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날 새벽, 요른은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또 무슨 꿈이지.’
요른은 생각했다. 기억나지 않는 악몽은 아침이면 편두통 비슷한 통증이 되어 몸을 괴롭히곤 했다. 그는 오랜만에 침대 곁 수납장에 손을 뻗어 훈장을 만지작거렸다.
막시밀리안을 못 본 지 두 달도 넘은 터였다. 강화 기사가 된 후 그는 말도 안 되게 바빠져서 요른의 집에 잘 들러 주지 못했다. 요른도 바빴다. 매일같이 공방에 마검 설계를 바쳐야 했다.
하지만 막시와 사이가 끊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며칠 전 요른은 막시밀리안이 자신이 설계했던 서른두 마리짜리 합성 마검을 들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고, 가슴속이 작은 날개가 파닥이듯이 찌릿하게 뿌듯해진 채 가만히 웃었다. 막시밀리안도 직접 들르지는 않았지만, 수하 보병을 시켜 꼭 새로 받은 훈장을 하나씩 전해 주곤 했다.
요즈음은 절차가 간단해져서 성황도 전처럼 원본과 약식을 따로 주지도 않고, 약식만 하나씩 건네 준다고 들었다. 그래도 막시밀리안은 그 약식 훈장을 받을 때마다 꼭 요른에게 보내 주었다.
‘보고 싶다.’
훈장의 도드라진 부분을 더듬으며 요른은 멍하니 생각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책상에 앉아 설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늦오전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작업을 방해받고 말았다. 움베르토 폰 사센이었다. 요른은 놀라서 문을 열어 주었다.
‘이런 숲길은 저 다리로는 걷기 힘들었을 텐데. 마차도 잘 안 오고.’
“무슨 일이세요?”
“문 닫아 봐.”
손님이 방 안으로 휙 들어서면서 지시했다. 요른은 얼른 문을 닫았다. 움베르토는 거실 한쪽의 쿠션을 덧댄 의자에 앉자마자 말했다.
“막시밀리안이 잠식되었어.”
요른의 몸이 굳었다.
“그그, 럴 리가.”
막시의 생명 징후에 이상은 없었다. 요 몇 달 내내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물로서 강해지는 거였다면. 눈앞이 까마득해지면서 요른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상대가 주저앉든 말든 움베르토는 말을 이었다. 그는 지금 연구소 지하 감방에 묶여 갇혀 있고, 열심히 싸우고 있다. 변형은 진행 중이지만 속도가 느리다. 아마 완전히 잠식되는 데에는 일주일, 길면 열흘까지도 걸리지 싶다.
“사, 사센 씨. 도도와 주세요.”
요른이 엎드리다시피 한 채 겨우 입 밖으로 말을 내었다.
“그 사사고때 저저 돌아왔었죠. 도돌아올 수 이있, 다다는 거거잖아요. 저절 돌려내 주셨죠. 그그렇게 다다시, 실험해해 봐요. 도도와주세세요.”
“그건 내 공과가 아냐. 날씨 덕분이었다고 했잖아.”
“아아냐, 다다른 벼변수도 있었을 거야.”
정신없이 더듬거리면서도 그는 겨우 이어 갔다.
“저저는 이이렇게 멀쩡하게, 돌아왔, 어요. 다다시 한번 제게 시실험해 봐봐요. 그그러면 실마리가, 제제발.”
“하려면 네가 해.”
움베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연구소 폐쇄된 거 알잖아. 인체에 마물 섞는 실험은 이제 완전히 금지되었고. 난 못 도와줘. 네가 몰래 네 몸에 직접 실험해 보든지.”
이어서 마흔넷의 흉터투성이 연구소장은 기이한 어조로 선포했다.
“그가 완전히 변하기까지는 기다려 줄게. 그때처럼 네가 선택해라, 요른. 서둘러. 그 후에는 내가 선택해 버릴 테니.”
“무무슨말, 사센 씨, 제제제발 도도와…….”
요른이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비는 걸 돌아보지도 않은 채, 움베르토는 목발을 짚고 휘청거리며 일어나 숲속의 사택을 떠났다. 연구소로 돌아가 잠식자의 상태를 계속 살피며 기다릴 예정이었다.
요른은 움베르토가 떠난 걸 깨닫지 못하고 한참을 더 엎드려 빌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걸 깨닫고 바닥을 긁으며 비명을 질렀다. 막시밀리안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를 듯하다가 흐려져 버렸고, 목소리가 살풋 울리려다가 지워졌다.
“하할수 이이있어.”
그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돌아올 수 있다.
요른은 그걸 몸으로 알고 있는 자였다. 잠식되었던 자도 이렇게나 멀쩡하게 돌아올 수가 있다. 그는 새삼 자신의 양팔을 내려다보며 확신했고 동시에 후회했다. 왜 진작 조르지 않았던가?
다른 기사들이 하나하나 잠식되어 가는 와중에, 막시밀리안은 끝까지 멀쩡할 거라고 믿기라도 했단 말인가? 움베르토에게 진작에 실험을 해 달라고 졸라, 돌아오는 방법을 파고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요른은 자신이 소홀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이길 거라고 말해 주고 떠났으니까.
꼭 이길 거라고 말해 주었고, 훈장을 차례차례 보내 주었으니까. 안심해 버렸다. 막시밀리안만은 정말로 이길 거라고,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돌이키자 눈앞이 컴컴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심연 어딘가로부터 문이 가느다랗게 열리며 칠흑 같은 빛살이 새어 나왔다. 정말로?
언젠가 거울 속에서 보았던 은빛 눈동자가 전해 왔다. 너는 지금 과연 슬퍼하고 있는 걸까?
“닥쳐.”
요른은 주먹이 아플 때까지 자기 머리를 갈겼다.
“닥쳐, 닥쳐.”
동향의 창으로 태양이 따갑게 짓쳐 드는 오전이었지만, 눈이 어두운 탓에 요른은 거의 시간을 깨닫지 못했다. 정오가 다 되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사방을 침침하게 더듬으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실험을 해 봐야 한다. 요른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움베르토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실험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걸.
인체 강화 실험은 모두 중단된 지 오래다. 연구소만 폐쇄된 게 아니라 규제도 엄격해졌다. 이제 와서 누가 사람 몸에 또 마물을 섞어 보겠다고 하면, 끌려가 처벌이나 받을 거다.
게다가 요른은 자기 몸에 마물이 얼마나 잘 섞여 드는지 알고 있었다. 이런 몸을 잠식까지 몰아붙이려면 아주 많은 양이 필요하다. 육 년 전 그날처럼 많은 양이, 그것도 여러 마리가 말이다.
크라우스 경. 뇌리에 문득 그 이름이 스쳤다.
베스퍼 폰 크라우스 기사단장은 전투에서 거두어 온 마물 조각의 수거와 분배, 폐기의 최종 승인자다. 수도에 가진 건물도 많으니 실험실로 쓸 방 하나쯤은 금방 준비해 줄 수도 있으리라.
대가가 뭐가 될 수 있을지는 뻔했다. 막시가 엄하게 금지한 일들 중 하나다. 하지만 이건 예외 상황이다. 요른 자신이 어리석어서 자초한 예외 상황. 그는 덜덜 떨며 외출할 채비를 했다.
병사들에게 이리저리 물어서 그는 프란첸가의 피후원자 자격으로 겨우 성기사 총사령관의 막사를 찾아갔다. 털어놓자 베스퍼는 다행히 끄덕이면서 되물어 왔다.
“대가는?”
요른이 답하자 그는 알았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몇 가지 질문을 추가로 던져 왔다.
“조각들은 얼마든지 빼돌려 줄 수 있어. 요즘은 어차피 거의 다 폐기하니까. 정말로 그가 돌아올 수 있다고 믿나?”
“저는 그때 돌아왔습니다.”
“움베르토는 그건 순전히 날씨 덕분이었다던데. 왜, 뭔가 다른 변수가 있었다는 근거라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어떻게 알지?”
베스퍼가 눈송이처럼 옅은 은빛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기억나는 거라도 있나?”
요른이 잠시 입술만 달싹이며 침묵했다. 그러나 곧 답을 내놓았다.
“모르겠습니다. 하하지만 다시 해 보면 기기억이 나날 것 같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해 보이며 청했다.
“다다시 한번만, 그그때와 똑같이 실험해 보면, 기기억이, 분명.”
상대가 결국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 걸 보며 베스퍼는 가볍게 턱을 만지작거렸다. 이 청년은 실제로 어떤 힘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고 당시 움베르토는 끝까지 날씨 탓만 했다. 하지만 베스퍼는 그때 현장 한가운데에 그 새하얀 열다섯 살짜리 소년이 있었으며, 그가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마물로 변했던 걸 똑똑히 보았다. 베스퍼가 하사받았던 새 마검을 질그릇처럼 깨뜨려 버렸던 마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년은 되돌아왔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날씨라는 변수가 가장 컸다 해도 이 소년 본인의 특수성도 함께 작용했을 수도 있다. 베스퍼는 끄덕거리며 다시 확언해 주었다.
“마검 공방으로 가는 길목에 방을 하나 내어 주지. 임시 창고인 척하면 돼. 조수 하나와 성기사 하나도 입막음해서 딸려 주마. 급할 테니, 오늘 밤부터 당장 진행해도 좋아.”
“감사, 합니다.”
“속은 비우고 왔나?”
“예?”
“대가를 치르겠다면서. 배 속은 비우고 왔느냐고.”
그러나 요른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며 베스퍼는 이 청년이 일을 어떻게 치르는 건지도 모르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의외였다. 총사령관은 다시금 괜스레 턱을 매만졌다. 그 프란첸이 당연히 몇 번은 취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어쨌거나 눈앞의 영 어리숙해 보이는 생물에게 방법을 알려 주었고, 저녁 몇 시쯤에 병영의 숙소에 들렀다 가라고 전했다. 요른은 예를 표하고 사라졌다.
요른이 저녁에 찾아오자 베스퍼는 문을 열어 주었다. 낮에는 막사에서 지내지만 저녁에는 병영으로 돌아와 사령관실에 머무른다. 업무실은 침실과 연결되어 있고, 침실은 벽도 두껍고 문도 제대로 잠글 수 있는 데다가 개인 욕실도 갖춰져 있다. 저녁 식사 후 두 시간쯤은 부사령관이 대부분의 업무를 대신 맡아 주기도 하니 시간도 넉넉하다.
청년이 들어오자 베스퍼는 커튼을 쳤고, 방 한구석을 가리키면서 요른더러 거기서 옷을 벗으라고 명했다. 새하얀 자는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저, 사실, 흉터가 많습니다.”
“알아.”
베스퍼가 답하자 요른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
“넌 기억 못 하겠지만 육 년 전 사고 때 내가 담당 성기사였어. 그 쪽방에 있다가 튀어 나갔지. 엄청 다친 걸 봤으니 나으면 흉터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얀 청년은 잠시 반은 허탈한, 반은 안심한 듯한 표정을 하고 서 있다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베스퍼는 가죽을 씌운 튼튼한 의자 하나를 당겨와서 방 한중간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의 체구에 맞게 큼직하고 무겁게 만든 의자였다. 바지까지 벗어서 바닥에 개켜 놓고 나서 청년은 베스퍼를 바라보았다.
“왜?”
“그, 더 벗어야 하는지요.”
“다 벗어.”
답하면서 베스퍼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속옷을 벗어 바지 위로 잘 개켜 놓고는 요른은 눈을 굴리며 또 베스퍼를 쳐다보았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나?”
베스퍼는 결국 혀를 차며 말했다.
“대가를 치르겠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날 건지, 어떻게 진행될 건지 어느 정도는 조사를 해 왔어야지.”
“죄송합니다.”
청년은 금세 겁을 먹고 고개를 조아렸다. 베스퍼는 머리를 내저으며 일어나서 요른에게로 다가가서 한쪽 팔을 잡았다.
팔목이 너무 가늘어 보여서 일부러 팔꿈치 윗부분을 잡았는데도 그 꼬챙이 같은 것은 한 손안에 다 들어오고도 남았고, 아무 살도 근육도 없어서 금방 부러져 버릴 것 같았다. 적당히 손에 힘을 빼고 널찍한 업무용 탁자 쪽으로 이끌자 요른은 양순하게 따라왔다. 남의 말을 따르는 데에만은 참 능숙한 자라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탁자 위에 상체만 걸쳐지게끔 배를 깔고 엎드리라고 시키자 요른은 역시 바로 따랐고, 베스퍼가 손을 뗀 후에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침착한 태도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데다가, 사실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기사단장은 부하가 주어진 과제에 의식 없이 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명했다.
“일어서. 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요른이 카펫이 깔린 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베스퍼는 가죽 의자를 그 바로 앞까지 가져다 놓고, 스스로 허리 벨트를 풀고, 앞섶의 단추를 몇 개 푼 다음 바지를 무릎까지만 내린 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요른에게 손짓했다.
“이제 무릎으로 기어 와서 이걸 빨아.”
“성기를, 입으로요?”
“그래. 내가 사정할 때까지 빨아 주면 돼.”
요른이 끄덕이며 다가왔다. 그가 접근하기 쉽게끔 베스퍼도 조금 의자 앞쪽으로 몸을 당겨서 앉아 주었다.
베스퍼의 몸에 맞추다 보니 의자 자체가 높은 편이었다. 좌판이 무릎을 세워 꿇어앉은 요른의 어깨쯤에나 맞아떨어졌고, 그는 다소 힘겹게 고개를 숙여 베스퍼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위를 향해 반쯤 들려 있는 붉은 곤봉 같은 것을 입에 넣으려 애썼다.
그리고 잘되지 않아서 당황했다.
보기에도 굵다고는 생각했지만, 입에 넣으려다 보니 정말로 너무 굵었다. 그의 귀두 지름이 요른이 입을 최대로 벌린 지름보다도 더 큰 것 같았다. 게다가 이빨마저 걸리적거렸다.
요른은 거의 턱을 찢듯이 입을 크게 벌린 채 그것을 어떻게든 입 안으로 넣긴 넣었다. 그러나 끝부분만 겨우 머금었는데도 한쪽 입가가 찢어졌고, 턱관절이 삐걱거렸으며, 귀두가 목젖을 찔러 숨을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요른은 그제야 이걸 입으로 빤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리라는 걸 깨달았다.
‘내 팔목…… 팔꿈치부터 손목 아랫부분까지 정도일까.’
요른은 가만히 가늠해 보았다.
‘굵기는 비슷해. 길이는 조금 짧은 거 같지만.’
그는 문득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성기는커녕 자기 자신의 성기조차도 발기한 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밤에 몽정했던 이후로는 계속 기능을 정지시켜 두었으니까. 성기라는 게 일어서면 원래 이렇게 큰 물건인지, 베스퍼가 워낙 체구가 큰 탓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크라우스 경 말이 맞아. 난 성행위라는 게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도 잘 몰라.’
깨닫자 덜컥 겁이 났다. 귀두 조금 아랫부분까지만 겨우 입에 머금은 채로 요른은 무심코 벽시계 쪽을 흘끔거렸다. 빨리 사정하게 해 줘야 실험실로 갈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빨리 끝낼 수 있을는지 아득했다.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그는 자책했다.
마음이 급해서 ‘대가’라는 걸 정확히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베스퍼가 늘 하고 싶어 했으니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말 그대로 몸만 왔다.
그래도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익숙하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다. 너무 모르니까 남의 말조차 제대로 따라줄 수가 없는 거다.
어리석었다. 이렇게 촉박한 상황에서 또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뉘우치던 와중에 베스퍼가 또다시 한숨을 쉬는 게 귓가에 닿자 요른은 더더욱 겁을 먹었다.
“앞니 때문에 아프잖아. 이래서는 가는 게 아니라 식지. 더 깊이는 못 넣겠어?”
그러나 입 안에는 더 남은 공간이 없었다. 요른이 어쩌지도 못하고 눈만 굴리고 있자 다행히 베스퍼가 그의 턱을 꽉 쥐어 벌리고는 성기를 빼내었다.
요른은 숨을 몰아쉬었고, 자기 눈에 눈물이 괴었다는 데에 조금 놀랐다. 기사단장은 요른을 다시 업무용 탁자로 데려갔다.
“올라가서 똑바로 누워.”
요른은 붉은빛이 도는 원목 탁자에 등을 대고 누웠다. 붉은 흉터가 여기저기 우툴두툴하게 얼룩진, 밤에 내린 눈처럼 새하얀 몸이 탁자 위로 펼쳐졌고, 복숭앗빛 유두와 움푹 들어간 배, 하나하나 도드라진 갈비뼈가 드러났다. 요른이 눈만 깜박이며 누워 있자 베스퍼가 명했다.
“머리는 밖으로 빼.”
요른은 그 말대로 움직여 어깨를 탁자 가장자리에 걸친 채 머리통만 탁자 밖으로 뺐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목이 확 젖혀졌다. 베스퍼는 그 턱을 꽉 잡아 억지로 입을 벌리고 자기 것과 비교하며 크기를 맞추었다.
“이 정도면 돼. 여기서 다물지 마.”
사령관이 달래듯이 말했다.
“손으로는 어디라도 잡고 있는 게 편할 거야. 탁자 가장자리라도 잡아 봐.”
요른이 턱을 닫지 않으려 애쓰며 탁자 가장자리를 쥐었다. 기사단장은 제 성기를 상대의 입술 사이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축축한 혀를 지나 목젖이 귀두에 닿는 게 느껴지자, 상대가 기침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얼른 마저 목구멍으로 밀고 들어갔다.
요른의 목이 순식간에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거의 그 목 자체만큼 굵은 게 안에 들어찬 탓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이물에 길을 내어 주느라 식도의 점막은 금세 헤졌고, 숨을 쉬는 건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반사적으로 탁자 위에서 펄떡거리는 몸을 내버려 두고 베스퍼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고환이 상대의 코를 짓누를 지경이 되자 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입술부터 시작해서 목구멍 전체를 다 썼는데도 끝이 남아 요른의 쇄골 사이의, 원래는 움푹 파여 있어야 할 부분이 두둑하게 튀어나왔다. 베스퍼는 천천히 삽출을 시작했다.
상대의 입술, 혀, 상부 식도 거의 전부를 다 사용하며 속도를 높이다가 그는 요른이 너무 버르적거리면 배를 한 대씩 갈겼다. 구토도 기침도 내뱉지 못하고 그 말라빠진 청년은 목구멍만 경련하며 조여 댔다.
베스퍼는 청년이 너무 마르고 약하다고 느꼈다. 기껏 들어간 구멍도 지나치게 좁고 뻑뻑한 바람에 오히려 사정까지는 가지 못한 채 사령관은 성기를 빼내었다. 계속하면 이 연약한 생물이 숨이 막혀 죽어 버릴 것 같아서였다.
빼내자마자 요른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구토를 시작했지만 몸은 뒤집지 못했다. 허락받은 동작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똑바로 누운 채로 저렇게 토하다가는 기도가 막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베스퍼가 대신 얼른 그 몸을 뒤집어 주었다.
탁자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바닥으로 다 토해 내고는 요른은 축 늘어져 버렸다. 베스퍼는 백발 머리채를 잡아 그 머리통을 끌어올렸다. 눈물과 땀, 구토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바라보며 베스퍼는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요른이 그 시선을 잘못 이해했는지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다 으깨지다시피 한 탓에 소리는 나오지 못했지만 베스퍼는 입 모양을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죄, 죄송, 합니다, 카펫, 죄송합…….
베스퍼는 픽 웃었다. 네가 토한 거니까 핥아서 치우라고 한마디만 하면 저 하얀 청년은 분명 엎드린 채 핥아먹을 것이다. 그 잘난 프란첸 경이 그런 식으로 길러 놓은 생물이다.
그러나 베스퍼는 그런 취미는 없었다. 다만 그는 상대의 머리를 움직여 그 시선이 자신의 사타구니를 향하게 조정했다.
“이걸 이제 네 항문에 넣고 움직일 거야. 방금 네 목에 대고 한 것처럼.”
상대는 답하려고 애썼지만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고, 대신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베스퍼는 그 와중에도 요른의 눈이 벽시계를 향하는 걸 눈치채고는 알아서 답해 주었다.
“나도 시간이 많진 않아. 제때 보내 주지.”
고맙습니다. 요른이 목을 그르렁대며 탁자 위에 엎드린 채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 대가를 치른다는 게 정확히 어떤 행위를 하는 건지 이해했나?”
하얀 청년이 진지하게 끄덕거리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베스퍼는 방 안을 둘러보며 높이를 맞출 만한 가구를 찾았다. 긴 휴식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앉기보다는 비스듬히 누워서 쉬는 데에 더 걸맞은, 작고 좁은 침상 같은 의자였다.
“저기 올라가서 무릎 세우고 엎드려.”
요른은 사지를 추슬러 탁자에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두 발로 서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베스퍼가 그 자기보다 키는 머리 하나는 더 작고 몸무게는 반이나 겨우 나갈 것을 가볍게 안아 올려 휴식 의자 위로 데려갔다. 데려다 놓자 청년은 나뭇가지 같은 팔다리를 움직여 겨우겨우 베스퍼가 지시한 자세를 취했다.
“엉덩이 더 올려. 다리는 어깨너비로 벌리고, 상체는 바짝 숙여서 엎드려.”
요른이 따르는 동안 베스퍼는 제 성기에 보호대를 씌우고 의자 뒤에 섰다.
“좀 더 뒤로 와. 발목이 의자 가장자리에 걸쳐질 정도면 돼.”
요른이 엉덩이를 세운 채 뒤쪽으로 무릎으로 기었다. 그러느라 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다. 베스퍼가 요른의 양 허벅지를 쥐고 그의 뒤쪽 입구와 자신의 치골 높이가 딱 맞아떨어지게 조정했다.
대충 되었다 싶자 기사단장은 준비해 두었던 향유를 상대의 항문 입구에 고루 발랐고, 손가락으로 드나들며 안까지 적셨다. 두 번째 손가락부터 벌써 물리기가 힘들자 베스퍼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힘 풀어.”
상대는 복종하려 애쓰는 거 같긴 했다. 다만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다. 이쪽 근육을 굳이 의식적으로 조정해 보려 애쓴 적도 없으리라. 베스퍼는 손가락을 세 개까지 집어넣어 쑤셔 대다가 어차피 풀릴 기미가 없자 그냥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양손으로 요른의 허리를 붙잡았다.
청년의 허리마저 양 손안에 거의 딱 맞게 들어오는 걸 내려다보며 기사단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골반뼈가 앙상하게 손잡이처럼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잡은 채, 그는 성기를 잠시 상대의 회음부와 허벅지 사이로 비벼대다가 곧 끝부분을 입구에 맞추었다. 뚫고 들어가자 청년이 머리를 의자 위로 처박았다.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면 질렀을 텐데, 청년은 여전히 목소리를 잘 내지 못했다. 베스퍼는 벽시계를 흘끗 보고는 허리에 힘을 실었다. 서두를 것까지는 없어도 지나치게 유희할 수는 없었다.
기사단장은 상대의 허리를 꽉 잡아 고정시킨 채 어쩔 수 없이 완전히 힘으로만 삽출을 반복했다. 지독히도 좁고 뻑뻑해서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조차 않았기 때문이다. 아까 그 목구멍보다도 더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비쩍 마른 주제에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나 싶게 조여 댔기 때문에, 성기가 둔중하게 아프기마저 했다. 도무지 쉽게 갈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빌어먹을.”
베스퍼는 몇 번 더 움직여 보다가 나직하게 욕을 내뱉고는 성기를 빼내어 기름을 좀 더 발랐다. 미끌미끌한 것으로 다시 푹 뚫고 들어가자 요른이 이번에는 제법 비명다운 소리를 냈다.
수십 번은 쑤셔 대고 나서야 겨우 삽출이 조금 편안해졌고, 끝에서 끝까지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입구의 마지막 저항까지도 다 부숴 버리듯이 길들이고 나자 마침내 쾌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흰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행위를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관통할 때마다 새어 나오는 쉰 신음만이 이게 한 생물이 무생물을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두 생물의 몸이 서로 얽힌 행위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고통에 못 견뎌 경련하는 허리를 꽉 잡은 채 베스퍼는 괜히 보호대를 찼다고 생각했다. 이 생물의 배 속에 사정해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이 이상한 생물이라면 어쩌면 항문으로도 자기 씨를 받아 무언가를 잉태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베스퍼는 결국 보호대를 빼고 맨 성기를 다시 삽입했다. 그리고 꺽꺽대며 숨을 참는 생물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이를 악물지도 못하게 했으며, 그것이 대신에 자기 손의 살점을 어금니로 자근대며 우는 걸 즐겼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그 생물 자신의 사타구니에도 손을 대어 서게 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반응은 없었다. 향유를 바른 손으로 충분히 문질러 주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없어서, 원래부터 불능자이거나, 아니면 몸에 무슨 조처를 해 두었겠거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세 흩트리지 마.”
지시한 다음 베스퍼는 양손을 엉덩이의 살집 쪽으로 옮겨 있는 대로 벌려 잡고는, 주름이 다 드러난 입구를 콱콱 찔러 대며 유린했다.
요른 자신의 팔목만 한, 그러나 그 창백한 것과 비교도 안 되게 색이 강하고 근육질에 힘줄마저 세운 것이 그의 배 속을 수도 없이 헤집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침내 부르르 떨며 체액을 뱉어 냈다. 고환이 요른의 회음부에 들러붙을 정도로 깊이 처박힌 채였다.
요른은 혼미한 와중에도 무언가가 자기 안에서 빠져나간다는 걸 느꼈다.
그것이 빠져나가야 일이 끝난다는 건 직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순간 차라리 나가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지독히 아프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음 대신 침만 질질 흘리게 된 지 오래였다.
고급 천을 씌운 휴식 의자의 좌판을 침과 눈물로 다 적셔 버렸다.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엉덩이 양쪽을 벌려 잡고 있던 손이 거두어지자 요른은 옆으로 쓰러지면서 의자에서도 떨어질 뻔했다. 그러나 베스퍼가 그를 안아 올려 똑바로 눕혀 주었다.
“나는 곧 야간 순찰을 나가.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사라져라.”
베스퍼가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곧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요른은 벽시계 쪽을 보았다. 그러나 눈이 흐려 숫자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누워 있으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 것 같아서 요른은 손톱을 세워 허벅지를 긁었고, 일부러 의자에서 툭 떨어지듯이 내려왔다.
옷을 어디에다가 개켜 놓았는지 잠시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바닥을 둘러보다가 겨우 천 조각들을 발견하고서 덜덜 떨면서 기다시피 그쪽으로 다가가 몸에 끼우기 시작했다.
겨우 아래 속옷과 바지에 다리를 끼워 넣는 데에 성공했으나 어지럼증이 엄습했다. 그는 구부정하게 주저앉은 채 또 카펫에 토했다. 눈앞이 샛노란 가운데 입에서 노란 위액과 녹색 담즙이 차례로 흘러나왔다. 항문에서도 뭔가가 흘러나와 속옷을 적셨지만 신경 쓸 기력이 없었다.
‘다 했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뿌듯함이 마음을 적셨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다 한 건가 봐. 이제 가면 돼.’
눈이 천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트이자마자 요른은 다시 벽시계를 보았고, 웃옷도 마저 입었다.
후들거리며 일어나자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실험실 주소와 조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다른 쪽지 하나도 같이 놓여 있었다. 요른이 실험실을 사용하고 마물 조각을 제공받는 동안은 매일 비슷한 시각에 병영에 들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합성 마검 설계 전문가로서 사령관님과 상담을 한다고 경비에게 말하면 통과시켜 줄 거란다.
아마 매번 같은 일을 하게 되리라고 요른은 짐작했다. 오늘 잘 배웠으니까 이제 실수할 일은 없으리라. 주소와 쪽지를 챙겨 품에 넣고 그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통증 때문에 겨우 문까지 다다라서는 손잡이를 잡는 대신 그냥 문짝에 기대어 섰다. 복도를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속도로 여기 적힌 주소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앞이 까마득해졌다.
‘시간이 없어.’
예외 상황이다. 창문도 없는 지하 감방에 홀로 갇혀 싸우고 있을 기사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고, 하얀 청년은 전송 마법을 써서 제 몸을 주소지에 가까운 적당한 좌표로 옮겼다.
* * *
익일 오후, 그로쉔의 수도, 작년만 해도 왕국 마도 협회 본부로 이용되던 건물 2층에 앉아 필립 블랑쇼는 대륙 여기저기서 도착한 급보들을 차례로 읽어 보았다. 사업가 협회원 몇 명이 그가 앉은 마호가니 탁자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황국 수도의 소식입니다.”
필립이 개중 하나를 밀어 놓으며 말했다.
“린다 투트 크라흐트가 체포되었다는군요.”
“그럼 성문을 열어 줄 사람도 사라진 거 아닙니까?”
“아뇨, 몇 달 전에 다른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녀도 곧 들킬 걸 예상은 하고 있었거든요.”
전송 마법으로 단 한 번 얼굴을 접했던 불구의 마법사를 떠올리며 스물일곱 살의 소위 마왕군 참모는 협회원들에게 전했다.
몇 달 전, 전 인체 강화 연구소 소장의 모습을 보고 출생 기록을 읽으면서 필립은 이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협조해 주리라 짐작했고, 그가 육 년 전 사고 때 요른의 정체를 감추어 준 이유도 이해했다. 문이 열리고 블랑쇼 부인이 들어왔다.
“어머니.”
“아들아.”
그녀는 다른 협회원들에게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해 보이고는 물었다.
“어때, 그분의 각성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니?”
“딱히 새로운 소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의 진짜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건 확실해요.”
필립이 어깨를 으쓱하자 어머니는 탄성을 지르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믿을 수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시국에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니 정말인가 보네. 폰 프란첸가의 후계자가 계속 그의 정체를 감추어 왔다고?”
“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안 그랬더라면 진작에 들켰을 겁니다. 실제로 죽일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조각을 내어 상자에 봉인하든지 영원히 잠을 재우든지 여러 가지로 시도는 해 봤겠죠.”
그런 외모에 그런 능력이라니, 상황이 나빠질수록 요른은 더더욱 의심받았을 것이다. 성황국 측에서 가만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필립 본인도 유학 후 한 이 년간 혼자서 조사해 본 것뿐인데 금방 요른의 정체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가 있었다. 심지어 그는 마법사도 학자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다음 협회에 의뢰해서 문헌학자들의 손까지 빌려보니 더 확실한 결론이 나왔지만.
육 년 전, 계속 고문서 필사본을 보내다가 실패해서 필립은 결국 흑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요른의 각성을 유도했다. 각성이 중간에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립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하필 성황국 마도 협회 산하의 연구소 한가운데에서 일이 일어날 줄이야. 필립은 소속 마법사들이 금방 눈치채고 성황에 보고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 필립은 린다 투트 크라흐트에게 정보를 너무 많이 주었던 걸 후회했다. 이쯤 되면 그녀도 슬슬 그 하얀 소년의 정체가 뭔지, 필립을 위시한 페랑의 사업가들이 왜 그 소년에게 천착하는지 눈치챌 만도 했다. 사업가들은 속이 빠듯하게 탄 채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알아보니 움베르토라는 연구소장은 오히려 제 피험체를 감싸준 눈치였고, 막시밀리안은 린다에게 엉뚱한 가짜 정보를 전해서 달랬다고 한다. 페랑의 사업가들이 흑마법사들과 협력해서 인체 강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성황국에서 기사의 육체 강화를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페랑 사업가들은 사람 몸에 마물을 섞어 마법력을 강화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완성된 모범으로서 요른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며, 그 애의 진짜 힘을 일깨워 주고 자기들 편으로 포섭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프란첸가의 독자는 크라흐트 가의 영애에게 그렇게 설명하면서 필립과 연락을 끊으라고 위협했다고 한다.
“때가 오면 우리가 강화 마법사들을 내세워 성황국의 강화 기사에 대항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답니다. 린다 투트 크라흐트가 제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는군요.”
당시 정보원 중 하나의 보고를 받아보고는 협회원 하나가 어리둥절해서 필립에게 물었다.
“왜 그 프란첸이 제 친구에게 이런 엉뚱한 소리를 했을까요? 우리가 흑마법사들과 협력 중인 거야 맞지만, 강화 마법사라니.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일인데요.”
“프란첸가의 독자는 사실은 우리보다 더 소설을 잘 쓰는 그로쉔인이지요.”
스물한 살의 필립은 웃으며 답했다.
“어릴 때부터 그 애가 반쪽짜리 마물이라고 소문을 냈던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은 그냥 감춘다고 덮어지지는 않아요. 더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가짜를 필요로 하죠. 린다는 특히나 기사 강화 실험을 주도하던 인물이니 바로 믿었을 겁니다.”
“아니,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협회원이 고개를 저었다.
“용사 후보라는 그 대귀족가 청년이 왜 마왕을 감싼다는 겁니까? 정체를 알고 있는데도 계속 살려 두고 지켜왔다고요? 그가 속으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새 세상이 오기를 소망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아뇨, 그냥 그가 우리 페랑인들보다도 훨씬 더 낭만파라서 그럴걸요. 말이 혀끝에 걸렸지만 필립은 뱉지는 않았다. 농담조로 뱉기에는 그 마음은 참담하도록 간절했다.
길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까. 필립은 생각했다.
그로쉔의 그 기숙사 방에서 내가 막시밀리안, 네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더라면 어땠을까. 그 애가 대체 뭐냐고 묻는 게 아니라, 그 애가 네게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더라면. 네 표정은 달랐을까. 아주 조금이라도 너는 내게 마음을 열어 보여 주었을까. 나는 어쩌면 너조차도 우리의 길로 설득해 들여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미 십 년 전에 지나가 버린 일이었다. 필립은 대신 몇 마디 덧붙여 협회원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어쨌거나 잘된 거 아닙니까. 우리는 마왕의 바로 곁에 아주 강력한 내통자를 둔 셈입니다. 그를 지키는 건 프란첸 경의 손에 맡겨 두고, 각성시킬 다른 방법이나 찾아보지요.”
협회원들은 그때 석연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육 년 후 지금, 그들은 필립의 얘기를 완전히 믿게 된 듯했다. 졸업 후 요른은 뛰어난 마법사로서 전장에 불려 나갈 만도 했는데 이상하게 한직에만 머물렀고, 최근에 결국 성황의 눈에 띄었으나 그 기회도 금방 무산되었다고 들었다. 이 정도라면 옆에서 누가 계속 손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협회원들은 가끔 필립더러 막시밀리안의 의도가 대체 뭐겠냐고 질문을 해 왔다. 왜 그가 이십여 년간 마왕을 곁에 두고 지켜 온 거냐고.
그러나 필립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성적인 이유를 찾으려 그도 수도 없이 셈해 보았으나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답이 아니었다.
그렇게 거대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를 그저 단 하나의 누군가로 여길 수는 없다.
필립은 그런 식으로 살아오지 않았고 누군가가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 믿기도 힘들었다. 그런 태도는 불경으로 여겨졌다. 신을 한낱 인간으로 낮춰 대하는 것과 같으니 결국 삐뚤어진 관계밖에 맺지 못해 타락해 버리리라.
하지만 아무리 신념이나 사상의 문제로 삼으려고 해도, 배후나 이해관계를 상정하려 해 봐도 그 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꾸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그로쉔 학원 기숙 식당 뒤 관목 숲, 한낮에도 지지리 비틀리고 음습한 그림자 속에 갇힌 채 그러나 그토록 서로만을 응시하던 두 소년이.
그리고 필립은 그 시절 자신이 막시밀리안에게 던졌던 질문을 후회하게 되었다.
육 년 전에 한번 아찔하게 실패한 후, 사업가들은 딱히 요른을 재각성시킬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던 듯했다. 한 번 깨어진 벽은 문의 형태로만 닫혔고 문의 틈새로 향기가 빠져나오듯 마왕의 존재는 천천히 온 대륙에 퍼져 기후를 지배했다. 지난 육 년간 마물들은 점점 더 강해졌으며 흑마법의 권역도 불어났다. 문이 활짝 열리는 건 이제 단순히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스물일곱 살의 필립은 방에서 다른 협회원들을 물리고 블랑쇼 부인만 남겼다. 그녀에게만 따로 전하고픈 소식이 있었던 탓이다.
모친에게 막시밀리안, 그러니까 그 유일한 강화 기사가 며칠 전부터 갑자기 전장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을 전하며 필립은 자신의 소견도 덧붙였다. 블랑쇼 부인도 끄덕거렸다.
“그래. 다른 성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잠식된 거겠지. 그마저 사라지면 성검이 강림한다 해도 이제 성황국에는 그 주인으로 선택받을 만한 자는 정말 하나도 없는데.”
“예. 만약 그가 잠식된 게 사실이라면, 우리 쪽으로 완전히 승기가 기운 거겠죠.”
“두 미래 중 한쪽으로 말이지?”
부인이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야 그분의 강림도 정말로 머지않았구나.”
“예. 곧 깨어나실 겁니다.”
필립도 웃어 보였다.
그러나 모친이 나간 다음 필립은 잠시 이마를 짚은 채 눈을 내리감았다. 그는 사업가 협회에서도 유일하게 유디트 폰 프란첸의 예언 해석 완전판을 접해 본 사람이었다.
이 년 전에야 프란첸 공작 부인은 자신의 예언 해석 완전판을 성황국 마도 협회에, 그것도 신뢰하는 간부 두 명한테만 사적으로 서신을 써서 공개했다. 필립이 배치해 둔 정보원들이 그 서신을 중간에 가로채어 살펴보는 데에 성공했고 필립에게도 사본을 전했다.
필립은 한참 고민하다가 다른 협회원에게는 사본을 전하지 말라고 정보원들에게 명했다. 입막음을 할 만한 충분한 돈도 주고 협박도 하면서 말이다. 그 자신도 한번 읽고 불태워 버렸다.
마왕이 강림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러고도 나서도 다시 구세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소식을 안 그래도 지친 협회원들에게 전하기는 싫었다. 비슷한 이유로 유디트 본인도 조심스러웠으리라.
‘흑마법사들은 오히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생각하며 필립은 입 밖으로도 허탈하게 뱉고 말았다.
“두 미래가 이런 식으로 서로를 배제하는 수가 있나.”
그리고 이 년 후 지금, 그는 마호가니 탁자에 한쪽 팔꿈치를 기댄 채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마침내 막시밀리안도 잠식되고 말았다. 그의 몰락은 마왕의 강림을 앞당길 수는 있다. 그러나 마왕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는 그로쉔 학원에서 보았던 둘의 모습을 떠올렸다. 심장이 뜨끔거렸지만 필립은 감상을 떨치듯이 속삭였다. 우리에게 와라, 요른.
우리 모두에게로 와.
전 세계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단 한 사람을 선택하지는 마라.
“네가 자유로워지길.”
필립은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한마디 덧붙여 빌려고도 해 보았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어느 쪽을 택해야 마왕 자신이 행복해질지는 필립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
요른은 눈을 떴다.
자신이 언제 기절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몸 위에는 아직 베스퍼가 있었고, 멍든 허벅지는 넓게 벌어진 채, 입에서는 계속 신음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목에는 넣지 않아 준 덕에 음성이 생생했다.
베스퍼가 요른이 깨어난 걸 보더니 명령했다.
“계속해.”
뭐더라, 하고 헤매다가 요른은 겨우 기억해 내고는 자신의 성기에 손을 댔다. 원래 성행위라는 건 둘 다 사정해야 끝나는 거라고 베스퍼가 전에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 요른도 상대가 안에 있을 때 가야 한다는 것이다.
“몸에 무슨 마법 걸어 놓은 거 같던데, 다음에는 풀고 와라.”
베스퍼는 그저께 요른이 병영을 방문했을 때 지시했다. 그날은 그는 상대를 안지는 않았다. 바빴기 때문이다. 요른은 들렀다가 그냥 인사만 하고 떠났다.
베스퍼는 첫날 요른더러 매일 저녁에 들르라고 쪽지를 남겨 두긴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매일 안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이런 상황에 기사단 총사령관이 시간이 많을 리가 없었다. 어제도 그는 요른을 그냥 돌려보냈고, 오늘 방문했을 때에야 베스퍼는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잠갔다.
기사단장은 요른의 벗은 몸을 안아다가 침상에 똑바로 눕혀 놓고는 무릎을 굽혀 양다리를 가슴에 안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요른이 자세를 취하자 바로 뚫고 들어왔다.
그가 한번 사정할 때까지는 요른도 눈물과 땀 범벅이 된 채로도 다리를 꽉 안은 채 버텼다. 그러나 빼지 않고 안에서 다시 불어나더니 전보다도 더 난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다.
요른은 깨어나서 자세가 달라져 있는 걸 눈치챘다. 여전히 어깨와 등은 시트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베스퍼가 스스로 침상에 올라와 무릎을 세워 앉은 채, 요른의 엉덩이와 허리를 제 허벅지로 높이 받치고, 손으로는 요른의 발목을 잡아 침대 위로 꽉 눌러 놓고 있었다. 요른은 자신의 양 발목이 자기 머리 양옆에 놓여 있는 걸 보았다.
허리가 심하게 접혀 아팠다. 자세 때문에 그의 것이 자신의 엉덩이 사이를 드나드는 게 눈앞에 그대로 보였다.
베스퍼가 시선을 눈치챘는지 움직임을 늦추고 살집을 더 벌려 잡아 보여 주었다. 샛붉게 부어오른 입구가 기괴하리만치 넓게 열린 채로 주는 대로 다 먹어 삼켰고, 뺄 때도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구역질이 나서 요른은 고개를 돌렸다. 베스퍼가 다시 속도를 붙였다.
입구에 발랐던 기름은 너무 오래 삽출하느라 다 말라 버린 채였다. 비부가 찢기면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요른은 시야가 샛노래지면서 눈이 뒤집히는 걸 느꼈다. 베스퍼가 뭐라고 명령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사정은 첫 번째보다 느렸다. 기사단장은 청년이 완전히 정신을 잃을 때까지 몰아붙인 후에야 끝을 보았고, 가볍게 상대의 뺨을 때려 깨웠다.
“마지막이야. 빨리해.”
베스퍼가 덧붙였다.
“사흘 밀렸으니 나는 세 번 하는 거야. 너는 한 번만 하면 돼.”
요른은 양손으로 열심히 자신의 성기를 문질렀다. 베스퍼가 향유도 손바닥에 넘치게 부어 주었다.
그러나 젖은 손으로 제 성기를 주물럭대면서도 성감이고 뭐고 느낄 새도 없이 요른은 신음만 질질 흘리며 허리를 뒤틀었다. 배 속의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달군 곤봉으로 후벼 파헤쳐지는 듯한 고통은 행위가 진행될수록 심해지면서 오히려 격통으로 변했고, 결코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요른은 절망적으로 제 성기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나 곧 그 손마저 놓쳐 버렸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알고 있긴 했다. 아프다. 뭐라 할 수 없이 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다…….
요른은 순간 웃을 뻔했다. 입가에 미소가 감돌면서 머릿속도 따라 반짝거렸다. 다시 잠깐 기절해 버리지 않았더라면 분명 변화를 일으켰으리라. 정신이 들자 베스퍼가 손을 내려 엄지로 입가의 타액을 닦아 주며 달래는 중이었다.
“네가 가야 나도 가. 빨리해.”
“죄송, 합니다.”
“맘에 둔 사람이 있으면 생각하든지.”
베스퍼가 말했다.
“남자면 더 좋겠지. 지금 네 몸 안에 있는 게 그 사람 거라고 생각해 봐.”
그러나 그는 요른과 눈이 마주쳐 등골이 오싹해졌다.
성기도 순식간에 식어 버릴 뻔했다. 베스퍼는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돌리며 다시 열감을 부추겼고, 요른의 눈에서 시선도 피해 버렸다.
누구나 성역은 있기 마련이다. 베스퍼는 자신이 지금 이 이상한 생물의 성역을 건드렸다고 확신했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청년이 그 성역에 가둬 둔 자가 누구일지는 너무도 뻔했다. 그렇지 않더라면 애초에 갑자기 막사로 찾아와서 실험을 도와 달라고 빌지도 않았으리라. 베스퍼는 요른의 몸에서 성기를 빼내고 그의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드리게끔 했다.
“무릎 세우고, 엉덩이 올려. 그래.”
베스퍼는 그대로 끝까지 밀어 넣었다. 청년이 비명을 질렀다.
이 깡마른 생물은 새로 넣을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른다. 베스퍼는 그러나 이번에는 마구잡이로 치대지는 않고 적당한 지점을 노려 조금씩 긁었다. 그러면서 청년의 등 위로 엎드린 채 그 아랫배에 손을 댔다.
“안 보이면 괜찮잖아. 그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는 청년의 귓가에 이름 하나를 속삭여 주었다.
요른이 이를 부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베스퍼는 또렷하게 그 이름을 전했고, 그도 너를 사랑한다고, 자신은 가까운 동료라서 다 안다고 달콤하게 꼬드겼다. 어느 날 술에 취해서 그가 너에 대한 마음도 욕정도 다 털어놓았다고 말이다.
“그는 사실 너와 늘 이렇게 놀고 싶었다고 했어. 생도 시절부터 말이야.”
그동안 안 건드린 건 네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다, 건드리면 걷잡을 수가 없을 거 같아서 참은 거다. 꾸며대어 속삭이면서 베스퍼는 안에서 완만하게 치댔고 앞에서는 향유에 적신 손으로 상대의 성기를 움켜잡고 앞뒤로 문질렀다.
하얀 청년의 허리가 어느 순간 확 휘었다. 아랫배가 경련을 일으켰고, 내벽이 무섭게 수축하면서 베스퍼의 성기를 감싸고 물결쳤다.
베스퍼는 상대가 제 배와 시트를 적시며 싸놓은 양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 깡마른 몸에서 저만큼 뱉어 놓다니, 얼마나 쌓아 두었던 건지 모르겠다.
기사단장은 요른의 성기를 매만지던 손을 떼고, 각각 한 손에 들어올 만큼 가느다란 허벅지를 움켜잡아 벌린 채 푹푹 찔러 세 번째로 사정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를 놓아 주었다.
요른이 눈을 뒤집고 거꾸러졌다. 다물어지지 못한 곳에서 정액이 피에 섞여 흘러나왔고 전신이 식은땀으로 번들거렸다. 베스퍼는 욕실에 가서 성기와 손을 대충 닦고 돌아와 옷을 갖춰 입었다.
베스퍼가 옷을 다 입을 때까지도 요른은 온갖 체액으로 얼룩진 시트 위에 늘어져 있었다. 베스퍼는 벽시계를 보았다. 요른도 늦었고, 베스퍼 자신도 늦었다. 벨트를 조이며 그는 세 번이나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로 회의에 늦는 건 경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더 하고 싶기도 했다. 성욕을 넘어서는 광기가 스멀스멀 아랫배를 채웠다. 평생 자신이 이런 종류의 성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 그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강간하고 싶었다. 목을 조르면서 아래를 후벼파다가 종국에는 시체 안에 사정하며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죽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냐.’
그만둬야겠군. 베스퍼는 미간을 깊이 찌푸린 채 재킷을 마저 걸쳤다.
이 생물은 정말로 괴상한 반편이다.
행위 전에 베스퍼는 요른에게 실험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고 물었다. 청년은 더듬대며 아직 성과가 없다고 답했다. 베스퍼는 더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지만, 청년의 모습을 보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벗겨 놓고 맨몸을 봐도 어디 하나 빠진 데 없이 멀쩡하기만 한 모습이다. 잠식 자체가 일어나지 않아 돌려내는 시도도 할 수가 없었으리라.
육 년 전 사고 때 베스퍼가 캐묻자 움베르토는 결국 털어놓았다. 요른은 아무래도 진짜 혼종인 거 같다. 마물과 인간 반반이 완벽하게 섞여 있고, 균형을 유지하는 힘이 워낙 강해서 아무리 한쪽만 더 섞어도 무너지지 않는 거라고. 그래서 피험체로 귀히 사용해 왔다고 했다.
베스퍼는 그전에도 요른에게 관심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가 혼종이라는 걸 확인받은 후로는 몇 배로 홀려 버렸다. 천천히 꾀는 정도가 아니라 체면도 안 가리고 강간을 시도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마침내 그것을 실제로 안게 되었지만, 처음 안고 나서 이틀을 냉대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첫날 안았을 때의 감각이 두려워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충동과 불길함 사이에서 헤매다가 사흘째인 오늘은 결국 받아들였다. 그리고 역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 혼종은 베스퍼 자신의 몸마저 섞어 받아들이는 듯했으며, 몸만이 아니라 머리와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버린 듯한 순간마저 있었다. 상대의 고통과 열감 모두가 뇌를 통해 전신 구석구석에 전달되는 듯한.
유린당하듯이 유린하다가 절정에 오르면 그것의 목을 조르고픈 충동이 들었다. 그래도 그것은 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균형이 워낙 완벽해서, 아무리 삶과 죽음 어느 한쪽을 더해도 추가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다.
“……미쳐 가는군.”
베스퍼는 탁자로 걸어가서 적당한 종이에 또렷한 필체로 썼다. 대가는 충분히 받았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라.
황국군 총사령관이 이런 시국에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니고 웬 반쪽짜리 마물의 몸뚱어리에 미쳐 몰락해 버릴 수는 없었다. 베스퍼는 황국의 성기사로서 제 본분을 선택했고, 쪽지를 잘 보이게 펼쳐 놓고 발길을 돌렸다.
요른은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지가 문득 꿈틀거렸다. 악몽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고통, 모멸, 성역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침입당한 분노와 슬픔이 몸을 터뜨릴 듯 안팎에서 눌러댔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지난 며칠 실험을 반복하면서 그의 어딘가가 깨어났고, 점점 더 깨어 나왔기에 그는 이제 잘 알고 있었다. 하얀 생물은 눈을 떴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고통이 전신에서 끔찍한 환희처럼 빛났고, 피와 멍이 그 어느 때보다도 순결한 살과 피로 화했으며 입술과 뺨에 장밋빛이 돌면서 눈동자가 새벽의 설경처럼 새파랗게 웃었다. 흉터는커녕 티 하나 없는 몸으로 킥킥 웃다가 그는 문득 막 1층 회의실로 들어서는 중인 기사단장의 머릿속에 손을 댔고, 동시에 자기 몸을 실험실로 이동시켰다.
총사령관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기사 간부와 마도 협회원들이 일어나 인사했다. 베스퍼는 사과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요.”
“앉으시죠.”
마도 협회장이 손짓했다. 움베르토도 착석해 있었다.
협회장은 늘 그렇듯 지난 일주일간의 날씨 변화 지표를 보여 주었고, 흑마법사들의 동향을 설명했다.
“보십시오. 날씨가 요 사흘 갑자기 이상하게 더 좋아졌어요. 그러면서 기현상마저 일어난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무슨 기현상 말입니까?”
“가만 내버려 둬도 식물들이 섞여 새로운 종이 되고, 동물들이 마물이 된다는 얘깁니다. 게다가 흑마법사들이 더 특이한 전송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있고요.”
협회장은 거의 절망적인 안색을 하고 있었다. 베스퍼가 묻는 듯이 쳐다보자 그가 말을 마저 토해 냈다.
“말도 안 되는 거 같지만, 생각을 머리에서 머리로 바로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는 베스퍼의 안색이 흔들리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이어 갔다.
“남이 전달해 온 생각이 자기 스스로의 생각과 분간이 안 될 지경이라더군요. 한 부대장이 제 머릿속에 든 게 자기 생각인 줄 알고 그대로 명령을 내리려다가 깜짝 놀라서 상담해 왔습니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흑마법사들 표현을 빌리자면, 마왕의 힘이 강해지고 있어서 그렇겠지요.”
움베르토가 끼어들었다.
“날씨라는 게 어떤 건지 우리도 슬슬 감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성황의 타블로가 사물을 질서정연하게 분류하는 힘이라면, 이 돌풍은 그 모든 걸 다시 섞어 버립니다. 동식물을 서로 섞고 멀리 떨어진 장소들마저 서로 섞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서로마저…… 이 두개골 속에 분리된 사고마저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 버리죠.”
“그런 힘의 원천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기사 간부 하나가 고개를 내저으며 묻자 협회원이 조금 짜증스럽게 맞받았다. 이 우직한 성기사들은 가끔 아주 단순한 비유 하나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몇 달 전 회의 때 유디트 폰 프란첸이 딱 떨어지게 설명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오동나무는 박달나무가 아니고, 박달나무는 오동나무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둘이 서로가 ‘아닌’ 곳에는…….
질서보다 오래된 것, 그러나 질서가 낳은 것. 움베르토는 둘이 얘기하는 걸 보고 있다가 베스퍼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총사령관이 뭔가 고심하는 듯 찌푸리고 있는 걸 눈치채고 그를 불렀다.
“크라우스 경?”
베스퍼는 오만상을 쓴 채 앉아 있었다.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기억을 바꿔치기라도 당한 것 같다. 그런 깡마른 것에게 당하다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깔려서 관통당하고 울고 애원하다가 스스로도 즐거웠던 것 같은 기억이 기괴하리만치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
돌이키다가 베스퍼는 움베르토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실례합니다. 그게 사흘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협회장이 짧게 답했다. 베스퍼는 그제야 움베르토 쪽을 보았고,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회의가 끝난 후 움베르토는 베스퍼의 사령실에 잠시 들르러 했다. 그러나 베스퍼가 막고서 옆의 휴게실로 이끌었다. 움베르토가 머리를 저었다.
“방에다 무슨 짓을 해 놨길래? 너 설마…….”
“본론만 말해. 막시밀리안은 아직 버티고 있나?”
“꽤 잘 버티고 있어.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움베르토가 끄덕거렸다.
“사슬이 못 버틸 거 같아서 새로 달고, 몸에 한 열몇 군데 아예 철근을 직접 박아 벽이랑 바닥에 고정해 뒀거든. 직원들이 무서워서 안 하려는 거 설득하느라 혼났다. 그래도 박아 넣는 동안 알아서 얌전히 있더라고. 며칠은 더 괜찮을 거 같아.”
“그렇군. 요른의 실험은 아직 진척이 없다는데.”
“없진 않은 거 같던데.”
“무슨 뜻이지?”
베스퍼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너 내게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아닌가? 그 사고 때부터 말이야. 날씨가 확 좋아진 게 사흘 전부터라고 했지. 내가 요른에게 실험실을 내어 준 것도 그때부터다. 그리고…….”
[머리에서 머리로 생각을 전달한다는 겁니다.]
베스퍼는 협회장의 말을 되새겼다.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면 머리를 파고들어 기억마저도 멋대로 주물러 놓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스퍼는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 놓지는 못했다. 눈앞의 인물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다가 그런 현상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는지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가 알아서 눈치채 주면 모를까, 제 입으로 말하기는 꺼려졌다. 움베르토가 싱긋 웃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네 눈에도 진척이 보이게 될 거야.”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베스퍼의 어깨를 툭 치고는 등을 돌렸다. 목발을 짚은 채 자세를 바꾸느라 어깨가 기우뚱했다.
베스퍼는 찡그렸다. 다리도 잘려 나간 주제에 언젠가부터 저 친구 태도에는 여유가 붙었고, 동시에 어딘가 알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베스퍼는 그 등에 대고 나직이 물었다.
“요른은 대체 뭐야?”
움베르토가 돌아보았다. 외눈만 박혀 있는 흉터투성이 얼굴이 새삼 베스퍼의 시야에 박혀 드는 가운데, 색이 다 바래어 버린 금발의 마법사는 망가진 성대를 울려 친구에게 전했다.
“나 몸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베스퍼는 입을 다물었다.
절뚝대는 뒷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