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22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없다면 그냥 변수를 만들면 됐다. 그리고 그 변수의 역할은 이 검은 영혼석이 해결해줄 터였다.
‘이게 도움이 될 줄은······.’
형우는 검은 영혼석을 바라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SH길드의 방수혁이 처음으로 발견했고 차민이 개량하면서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지난번 대법관이 지구의 에너지를 끌어모았던 그것과 닮아 있었지만, 용도는 전혀 달랐다.
R급 능력.
소켓 하나를 강제로 늘려 신의 영역이자 신의 영역에 가까운 힘을 쓰게 해주는 능력을 얻게 해줬다.
다만, 이건 중복 사용이 불가능했다.
한 번 사용하게 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이 그냥 검은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형우는 편법을 가지고 있었다.
인사니오의 조각을 모두 반납하면서 잃어버린 기능이지만 잠깐이라면 가능했다.
‘소켓 교체.’
검은 영혼석이 두 번 이상 안 써지는 이유는 소켓을 강제로 늘리는 건 한 번밖에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빈 소켓이 있다면 얼마든 늘리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형우는 그 소켓 중 하나를 교체할 생각이었다.
다만, 신의 힘으로 겨우 잠깐의 시간만 벌 뿐이었다.
아예 형우의 힘이 약할 때면 몰라도 신의 지위에 오른 지금 능력은 곧 이명이었다.
R급이 아닌 능력들은 이명에 낄 수 없긴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R급 능력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 것으로 치부된다.
그 때문에 그 능력을 뺀다는 건 이명을 빼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정말 능력 전체가 빼지는 건 아니었지만, 여하튼 그런 애로사항 때문에 오랜 기간 교체할 순 없었다.
‘왜 조각을 가져갈 때 소켓까지 다 가져가서······.’
인사니오는 매정하게도 조각과 같이 소켓도 가져갔다.
덕분에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서 잠시 능력을 쓰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것까지 복제하진 않겠지?’
만약 이것까지 복제하면 정말 답이 없었다.
언제고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전투를 치를 수밖에.
‘그러면 힘 다 빠지고 엑시디움에게 발리겠지.’
엑시디움이 무슨 생각으로 가짜들을 먼저 선보였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게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최종 보스와 싸우기도 전에 힘을 전부 소모할지도 몰랐다.
그걸 걱정해서 형우도 계속 힘을 아껴가며 적당히 싸워왔다.
다만, 계속 싸우면 싸울수록 적당이라는 건 없어질 게 뻔하니 빠르게 승부를 봐야 했다.
문제는 이 검은 영혼석을 쓰면 무슨 능력이 생길지 전혀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어차피 고민해봤자 얻는 것도 없었다.
‘지금이 고민할 시기냐?’
“오러!”
콰아앙!
형우는 달려든 가짜 형우를 오러로 상대한 뒤 바로 소켓에 공간을 만들었다.
이어서 망설임 없이 검은 영혼석을 사용했다.
팟!
그러자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제발··· 제발······.’
형우는 간절한 심정으로 능력의 정보가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
이래놓고 방어 계열이나 전투에 쓸모없는 특수 계열 능력이 들어오면 끝이었다.
그 때문에 형우는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스아아.
곧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형우의 표정도 빠르게 변했다.
"망했다······."
형우는 새로 얻은 능력의 정보를 확인하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얻은 능력은 나름 희귀한 능력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능력을 가진 이를 못 봤을 정도로 희소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희소성이 크던 적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왜 하필 이딴 능력이 나와서······.'
형우가 새로 얻은 능력의 이름은 '복원'.
얼핏 들어보면 봄이가 가진 복구의 능력과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전혀 달랐다.
활용 범위도 넓지 않았고 정말 한정된 능력이었다.
그 이유는 복원이 무생물에만 통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물 한정이었다.
오직 사물에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거기서 활용 범위가 넓어도 그게 그거였다.
'미치겠네. 왜 내 능력 기준으로 안 나오는 거야? 이건 왜 랜덤인 건데?'
처음 R-급일 당시 통제를 얻었을 땐 제대로 된 게 아니다 보니 랜덤하게 나왔다.
그러나 이후 R급 능력을 정확히 얻었고 능력에 성향도 어느 정도 정해졌는데도 랜덤하게 능력이 나와버렸다.
‘이걸 어디에다 써먹으라고.’
덕분에 형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블링크.”
“아 쫌!”
형우의 기분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가짜 블링크로 뒤를 노렸다.
형우는 짜증을 내며 몸을 바닥에 굴렀다.
피하기엔 너무 촉박했다.
안 그래도 새로운 능력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대처도 늦었고.
형우는 바로 몸을 굴러서 피했다.
푹! 푹!
가짜 형우는 구르는 형우를 향해 계속 검을 찔러댔다.
“제어!”
쿠궁!
“…!”
형우는 제어로 땅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가짜 형우가 휘청했다.
“블링크!”
팟! 스악!
형우는 그 틈을 노려 블링크로 가짜 형우를 기습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옷깃을 스치는 정도로 끝났다.
회심의 역습이 무로 돌아가고 형우는 다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하아압!”
쾅! 콰앙! 쾅!
부딪힐 때마다 한 번씩 거대한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펴졌다.
정말 똑같은 거울을 보고 싸우는 듯이 같이 전투 스타일로 싸웠다.
오티움에서 오러와 함께 배운 검술로 똑같이 휘두르고 똑같이 막으니 답답한 진행만 이어졌다.
그나마 형우는 근접전에서 변수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근접전이 더 답이 없었다.
그때 가짜 형우가 전투 패턴을 바꿨다.
“염력. 약화, 속박. 통제.”
“흡!”
쿠궁!
염력을 이용해 바닥의 흙으로 형우의 밝을 묶었다. 그리고 약화와 속박, 통제를 연달아 썼다.
그러자 형우는 움직이지 못했다.
“미친…!”
“오러.”
당황한 형우를 향해 가짜 형우는 오러를 휘둘렀다.
블링크로 피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형우는 바로 오러로 맞대응했다.
콰아앙!
“크윽!”
바닥에 박힌 채로 막다 보니 하체의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게다가 고정된 채로 받는 충격은 밀리면서 받는 충격보다 더 컸다.
“저리 꺼져!”
콰아아!
형우는 힘을 크게 방출했다.
보랏빛 기운이 터져 나왔고 가짜 형우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위로 높이 뛰었다. 그리고 오러를 사정없이 날렸다.
“오러! 오러! 오러!”
휘익! 콰앙! 콰아앙!
오러가 휠 새 없이 날아가 바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한 방 한 방 떨어질 때마다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러나 가짜 형우는 당황하지 않고 거기에 맞대응했다.
하늘과 땅에서 오러가 터졌고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두 형우의 싸움은 대단했다.
이미 힘으로는 상급 신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정말 순수한 힘으로만 따지면 인사니오와 호각을 이룰 수도 있었다.
다른 일행은 전부 합쳐도 이기기 힘들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랑 나랑은 정말 격이 다른 거 같아.’
형우가 싸우는 모습을 힐끗 바라본 민희의 감상평이었다.
민희는 기껏해야 중급 신에 근접한 정도고 나머지 크레아와 엘리안도 힘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사실 미약했다.
크레아는 이전에 한 차원의 주신이자 상급 신이었고 엘리안도 상급 신이었다.
그러나 조각에서 겨우 힘을 회복해봤자 중급의 벽에 가로막혔다.
지금 형우 일행 전체의 힘을 정리하면 이랬다.
‘상급 이상은 형우, 인사니오. 중급은 민희, 크레아, 엘리안.’
그 때문에 옆에 싸우고 있는 중급의 셋은 정말 고역이었다.
셋이 덤벼도 못 이길 상대가 바로 형우인데 그 둘이 싸우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형우뿐만 아니라 인사니오까지 있었다.
전투 중에 오는 충격파에 몇 번씩 흔들렸다.
‘대단한 건 대단한 거지만… 오빠, 조절 좀 해줘요.’
민희는 가짜 민희의 공격보다 두 형우가 싸울 때 생기는 충격파에 더 애를 먹고 있었다.
형우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싸우면서도 계속 다른 생각을 했다.
‘이거 정말 사용할 곳이 없을까?’
형우는 ‘복원’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그래도 나름 얻은 능력인데 뭔가 활용 방도를 찾고 싶었다.
그래도 R급 능력이니 뭔가 특별한 사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있기는 개뿔.’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사물을 복원시키는 게 다였다.
‘이거로 스마트폰 액정 깨진 거 사업하면 대박이긴 하겠네. 하아…….’
형우는 실없는 생각을 하곤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용도를 찾아봐도 이 능력은 사물 한정이었다.
기껏해야 물건밖에 고치지 못하는.
‘잠깐? 물건?’
그때 형우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형우는 바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형우가 꺼낸 것은 빛바랜 허름한 한 반지였다.
그러나 외관과 다르게 지금 전투의 판도를 완벽히 바꿔줄 수 있는 키기도 했다.
[이거 놀랍구나. 저게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엑시디움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팽팽한 양상을 보이던 전투는 순식간에 막바지가 됐다.
이미 가짜 대부분이 소멸했고 마지막 인사니오의 가짜만이 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푸욱! 푹!
[아…….]
온몸이 검에 꽂혀 고슴도치가 된 가짜 인사니오는 단말마를 내뱉곤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 검을 찌른 건 20명의 형우였다.
“이게 도움이 될 줄이야.”
마지막 가짜를 처리한 형우는 사라져가는 분신들을 뒤로 한 채 손에 낀 반지를 바라봤다.
사실 이 반지는 차민에게서 받은 거였다.
‘리얼 일루젼(Real illusion).’
이 반지의 이름이었다.
감옥 내의 엘프 마을 에피리아에서 전투가 있을 때 사용했던 반지지만 본래 주인인 엑시디움이었다.
엑시디움이 어느 차원을 소멸시키고 전리품을 챙겼던 물건이다.
그때 당시 엑시디움을 당황하게 했던 물건이지만 후에 더 강해진 이후론 엑시디움의 간부들에게 줘버렸다.
그게 당시 관리자와 계약 중이던 차민에게 간 거였고.
여하튼 그렇게 반지가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마지막엔 쓸모없는 반지로 돌아갔다.
이 반지엔 사용 횟수가 제한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형우가 ‘복원’으로 다시 횟수를 늘려놨다.
‘겨우 한 번 써먹고 끝났지만 이거로도 충분해. 쓸데없이 힘 소모하는 건 확실히 줄였으니까.’
안타깝게도 겨우 한 번의 횟수를 복원시키고 끝났다.
반지로 나온 형우의 분신들도 시간을 초과해 사라졌고 ‘복원’ 능력도 사라졌다.
다만, 설사 능력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도 횟수를 늘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한계였으니까.
[장난은 재밌었나?]
엑시디움은 가짜들이 모두 죽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난?”
“저걸 진짜···!”
엑시디움의 말에 둘은 발끈했다.
힘겹게 싸우는 걸 구경한 엑시디움이 그 말을 하자 열이 더 오르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제 진짜 최종 보스를 상대해야 할 때가 왔으니까.
쿵. 쿵.
엑시디움은 쿵쿵대며 걸어왔다.
몸집이 워낙 크다 보니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정말 지진이 나는 듯했다.
[이제 본 막이 올랐으니 새로운 무대도 바꿔야겠구나.]
화악!
엑시디움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 배경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그런데 바뀐 배경은 새로운 무대가 아니었다.
맨 처음 있었던 그 어둠의 장소였다.
그러나 처음과 달라진 게 있었다.
형우 일행이 처음 들어왔던 통로가 사라졌다.
그곳에서 그나마 빛이 나와 사물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됐는데 이젠 빛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엑시디움의 모습도 어느새 맨 처음 봤던 것처럼 연기로 변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우······.”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