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16
머릿속을 가득 채운 ‘탐욕’의 기억.
처음엔 주입되듯이 흘러왔던 그 기억은 어느새 형우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지나갔다.
놈의 최초 기억은 쓰레기 더미 위였다.
온통 쓰레기밖에 없는 세상.
새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온통 쓰레기뿐이었다.
그러나 탐욕에겐 그걸 인지할 무언가가 없었다.
그저 코론 행성의 쓰레기 처리를 위해 만든 인공 생명체였다.
이게 쓰레기라는 인지 자체도 없었다.
그냥 본능뿐인 탐욕이었으니까.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새겨진 본능에 의해서 쓰레기 먹으며 다녔다.
이게 뭐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던 중 탐욕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쓰레기.
그게 쓰레기가 아니라는 걸 아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당시엔 처음 겪는 신세계였다.
에너지도 얼마 담고 있지 않은 쓰레기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순도 높은 에너지.
코론인들 중 강자에 속하는 이들을 먹은 순간 탐욕은 난생처음 감각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드디어 정말 약간의 지능을 얻게 됐다.
그 지능을 얻게 되고 처음 말한 말이 있었다.
‘맛있다.’
처음 느낀 맛을 탐욕은 그렇게 표현했다.
그렇게 맛을 보게 되자 더 이상 쓰레기만 먹고 싶지 않았다.
다른 것들을 먹고 싶어졌다.
더 맛있는 거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탐욕은 그렇게 쓰레기장을 벗어나 다른 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모든 가라지 않고.
그러던 중 더 맛있는 먹이를 먹게 됐다.
엑시디움 종족.
차원의 약탈자이자 파괴자인 엑시디움 종족을 먹고 난 뒤 탐욕에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앞선 ‘진화’와 다르게 그건 다른 변화였다.
‘분노.’
기껏해야 아주 작은 지능과 본능 대부분으로 움직이는 ‘탐욕’이었지만 엑시디움 종족을 흡수하곤 확실히 분노란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오직 분노로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우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보니 탐욕도 식욕도 아닌 분노였어······.’
대법관은 그저 겉 외형만 보고 탐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연히 탐욕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형우는 확실히 느꼈다.
이건 분노라고.
왜 분노냐고?
지능이 딸리는 탐욕이지만 코론인들이 자신을 어떤 용도로 만들었고 어떤 식으로 이용했는지를 모두 알게 됐다. 그리고 엑시디움은 자신이 분노해야 할 대상마저 없애버렸다.
그 때문에 탐욕은 어디에도 풀 수 없는 분노를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이젠 먹이를 맛있어서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분노로··· 모든 것을 없애기 위해 먹어치웠다.
그렇기에 그건 탐욕이나 식욕이 아니었다.
기억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됐다.
다만,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왜 이런 기억을 나에게 보여주는 거지?’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아이가 형우에게 닿는 순간 왜 이런 기억이 밀려들었을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당장 탐욕을 처리하는 데 힘써야 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가장 최근의 기억이 밀려 들어왔다.
‘이건···?’
그 기억을 끝으로 형우는 탐욕의 기억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심각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인사니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 형우! 어서 정신 차려라! 빨리 정신을 안 차리면 이대로 끝이다! 형우!]
“인사니오 님?”
형우는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인사니오에겐 그 말에 친절히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정신 차렸으면 어서 기운을 제어해라! 밀리고 있다! 어서!]
“예, 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형우는 급히 힘을 컨트롤했다.
형우가 탐욕의 기억에 빠진 사이 인사니오는 흩어지는 기운을 급히 모았다.
여기엔 세계수와 크레아의 힘을 빌려야 했다.
다들 큐브 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힘이 최하로 떨어진 상태였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했기에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끌어서 썼다.
덕분에 형우가 정신 차리기 전까지 겨우 버텼다.
우우웅!
형우가 다시 컨트롤하자 다시 팽팽하게 돌아왔다.
물론 여전히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배의 선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탐욕에게 무슨 공격을 당한 것이냐?]
그래도 조금이나마 말할 여유가 생기자 인사니오는 바로 방금 있었던 일을 물어봤다.
“그건 아닌데······.”
형우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그것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몸으로 보여주는 건 가능했다.
마지막 순간 형우에게 밀려든 기억.
그것으로 말이다.
“하아압!”
형우는 힘을 최대로 방출했다.
물론 처음에도 그랬지만 이번엔 달랐다.
방출하는 힘을 최대한 넓게 퍼트렸다.
그 덕분에 균형이 점점 더 무너졌지만 괜찮았다.
잠깐 이 순간만 벗어나면 더 이상 탐욕과 싸울 일이 없었으니까.
형우는 그 힘을 탐욕의 힘과 동화를 시켰다.
이전에 형우라면 할 수 없는 동화였지만 마지막 밀려든 최근 기억이 그걸 가능케 해줬다.
그러자 그 힘은 탐욕의 내부에서도 흡수되지 않고 점차 세를 넓혔다. 그리고 어느 정도 힘이 퍼지자 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제어!”
형우는 퍼진 힘의 일부를 조종했다.
그것의 목표는 바로 아이였다.
그러나 그건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를 보호했다.
대신 아이와 연결된 모든 줄기를 끊어버렸다.
서걱! 스아악!
탐욕이 대응할 틈도 없이 줄기가 잘려나갔다.
그러자 탐욕에 이상이 생겼다.
“아, 아··· 아암! 아, 아, 암!”
마치 에러가 난 듯이 탐욕은 버벅대고 있었다.
그러나 버벅대는 것과 달리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끊어진 아이와 다시 연결하기 위해 수많은 줄기가 다시 나왔다.
휘익! 슈욱! 슉!
“통제!”
형우는 날아오는 줄기들을 통제로 막았다.
그러나 점점 버거워지는 걸 느꼈다.
통제뿐만 아니라 방출된 힘이 계속 줄기들을 없애고 있었으나 수가 너무 많았다.
‘뭐가 이렇게 많아?’
내부도 외부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줄기가 만들어졌다.
그 줄기들은 아이뿐만 아니라 형우에게도 날아왔기에 형우는 구슬땀을 흘리며 공격을 막았다.
쉬이익! 쿠우우웅!
그때
탐욕의 외부에서 엄청난 충격이 생겼다.
일반적인 충돌 정도가 아니라 핵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 충격에 일시적으로 탐욕의 활동이 무뎌졌다. 그리고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연달아 계속해서 떨어졌고 덕분에 이번보다 확실히 탐욕이 움츠러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흡!”
형우도 충격에 놀랐으나 탐욕이 움츠러든 지금이 기회였다.
온 힘을 다해 탐욕을 밀어붙였다.
파지직! 파직!
두 힘이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잠시 후 결국 최대치에 이른 그것은 큰 폭발로 이어졌다.
그 순간 형우의 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준 것 없는 못난 아비가 나의 아이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기노라.]
“···!”
“···!”
외부에서 지원 공격을 날리고 있던 일행은 갑자기 일어난 폭발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형우 혼자 안으로 파고드는 걸 본 이후 형우 일행은 어떻게 하면 형우에게 도움을 주고 탐욕에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중 채택이 된 방법은 SF 같은 곳에서 나오는 위성 공격이었다.
높은 고도에서 공격을 떨어트려 가속도로 데미지를 더 주는 방법은 이미 성민이 써먹고 있는 방법이긴 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고도와 같이 사용된 능력의 수가 좀 차이가 있었다.
형우 일행은 최소한 높은 고도로 올라갔다.
아니, 높은 고도 정도가 아니라 대기권 밖에서 말이다.
R급에 오른 신체라도 대기권 밖을 벗어나는 건 힘들었지만 선우의 차단이 그걸 가능케 했다.
차단은 단순히 공격만 차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모든 것.
공기까지도 모두 차단할 수 있었다.
차단을 마치 큐브처럼 만들어 우주로 가면 내부에 있는 산소가 떨어지기 전까지 버티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소수 정예로 민희와 성민, 용준, 선우만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정말 운석이 떨어지는 듯이 공격을 날렸다.
어찌 보면 이게 바로 진정한 미티어 스웜이었다.
그 덕분에 안에서 형우가 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그게 내부 폭발로 이어졌다.
그러나 도움 덕분에 탐욕을 없앴다는 걸 모르는 형우 일행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오인했다.
물론 그게 아니었어도 문제가 생긴 건 맞았다.
같이 폭발에 날아가 버렸으니까.
"기, 길드장님!"
"아아,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다들 당황하는 사이 처음 이 의견을 냈던 도영은 본인을 자책했다.
그러나 그들만 당황한 게 아니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대법관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존재감이 사라진 탐욕을 바라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탐욕이 당했다.
그것도 겨우 하급 차원의 존재에게 말이다.
비록 신이 됐다고 하나 탐욕은 엑시디움을 먹었던 미친 존재였다.
이런 차원에서 절대 죽을 놈이 아니었다.
스르르.
어느새 힘을 다한 방어막이 점점 사라져 갔다.
대법관은 바로 아래로 내려왔다.
탁.
가운데가 둥그렇게 파인 작은 섬에 안착한 대법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탐욕이 폭발한 곳을 바라봤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대법관은 바로 피하려고 헸지만, 힘이 다 썼기에 무력하게 제압당했다.
"누구냐?!"
"누구겠어?"
"…!"
목소리를 들은 대법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폭발의 근원에 있었던 장본인의 목소리였으니까.
"네놈이 어떻게?!"
"날 어여삐 여겨주시는 아버지 덕분에."
"그 무슨…!"
대법관은 생뚱맞은 대답에 얼굴을 붉혔다.
그냥 상대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을 보이든 말든 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여하튼 이제 넌 내 감옥에 LTE 급으로 보내줄게.”
“하, 감옥? 웃기는군. 그리고 네놈의 감옥에 가둔다고 내가 뭘 말할 것 같으냐! 그리고 네놈에게 끌려가도 내가 그냥 죽으면······.”
“미안하지만 내 감옥에선 내가 죽으라고 하기 전까진 절대 안 죽어.”
형우는 그 말을 하며 형우의 신기인 세 가지 검을 꺼냈다.
포획의 사슬, 이송의 대검, 수감의 철퇴.
이름만 화려한 쓸데없는 신기였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스악! 삭! 삭!
형우는 바로 검을 번갈아가며 대법관에게 그었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 맘대로인 신계에… 아니, 감옥에 수감 되는 걸 축하해.”
형우의 말대로 ‘감옥'은 오직 그의 말대로 흘러가는 세상이었다.
모든 법칙을 형우가 통제하는 곳.
그곳에선 대법관은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대법관은 그제야 상황파악을 했다.
“윽! 아, 안 돼!”
대법관은 절망 어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무슨 소리를 지르든 말든 바로 감옥으로 전송됐다.
팟!
“하아······.”
대법관이 사라지자 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폐허가··· 아니, 대부분 사라진 아이슬란드가 눈에 보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참 다행이었다.
‘좀 이기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정말 미쳤을 테니까.’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자신의 길드원이자 동료, 가족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