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23
“옆! 옆!”
[위다! 막아라!]
“정면!”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다급한 목소리만 계속 이어졌다.
형우 일행은 엑시디움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거인의 모습에서 다시 연기로 돌아간 엑시디움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연기라고 표현한 것도 보여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때 그런 모습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하는 거였다.
‘상대는 연기로 변하고 주변은 보이질 않고…….’
안 그래도 빛이 모두 사라지자 오직 느껴지는 기운으로만 방어해야 했다.
그것도 사방에서 몰아치는 터라 완벽히 방어하려면 정말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로 타격을 줘야 하는 거야?!”
날아드는 연기를 막아봤자 엑시디움에게 하나도 타격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본체가 어딨는지 찾아보려 했으나 본체에 대한 기운도 전혀 안 느껴졌다.
사방 모든 곳에서 엑시디움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형우 일행 모두가 패닉 상태였다.
[이번엔 아까보다 춤이 더 낫구나.]
“와, 약올라!”
엑시디움의 말에 민희는 짜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주변 배경이 바뀌고 난 뒤로 정신없이 방어만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짜증 나는 건 엑시디움의 말이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상황에서 뭐 더 얻을 게 있다고 계속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은 계속 듣다 보니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는지 민희를 빼고는 다들 침착하게 변했다.
[이거 얼마나 이렇게 더 막아야 합니까?]
신 중에서 가장 약한 엘리안은 진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방어 위주의 능력만 있지만 그렇다고 방어만 계속하는 게 편한 게 아니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더더욱.
정말 막는 게 고역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이걸 얼마나… 파괴!]
파아앙!
인사니오는 말하던 도중 날아온 공격을 파괴로 막았다.
사실 인사니오의 파괴는 사실 차민의 파괴와 질적으로 다른 능력이었다.
차민이 대상을 소멸시키는 정도에 그친다면 인사니오는 대상의 모든 걸 소멸시켰다.
그게 대상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든 영혼이든.
인사니오의 능력에 당하면 정말 영혼조차 남지 않았다.
그런데 엑시디움은 신기하게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연기에 계속 공격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경우엔 결국 답은 하나였다.
‘본체가 아니다.’
지금 형우 일행을 공격하는 저것들은 본체가 아니란 거였다.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타격은 있어야 했다.
그게 파괴가 가진 힘이었으니까.
그런데 통하지 않으면 결국 본체 아닌 걸 본체라고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처음 보여준 건 페이크인가?’
형우는 계속 몰아치는 공격들을 막으며 생각했다.
엑시디움은 처음 자신을 보여줄 때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거짓일 수 있었다.
‘대법관이 말했던 게 이건가?’
대법관에게 들은 한가지가 있었다.
기억이 온전치 않아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없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엑시디움의 본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초기에는 본체로 활동했는데 언젠가부터 본체가 아닌 가짜로 활동했다고 했다.
나중엔 아예 나서지도 않았고 차원 침략을 모두 그의 종족들에게 일임했다고 말해줬다.
대법관은 그게 엑시디움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모른다는 거지만.
한가지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분노.’
엑시디움이 새롭게 얻은 이명인 분노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걸로 인해 엑시디움은 계속 본체를 숨기고 있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순 있어 보였다.
‘근데 그게 본체가 아니라는 게 더 충격이네.’
엑시디움이 보여줬던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형우!]
“제어! 크윽!”
잠시 생각에 너무 빠졌는지 방어가 소홀해졌고 인사니오가 급하게 소리쳤다.
형우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제어를 사용했다.
정말 바로 앞까지 온 공격을 제어로 겨우 막았다.
그러나 급하게 막아서 그런지 공격은 계속 파고들었다.
송곳 같은 연기는 그대로 복부를 찔렀고 형우는 신음을 냈다.
“오러!”
파아아아!
형우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러를 넓게 퍼트렸다.
보랏빛 오러는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며 펴져 나갔다. 그리고 몸에 날아든 연기를 없앴다.
스아아.
먼지가 흩날리듯 공격이 사라지자 형우는 한숨을 돌렸다.
“후우…….”
물론 그 한숨을 쉬면서도 오러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오러를 오래 유지할 순 없었다.
마치 빛이 어둠이 삼켜지듯 계속 세가 줄어갔다.
“진짜 최악의 환경이구나.”
사실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페널티를 안고 싸우는 거였다.
원래 엑시디움의 차원이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싸우니 당연히 페널티가 있을 수밖에.
안 그래도 적이 강한데 페널티마저 있으니 형우 일행이 고전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문제는 그런 페널티가 있음에도 이곳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까.’
엑시디움이 힘을 회복하는 걸 오티움에 이어서 지구까지 방해했다.
오티움에선 인사니오 때문, 지구에선 형우 때문에.
오티움에서 1차는 그래도 어느 정도 챙기긴 했으나 그 뒤로 수급이 힘들어져 꽤 오랜 시간 엑시디움에게 힘이 공급되지 못했다.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대법관은 이대로 조금만 더 놔두면 엑시디움은 다른 차원을 공격할 것이고 그러면 바로 다음 순번은 지구가 될 거라고 했다.
그 기간은 1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는 모르는 거고.
그래도 그나마 아직이라고 할 때가 지금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최대한 빨리 앞당겼고 수색도 최대한 빠르게 마쳤다.
‘문제는 지금이 너무 답이 없다는 거지.’
형우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막으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타격은커녕 제대로 합을 치러보지도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끝엔 절망적인 미래만 있을 것 같았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다들 막기 바빴다.
그러는 와중 드디어 첫 부상자나 생겼다.
콰아앙!
“꺄악!”
큰 폭음과 함께 민희의 비명이 들려왔다.
민희도 계속 전투가 이어지면서 피로감을 느꼈다.
그게 점점 집중력을 떨어트렸다.
마법사에게 집중력은 곧 정신력이었다.
마법에 제대로 집중을 못 하게 되면 실수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실수는 민희가 너무 가까운 곳에서 범위가 있는 공격을 사용했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그 파장이 민희에게 미쳤고 이어서 후속타로 엑시디움의 공격까지 당했다.
“민희야! 리커버리!”
형우는 바로 치료 능력을 써줬다.
“오러! 제어!”
이어서 오러를 날렸다.
휘익! 스악! 스아악!
오러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민희를 노리는 공격들을 없애고 다녔다.
그사이 형우는 민희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괘, 괜찮아요.”
민희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상처가 워낙 심해 보였다.
나름 A급 능력인 리커버리로 치료를 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회복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지혈을 해준 정도?
겉에 보이는 타격보다 안에 입은 타격이 더 심했다.
마법을 급하게 사용하며 내부에 무리가 갔고 거기에 공격까지 맞으면서 무협에서 말하는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큰일 났네. 바로 합류는 못 할 것 같은데.’
상황을 보니 바로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운 것 같았다.
억지로 참여를 한다면 조금은 도움은 되겠지만 금방 민폐가 될 게 뻔했다.
아니, 민폐보다 제일 먼저 사망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민희를 전선에서 빼는 게 나았다.
문제는 그럼으로써 생기는 공백이었다.
[더 어려워지겠군.]
인사니오는 무겁게 그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다른 신들도 바라봤다.
크레아와 엘리안.
그들의 상태 역시 좋지 않았다.
민희가 먼저 당했다 뿐이지 그들 역시 언제 저렇게 될지 몰랐다.
점점 지쳐가고 있었으니까.
이제 언제 실수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보다 훨씬 강한 형우마저 실수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라고 안 하란 법은 없었다.
[하나는 끝난 것 같구나. 너희도 그냥 포기하는 게 어떠하냐? 굳이 어렵게 힘 뺄 필요 없이 포기하면 편해질 것이다. 혹시 아느냐. 그 모습이 불쌍해서라도 내가 받아줄지 말이다.]
우웅. 우웅.
엑시디움은 그 말을 하곤 크게 웃었다.
마지 진동하듯이 울리는 특이한 소리였지만 일행들은 분명히 느꼈다.
저건 웃는 거라고.
인사니오는 표정을 구기며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엑시디움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이래도 방어만 할 수는 없어.]
크레아는 굳은 안색으로 말했다.
[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아무래도 이 어둠이 엑시디움의 본체를 가려주고 있는 듯한데……. 아무래도 힘이 부족하다.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
계속 있다 보니 다들 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이 어둠이 엑시디움의 본체를 가려주고 있다고.
인사니오는 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걸 없앨 방법이 없었다.
빛이 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어둠이 달려들어 먹어치웠다.
그 때문에 일반 공격을 할 때도 애를 먹었다.
[후우…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네.]
그때 크레아가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했다.
[…뭘 하려고?]
[내가 해야 할 일.]
인사니오는 그 말에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확실히 크레아를 말려야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뭘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그만둬라. 그게 위험한 것이라면 더더욱.]
피식.
크레아는 인사니오의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담은 웃음이었다.
[크레아, 설마?]
인사니오는 그 표정을 보곤 뭔가를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 이전에 해야 했던 일을 이제 하는 것뿐이야. 그게 너무 늦어졌지만 지금이라도 해야지.]
크레아는 그 말을 하며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마치 온전했을 때의 크레아가 가졌을 힘처럼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음?!”
형우도 그 기운을 느끼고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힘을 회복한 크레아는 겨우 중급 신의 수준이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힘을 기른다면 모를까 당장은 그게 한계였다.
그런데 갑자기 인사니오와 형우보다 더 강한 힘을 내뿜고 있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나의 오티움을 지킬 수 있었을까, 내 알량한 목숨 지키자고 내 세계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항상 이 생각으로… 죄인으로 살아왔는데 이제야 그 수의(囚衣)를 벗을 수 있을 것 같아.]
우우우웅!
힘은 점점 더 커졌다.
마치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점점 더.
[네 뜻대로 하게 놔둘 것 같으냐!]
슈욱! 슈우욱!
순간 모든 공격이 크레아에게 집중됐다.
“오러!”
[파괴!]
[숲의 가호!]
콰아앙! 콰앙!
형우와 두 신은 바로 크레아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았다.
본인들에 대한 공격이 헐거워졌기에 전력을 다해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공격이 다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크레아의 준비는 이미 끝났다.
[크레아!]
인사니오는 크레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지금 크레아가 하려는 행동은 쉽게 말해서 자폭이었다.
신의 지위와 그동안 본인이 쌓았던 힘을 모두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그 뒤엔 영혼의 소멸이라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대신 효과는 확실했다.
그 희생으로 원래 본인이 가졌던 힘보다 수 배는 더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원래 주신이자 상급 신이었던 크레아는 그것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본인이 힘이 격발되는 순간 그걸로 원래 본인의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잠깐이고 그 순간을 노려 더 큰 폭발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오직 엑시디움에게만 피해를 주는 폭발을.
[그동안 즐거웠어. 모두. 특히 형우, 그대에겐 정말 고맙고 즐거웠단다. 그리고 미안하단다. 내 빛은 이곳을 오래 비춰주진 못할 것 같아.]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엑시디움은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했으나 폭발은 이미 일어나버렸다.
파아아앗!
그리고 거대한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