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13
모두 얼빠진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철컹! 철컹!
검은 구체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이 떨어지면서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옛날 고전 게임에서 보았던 ‘팩맨’을 보는 듯했다.
팩맨은 일본의 한 회사에서 만들어진 게임으로 동그란 공에 입이 벌려져 있는 특이한 모양의 캐릭터였다.
그 입으로 게임 화면 내에 있는 쿠키들을 잡아먹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저것이 마치 고전 게임의 캐릭터 팩맨이 마치 현실의 3D로 나타난 듯했다.
그만큼 정말 닮아있었다.
물론 색깔은 빼고.
“진짜 팩맨이야?”
“엑시디움들이 이런 코미디가 있을 줄은 상상을 못 했네.”
다들 실소를 머금었다.
게이트를 열었는데 타천사들이 먼저 나온 것부터 뒤에는 팩맨과 같은 캐릭터가 나타난 것까지 한편의 코미디 같았다.
그러나 대법관은 진지했다.
스스로 그것의 봉인을 풀어놓고 긴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영원히 봉인되어 있어야 했다.
“놈의 이름은 탐욕. 끝없이 에너지를 갈구하는 차원의 진정한 파괴자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탐욕은 끝없이 먹어치울 거다. 너희뿐만 아니라 차원 전체를 먹어치울 때까지.”
스으으.
대법관은 그 말을 내뱉고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탐욕을 불러들여 그것의 봉인을 푸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 소모했다.
다른 차원으로 도망갈 힘마저 모두 써야 할 정도로 강력한 봉인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대법관에게 남아 있는 건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방어막뿐이었다.
이마저도 탐욕과 형우 일행이 전투를 벌이고 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터였다.
그 뒤엔 대법관 본인도 탐욕스러운 ‘탐욕’에게 먹혀 죽을 게 뻔했다.
물론 천운이 따른다면 힘을 모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죽어도 상관없었다.
모든 게 다 사라져도 자신이 모시는 신 엑시디움만 살아있다면 그들의 종족은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으니까.
그게 몇백, 몇천 년 뒤라도 말이다.
그래도 그에게 하나 다행인 건 있었다.
“비명과 절규, 절망 속에서 최후를 맞이해라. 그게 나의 비참함을 위로해 줄 터.”
모든 것이 다 파괴되는 장면을 끝까지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형우 일행에겐 기가 막힌 말이었다.
“저게 뭔데 그렇게 강하다는 거야? 그리고 먹어치우는 거면 탐욕이 아니라 식욕이 더 맞는 이름 아냐?”
아무리 잘 봐줘도 조금 큰 팩맨이었다.
뭐 특별한 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굳이 하나 넣어준다고 하면 검다는 것 정도?
그렇기에 형우 일행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큰 심경 변화를 겪었다.
“아아암.”
“소리도 내?”
형우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하품하는 건지 말을 하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며 타천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뭐, 뭐하는 거지?”
“일단 피… 윽!”
“이게 뭐야?!”
촤아악! 촤악!
타천사들은 도망치기 위해 몸을 움직이던 도중 무언가에 몸을 속박당했다.
그것은 마치 가시가 잔뜩 난 나무줄기 같았다.
탐욕의 입에서 나온 줄기는 타천사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았고 입안으로 끌어당겼다.
“으으윽!”
“모, 몸이 말을 안 들어!”
줄기에 마비 성분이 있었는지 타천사들은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을 그대로 탐욕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때 탐욕의 입안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보였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타천사들에겐 분명하게 보였다.
“으, 으아악!”
“살려줘!”
타천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피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안 움직였고 결국 탐욕의 안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콰드득! 콰지직!
순간 뼈가 분질러지는 잔인한 소리가 들려왔다.
타천사들은 단말마를 내뱉을 시간도 없이 바로 즉사했다.
“…저거 위험한 거 맞지?”
“…맞을 거 같은데.”
형우 일행은 탐욕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팩맨처럼 생겨서 신기하게 바라봤는데 이제 보니 무시 못 할 적이었다.
‘탐욕.’
원래 놈의 이름은 탐욕이 아니었다.
‘코론’이라 불리는 행성에 존재하는 쓰레기 처리 생명체였다.
코론은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곳이었는데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만든 게 바로 이 ‘탐욕’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인공 생명체였지만.
이 인공 생명체의 원리는 간단했다.
인공으로 만든 육체에 어떠한 물체라도 먹게 되면 그 물체를 파악해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마법진이 내부에 새겨졌다.
그 때문에 탐욕은 어떤 쓰레기든 모두 먹을 수 있었고 끊임없이 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코론은 쓰레기라는 골치 아픈 폐기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했다.
겨우 단 하나의 인공 생명체로 이뤄낸 큰 성과였다.
그러나 곧 탐욕은 변화를 겪게 됐다.
차원의 약탈자이자 파괴자인 엑시디움 종족이 침략한 뒤부터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코론인들은 엑시디움에게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마법과 과학의 공존으로 얻는 시너지는 대단했지만 오티움에서처럼 그걸 무용지물로 만드니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 엑시디움은 차원 침략의 초기 단계였기에 지금처럼 많이 강한 건 아니었지만 영혼석을 만드는 기술 그것 하나가 승리의 큰 요소로 작용했다.
그렇게 연전연패를 거듭한 코론인들은 최후의 발악이자 최악의 선택을 했다.
‘순순히 모든 걸 뺏길 수 없다.’
남아 있는 상위 실력자들과 코론의 전체 행정을 담당하는 최상급 에너지 집약체 ‘듀프’를 ‘탐욕’에게 흡수시켰다.
아니, 정확히는 먹이로 줬다.
그 먹이를 먹은 탐욕은 수많은 변이를 일으켰다.
사실 어느 정도 변이를 예상하긴 했다.
그 변이로 엑시디움에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얻으려 했으니까.
그러나 에너지 하나 뽑아내기 힘든 쓰레기가 아닌 에너지가 넘쳐나는 실력자들을 흡수하면서 일어난 변수였다.
그 변이는 코론인들도 예상치 못한 변이였고 엑시디움은 예상치 못한 강대한 적을 만나게 됐다.
코론인들은 당연히 탐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해놨지만 변수로 무용지물이 됐고 통제 불능의 탐욕은 모든 걸 먹어치웠다.
그러던 중 탐욕이 운 좋게도 엑시디움 종족마저 먹으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먹은 물체를 파악해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능력.
그게 엑시디움을 먹으면서 작용했다.
그것도 엑시디움의 철저한 천적으로 말이다.
쉽게 말해서 엑시디움의 약점이나 모든 게 다 간파당한 거였다.
물론 하나가 먹힌다고 엑시디움 전체가 밀리는 건 아니었으나 대응이 늦어지면서 일을 키웠다.
결국, 제대로 상황을 파악했을 땐 탐욕은 건들기 힘들 정도로 강해졌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봉인을 시켜놨다.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물론 그 이후엔 차원의 아예 날려버린다든지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탐욕을 없앨 수 있었지만, 엑시디움은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해 조커로 남겨놨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바로 먹을 만한 대상이 없군. 좀 더 빨리 끝날 수 있었는데 아쉬워, 쯧.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터.’
대법관은 속으로 혀를 찼다.
현재까지 지구의 누구도 탐욕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아예 공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천적이 된 건 아니었다.
운 좋게도 통합군을 모두 철수시키면서 가능성이 더 낮아지긴 했다.
물론 이러다가도 형우 일행이 한 명이라도 먹히면 정말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다.
다만, 그걸 떠나서 그동안 수많은 존재를 먹어온 탐욕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성민이랑 용준이, 선우는 후방에서 봄이를 지키면서 지원해주고 차민 형님, 민규 형님, 도영이는 전방에서 탱커 겸 공격 방어! 민희는 나란 중간에서 공격 겸 견제 역할이고 소정이는 와이번들을 좀 불러줘!"
형우는 일단 길드원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오케이!"
"네, 길드장님!
"네, 오빠!"
그들은 각각 통일되지 않은 대답을 하곤 각자의 포지션에 정렬했다. 그리고 소정은 오티움의 문을 열고 와이번을 불렀다.
“얘기들, 나와!”
“키아아!”
“키악!”
소정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와이번들을 불러들였다.
여러 상황을 대비해서 이미 많은 수의 몬스터를 ‘지배’로 테이밍 해놨다.
지구에 있는 몬스터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어디로 다니기만 해도 테이밍해서 써먹을 만한 몬스터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소정이 모아놓은 몬스터의 수는 상당했다.
그중 형우는 소정에게 제일 기동성이 좋은 와이번을 불러달라고 했다.
물론 그냥 일반 와이번만 부른 건 아니었다.
변종인 블랙 와이번도 함께 꺼냈다.
규격 외 종으로 일반 와이번에 비해 몇 배나 더 빠른 놈이었다.
소정은 일단 블랙 와이번들을 인원수에 맞게 분배했다.
"타고 다니다가 위험하면 언제든 방패로 쓰세요! 그럼 먼저 탐색전부터 한 번… 오러!"
촤아!
형우는 어느새 꺼내든 검에 오러를 잔뜩 실었다.
위성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 쓰나미를 만든 탓이 힘이 좀 빠져 있었지만 아예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휴식 기간이 있었다고 어느 정도 힘도 회복된 상태였고.
우우웅!
검이 실린 보랏빛 오러는 강한 진동을 만들며 떨려왔다. 그리고 보랏빛은 점점 더 커졌다.
“하아압!”
최대치로 힘이 실린 오러를 형우는 탐욕에게 날렸다.
슈우욱!
오러는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곧 탐욕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한 번 부딪힌 것만으로도 원자 폭탄이 터진 듯 거대한 폭음과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마치 히로시마에 터졌던 리틀 보이를 보는 듯했다.
형우 일행은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를 보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암! 아암!”
연기를 뚫고 나온 탐욕은 특이한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파괴!”
콰아아!
차민은 바로 앞을 막아서곤 파괴를 사용했다.
“아암!”
그런데 놀랍게도 탐욕은 파괴의 기운을 그대로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대로 차민에게 달려들었다.
“뭐 이런 무식한…!”
“비켜요, 차민 씨! 반사!”
민규는 바로 이어서 반사를 썼다.
쿠웅! 퉁!
넓게 펼쳐진 반사는 그대로 탐욕과 부딪혔고 살짝 뒤로 튕겨냈다.
“낙하!”
“증폭!”
“하아압! 철벽!”
연달아 세 개의 능력이 사용됐다.
휘이익! 쿠웅!
낙하와 증폭이 콜라보로 사용되면 그대로 외피에 강한 충격을 줬다.
도영은 바로 전방에 있는 일행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벽을 사용했다.
“익스플로젼!”
“오러! 제어!”
형우와 민희는 탐욕에게 숨 쉴 틈을 안 주기 위해 바로 능력을 썼다.
콰아앙! 콰앙!
폭음이 터져 나오는 전장.
그 폭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형우 일행의 표정만 굳어졌다.
한참 동안 공격을 쏟아붓던 성민은 짜증 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뭘 해야 유효타를 먹이는 건데? 밖엔 흠집도 안 나고 내부는 그냥 다 먹어치우고. 뭐 어쩌란 건데?!”
탐욕의 외피는 아무리 두드려도 흠집하나 생기지 않았다.
이건 큐브 때보다 더했다.
게다가 그나마 약점으로 보이는 입안 부분에 공격을 날리면 그냥 다 먹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계속 흘러도 형우 일행만 지치고 있었다.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려워지는 건 그들이었다.
도저히 지칠 것 같지 않은 탐욕은 계속해서 줄기를 뽑아대며 형우 일행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탐욕이 행동을 멈췄다.
“어?”
“뭐야? 왜 멈춰?”
형우 일행은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곧 왜 탐욕이 멈췄는지 알게 됐다.
탐욕은 현재 짜증이 난 상태였다.
제대로 된 이성이 존재하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지금 탐욕에게 제일 중요한 식욕이 충족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간간이 입안으로 날아오는 능력을 빼곤 먹을 게 없자 잔뜩 짜증이 났다.
결국, 탐욕은 근처에 있는 날파리들이 아닌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렸다.
촤아악! 촤아악!
탐욕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줄기나 뿜어져 나왔다.
“뒤로 피해!”
“갑자기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당황하며 뒤로 피했다.
다만, 다음이 더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암! 아암!”
탐욕은 아이슬란드의 땅을 먹기 시작했다.
“헉?!”
“막아야 해! 파괴!”
“통제!”
다들 기겁하며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외부에 입히는 공격은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고 탐욕은 계속해서 아이슬란드의 땅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계속 형우 일행이 방해를 했지만 먹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슬란드의 서부가 사라졌다.
“진심으로 미치겠다…….”
형우는 끊임없이 땅을 먹어치우는 탐욕을 보며 허탈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