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8
“김민철 길드장님! 한마디 부탁합니다!”
“이번 던전 게이트를 통제할 수 있게 되셨는데 그 방법을 아무 대가 없이 공개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어디에 공개할 예정인지 알려주십시오!”
“길드장님! 길드장님!”
“더 이상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막아! 못 들어오게 해! 길드장님 들어오시면 바로 문 닫고!”
“잠시만요! 한마디만 좀…!”
블랙 길드 본부 현관 앞.
전쟁통을 방불케 할 기자들의 인해전술로 현관이 꽉 차 있었다.
형우를 포함한 경비원들은 지나가는 길드장과 길드원들에게 길을 터주고 바로 기자들을 막았다.
덕분에 살벌한 진풍경이 펼쳐졌으나 금방 소강 되었다.
한 번 안에 들어간 이상 나온다고 해도 건물 위에 대기 중인 헬기로 이동할 터였다.
그걸 아는 기자들이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다른 곳으로 갔다.
덕분에 조금 전까지 이곳에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현관 앞이 휑해졌다.
“후우… 진짜 벌떼처럼 몰려와서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네.”
형우는 사라진 기자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체 처리반 일을 했을 때보다 분명 일이 훨씬 쉽긴 했지만 가끔 기자들이 올 때면 정말 진땀을 뺐다.
하필 요즘 블랙 길드가 주목을 더 받는 탓에 이런 일이 많았다.
게다가 제일 큰 문제는 방금 모여들었던 기자들의 반 이상이 헌터라는 거였다.
헌터 관련 취재를 하는 기자의 특성상 위험한 종군 기자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많아 헌터 출신인 기자들이 이쪽 분야에서 일했다.
물론 거기에 일반 기자보다 돈을 더 많이 받아서 헌터 출신 기자가 많긴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저것도 특권층이라고……. 하긴 나름 헌터인데 주목 하나도 못 받을 때보단 기자가 낫겠지.’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교대 왔습니다.”
그때 때마침 오후 교대가 왔다.
3교대인 만큼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사실 오후조는 야간 전반야조에 가까운 시간대에 근무했다.
물론 그 덕에 돈을 더 받긴 했지만.
“어째 타이밍이 구리다? 기자를 딱 빠지자마자 오냐?”
같이 오전조에 근무하는 동료가 오후조를 보며 말했다.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냥 시간이 딱 맞는 거죠.”
“그 시간 좀 안 맞아서 내 시간대에 안 하면 좋겠다. 기자 시끼들은 왜 자꾸 우릴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특히 오전조 시간대에 많이 오는 기자들을 욕하며 교대를 마쳤다. 그리고 교대를 마치고 나오자 누군가 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우 씨.”
“아, 지영 씨.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딱 방금 왔는데요?”
지영은 형우를 향해 미소 지었다.
헌터수사부가 뭐 하는 곳인지 지영은 매일 형우보다 더 일찍 와서 기다렸다.
그래서 ‘가끔은 혹시 실직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호출받아서 뛰어갈 때도 은근히 많았다.
말이 좋아서 퇴근이지 언제든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대기조였다.
“오늘 일은 어땠어요? 힘드셨죠? 이번에도 기자들 몰려들었을 거 같은데…….”
“하하, 기자들 와봤자 별거 없었어요. 저보다 지영 씨가 고생이 더 많으셨죠.”
형우는 웃으며 말했다.
겨우 경비보다 헌터수사부의 일이 더 어려운 게 당연했다.
여긴 기껏해야 기자들이지만 헌터수사부는 헌터 범죄자들과 싸웠다.
지영이 A급 헌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A급이라고 안 지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범죄자도 범죄자지만 격무와도 싸워야 했기에 형우보다 힘든 게 당연했다.
그나마 다행은 범죄자의 반 이상을 관리자가 처리해주는 덕분에 일반 경찰서의 형사보단 안 바쁘다는 게 다였다.
만약 관리자도 없었다면 개인 시간은커녕 헌터수사부 내에서 그냥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오늘은 어디로 갈래요? 아직 저녁 되기엔 멀었는데 식사는 좀 그렇고 커피점이라도 갈까요?”
“좋아요.”
형우의 말에 지영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이 동안이라 그런지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니 뭔가 더 순수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저 얼굴에 나보다 한 살 위 누나라는 말 듣고 정말 황당해했지…….’
일부러 늙게 봐줘도 고딩이 다였다.
그 때문에 술 한 잔 마시러 갈 때도 곤욕을 치른 적이 많았다.
그러나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지 그런 상황마저도 형우는 웃으며 넘겼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했다.
자기 여자친구가 그만큼 어려 보이고 예쁘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아, 맞다. 요즘 선우는 어때요? 잘 지내고 있어요?”
“네,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아직 통원 다니면서 재활 치료하고 있긴 한데 그전보다 많이 나아져서 요즘은 혼자서도 잘 걸어 다녀요. 병원에서 오래 누워있었는데 벌써 잘 걸어 다니고 있는 거 보면 정말 신기해요.”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둘은 선우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커피점으로 향했다.
별 이야기 아닌 것에도 웃으면서.
형우는 그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사체 처리반으로 일하면서도 말은 참 많이 했다.
그러나 그때의 말과는 정말 질적으로 차이가 컸다.
사체 처리반에서 일하는 노하우가 담긴 말조차도 말이다.
‘이게 꿈일까? 정말 행복하다…….’
정말 꿈인 것 같은 행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길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괴리가 생겼다.
‘행복…? 행복한 거 맞을까?’
이질감이라고 해야 할지 괴리라고 해야 할지 딱 정의 내려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최근 그런 감정을 계속 느껴왔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그걸 너무 쉽게 쉽게 넘겨왔다.
그제야 형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형우 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형우가 인상을 쓰고 있으니 지영이 걱정하며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에 반응해줄 여유가 없었다.
괴리와 이질감이 커지자 어지러움이 생겼다.
그 어지러움은 순간 정신을 놓을 만큼 심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형우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안으로 파고 들은 그것은 곧 상태를 점점 나아지게 했다.
그때 땅이 흔들렸다.
쿠구궁! 쿠궁!
“던전 게이트?!”
헌터수사부 차장답게 지영은 땅이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던전 게이트의 생성을 알아챘다.
그런데 알아챈 건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쿠궁! 파아앗!
“던전 게이트 발생! 발생 에너지로는 S… S등급 추정!”
지영은 바로 헌터수사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사이 던전 게이트는 완벽히 만들어졌고 거대한 입구가 생겨났다.
그 입구에선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형우 씨, 피해야 해요!”
지영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형우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던전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안에서 무언가 친숙한 느낌이 났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친숙한 느낌이 형우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이 괴리와 이질감을 해결해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까이 가면 안 돼요!”
덥썩!
지영은 형우의 몸을 잡고 뒤로 당겼다.
그런데 그때 묘한 일이 일어났다.
A급 헌터인 지영이 오히려 D급 헌터인 형우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에 정신이 팔렸던 형우는 이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 던전 게이트에서 무언가 나왔다.
스르륵.
“남자?”
그런데 놀랍게도 던전 게이트에서 나온 건 몬스터가 아니라 남자였다.
마치 조각으로 깎아놓은 듯한 미남이기도 했다.
그런데 형우는 그를 본 순간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겨우 들어왔군. 들어오는 데 정말 힘들었다.]
“…말을?”
던전 게이트에서 사람이 나온 것도 신기한데 말까지 들려오자 더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사례가 없었다.
누군가 은폐했다면 모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국가정보원만큼 기밀을 보유하고 있는 지영도 같이 놀라는 거로 봐선 최소한 대한민국엔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뭐 하고 있는가? 나가야 하니 따라와라.]
“뭐, 뭘 오라는 거야? 넌 누구야?”
[음…….]
형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는 이가 자신을 향해 따라오라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대도 예상외의 반응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다만, 남자는 곧 상황을 눈치채고 인상을 썼다.
남자… 아니, 인사니오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금방 파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온통 주변이 다 거짓이었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계.
그리고 형우의 몸에서 무언가 계속 빠져나가고 들어오고 있었다.
두 개의 상반된 기운은 마치 순환하듯 오갔다.
빠져나가는 건 형우의 힘을 빼앗기고 있는 거였고 들어오는 건 형우의 정신을 흐려놓게 만드는 검은 영혼석의 기운이었다.
그걸 눈치챈 인사니오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속전으로 알려주겠다.]
인사니오는 바로 형우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인사니오의 오른손엔 흰색 빛이 번쩍였다.
“어딜!”
지영은 표독스러운 소리를 내며 인사니오를 막아섰다.
[재밌군.]
인사니오는 자신을 막아선 지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힘을 크게 끌어올렸다.
“프리징!”
촤자작!
지영이 먼저 선공을 날렸다.
그러자 인사니오는 바로 본인의 원래 이명이자 능력인 파괴를 사용했다.
파괴는 어찌 보면 엑시디움의 간부였던 레닉의 능력 ‘소멸’과 닮아 있었지만 사실 질적으로 달랐다.
소멸은 그저 육체를 파괴할 뿐이었지만 파괴는 대상의 영혼까지도 파괴하는 무지막지한 능력이었다.
와직!
파괴는 프리징을 그대로 먹어치웠다.
다만, 뭔가 위력이 좀 부족했다.
전부를 처리하지 못해 조금 남은 프리징의 얼음 조각이 인사니오를 노렸다.
휙! 휙!
인사니오는 굳은 표정으로 그걸 피했다.
[힘을 너무 많이 썼나. 그래도 본체였다면 제대로 힘을 발휘했을 터인데…….]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많은 힘을 사용했다.
본인이 가진 힘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과 물건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해놓고도 인사니오 혼자만 겨우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그 정도로 큐브는 단단했다.
검은 영혼석의 조각과 대법관의 힘, 거기에 알 수 없는 에너지들이 더해졌다.
그것 때문에 뚫는 데 꽤 고전했다.
다행히 들어오긴 했지만 그 덕분에 힘이 많이 소진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 본체가 아닌 아바타 같은 분신이 들어왔다.
그 분신이 대법관이 만든 세상에서 큰 힘을 내긴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 간단한 일을 못 하는 건 아니지.]
인사니오는 그 말을 하며 지영에게 달려갔다.
지영은 바로 대응을 하기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팟.
“앗!”
그때 맹렬히 달려오던 인사니오가 사라졌다.
그것에 놀라 소리를 질린 지영은 급히 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리자 예상대로 인사니오는 형우의 앞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아직도 오른손에서 빛나고 있는 흰색 빛을 형우의 몸에 주입했다.
형우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잠깐 이게 무슨… 으, 으아아악!”
그 순간 형우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기억이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