰어!

둘은 또 한참을 뛰어다니며 부엌이며 창고까지 마구 쏘다니다가 하인장이 쫓아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간신히 멈추었다. 공작 부부가 조금 이른 저녁을 들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밤에는 다과회 겸 독서 모임에 가셔야 한다면서.

“공작님께서 작은 주인님과 식사를 같이 한 지 오래되셨다고, 지금 같이 들면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어떠신지요?”

“곧 갈게요.”

막시밀리안이 숨을 가누며 답했다. 여전히 요른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하인장이 웃으며 덧붙였다.

“공작 부인께서 시동도 함께 데려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혀 줄 수는 없지만, 뒤에 서 있으면 된다고요. 하지만 요른은 아직 내내 서 있기는 힘들 테니까 의자를 마련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하면서도 석연찮은 마음이 피어올라 막시밀리안은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식당에는 이미 공작 부부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들이 올 때 열어 놓는 만찬용 홀은 아니고, 가족끼리 단출하게 식사할 때 쓰는 공간이다. 식탁도 기껏해야 6인용이다.

6인용. 막시밀리안은 빈 세 자리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리에 앉았다. 올리버 폰 프란첸이 아들을 평가하듯 시선을 주었고, 소년이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 만족한 듯 눈을 돌렸다.

공작 부인은 아들 대신 요른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막시밀리안은 뒤에 선 아이를 가리려는 듯, 의자에 앉은 채로도 괜히 등을 쭉 펴고 힘을 주었다.

요른이 벽에 닿게 걸쳐 놓은 아동용 의자에 앉은 후에야 공작 부인은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막시밀리안도 조금 안심하고 접시 위에서 칼과 포크를 놀리기 시작했다. 프란첸 공작이 아내와 말을 나누다가 문득 아들에게도 명했다.

“너도 다음 토요일에 한 번 더 견학을 가는 게 좋겠다. 시내 경찰서 말이야.”

답이 얼른 돌아오지 않자 공작은 그제야 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막시밀리안?”

“아버지, 죄송하지만 굳이 또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막시밀리안이 조심스레 답했다.

“경찰의 교화 수단을 보여 주시려는 건 이해해요. 알아 둘 필요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거기 찬성하지 않는걸요. 그러니까 굳이 몇 번이나 눈에 담으면서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바로 그래서 보여 주려는 거다. 너는 그냥 머리로 아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익숙해져야 해.”

공작이 잘라 냈다.

“네가 하인들 얘기도 얻어듣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애쓰는 건 알지만 그래 봤자 온실 속 화초야. 그래서는 정말로 거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를 못해.”

“말씀드렸지만, 전 찬성하지 않습니다.”

막시밀리안이 전에 없이 완강하게 잘라냈다.

“사람을 채찍으로 때리고 고문하는 데다가, 그런 좁은 곳에 가두어서 벌을 주는 걸 평민이든 누구든 타인을 올바로 대하는 법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자선 사업을 늘리고 교육 기관을 증설하는 게 옳잖아요? 교화가 목적이라고 해도 수단이 틀리면 틀린 거예요.”

“꼭 평민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예시지. 폭력으로 억압하는 방법으로밖에는 바로잡을 수 없는 종류의 상대도 있고, 마음도 있다는 걸 이해하라는 거다. 네 자신의 마음도 포함해서 말이다.”

아버지가 마지막 말을 내리누르듯이 전하자 막시밀리안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버지는 한마디 덧붙였다.

“늘 생각해라. 소위 선한 수단만 쓰고 싶다는 게 정말로 상대를 생각하는 건지, 네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은 것뿐인지 말이다. 너는 방금 수단이 옳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결벽을 부리다가는 결과가 돌이킬 수 없이 악해질 수 있어.”

“예.”

“서장에게 말해 주말 견학을 준비시켜 두겠다.”

“예. 감사합니다.”

막시밀리안은 짧게 답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공작 부부는 바로 외출 준비를 하러 올라갔다. 막시밀리안도 식당을 나서서 제 침실을 향했다. 요른이 뒤에서 총총 따라오다가 막시밀리안이 돌아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소년이 손을 내밀자 쪼르르 다가와 답삭 잡았다.

막시밀리안은 요른에게 물어볼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생물은 이미 막시밀리안의 마음을 읽어서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뭘 궁금해하는지 말이다.

유디트 폰 프란첸은 학자로서 제 머릿속 생각을 정리할 때는 명료하고 깔끔했지만, 실생활에서 물건을 잘 치우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다. 책도 자기가 쓰던 논문도 성 여기저기 흘려 놓고는 잊어버리곤 해서 늘 고용인들이 찾아다 주었다. 덕분에 막시밀리안도 가끔 주워다가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고문헌 해석본 등은 내용이 어려워서 그로서는 아직 또렷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몇몇 장식적인 비유만 겨우 머리에 담았을 뿐이다. 하지만 요른이 하는 일들을 보면 그런 비유들이 되새김질하듯이 자꾸 머릿속에서 불려 나왔고, 눈앞에서 그림처럼 이해가 되어 버리곤 했다.

그러나 여덟 살짜리 소년은 뭐라고 묻는 대신 그저 가만히 상대의 손을 끌어당겼다.

“올라가자. 그리고 너, 우리 엄마는 좀 조심해.”

요른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오래 같이 있지 마. 눈치가 좋은 사람이라서……. 아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생물의 손은 무척 보드라웠고, 말캉했고, 무엇보다 제 손안에 얌전히 꼭 잡혀 있었다. 소년은 속으로 속삭였다.

내 요른.

그러자 무시무시할 정도로 따스하고 찬란한 책임감이 마음을 조였고, 모든 게 꽉 차고 풍족해졌다. 소년은 제게 꼭 맞춘 듯이 복속된 마왕의 손을 잡고 침실로 올라갔다.

* * *

늦봄의 일요일 오후였다. 미풍이 온통 꽃향기를 실어나르는 한복판을 가로질러 걷다가 정원사는 아치형 기둥으로 천장을 받쳐 올린 정자에 도착했고, 긴 나무 의자 위에 잠든 두 아이를 발견하고는 픽 웃었다.

막시밀리안의 조용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위로 요른이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둘이 한쪽 손을 꼭 겹쳐 잡고, 막시밀리안이 다른 쪽 팔로는 요른의 등허리를 감싸 안은 채였다. 벤치에서 떨어지지 않게끔 지켜 주려는 듯이.

열 살짜리 어린 주인은 고운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린 채 쌔근대며 푹 잠들어 있었지만, 여섯 살짜리는 눈만 감고 있었을 뿐 깨어 있었던 거 같다. 정원사는 그 조그만 백발 어린애가 살짝 실눈을 뜨는 걸 보며 확신했다. 하지만 요른은 막시밀리안의 얼굴만 한번 빤히 들여다보고는 방긋 웃더니 도로 흰 고양이처럼 몸을 틀고 눈을 감았다.

이 두 아이는 여전히 참 사이가 좋다고 정원사는 생각했다. 신분도 배경도 그렇게 극에서 극으로 다른데도, 얼굴만 보면 둘 다 몹시도 예쁜 게 어딘가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또 전혀 다르다. 막시밀리안이 숨결 하나하나를 매만져 정성스레 길러 낸 사람 아이처럼 곱다면 요른은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듯이 예뻤다. 눈 색도 머리 색, 피부색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영 괴이쩍은데도, 오히려 지나치게 아름다워지는 방향의 기형도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원래 정자를 청소하러 왔던 차였지만 정원사는 잠시 정신을 놓고 아이들 얼굴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둘이 계속 행복하게 낮잠을 자게 내버려 두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막시밀리안은 잠결에 요른과 겹쳐 잡은 왼손을 움찔거렸다. 요른이 막시밀리안의 안에 들어와 있었고, 막시밀리안도 요른의 안에 머물렀다. 둘은 섞이고 섞여 거의 하나가 된 것 같은 의식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요른은 소년의 의식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수많은 것들을 보여 주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 다른 생물들과 의식을 연결해서 지금까지 보아왔고 또 바로 이 순간에도 보고 있는 것들을. 덕분에 둘은 아주 넓고, 깊고, 까마득하리만치 광활한 꿈을 함께 꾸는 중이었다. 거의 영원과도 같은.

그러다가 막시밀리안은 소스라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요른을 감싼 팔은 풀지 않은 채였다. 덕분에 요른은 의자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자세로 막시밀리안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어 버렸다. 하얀 생물은 툴툴거리면서 막시밀리안의 팔에서 빠져나와 의자 등받이 위에 걸터앉았다.

―바보.

“미안.”

막시밀리안이 숨을 골랐다.

“어제 경찰서 견학 때문에 그래. 미안해.”

―바보야, 왜 꿈에까지 들여보내? 꿈속에선 맘대로 하기로 해 놓고.

“아니.”

막시밀리안이 조금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젠 하지 말자.”

―뭐?

“꿈속에서도 그런…… 나쁜 건 하지 말자. 날아다니거나, 너무 오래 잠수해서 헤엄치거나, 죽은 자를 살리거나 하는 거 말이야. 미안해.”

소년이 말하자 요른이 대놓고 입을 삐죽거렸다. 막시밀리안은 요른에게 영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꿈속에서 그 경찰이 차라리 자신을 때려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막시밀리안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 년 전부터 거의 정기적으로 경찰서 견학을 다녔고, 소년소녀 교화 부서의 일을 직접 돕기도 했다. 덕분인지 경찰과 판사가 가끔 꿈에도 나왔다. 특히 요른과 온종일 같이 논 주말 밤이나, 아니면 둘이 아예 꿈을 공유하고 있을 때면 꼭 그 감색 제복을 입은 자들이 튀어나와 방해하곤 했다.

꿈속에서 경찰은 나쁜 짓을 한 평민 아이들을 유치장에 가두었다가 곧 재판정에 세웠고, 판사가 고한 숫자만큼 채찍질을 한 후 교도소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들은 막시밀리안만은 남겨 두었다. 막시밀리안은 스스로 고해하고 벌을 받고 싶었지만, 늘 차마 고해하지 못한 채 깨어났다.

경찰이 나오는 꿈을 꾼 날이면 막시밀리안은 일 년 전 아버지가 해 주었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되새겼다. 나는 옳은 수단을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얻어맞기가 싫은 걸까.

‘나는 사실 타인에게 잘 대해 주고 싶은 것조차 아냐.’

소년은 새삼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런 못된 애면서도 벌은 피해 가기를 원하는 거야.’

새카만 것이 다시금 소년의 뇌 속에서 바다처럼 철썩거리며 육지를 먹어 치웠다. 어머니 유디트는 석 달 전 상상 임신을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분명 치료술사도 임신이라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워낙 조심하느라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침실에만 처박혔다.

그런데 결국은 상상 임신이었던 걸로 결론이 났다. 배 속에 아이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내장 일부에 염증이 생겨 부어오른 것뿐이었다고.

유디트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도 의외로 밝은 얼굴이었다. 이제 아이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연구에나 집중하겠다면서 성에서는 서재에 틀어박혔고 밖에서는 여러 연구소에 쏘다녔다. 실제로 그녀는 노심초사하던 지난 석 달보다, 아니, 아이에 집착하면서 괴로워하던 지난 몇 년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였다. 무언가 탁 털어 버린 듯이.

가족 식당의 6인용 식탁은 3인용으로 바뀌었다. 유디트가 지시를 내려 새로 사들인 것이다.

‘내가 진짜로 착한 애면 좋겠다.’

막시밀리안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억누르지도 다스리지도 않아도 되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원래부터 착하기만 한 애면 좋겠어.’

하지만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든 다 평생 자신을 억누르고, 끊임없이 갈고닦아 통제하고, 마음 일부는 꽁꽁 묶고 사슬과 족쇄를 걸어 저 아래의 검은 방에 가둬 둘 수밖에 없다.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채찍을 내리치면서. 그래야만 어느 정도라도 선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하지만 이 마음만은 그러고 싶지 않아. 이건 그래야 하는 게 아니면 좋겠어. 부디……. 막시밀리안은 복속된 마왕에게 손을 내밀었다.

“들어가자. 슬슬 친구들 올 거야.”

―카를이랑 린다?

“응. 너, 오늘은 저번처럼 그러지 마.”

요른이 고개를 갸웃하자 막시밀리안은 가슴이 송곳으로 찔린 듯이 아팠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른은 막시밀리안이 정말로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막시밀리안은 한 번 더 입 밖으로 말을 내어 부탁했다.

“그러지 마.”

소년은 요른의 손을 붙잡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손님맞이용으로 옷을 갖춰 입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곧 금발 여자애와 진한 고동색 머리 남자애가 각각 종자 한 명과 호위병 둘을 거느리고 놀러 왔다. 투트 크라흐트 가의 차녀와 폰 린하우스 가의 장남이다.

셋은 잠시 서재에 모여 수다를 떨다가 곧 술래잡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른은 끼워 주지 않았다. 지난번에 온실에서 뭔가 일이 있었던 후로 린다가 요른을 무서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를도 그 애를 겁냈다. 역시나 요른이 몇 번쯤 카를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안이 뒤늦게 말리기는 했지만, 요른은 카를을 미로 안에 넣고 그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뱅뱅 돌렸다.

요른은 미로를 잘 만든다. 도마뱀과 새를 섞어 새도마뱀을 만들고, 나비를 잠자리로 변신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공간도 섞어 내고 변신시킨다. 살롱은 어느새 식당과 반반씩 섞여 버리고, 놀라서 복도로 뛰쳐나와 봤자 복도가 눈앞에서 휙 창고로 변신해 버리곤 했다.

그러니 카를은 당황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결국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막시밀리안은 겨우 카를을 찾아내서 달랬고, 요른에게 부탁해서 성안을 뒤섞는 걸 그만두게끔 했다. 하지만 그는 요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요른은 막시밀리안이 정말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으니까.

술래잡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요른이 또 공간을 섞어 대기 시작했다. 린다가 농기구 창고에 갇혀 울어 댔고, 카를은 빈 와인통에 낑겨 들어가 비명을 질렀다. 막시밀리안은 애들을 겨우겨우 찾아내서 풀어 주었다.

요른은 귀찮다는 듯 둘의 머릿속을 주물러 기억을 바꾸어 버렸다. 린다와 카를이 영문을 모른 채 빨리 술래잡기를 계속하자고 채근하자 막시밀리안은 얌전히 고개나 끄덕거려 줄 수밖에 없었다.

둘이 돌아가고 난 후에야 막시밀리안은 요른의 손목을 꽉 붙잡아 아무 방으로나 끌고 들어갔다.

“요른,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정말로?

“그래. 부탁했잖아.”

―정말로?

“부탁……했잖아. 알아, 요른. 그래도 내가 말로 부탁하는 것만 들어줘. 제발.”

―바보야, 너 실은 나랑만 놀고 싶잖아.

요른이 혀를 삐죽 내밀었다.

―너 쟤들 둘 다 싫어하잖아. 저 카를이란 놈은 거칠고 제 동생한테도 손찌검을 하는 못된 놈이고, 린다라는 애는 오만하고 머리도 완전 굳어 있다고 생각하지? 아는 집안 애들이라 어쩔 수 없이 사이좋게 노는 것뿐이고, 사실은 나만 좋잖아, 너.

“그래.”

막시밀리안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럼 나랑만 놀아.

요른이 품에 착 달라붙어 왔다.

―넌 미로에 넣어 둬도 울지도 않잖아? 재미있어하지. 더, 더 헤매고 싶어 해. 공중으로 까마득히 날아올라도, 바다로 깊이 들어가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너무 좋아해. 더, 더 높이, 깊이, 그렇게 사실 속으로는 늘 졸라 대잖아. 너는 자유로워질 줄 아는 애야.

“그래, 나는 그런 인간이야.”

소년이 뱉어 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요른, 너는…… 네게는 다 똑같겠지만.”

그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이어 갔다.

“네겐 마음도 말도 다 같겠지. 가슴속 감정도 얼굴로 드러낸 표정도 다 똑같고. 알아. 하지만 난 달라. 보통 사람은 달라. 내가 말로 하는 것만 들어줘. 의지를 갖고 입 밖으로 뱉는 것만. 제발.”

―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 나도 내가 나쁜 애라는 건 잘 알아.”

막시밀리안이 제 가슴을 두드려 보이며 청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 나는…… 그런 만큼 더 바르게 살고 싶어. 내가 여기, 여기다가 가둬 두는 거 말고, 표정으로 만들어 떠올리고, 말로 다듬어서 밖으로 내놓는 것만 진짜 나로 쳐 줘. 부탁이야.”

―너 안 행복하잖아.

그러나 요른은 고개를 갸웃하며 설원 같은 샛푸른 그림자가 섞인 은색 눈동자로 상대를 투명하게 들여다보았고, 제 조그만 손가락으로 소년의 심장쯤을 콕콕 찌르며 전했다.

―난 다 알아. 여기 있는 너는 나랑 놀고 꿈꿀 때 훨씬 더 행복해. 네가 뭐라고 한들, 어떤 표정을 지은들 마찬가지야.

“알아. 하지만…….”

―카를이랑 린다 가뒀을 때 너도 재밌어했잖아. 막시, 네가 지난번에 하도 재밌어하길래 오늘도 해 준 거야. 오늘도 너 사실은 즐거웠잖아.

“요른.”

―나랑 놀자.

반은 제 몸 안에, 반은 상대의 뇌리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생물이 달콤하게 속살댔다.

―평생 나랑만 놀자. 네 성이 아니라도 상관없잖아? 우린 서로만 있으면 돼. 멀리 가서 영원히 우리 둘이서만 놀자. 너도, 나도 더 행복해질 거야. 지금보다 훨씬 더.

가차 없는 거울. 막시밀리안은 얼굴이 새하얘졌다. 동시에 그는 상대에게 뭔가 물으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지난 석 달간 속으로만 삼켜 온, 요른이 들여다볼까 봐 두려워서 꿈에서조차 잊으려 노력했던 의혹을.

하지만 소년이 마저 용기를 내기도 전에 요른이 먼저 입을 삐죽 내밀며 전해 왔다.

―이런.

“응?”

―걱정 마. 못 하게 해 줄게.

“왜 그래?”

―너희 부모님이 나 입양한대.

“어, 어?”

막시밀리안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몸을 일으켰다.

아예 예상치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난해 결국 요른은 ‘마법’을 쓰는 모습을 유디트에게 들켜 버렸다.

그 후 유디트는 요른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고, 누가 보면 막시밀리안이 아니라 오히려 요른이 그녀의 친아들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살갑게 굴었다. 그래서 고용인들도 혹시라도 공작 부인께서 저 시동을 어떻게든 자기 애로 들이시려는 건 아닐까 수군거리기도 했다. 유디트 폰 프란첸은 평소에도 워낙 남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른이 이렇게 읽어 낸 걸 보니 그게 곧 실제로 성사될 모양이었다. 다른 이유도 없는 건 아니겠지만, 막시밀리안은 무엇보다 제 모친이 요른의 정체에 대해 뭔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식으로 제 곁에 두고 살펴보려 하신다는 걸 직감했다.

‘아버지도 동의하셨구나.’

아마 아버지의 사생아로 꾸며 내는 식으로 일이 진행될 거다. 곱씹다가 그는 문득 방금 요른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왔던 걸 상기하고서 급히 말렸다.

“하지 마. 우리 엄마 머리에 손대지 마. 하지 마.”

―왜?

“내가 알아서 할게.”

막시밀리안이 거의 외치듯이 던졌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손대지 마.”

말하면서 그는 얼마 전에 읽었던, 어느 페랑 소설가가 쓴 책의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페랑의 소설은 그로쉔에 수입되지 못하지만, 소설 작가가 쓴 미학론 정도는 주문이 가능하다. 공작 부인은 외국의 지식에도 두루 흥미를 갖는지라 서재에 몇 권이 들어와 있던 터였다. 개중 인상 깊었던 구절 서너 개가 금방 소년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사의 단련법과는 전혀 다른, 연극배우들이 자신을 갈고닦는 방식.

이튿날 저녁, 막시밀리안은 부모와 대화를 마치고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제 침실로 돌아왔다.

문간을 넘어서자마자 요른이 맞아 주었다. 털실 뭉치 같은 조그맣고 동그란 생물로 변해 소년의 발목께를 감싸고 돌면서. 생물은 동시에 소년의 뇌리에서도 재잘댔다.

―잘했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막시밀리안은 차갑게 뱉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요른은 계속 털실 모습으로 발목에, 등허리에 살살 감겨들다가 목덜미까지 올라왔다. 소년이 사실은 그 구름을 실처럼 풀어 놓은 듯한 감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지금도 그 간질거림을 얼마나 달큰하게 느끼며 마음이 누그러져 가고 있는지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안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곧 소용없다고 여기고는 얼굴을 감싸고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나빠.’

소년은 되뇌었다.

‘요른은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아. 이 애는 날 사랑해 줘. 날 너무나…… 사랑해 줘.’

막시밀리안은 눈을 감은 채 부모와의 대화를, 혹은 사실상 우격다짐을 돌이켰다. 그는 오늘 말하자면 사도를 택했다. 기사로서 자신을 철저하게 다스린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두운 감정을 풀어 놓고 이용했다.

페랑의 연극배우 중 어떤 자들은 감정을 다스리기는커녕, 무대 위에서만은 가장 어둡고 스산한 것조차 거리낌 없이 치고 올라오도록 문을 열어 두려 노력한다고 한다. 그것에 얼굴과 온몸을 일부러 잠식시킨 채 대사를 읊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단다.

기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장에서 그런 식으로 문을 열어 뒀다가는 온갖 감정과 공포에 휘둘려 제 발에 제가 걸리듯 어리석게 죽고 말리라. 마검을 손에 쥘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오늘은 배우의 길을 택했다.

섭섭한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어머니가 언젠가는 자신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원망이 그의 안에 자리 잡고 있기는 했으니까. 그걸 이용해서 마치 요른을 질투하는 양 울고 소리치며 입양을 막았다.

울음도 원망하는 말도 너무도 쉽게 흘러나왔다. 진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훌륭하게 연기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 수 있었다.

‘좋은 연기란 건 이렇게 하는 거구나.’

어머니의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을 보고, 아버지가 당황해서 입양을 당장 취소하겠다고 약속하는 말을 들으며 막시밀리안은 읽었던 책을 완벽하게 이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프란첸 공작이 약속한 후에도 막시밀리안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비명을 질러 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한번 물꼬를 터놓으니 멈추지가 않았던 탓이다.

열 살 난 소년은 일부러 부모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등을 휙 돌려 방을 나왔고, 꺽꺽대며 복도를 걸었다. 침실 방문 앞에서야 겨우 눈을 감고, 기사 수업 때처럼 검을 잡은 손의 형태를 해 보이며 속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털실 생물이 달려들었다. 보들보들한 실 끝이 목덜미를 간지럽혀 대니 우느라 지친 몸이 금방 노곤해졌다. 막시밀리안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그 몽실몽실한 것을 가만히 마주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야 만족했는지 요른이 여섯 살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침대 옆 의자에 걸터앉았다. 막시밀리안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백색의 순진무구한 거울을.

마음이라는 것에는 아무리 다스리고 또 다스리려 애써도 남는 부분이 있다. 시선을 내리자 소년의 시야에 새삼 자신의 양손과 무릎이 들어왔다. 자기 자신이란 너무도 깊고 광활하다.

끌고 다니다가 그 속에 난파되어 버릴 그림자처럼.

“요른.”

―응?

“말로 대답해 줄 수 있어?”

요른이 입을 삐죽거렸지만, 곧 짧게 뱉어 냈다.

“응.”

그 목소리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러자 또 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막시밀리안은 웃으면서도 고개를 떨구었다.

“우리 엄마 석 달 전에 진짜로 상상 임신이었어?”

“응.”

“아니, 잘못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바꾼 거 아냐? 배 속에 아이가 있었는데 네가 부기 같은 거로 변신시킨 거 아냐?”

“응.”

“맞다고?”

“응.”

“내가 그걸 원해서?”

“응.”

“엄마가 안 슬퍼하게 머릿속도 주물러 드렸고?”

“응.”

“나는 행복했어? 엄마가 나 말고 다른 아이를 낳지 않게 되어서, 더는 원하지도 않게 되어서.”

“응, 응.”

“그렇구나.”

소년이 답하자 요른이 의자에서 팔짝 뛰어내려서는 다가오려고 했다. 막시밀리안이 말했다.

“오지 마.”

―거짓말.

“아니야!”

외쳤지만 요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막시밀리안은 처음으로 요른의 몸을 있는 힘을 다해 뿌리쳤고, 밀어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너 싫어!”

요른은 그래도 다가오려고 했다. 막시밀리안은 흐린 눈을 들어 쏘아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턱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요른이 위로하듯이 품에 안겼다. 작은 몸이 무섭도록 따스하게 감겨들었고, 숨결과 머리카락이 달콤한 향처럼 귓가를 적셨다.

그러자 모든 게 충만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막시밀리안은 눈을 깜박이다가 정신을 잃었다.

하인장과 하녀장은 서로 말을 맞추었다. 프란첸가의 독자가 사흘째 몸져누워 있다는 걸, 거기다가 위독하기까지 하다는 걸 다른 고용인들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른의 입양 건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 침실에만 머무르는 걸로 하자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치료술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프란첸 공작은 조심스레 아들의 이마를 짚었지만, 막시밀리안은 시선을 창밖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유디트는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 채 침상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주먹만 꽉 쥐고 있었다.

“역시나 몸의 병은 아닙니다.”

술사가 조심스레 다시금 확언해 주었다. 공작은 끄덕거렸다.

성황이 강림한 후 대륙의 백성이 병에 걸리는 일은 드물었다. 병을 일으키는 미물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종간의 경계가 명백한 만큼 그것들은 사람의 몸에 잘 섞여 들지 못했다. 외상을 입은 자나 어차피 수명이 다한 사람이나 전염되곤 했다.

어리고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한 소년이 이렇게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정령에게 저주를 받을 만한 죄를 지은 것이다.

“아들이 그럴 리는 없어요.”

공작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우리 죄입니다.”

뒤에 서 있던 유디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지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질렸다. 공작도 아내의 기색을 눈치채고는 시선을 떨구었다.

저주는 죄 자체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라면 오히려 고통을 피해갈 수도 있다. 막시밀리안은 어제 드물게, 아니, 평생 처음으로 타인을 원망하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그걸 뉘우치며 이 애는 스스로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리라.

공작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뺨에 키스를 해 주었다. 막시밀리안은 반응하지 않았다.

평소에 한 번이라도 안고 쓰다듬어 줄 걸 그랬다고 프란첸 공작은 생각했다. 아이가 스스로 기억도 못 할 갓난아이 때 가끔 안고 키스를 해 준 것 외로는 만져 준 적이 없다. 늘 고용인들에게만 맡겨 놓았고, 그들에게도 가능한 한 엄하게 대해 달라고 지시했다. 그게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막시밀리안은 몹시도 의젓하게 잘 자라 주었기에, 공작은 자신이 옳은 길을 택했다고 믿었다.

아니, 어쩌면 그래도 정말로 옳은 길을 택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럴 때야말로……. 공작은 술사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에는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스스로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술사가 얼른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잘하고 계십니다. 강한 분이시니까요. 죄악감을 극복하고,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만약에 이겨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만약에 악화되면…… 2주 정도면…… 그렇습니다.”

술사가 얼버무리듯이 전했다. 공작이 끄덕거렸다.

공작 부부는 그러나 이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방을 떠났다. 유디트는 왕국 마도 협회 정기 모임에, 올리버는 그로쉔 성기사단 간부 회의에 참여해야 했다. 술사와 하녀장에게 아이를 맡겨 두고 둘은 곧 우울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유디트는 떠나기 전에 잠시 문간에서 망설였다.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고, 품에 꼭 안고 미안하다고 속삭여 주고 싶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아들에게는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만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유디트는 그게 아들이 가장 원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면 될 일이라고 유디트는 생각했다. 거짓말이라도 그게 지금 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말이니, 모친 된 도리로 해 주어야만 한다. 자신이 혼자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게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입 밖으로 나오는 말, 타인을 위할 수 있는 말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차마 운을 떼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응해야 한다는 아무 효용 없는 명제를 극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뺨 위로 무슨 빛깔인지 알 수 없는 눈물만 흘러내렸다.

막시밀리안은 부모가 오가는 걸 알면서도 멍하니 창밖에만 눈을 주고 있었다. 창가에 바짝 와 닿아 자란 나무의 가지들이 하늘을 한없이 잘게 나누어 나가며 복잡한 무늬를 그렸다. 그때 문득 술사와 하녀장이 의자에 걸터앉더니 잠들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모습을 한 생물이 문틈으로 가만히 숨어들어 왔다.

―막시밀리안.

또렷한 음소가 마음을 마치 금속이 살점을 헤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들어 왔다. 막시밀리안은 비명을 질렀다. 요른이 또다시 속삭이려다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소년은 가슴 언저리를 꽉 누른 채 외쳤다.

“나가.”

성긴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소년은 토기를 간신히 참으며 다시금 외쳤다.

“나가……!”

그래도 생물은 소년의 뇌리에서 꼬물거렸고, 몸으로도 총총 다가왔다. 막시밀리안은 돌아누운 채 주먹을 들어 제 얼굴을 갈겼다.

코뼈가 어긋날 때까지 내리치고 나자 요른의 기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막시밀리안은 흐느꼈다. 사실은 그 하얀 기척은 무척 따스하고 사랑스러웠고, 빠져나가는 게 아쉽기만 했다. 술사가 깨어나서 아이를 살피러 왔다가 베개가 피범벅인 걸 보고 놀라서 치료를 시작했다.

이틀 뒤 술사가 다시금 막시밀리안을 진단해서 결과를 부부에게 알렸다. 경과가 좋지 않다, 이대로면 그는 곧 생명을 잃을 거라고.

공작 부부는 얼어붙었다. 아들은 실제로 그 며칠간 살이 쑥 빠지고 눈도 푹 패여 죽음에 좀먹혀 가는 듯이 보였다.

공작이 이름을 불렀지만 막시밀리안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새겨진, 아버지 자신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무늬가, 기사 후계자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압박과 가문의 직계 혈통을 이어 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복잡하게 짜 맞추어진 모자이크라는 걸 알았다. 요른이 가끔씩 그 조각 하나하나씩을 막시밀리안의 안으로 전해 주었던 덕분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요른 덕분에 그는 부모의 마음을 부모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죽는다고 해도 부모에게 그렇게 큰 죄를 짓는 건 아니다. 그는 분명 소위 말해 좋은 아들이긴 했지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술사의 말을 듣고 막시밀리안은 다만 기뻤다. 자신은 정말로 곧 죽는다.

아니, 정말 죽게 될까?

확인해 볼 방법이 있었다. 다음 날 요른이 조심조심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왔을 때, 막시밀리안은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살짝 몸을 움직여 신호를 주었다. 생물이 흑발 소년의 뒤통수에 대고 더듬더듬 말했다.

“막, 시. 아알려, 줘.”

그 목소리는 전과 달리 성기고 칙칙했다.

“어어떻게, 해야, 막시, 내가……. 나나는, 모모르겠어. 너너 죽는, 거, 시싫어…….”

막시밀리안은 누운 채 눈을 깜박거렸다. 그는 요른이 자신의 몸을 단번에 고쳐 버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 끔찍한 죄책감도 금세 차라리 환희로, 기쁨이나 쾌락으로도 바꿔 버릴 수 있다는 걸. 그러나 요른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나흘 내내 그러지 않았고, 지금도 손도 대지 않고 있다.

그는 막시밀리안이 정말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 지금은 진짜 불행해?”

막시밀리안이 갈라진 입술을 열어 물었다.

“으으응.”

“죽을 정도로?”

“응, 응.”

이겼다. 막시밀리안은 그제야 확신했다.

이불 속에서 소년은 승리감에 떨며 웃었다. 그는 부모에게 자신을 땅에 묻지 말고, 무덤도 만들지 말고 화장을 해서 강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싶었다. 이 모든 죄가 부디 흔적도 없이 바스러지게끔.

그러나 창밖의 먼 하늘로 시선을 향하자 금세 불안이 마음 한 자락에 스며들었다. 아니, 이기지 못했어.

그 혼자만 이겼다고 다 될 일이 아니었다. 막시밀리안은 모친에게서 들었던 예언을 떠올렸고, 자신이 죽으면 저 전능에 가까운 하얀 생물이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

단 한 사람에 대한 복속에서 벗어나 그는 모두를 위해 강림해 버리리라.

공작가의 독자는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마왕은 스스로 악한 자가 아니다.

유디트가 파악한 대로다. 서재에서 유디트가 요른을 꼭 안은 채 성벽의 예시를 들며 설명했을 때, 막시밀리안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모친 품에서 빼어 와 버렸다. 하지만 그거야 그녀가 너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마왕이란 차별을 하지도 않으며 하는 법도 모르는 자다. 선도, 사람이 선하기 위해서 억눌러야만 하는 악도.

마왕은 오히려 사람을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남의 마음에 쏙 들어와서는 그가 행복해하면 자신도 그대로 전염된 듯 기뻐하니까.

그는 선악과 아무 상관 없이 그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사랑해 준다. 막시밀리안만큼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으리라.

그러나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절반은 악하다.

아니지. 막시밀리안은 돌아누운 채 생각했다. 절반이 아니다. 그는 그 가차 없는 백색의 거울과 이 년을 보냈고 그래서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사람은 그저 너무도 광대해서 선이라는 건 그 날카로운 일각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찰랑이는 무한한 어둠을 극단까지 단련해서 갈아낸, 바늘 끝같이 첨예한 극의.

막시밀리안 자신이 평생의 모든 순간을 바쳐서라도 가 닿고 싶었던 경지.

―나쁜 짓도 나쁘지 않아.

아직 서로 만난 지 몇 주도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생물은 작은 다람고양이 같은 것으로 변해 막시밀리안의 어깨에 올라타고는 조곤조곤 전해 왔다.

―난 알아. 넌 나쁜 짓, 아니,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짓들 덕분에 무척 행복해하기도 하는걸. 너야말로 많이 배워야겠다, 막시. 내가 다 가르쳐 줄게.

흑발의 소년은 자신이 사라져 버린 후 그 천진한 마왕이 이제는 세상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애쓰는 양을 상상했다.

그리고 곧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사흘이 더 흘렀다. 막시밀리안은 계속 고민했다. 혼자서 승리한 채 깨끗하게 세상을 떠 버리고 싶은 소망과 남은 세상에 대한 걱정이 쇳가루처럼 핏속을 떠다녔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저울추처럼 이리저리 쏠렸다.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그는 자신이 무책임하다고 느꼈고, 또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가는 혹시 그저 내가 죽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닌가 하고 두려워졌다. 그렇게 고심하다 보면 열이 더 바짝 오르고 속이 뒤틀려서 기절하듯 잠들게 되곤 했다.

요른은 하루 한 번씩, 막시밀리안이 깨어 있는 시간을 요령 좋게 노려서 꼭 침실에 들렀지만, 그보다 더 자주 오지는 않았다. 방에 들어와서도 마음을 파고들지는 않고 입을 열어 말만 걸다가 갔다.

그렇게 등을 스쳐 가는 기척 때문에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마침내 결정을 내릴 수가 있었다. 그는 약속했었다.

작은 생물을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기로 약속하고 데려왔었다.

나흘째에야 소년은 몸을 반쯤 일으켜 요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흉측하고 희멀건 꼬락서니가 시야에 박혀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 내 마음속 ‘요른’의 모습이구나. 막시밀리안은 깨달았다. 나는 지금 정말로 요른을 미워하고 이 애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어. 내 잘못인데도.

그는 당장 몸을 일으켜 생물에게 달려들고 싶었다. 안고 쓰다듬으며 아름다운 형상을 다시 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괜찮아, 다 괜찮다고. 그러나 막시밀리안은 이를 악물었고, 말라 터진 입술 사이로 말을 뱉었다.

“요른, 너…….”

며칠간 물도 거의 넘기지 못해 말라 버린 목구멍이 끔찍하게 아팠다. 그래도 결코 생각을 읽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소년은 한마디 한마디 살을 찢듯이 음소를 조형해서 내뱉었다.

“네 자신의 기억도 바꿀 수 있지?”

“응, 응.”

아이가 침대 곁으로 총총 다가오며 얼른 답했다.

“그럼 바꿔.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내가 다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바꾸고 다른 건 다 잊어.”

“왜?”

“넌 지금 너무 나빠. 그러니까 다 바꿔서 ‘착한’ 요른이 되는 거야.”

요른이 갸웃하며 망설이듯이 되물어 왔다.

“그그럼 뭘 잊어야야 해?”

“다. 네가 할 줄 아는 거나, 네가 해 온 일들 몽땅 다.”

“너너랑 가같이 해해, 온 이일들도?”

요른이 묻자 막시밀리안은 그만 침묵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끄덕거렸다.

“응. 다 잊어버려.”

“시싫어.”

소년은 상대가 화가 났다는 걸 알고는 흠칫했다.

“너너 나 해행복하하, 해해 준다고. 그그런데 너너 나 이잊으려고 해. 그런 거, 요용서 아안…….”

“아니야. 난 너 안 잊어.”

막시밀리안이 달랬다.

“약속 지킬 거야, 요른. 난 절대 너 안 잊어. 우리 둘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야. 그래서…… 그때까지만 잠시 참아 달라는 거야.”

“어언제까까지.”

“우리가…….”

바르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끊었다가 토해 냈다.

“……나쁜 애들이라도 괜찮을 때까지.”

“그그게, 어언제.”

“너도 알지?”

소년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상대의 작은 손을 끌어당겼다.

“우리 엄마가 네게도 얘기해 줬잖아. 용사 전설 말이야.”

모친은 막시밀리안에게는 굳이 흑마법이나 마물과 관련된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요른에게만은 산뜻하게 설레는 목소리로 예언의 두 가지 해석을 다 읊어 주었고, 프란첸가의 독자도 제 시동의 곁에서 그 내용을 귀에 담곤 했다.

소년은 해석을 제 입으로 반복해서 외우며 눈앞의 생물에게 전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자신이 용사가 되어서 결코 요른이 마왕으로 강림할 수 없게 하겠다고.

그런 미래 속에서라면 요른이 어떤 애든 더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차피 마왕은 못 되고 막시밀리안의 요른으로만 남을 테니까, 둘이서만 실컷 나빠지면 된다.

“그때가 되면 내가 널 꼭 다시 깨워 줄게.”

소년이 말했다.

“그다음부터는 단둘이서만 사는 거야. 네가 옳아. 나, 다른 사람들 같은 건 필요 없어. 아무도 못 찾을 곳으로 도망가자. 내가 버려진 성을 하나 찾아 둘게. 옛 요새를 개축해도 좋고.”

막시밀리안은 차근차근 이어 갔다. 한지의 성을 하나 구한다. 둘이 그 안에 들어가서는 성문도 창문도 꼭 닫는다. 요른이 그 주변으로 숲을 길러 내고, 담쟁이와 가시덤불도 마저 성벽 위로 사슬처럼 촘촘하게 둘러 사람은커녕 햇살 한 톨 들어오지 못하게 꼭꼭 감추고 가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둘이 손을 꼭 잡고 잠드는 거다. 영원히 같은 꿈을 꾸기 위해. 소년이 말을 맺자 요른이 거의 속삭이듯이 물어 왔다.

“그치만, 네가…….”

“아니야. 다 하자.”

막시밀리안이 미소 지었다.

“그 성안에서는 우리 얼마든지 나쁜 짓도 다 하자. 이제 막으려고 들지 않을게.”

“너 나나빠져도 돼?”

“그럼.”

막시밀리안이 가만히 요른의 이마에 이마를 댔다.

“아주 나빠져도 돼. 그때가 되면 마음껏 날 행복하게 해 줘, 요른. 꼭 영원히 같이 살자.”

요른은 소년의 온기를 느끼듯이 눈을 감았다. 그 입가에 미소가 떠돌았다.

“그그럼, 가르쳐 줘줘.”

생물이 금방 입술을 달싹거렸다.

“내내가 날 어어떻게 바꿔야 하하는지, 어얼른.”

“그래. 일단, 앞으로는 남이 제 입으로 하는 말만 들어.”

막시밀리안이 답했다.

“마음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 나도 다른 사람도 다. 알았어? 누구든 그 자신이 글이나 말로 내어 놓는 얘기만 듣고 그것만 믿어. 너는…… 쉽지 않겠지만, 내가 도와줄게.”

“응.”

“그래. 그리고 이제부터는 네가 아무것도 직접 판단하거나 행동하려고 들지 마. 너는 뭐가 착한 건지 분간을 못 하잖아. 그러니까 무조건 내 말만 믿고 거기 복종해. 내가 입 밖으로 내놓는 말 말이야.”

“응.”

“그리고…….”

소년은 눈앞이 컴컴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이어 갔다.

“말로만 안 될 때는 내가 가끔은 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몸도 고정시켜 둬.”

“그그 겨경찰들처럼?”

“응. 그런 방법을 써야 할 일도 있을 거야. 나나 다른 사람들이 네게 벌을 줄 수 있게끔, 네 몸을 평범한 사람 몸처럼 만들어서 그대로 고정시켜 둬. 고통도 느끼고, 상처도 바로 나을 수 없게.”

“응, 응.”

“늘 내가 곁에 있을 거야.”

막시밀리안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네가 자신을 잊은 동안에도 난 널 절대 떠나지 않아, 알았지. 늘 꼼꼼하게 지시해 줄 테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넌 어디까지나 내 착한 요른인 거야.”

요른이 끄덕거렸다.

둘은 좀 더 이야기했다. 막시밀리안은 요른의 손을 놓아 주었다. 침대 바로 옆의 카펫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생물은 금방 자기 기억을 주물러 막시가 말해 준 가짜 기억들로 변화시켰다. 그에 맞추기 위해 고용인들과 공작 부부의 기억도 적당히 손을 본 후였다.

마왕은 자기 능력을 다 잊고 보통의 여섯 살짜리 사람 어린애처럼 되어 버렸고, 막시밀리안의 마음속에 비쳐 있던 대로 억지로 되살려 낸 시체처럼 희고 푸르죽죽하고 흉한 꼴로 굳어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되었다.

막시밀리안은 침대에 상체를 기대고 있던 하얀 아이가 눈을 비비는 걸 보았다. 선잠에서라도 깨어난 듯한 태도였다. 소년은 새로 깨어난 ‘요른’의 멍하고 흐릿한 은빛 눈동자를 마주 보며 명했다.

“네 방으로 돌아가.”

어린 시동은 서툴게 예를 표해 보이고는 침실을 나섰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막시밀리안은 침대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는 요른이 대화를 나누던 내내 자신의 마음을 침범하지 않은 걸 알았다. 말로 뱉었을 뿐인데 그 약속을 그대로 다 믿어 주었다. 사람의 말과 감정이, 머릿속 생각과 핏속의 심경이 얼마나 얼마나 서로 어긋나 흐르면서야 균형을 이루는지 뻔히 다 아는 존재가, 그저 믿어 주었다.

목구멍에서 오열이 들끓었지만 막시밀리안은 웅크리고 입을 막은 채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원래대로의 요른이라면 막시가 아무리 의연한 척해 봤자 당장 마음에 퐁당 뛰어 들어와 그 안에서부터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존재는 없다. 자기 손으로 없애 버렸다.

소년은 다음 날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술사는 그가 회복되어 가는 중이라고 단언했다.

소년의 안색은 여전히 파리했지만, 눈빛은 전보다도 더 침착하고 밝았다. 부모가 기뻐하며 묻자 막시밀리안은 그저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더 잘 배우게 되었다고만 답했다.

“바로 검을 잡고 싶어요.”

막시밀리안이 공작에게 청했다.

“학원에서도 다음 학기부터는 마검을 쓰는 법을 배우거든요. 집에서도 미리 연습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아버지.”

공작은 아들의 소망을 들어 연습용 마검을 두어 자루 구해다 주고, 성기사 전력이 있는 새 가정 교사도 들이기로 했다. 막시밀리안은 일어나 걸을 정도가 되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올리버는 그러나 일주일쯤 뒤 하인장의 보고를 받고 막시밀리안을 따로 서재로 불러들여 상담해야만 했다. 아들이 마검을 쥐어 볼 만한 상태로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몸이 나빠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또다시 병상에 누워 버릴 지경이었다.

공작은 아들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요른의 거처를 별채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네가 아무래도 그 애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들었다.”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면서도, 공작은 흘려 내고는 열 살짜리의 눈치를 보았다.

막시밀리안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올리버는 하인장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하인장도 다른 하인이며 하녀에게 보고 받았다고 했다. 어린 주인님이 요른을 대하는 걸 어려워한다고.

그는 전처럼 제 시동에게 살갑게 굴지 않고, 격식을 차려서 엄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른은 그 표정이나 언동의 틈에서 귀신같이 어떤 기색을 읽어 낸 듯 상대에게 손을 내밀며 방싯 웃는단다. 그러면 막시밀리안도 결국 얼굴이 다 풀어져 버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린 주인님은 요른에게 손을 마주 내밀지는 못한다. 오히려 쓰러질 듯 핏기가 싹 빠진 채 명령한다는 것이다. 다가오지 마! 하고.

서릿발 같은 음성이라 하녀도 근처에 있다가 어깨를 움찔해 버렸다. 그러나 요른만은 갸웃하며 계속 막시에게 다가오려고 종종걸음쳤다. 마치 그 표정과 몸짓이, 말을 담은 목소리와 담긴 말이 서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듯이.

그러면 막시밀리안은 결국 소리를 질러 명한다. 사람에게라기보다 차라리 마소에게 그러듯이, 물리적으로 채찍 같은 힘을 실은 음성으로. 요른이 가까스로 두 발자국쯤 떨어진 거리에 발을 멈추면 프란첸가의 독자도 겨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군다.

그런 식으로 매일 매 시각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막시밀리안은 늘 거리를 두고 말로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고, 요른은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말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끊어져 나오는 건지, 어느 경계에서부터 목소리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입술로부터, 눈빛으로부터 분리되는 건지 몰라서 주저하듯이, 그리고 만약 끊어져 나온다고 해도 왜 그것이 그 입술과 목소리의 온기보다도 우월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그 애는 늘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에 빠질 뿐이었다.

그런 차별을 알아본 적 없는 무구한 동물처럼.

고용인들은 자신들이 지난 거의 2년간 어떻게 요른과 소통해 왔던지 의아했다. 돌이켜 보니 직접 말을 나눠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불편했던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글도 거의 못 읽고, 입을 열어 봤자 징그러울 정도로 더듬거리기만 하는 애인데도.

“이대로면 주인님은 또 병에 걸리실 것 같습니다.”

머리가 반쯤 센 하인장은 공작에게 조심스레 보고했다.

“요른이 너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많이 힘들어하세요. 전에는 그저 안고 뛰고 노느라 괜찮으셨던 거 같은데, 이제 나이가 있으시니까요.”

하인장의 얘기를 상기하며 공작은 막시밀리안에게 다시 한번 요른의 거처에 대해 이야기했다. 막시밀리안은 의외로 순순히 끄덕거렸다.

“예. 저도 이제 혼자서 지낼 나이가 되었죠. 침실 옆방은 전처럼 다시 종자에게 내어 주겠습니다.”

대신에 가정 교사를 한 명 딸려서 아이가 기본 교양을 쌓게 해 달라고 막시밀리안은 부친에게 부탁했다. 올리버는 받아들였다.

희멀겋고 푸르죽죽한, 빈민가 미혼모가 낳은, 외모만큼이나 괴상한 마법 재능을 타고난 어린 시동은 막시밀리안의 침소에서 멀리 떨어진 별채의 쪽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유디트 폰 프란첸은 요른을 입양하는 대신 후원해서 마도 학원에 보내 주기로 했다. 단, 아이가 어느 정도 말과 글을 익히고 나면 말이다.

막시밀리안은 전보다 더 검에 매진했고, 학원에서든 성에서든 거의 미친 사람처럼 단련을 거듭하고 필요한 지식을 쌓느라 바빠졌다.

그 와중에도 프란첸의 독자는 제 옛 시동을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은 찾아가긴 했지만, 꼭 승마용이나 검투용 장갑을 낀 채였다. 고용인들은 어린 주인님이 이제는 요른을 맨손으로는 건드리지도 않는다고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그 입양 건이 소년에게 큰 상처를 입혔나 보다고.

부모는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들은 몇 달이 지나자 유디트와도 다시 자연스레 말을 텄고, 어머니도 아들을 더욱 깍듯이 대했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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