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15
안에 붙들려 들어갔을 때 형우가 본 것은 사실 특별한 게 아니었다.
어찌 보면 정말 평범하고도 평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것이 탐욕의 안에 있으면 의아한 게 당연했다.
탐욕이 형우와 와이번을 삼키려던 때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어린아이였다.
어린아이는 순진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걸 보기 전까지 봤던 게 바로 험악하고 무시무시한 악마의 얼굴이었다.
날카로운 수십 개의 이빨로 무장하고 있는 악마.
악마는 모든 걸 다 분쇄해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어린아이가 보였다.
정말 아이러니하고 부조화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더 이상한 게 있었다.
악마의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수십 개의 줄기에 연결된 상태였다.
그 모습이 상당히 안쓰러워 보였으나 그런 측은지심을 가지자마자 어린아이는 붉은 안광을 뿜어대며 악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형우는 거기에 탐욕을 잡을 해답을 찾았다.
‘그 애가 동력… 비슷한 역할 같은데.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애를 죽이면 해결될 것 같은데…….’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조심해라. 그것조차 놈의 함정일 수 있으니. 어렵게 얻기는 했지만 이런 해답을 엑시디움들이 못 알아챌 리 없다. 대법관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들도 없애지 못해 계륵같이 가지고 있던 존재라더군.]
‘그게 진짜든 아니든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건 너무 답이 안 보여서요. 설마 통로부터 차원 전체를 먹어버리다니…….’
형우는 오티움이 사라지는 아찔한 장면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나름 많은 추억을 가진 장소였는데 한순간 무식한 먹보에게 먹혀버렸다.
‘어차피 없어질 곳이라지만 진짜 눈물 날 뻔했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있었다.
추억의 장소이자 아픔의 장소인 감옥만큼은 살아 있었으니까.
오티움에서 분리되어 온전히 형우의 공간이 된 신계.
물론…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형우만이 알뿐이었다.
“오빠. 저걸 어떻게 없앤다는 거야? 방법은 또 어떻게 알았고?”
선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그러나 딱 뭐라 대답해주기 힘들었다.
안에 뭐가 있다고 말하기도 그랬고.
결국, 이 말을 꺼내면 자신이 안으로 또 한 번 들어가야 한다는 걸 말해야 했으니까.
선우에겐 차마 말하기 힘들었다.
“어서 말해봐요. 아니면 빨리해줘 봐요. 애들 죽어나요!”
봄이가 형우를 재촉했다.
봄이의 말대로 지금 형우 일행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형우를 놓친 게 약이 올랐는지 탐욕은 더 많은 줄기를 뿜어냈다.
덕분에 최전방에 있는 차민과 민규, 도영은 죽을 맛이었다.
거기에 형우마저 전선에서 이탈한 상황이니 부담이 더 가중됐다.
“억! 나 끌려간다! 살려줘!”
때마침 민규가 줄기에 잡혀 끌려갔다.
차민과 도영이 필사적으로 막았으나 줄기가 워낙 많았기에 구출하기 힘들었다.
탐욕은 이번엔 꼭 하나라도 먹겠다는 듯 모든 줄기를 이용해 하늘과 땅 전체를 막았다.
“아…….”
그걸 보자마자 형우는 바로 전선에 합류했다.
“오러! 제어!”
휘이익!
형우는 바로 오러를 날렸다.
파바바박! 파박!
오러는 수십 개의 줄기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뚫린 만큼 다른 줄기가 그 자리를 메꿨다.
메꾸는 속도가 워낙 빨라 정말 작은 틈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형우에겐 저 짧은 틈만 있으면 충분했다.
블링크를 어디로 쓸지 방향만 잡으면 됐으니까.
“매스 블링크!”
팟!
공간을 확인한 형우는 바로 블링크를 써서 안으로 들어갔다.
“형우야!”
민규는 줄기 안으로 들어온 형우를 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줄기에 감긴 민규는 능력도 쓰지 못하게 무력화됐다.
아무래도 타천사에게 본 것처럼 줄기엔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이 부가적으로 들어간 듯싶었다.
그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끌려가고 있었는데 형우를 보니 안 반가울 수가 없었다.
“홀리 밤! 민규 형님! 눈!”
팟!
형우는 처음으로 새로운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의 이름을 외치자 오른손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 구체를 바로 민규에게 던졌다.
파아앙! 스아아!
“윽!”
밝은 빛이 터지자 민규는 급하게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게 조금 늦었는지 앓는 소리를 냈다.
스르륵.
빛이 터진 곳을 주변으로 줄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게다가 그곳으로 다른 줄기들이 접근을 하지 못했다.
형우는 그 틈을 타 바로 민규를 잡고 블링크를 썼다.
“매스 블링크!”
팟!
“후우…….”
형우는 매스 블링크로 후방에 도망쳤다.
‘오늘은 진짜 블링크가 효자네, 효자야. 이건 예전부터 느끼던 거지만 정말 배우길 잘했어.’
블링크가 없었다면 죽어도 벌써 여러 번 죽었을 터였다.
그나마 블링크 덕분에 형우 본인의 생명도 구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도 많이 구했다.
정말 효자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고맙다, 형우야.”
“아닙니다, 형님. 이제는 좀 사리면서 차민 형님이랑 저 중간에서 백업해주세요.”
“쩝…….”
민규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형우의 말이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었으나 본인의 생존을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그걸 알기에 별말 하지 않고 다시 전선에 합류했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알고 있겠지만 평범한 공격 정도론 큰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거다. 형우, 그대가 최대로 힘을 모아도 힘들 터.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신들이나 나 역시 힘을 보태줄 수 없다.]
“네, 그래서 힘을 좀 빌리려고 합니다.”
[힘을 빌린다? 아, 그렇군. 그게 있었어. 그거면 충분히 우리의 힘을 대체할 수 있겠군.]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린 인사니오는 곧 형우의 말에 수긍했다.
“네, 아마 충분할 겁니다.”
다른 일행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오갔다.
물론 그건 제대로 설명해주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었다.
이 일은 형우와 인사니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으니까.
뭐 굳이 비밀을 하려고 비밀이 된 건 아니었지만 말할 타이밍을 잃었기에 아직도 못 말한 거라 할 수 있었다.
“어찌 됐건 한 번 더 가야겠네요.”
“오빠?!”
한 번 더 간다는 말에 선우가 기겁했다.
“미안.”
형우는 그 말을 하고 다시 다른 블랙 와이번의 위에 올라탔다.
선우가 뒤에서 뭐라고 더 말했지만 일부러 흘려들었다.
형우도 죽는 건 싫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았는데 이제 와서 죽는다?
여기서 죽으면 억울해서라도 지옥에서 다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저 탐욕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형우뿐.
물론 형우 일행이 약한 건 아니었다.
R급.
아직도 사람들에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등급이었다.
그런 등급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S급에서 R-급으로 성장한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R급이 얼마나 강한 등급인 건지.
기존에 관리자라 불렸던 엑시디움과 붙어볼 만한 힘이기도 했고 일반인에겐 정말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일 수 있는 능력이었다.
물론 아랫 등급의 헌터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형우의 힘과는 차이가 컸다.
현재 형우가 쓰고 있는 능력도 R급이었지만 그저 등급으로 비교하기엔 이미 번외였다.
신성력, 마기, 능력, 오러 연공법 등.
여러 가지가 섞인 상태에서 신의 지위까지 오른 형우는 한 차원의 주신이자 지배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강함을 가졌다.
‘미안한 말이지만 다들 나한테 한꺼번에 덤벼도 못 이기니까.’
어느새 그렇게 격차가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격차 덕분에 형우가 그래도 탐욕을 죽일 수 있는 확률이란 걸 얻었다.
슈우욱!
“끼아아아!”
블랙 와이번은 괴성을 내며 탐욕을 향해 날아갔다.
촤자작! 촤악!
줄기들은 다가오는 먹이를 향해 맹렬히 다가왔다.
“민희야! 나 좀 엄호해줘!”
“네, 오빠! 쿼드 캐스팅! 플레임 스트라이크! 파이어 필라! 파이어 스톰! 콜 파이어 레인!”
화르르륵!
민희는 바로 화염 계열 마법만 쿼드 캐스팅으로 시전했다.
화염 계열 마법답게 한 번 사용되자 넓은 범위에 큰 타격을 줬다.
높은 열기에 형우와 차민 근처에 있던 줄기들이 그대로 다 녹아버렸다. 그리고 새로 다가온 줄기들은 불에 닿아 타는 본인의 몸을 흔들며 괴로워했다.
그 틈에 형우는 빠르게 다가갔다.
‘아까보다 더 많아졌네. 뭐가 이렇게 계속 많아져?’
정말 끊임없었다.
아까도 늘어난 거지만 지금은 더 늘어났다.
보기에도 징그러운 검은 줄기들이 하늘마저 가리며 형우 일행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부가 형우 일행에게 향하진 않았다.
탐욕은 뒤에서 나온 줄기로 계속해서 지구를 갉아먹는 중이었다.
어느새 아이슬란드는 형체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새 땅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라 섬처럼 작은 땅만 남아있었다.
이 속도로 보건대 이대로 놔둔다면 바다에 있는 물도 순식간에 없어질 것 같았다.
차라리 땅이 없어지는 거면 대륙이 많으니 조금 더 시간이 있겠는데 물이 없어지면 정말 최악이었다.
게다가 땅과 달리 마치 식물의 뿌리로 흡수하듯이 줄기가 물을 빨아들였기에 속도도 빨랐다.
‘더럽게 조급하게 만드네.’
속으로 불평한 형우는 오러를 이리저리 날리며 탐욕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탐욕에게 가까이 갔을 때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빛나는 구체였다.
그러나 빛은 많이 미약했다.
형우는 그것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지구의 신 그란디티스.’
그 구체의 정체는 그란디티스가 남긴 조각이었다.
형우는 이걸 탐욕의 내부에서 터트리려 했다.
다만, 솔직히 쓰려고 생각해놓고도 너무 아까웠다.
흡수했다면 형우 본인의 힘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거기에 상급 신이 가지고 있던 이명까지도 얻게 된다.
그러면 분명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부가적인 거지만 지구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도 포함해서 말이다.
임시로 형우가 지구의 신에 가까운 자리에 있었지만 가까운 거랑 완벽한 거랑은 차이가 컸다.
정말 완벽히 주신이 되어 이 차원 내에선 전지전능함을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거면 피해 복구나 건물 건설 정도는 정말 간단했다.
그동안 빨린 차원 에너지도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런 메리트가 있었기에 형우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메리트가 있어도 지구가 날아가면 끝이니까.’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탐욕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블링크!”
“키, 키아!”
형우는 주인을 잃고 줄기에 붙잡힌 블랙 와이번을 버리고 탐욕의 본 모습을 가리고 있는 악마의 얼굴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형우의 힘을 가득 담아 그란디티스의 조각을 터트렸다.
우우웅! 콰아아앙!
조각은 심하게 떨리며 균열이 생겼고 그 균열은 결국 폭발로 이어졌다.
“제어!”
형우는 그 폭발을 오로지 탐욕의 본체에만 쏟아부었다.
“아, 끼끽. 아암! 끼, 끼긱.”
그러자 이상한 소리를 내며 탐욕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윽?!”
탐욕이 그 힘에 저항했다.
“아암!”
탐욕의 본 모습을 가리고 있는 악마의 얼굴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수많은 기운이 섞여 있었다.
이미 형우가 알고 있는 기운도 포함해서.
‘차원 에너지부터 신성력, 마기, 엑시디움, 다른 차원의 힘까지… 안 섞인 게 없네.’
모두 탐욕의 내부에서 정제되어 하나로 변한 힘이었다.
서로 반발을 가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그 에너지는 순간 주변을 진공상태로 만들 만큼 강력한 파장을 만들었다.
그것은 형우에게 강한 반발력을 선사했다.
‘미치겠네!’
정말 최후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온 힘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그런데 탐욕의 반항이 너무 심해 이대로라면 실패할지도 몰랐다.
형우는 필사적으로 탐욕에게 다가가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연결되어있는 줄기를 끊었다.
스악! 스악! 쿠우웅!
연결되어있던 줄기가 몇 개 끊기자 큰 진동이 느껴졌다.
게다가 전보다 반발력이 조금 약해진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아이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었지만, 이거면 충분했다.
‘통한다!’
형우는 더욱 세차게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내 다시 탐욕의 힘이 강해졌다.
"크으윽!"
형우는 갑자기 다시 강해진 힘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었는지 전보다 더 강한 힘으로 형우를 밀어붙였다.
그때 아이가 형우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형우에게 손을 뻗었다.
‘어?’
툭.
아이는 형우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형우에게 무언가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뭐, 뭐지?’
형우는 느껴지는 오묘한 기분과 감정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밀려 들어오는 기억에 빠졌다. 그리고 그 기억의 주인공은 바로 탐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