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4
촤아아아!
다량의 물에 안으로 새어 들어오면서 오러로 일어났던 흙먼지는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
덕분에 대법관의 모습을 빠르게 볼 수 있었다.
대법관은 넝마가 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깔끔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대법관의 얼굴이 보였다.
덕분에 안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한 붉은 눈빛이 번뜩이는 중이었다.
흠칫.
그 눈빛을 본 형우는 흠칫 놀랐다.
비슷한 힘을 가진 상태인데도 겨우 눈빛 하나에 놀란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간 눈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붉은 눈은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무슨 눈빛이 저래?’
형우도 결코 적은 생명을 죽인 게 아니었다.
감옥 F구역에서 처음 살인을 했고 이후 도망가면서 연달아 여러 명을 죽였다.
그 이후엔 정말 살인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사람을 죽여왔다.
물론 거기엔 몬스터와 이종족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몬스터야 어디서든 죽였고 이종족은 바소르들을 상대하며 많이 죽였으니까.
그걸 모두 생각하면 형우도 막 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무조건 많이 죽인다고 저런 눈을 가질 수는 없었다.
[살신(殺神)의 눈. 죽이는 걸 밥 먹듯이 하고 살육을 즐기며 그 영혼들을 취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눈이다. 죽음의 신조차 가질 수 없는…….]
인사니오는 말하면서도 감탄을 했다.
오랫동안 오티움에서 파괴의 신으로 군림해온 그는 마신이자 죽음의 신이기도 했다.
그런 인사니오조차 형우가 놀랐을 때 같이 놀랐을 정도로 섬뜩한 눈빛이었다.
“뭐 싸움은 눈빛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저래 봐야 몇 대 맞으면 알아서 눈을 깔겠죠.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형우는 대법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억이 나는데 전혀 누군지 감이 안 잡히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드래곤 피어가 들려왔다.
“크아아아!”
“크루바 님?!”
펄럭! 펄럭!
포효를 내지른 크루바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레이캬비크로 다가오고 있었다.
형우는 겁먹고 도망쳤던 크루바가 왜 다시 오는 건지 이해를 못 했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누구도 크루바를 건들 수 없었다.
조금 밀린 적은 있으나 몇 개월간 계속 밀어붙이는 싸움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처음 보는 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도망쳤던 게 분했던 크루바는 복수를 위해 다시 이곳에 온 거였다.
정말 이건 본능만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이성이 있었다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여기서 멀리 도망가는 게 맞았다.
그러나 그런 이성이 없는 크루바는 복수를 위해 레이캬비크로 다가와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 모습을 보고 파도와 함께 밀려들어 왔던 해양 몬스터들도 모두 도망갔다.
“스으읍! 크아아아!”
파아아앗!
숨을 깊게 들이쉰 크루바는 힘을 최대한 모아 브레스를 날렸다.
힘을 최대한 모아서 그런지 확실히 브레스가 더 크고 강력했다.
그런데 대법관은 그걸 게이트로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손만 뻗었다. 그리고 브레스의 정면으로 날아갔다.
“…?! 뭘 하려고?”
쿵!
브레스와 대법관이 충돌하자 묵직한 소리가 울려 펴졌다.
뒤이어 충격파가 주변에 불어왔다.
“크아?!”
크루바는 정면으로 자신의 브레스를 막고 있는 대법관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기회라는 듯 힘을 더 주며 브레스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대법관은 브레스에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밀고 있었다.
브레스를 가르며 빠르고 크루바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크루바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당황한 형우는 나서질 못했다.
“저게 뭐, 뭐하는 거야?”
“컥?!”
설마 안으로 들어갈지 예상 못 했던 크루바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크, 크아아!”
콰득! 콰드드득!
곧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뼈가 부서지는 건지 무엇과 부딪히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정말 듣기는 입장에선 너무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곧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됐다.
푸앗! 파직!
“버러지에겐 이게 제일 어울리는 최후지. 잘 가라, 버러지.”
놀랍게도 대법관은 크루바의 몸에 들어가 척추를 그대로 다 뽑아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한 대법관은 그 척추의 중간을 반으로 잘라 양손에 들었다.
“크아…….”
휘이익! 쿠우웅!
척추를 뽑힌 크루바는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
크루바를 죽인 것보다 잔혹한 장면에 형우는 안색을 굳혔다.
비록 안 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함께 전장을 누벼온 전우이자 형우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오티움에서 마지막 ‘전송’의 순간 본인의 생명을 포기하고 막으러 가다가 이곳에서 이성을 잃은 드래곤으로 변했다.
형우는 처량하게 바닥에 박힌 크루바를 보며 살기를 뿜었다.
“간다.”
탓!
그때 대법관이 짧은 한마디를 건네고 형우에게 쇄도했다.
“제어! 오러!”
휘익! 휘익!
형우는 다시 철 조각들에 제어를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오러를 날렸다.
오러도 역시 제어의 통제하에 두고 유도 미사일처럼 사용했다.
그러자 대법관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의 척추를 휘둘렀다.
까아앙! 까앙! 프스스.
둘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런데 잠시 후 척추와 닿았던 철 조각들이 모두 녹아내렸다.
오러도 열심히 피하긴 했지만 결국 척추에 맞아 소멸했다.
‘산성? 마나? 저게 뭐지?’
그저 저것에 맞는 것만으로 없어지는 건 말이 안 됐다.
다만, 뭐 때문에 그런 건지 몰라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달려나갔다.
“오러!”
형우는 보랏빛 오러를 뿜어대며 대법관에게 달려갔다.
조금 전과 달리 게이트를 쓰지 않자 조금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몇 차례 합을 붙어본 후에야 더 어려워졌다는 걸 느꼈다.
쿠웅! 쿠웅! 파스스.
둘이 충돌할 때마다 오러가 깎여나갔다.
아니, 정확히는 먹힌다는 느낌이었다.
“왜 오러가?”
형우는 그것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상대가 특별히 능력을 펼치지 않았는데도 오러가 적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골드 드래곤의 척추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용의 뼈, 드래곤 본이 하는 역할은 간단했다.
높은 강도와 높은 마나 전달력.
이것도 겨우 인간계 내의 기준이지 신급 이상으로 치면 막 높다고 할 수도 없는 능력이었다.
이건 둘째치고 드래곤 본에는 이런 기능이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형우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콰앙! 쾅!
그러나 제대로 알아내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전투하는 와중에 그것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었고 예상외로 대법관의 공격도 거셌다.
‘마법 위주인 줄 알았는데 근접 계열이 더 강한 거 같은 거 뭐야?’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 갔나?”
“통제! 제어! 오러!”
그 말에 발끈한 형우는 연달아 능력들을 사용하며 반격했다.
그러나 공격은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여전히 오러만 흩어졌다.
덕분에 형우의 마나 소비가 너무 심했다.
[아무래도 검은 영혼석 때문인 것 같다.]
“네? 윽!”
계속 싸우던 와중 인사니오의 말에 반응하다가 방심을 했다.
그 때문에 어깨에 살짝 공격이 스쳐 갔다.
스으으.
그런데 스친 상처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몸 전체에는 일명 마나라고 하는 기운이 펴져 있었다.
이 세상을 이루는 근간이 바로 마나였고 그 근간 덕분에 만들어진 게 바로 땅과 하늘, 생명체였으니까.
그리고 그건 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아예 마나 그 자체라 부를 만큼 더 밀집된 마나의 형태였다.
게다가 인간계에 떠도는 기운보다 더 상위이자 순도 높은 기운이었다.
형우 역시 현재 몸 상태가 그랬다.
저번에 신성력과 마기의 밸런스를 맞추며 이명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로 더 좋아졌다. 그리고 마나가 한층 더 오밀조밀하게 압축되어 모여있었다.
그런데 그 마나가 흩어졌다.
마나가 흩어지는 건 형우의 몸이 흩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 돼!’
형우는 흩어지는 마나를 붙잡았다.
몸 전체가 흩어지는 것도 아니고 스친 상처 부위의 소량이 흩어지는 거였지만 처음 겪는 상황에 형우는 당황했다.
그러나 이미 흩어져버린 마나는 통제에서 벗어났다.
[겨우 조각으로 이런 힘을 낼 수 있다니. 이해할 수 없군. 여하튼 조심해라. 아무래도 저자는 검은 영혼석의 힘으로 네 힘을 흡수하려는 듯싶다.]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고 했던 건가?’
형우는 레이캬비크에서 처음 대법관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형우에게 ‘네놈만 있으면 부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으로 유추해보면 결국 대법관이 가지고 있는 검은 영혼석 조각의 힘으로 형우의 힘을 흡수해 충전하려는 듯 보였다.
다만, 이걸 타계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지. 방법이 있긴 하지.’
“제어!”
쏴아아아!
형우는 다시 한번 바다에서 파도를 끌어왔다.
아까보다 더 거대하고 커다란 파도였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대량의 파도가 올 때 대법관은 무조건 막으려고 했다.
몸만 피하는 정도면 충분한데 굳이 다 막을 이유가 없었다.
형우도 공격의 의도보단 난전을 만들려는 의도가 강했다.
여하튼 의도치 않게 약점 아닌 약점을 알아냈으니 이걸 계속 쓰면서 대법관을 이기면 될 것 같았다.
“또 똑같은 방법이냐?”
“똑같은 방법이 어때서? 또 당할까 봐 그래?”
형우는 조롱하며 말을 맞받아쳤다.
그러나 조롱에 바로 공격을 날릴 것 같았던 대법관은 다른 반응을 보여줬다.
“당하는 건 네놈이겠지.”
“뭐?”
화아아악!
순간 주변에 섬뜩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섬뜩한 바람에 형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뭘 하려는 거야?’
뭔가 했으니 일어난 현상이겠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알게 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촤아아아!
바닷물이 대법관에게 다다른 순간 바닥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파밧!
“헉?”
갑자기 사방에서 장막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형우는 바로 위로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느냐!”
휘익!
도망가려는 형우를 향해 대법관은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모두 던졌다.
“매스 블링크!”
그걸 본 순간 형우는 바로 블링크를 사용했다.
대법관에 계속 견제할 게 뻔한 이상 도망치는 데엔 블링크가 제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캔슬!”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순간 형우의 블링크가 취소됐다.
덕분에 타이밍을 놓친 형우는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장막 안에 가둬졌다.
“대법관이시여! 저는 제 역할을 다했나이다!”
캔슬을 사용한 것은 차민, 선우와 싸우고 있던 데브릭이었다.
전투 중 빠져나왔기에 온몸엔 상처가 가득했다.
그러나 상처를 입었어도 형우의 블링크 정도는 캔슬할 힘이 있었다.
데브릭 역시 검은 영혼석의 조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임무를 마친 데브릭은 그 말을 하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차민을 담담하게 바라봤다.
퍼어억! 펑!
“길드장!”
차민은 오러가 가득 담긴 주먹으로 데브릭의 머리를 터트리고 형우를 불렀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오빠!”
“소장님!”
“길드장!”
형우가 거대한 장막에 갇히게 되자 멀리서 싸우고 있던 형우 일행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 거대한 장막은 안에 있는 이를 빠져나갈 수 없게 전체를 둘러쌌다.
정육면체로 정확히 형우와 대법관이 있던 장소를 그대로 삼켰다.
그것은 그대로 하늘로 조금 떠올랐고 위로 떠오르고 나니 마치 큐브와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큐브는 소름 끼치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정확히는 대법관의 힘과 검은 영혼석의 기운이 흘러넘치면서 떨어지는 거였지만 보기엔 정말 핏방울이 떨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