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18
대법관은 형우를 향해 강한 살기를 드러냈다.
이미 고문을 많이 당해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눈빛만은 죽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잃었어도 살신(殺神)의 눈만은 여전했다.
그러나 아무리 째려봐도 형우에게 하나도 안 통할 눈빛이었다.
아까 말했듯 힘을 다 잃었으니까.
다만, 통하든 말든 형우에겐 저 눈빛이 시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쩌건 대법관에게 얻어내야 하는 정보가 워낙 많았다.
침략의 도구들은 사라졌지만, 침략의 주체는 아직 살아있었으니까.
엑시디움.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부가적으로 다른 차원이나 형우가 모르는 정보도 포함해서.
다만, 대법관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방면으로 이것저것을 시도해봤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안타깝게도 노예 문서를 만든 게 하필 대법관이라 그에게 통하질 않았고 그 외에도 신의 힘을 동원해서 굴복시키려고도 했건만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형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를 해봤다. 그리고 얼마 전 그나마 조금이라도 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냥 말하면 편한데 왜 반항하는 거야? 어차피 넌 여기서 나가지도 못해. 네가 그렇게 신봉하는 엑시디움도 여긴 못 들어온다고. 아니, 못 들어 오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거겠지. 겨우 너 구한다고 오겠어?"
"흥. 그따위 값싼 도발에 넘어갈 것 같으냐? 이곳에서 영겁의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나는 네놈에게 단 하나의 정보도 넘겨주지 않겠다. 수십 년을 고문해도 소용없을 거다.“
형우의 말에 대법관은 코웃음을 쳤다.
엑시디움 종족은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었다.
고등 생명체 중에서도 고등인 상위 계층의 생명체였다.
어찌 보면 신과 동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정신력은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였다.
비록 당장 힘을 잃었어도 원래 본인의 육체와 정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으니 고문을 수십, 수백 년을 해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형우는 그 대답에 피식 웃기만 했다.
“그래? 나쁘지 않네.”
“뭐?”
형우의 묘한 반응에 대법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진 엑시디움에 대한 정보를 뱉으라고 해놓고 지금은 또 여유를 부렸다.
그게 대법관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수십 년을 고문해도 소용없다는 건 수십 년 동안 엑시디움이 올 일이 없다는 거잖아? 그사이 맘껏 고문해도 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쌓인 게 많았는데 잘됐네.”
“…….”
그 말에 대법관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의도에서 말한 게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정보를 흘리고 말았다.
정보로 인해 상대에게 여유를 제공했다.
그 여유는 안 그래도 우위에 있는 상대에게 정보와 시간을 벌어줬다.
다른 이들이라면 전혀 캐치하지 못할 실수와 추론이지만 형우는 완벽히 그걸 캐치해냈다.
물론 이게 가능한 건 이곳에 형우만 있는 게 아니어서였다.
대법관은 모르지만 다른 출입구로 상시 출입하며 대법관의 상태나 모습, 말투 등을 모두 분석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 심리 전문가로 이뤄진 팀이 대법관의 모든 걸 파악했다.
방금도 전문가들이 캐치해준 사실을 귀에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바로 전달받았다. 그리고 형우는 그걸 이용해서 대법관과 심리전을 벌였다.
지금 사실을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하나 정보를 캐는 방법도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그건 시간이 너무 걸렸고 제한적이었다.
이렇게 정보를 얻어서 어느 세월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놓고 버틸 의지를 꺾어버리기 위해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속으론 답답했지만.
그리고 거기에 다른 방법까지 같이 동원했다.
“아주 끈질기게 버텨주길 바란다. 난 진심으로 네가 빨리 안 불어주길 바라니까. 수십 년? 수천 년으로 느끼게 만들어줄게.”
“…….”
대법관은 흙빛이 된 얼굴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문이 시작됐다.
쿵!
“끄, 끄어억…….”
대법관은 금방이라도 숨이 검어갈 듯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졌다.
형우는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리고 대법관이 완전히 뻗을 걸 보곤 감옥에 있는 다른 구역으로 갔다.
다른 구역에 가자 모니터링 중인 심리 전문가 수십이 보였다.
일자리 겸 복수 대상의 고문을 볼 수 있는 좋은 직업이기에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소정이도 보였다.
“오빠, 수고하셨어요!”
소정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표정을 보며 형우도 웃었다.
“어때? 효과가 있어?”
“그… 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없다고 하기도 애매해요. 그래도 아주 조금이지만 통하고는 있어요.”
“그래?”
형우는 소정이의 말에 반색했다.
소정이가 이곳에서 대법관에게 계속 능력을 쓰고 있었다.
쓰고 있는 능력은 ‘지배’.
그동안 몬스터에게만 써왔던 지배를 대법관에게 사용했다.
지배는 사실 몬스터 한정이 아니었다.
인간이나 이종족에게도 동물 등등 모든 생명체에게 통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능력은 대법관에게도 통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엄청나게 미약하다는 거였다.
통하긴 하지만 너무 미약해서 티가 안 날 정도.
그 때문에 소정이 애매하다고 표현했다.
물론 그래도 확실히 통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수십 년은 안 걸리겠지?”
“그 정도까진 절대 안 될 거예요. 너무 개미만큼 써져서 티가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6개월… 아니, 1년 안에는 될 것 같아요.”
기간을 줄여 말했던 소정은 황급히 말을 고쳤다.
능력을 쓰는 본인도 정확히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게 통하고 있기에.
“십 년 안 걸리는 게 어디야. 여하튼 소정이가 많이 고생하겠네.”
형우는 소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정은 그것에 얼굴을 붉혔다.
“아니에요. 평소에 도움이 안 되는데 이런 거라도 도움이 돼야죠.”
“에이. 평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그런 말 하지 마.”
“헤헤.”
형우의 말에 기분 좋아진 소정은 헤픈 웃음을 보였다.
“여하튼 10년 단위 이상은 안 넘어간다 이거지?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입을 열겠네.”
형우는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모니터엔 씩씩거리며 살기 어린 눈빛을 띠는 대법관이 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조금 죽은 것처럼 보였다.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빠르게 여름이 왔다.
지구의 오존층을 위협할 모든 게 사라지고 생태계가 점점 복원되면서 지구의 온도가 내려갔다.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계절에도 변화가 왔고 과거처럼 사계절이 다시 뚜렷해졌다.
이 모든 변화가 인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원래 그냥 생태계의 구성 요소였으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해충으로 변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수많은 종이 멸종하면서 생태계 전반이 무너졌었다.
그런데 거기에 온갖 공해로 오존층마저 파괴하니 지구는 말 그대도 만신창이가 됐다.
굳이 엑시디움 종족이 지구를 침공하지 않았어도 인류는 멸망했을지도 몰랐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게 인류에게 식량난을 일으키고 온갖 기상 이변을 만들어낼 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인류는 멸망은 예견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찌 보면 지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외부에서 백신 아닌 백신을 가져온 건지도 몰랐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였다.
하나는 해충, 하나는 폭탄이었으니까.
각설하고 여름이 되자 한반도 전체가 복원됐다.
이전에 말했듯이 높은 층의 건물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췄다.
도로부터 생활 기반까지 모두 복구됐다.
그래서 한국에 있다가 외부로 파견 나가는 헌터들은 많은 괴리를 느꼈다.
마치 한국만 이 재앙에서 빗겨나간 듯한 괴리였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대한민국은 완벽한 하나의 국가로 부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가명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동안 워낙 많은 민족이 섞이긴 했지만 주 대통령이 이 부분에선 강하게 밀고 나갔다.
이것에 사실 불만 있는 이들이 꽤 있었다.
아무래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보였는데 그들에게 통일된 소속감과 새 출발을 위해서 국가명을 바꾸는 게 좋아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다.
형우라는 존재가 주 대통령의 든든한 뒷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비리가 아니라면 웬만한 정책은 모두 지지해줬다. 그리고 그 지지 때문에 반대파들이 의견을 내지 못했다.
덕분에 이 부분은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 뒤로 주 대통령은 세계 각지에 지부를 설립했다.
과거 한 국가의 수도였던 곳부터 주요 거점이라 여겨지는 곳에 지부이자 도시를 건설했고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통일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통일이 맞긴 했다.
주인 없는 빈 땅에 깃발을 먼저 꽂은 이가 주인이니까.
그렇게 지구는 모두 대한민국의 땅이 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슬픔과 아픔이 있었지만 생활 수준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좋아졌다.
‘1인 1가구.’
혼자 살아서 1인 1가구가 아니었다.
1인에게 하나의 집을 줘서 1인 1가구였다.
정부는 무상으로 집을 내줬고 그 집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게다가 충분한 양의 돈도 지급을 해줬다.
몰락한 화폐 경제를 다시 살리는 일환에서 지급해준 돈은 보통 정부가 판매하는 식량 구매에 많이 소모됐는데 사실 그것도 크게 쓰이진 않았다.
식물 키우기의 달인이자 장인인 엘프들 덕분에 생산량이 넘쳐났고 가격도 쌌으니까.
게다가 손재주 좋은 드워프들 덕분에 수많은 공장이 복원됐고 거기에 마법진이 추가되어 친환경적인 공장 시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스마트폰이라던가, TV 등 수많은 가전제품이 쏟아졌다.
과거엔 한 번 사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하는 물건들이었지만 가격은 정말 착했다.
재료 수급부터 가공까지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마법 덕분이었다.
형우도 여기에 한몫했고.
덕분에 한반도에 사는 이들은 돈 걱정, 식량 걱정 없이 개개인이 원하는 생활을 즐기며 편한 삶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게 사실 형우가 없었더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한국 내에서 형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굳이 인기까진 필요 없는데…….’
형우는 요즘 인기 연예인이 왜 고단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주목받는 삶.
딱 그게 형우의 삶이었다.
그렇다고 외부에 모습을 안 드러내고 살 수 없었다.
굳이 주목 같은 걸 바라지 않았기에 형우는 매번 고단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형우가 있는 곳에선 그런 주목을 볼 수 없었다.
오직 폐허만이 존재하는 을씨년스러운 도시.
지금 형우가 있는 곳은 과거 항구도시로 번성했고 한국에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상하이에 있었다. 그리고 형우의 옆엔 4명의 사람이 보였다.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네, 오빠. 준비는 한참 전에 끝났어요.”
[우리도 모든 준비를 마쳤다. 언제든 출발해도 된다.]
형우의 말에 민희와 인사니오가 대답했다.
놀랍게도 형우와 같이 있는 4명 중 셋은 신이었다.
인사니오와 크레아, 세계수 엘리안.
그들은 반년 사이 지상에 몸을 실체화할 수 있을 만큼 힘을 회복했다. 그리고 실체화시킨 몸에 그들은 엄청난 양의 힘을 밀집시켰다.
이번 원정을 위해서.
“드디어 엑시디움을 잡으러 가는구나.”
형우는 그 말을 하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반년 사이.
소정이의 능력으로 드디어 대법관의 입을 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대법관이 알고 있는 엑시디움에 대한 정보를 모두 얻었다. 그리고 형우는 바로 역공을 준비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이 가장 적기였으니까.
더 기다린다고 형우 일행에게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래서 형우는 엑시디움을 공격하기 위해 최상의 멤버를 뽑았다.
다만, 안타깝게도 민희를 제외한 형우 일행 전원이 제외됐다.
강하긴 했지만 엑시디움을 상대할 정도로 강한 건 아니었다.
그나마 민희가 신이 필적하는 힘을 가졌기에 원정에 포함됐다.
그러고 보니 수가 너무 적어졌다.
그때 세 명의 신이 형우에게 직접 말했다.
[우리도 같이 가겠다.]
형우는 그 말에 바로 OK를 했다.
그들이라면 충분한 것 이상으로 이번 원정에서 힘을 발휘할 테니까.
“후! 가시죠.”
우우웅!
형우는 그 말을 하며 거대한 게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뒤로 굳은 표정의 민희가 들어갔고 3명의 신도 이어서 안으로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