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2
민희와 선우의 전투가 한창 벌어지는 사이 다른 그룹의 전투도 이어지고 있었다.
쿠라와 데브릭을 맡은 차민과 선우는 먼저 둘을 꿰어내 2대2로 대치 상태가 됐다.
다만, 2대2로 대치가 된 상태에서 바로 이뤄질 줄 알았던 전투는 조금 지연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뭐야? 에피리아에서 죽은 거 아니었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
쿠라는 차민이 에피리아에서 죽은 거로 알고 있었다.
그 이후 아예 종적을 감췄었고 지구에 넘어온 이후에도 혹시 몰라 엑시디움의 눈을 피해 활동했으니까.
지금은 최후의 일전이라 생각했기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여하튼 차민은 그렇게 엑시디움의 눈을 피한 덕분에 살아남았고 엑시디움과 계약했던 계약자는 이제 차민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모두 소집한 뒤 데브릭의 마기가 담긴 돌로 중독시켜 모두 죽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오티움에서 마지막 대규모 전송 때 지구로 넘어왔을 테지만.
그리고 차민을 보자마자 쿠라는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네가 열어줬구나? 안 그래도 어떻게 빠져나왔나 했더니 네 짓이었어. 그런데 좀 바보 아니야? 네가 지금 나타나면 무슨 문제가… 아! 풀어냈네?”
계약을 확인하려던 쿠라는 차민이 계약을 깨버렸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러나 반응을 보여야 할 차민은 입에 꿀이라도 바른 듯 전혀 말을 안 했다.
그런 차민을 향해 쿠라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이제 보니 너 정말 대단한데? 다시 우리랑 계약할 생각 없어? 안 그래도 요즘 인원이 많이 줄어서 나도 일하고 있단 말이야. 오면 처음에만 좀 부려… 아니, 다 같이 처음만 고생하면 곧 편해지니까 우리 쪽으로 오는 게 어때? 특별히 간부 자리도 주선해줄게. 엑시디움의 일원이 된다는 건 영생을 산다는 거라고. 신이나 마찬가지야. 어때? 좋지?”
“필요 없다.”
차민은 단칼에 거절했다.
회유에 넘어갈 바보도 아니었고 이 상황에서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도 바보였다. 그리고 현재 목표이자 마지막 삶의 이유인 복수를 포기할 차민도 아니었다.
물론 그런 차민에게도 적절한 회유법도 존재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신이 된다는 건 죽은 네 딸도 살려줄 수 있다는 거야. 딸이 불쌍하지 않아? 아빠도 못 보고 끙끙 앓다가 죽었는데 말이야. ‘아빠, 나 아파. 나 너무 아파. 아빠, 어디에 있는 거야? 아빠, 아빠.’”
“…….”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던 차민의 표정에 금이 갔다.
차민에게 금기는 딸이었다.
워낙 초기에 끌려와 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감옥 안에 있다는 것도 몰랐고 엑시디움의 꾀에 넘어가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 이후 인간들이나 이종족들에게 해악을 끼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딸을 위해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아꼈던 딸이기에 딸이 만약 다시 살아난다는 조건이 붙으니 표정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에요! 인사니오 님이 크루바의 정신도 못 살린다는데 죽은 사람은 어떻게 살려요? 살리더라도 아저씨가 알던 딸이 아닐 수 있다고요.”
선우는 차민의 표정을 보며 다급히 외쳤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차민은 그 때문에 표정이 변한 게 아니었다.
분노.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정수리를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미 딸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건 아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형우가 직접 도와주든 형우가 인사니오에게 부탁해서 하든 어떤 식으로도 말이 나왔을 터였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본인과 아직 완전히 친하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다른 일행의 가족이라도 살렸어야 했다.
그런 일이 없었으니 당연히 쿠라의 말이 거짓이란 걸 알았다.
물론 진짜 가능하더라도 순순히 부활시켜줄 것 같지도 않았다.
“쟤보다 나를 믿는 게 어때? 겨우 한 차원의 신이 가지는 능력 따위야 한계가 있는 거지만 우리 엑시디움은 달라. 많은 차원을 다니면서 얻은 힘과 능…….”
“그만 떠들고 덤벼라.”
차민은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드는 쿠라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싸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잡자 몸에서 오러가 넘실댔다.
오러는 뭔가 묵직함을 담은 듯 보였다.
딱 보기에도 가볍지 않은 기운.
그걸 보며 쿠라가 눈에 이채를 띄웠다.
검은 영혼석을 조각으로 나눠 받아 둘이 강해졌지만 차민이나 다른 일행들도 그동안 많은 수련이 거듭해서 강해졌다.
수련은 본래의 능력을 강화해서 다른 사용 방법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었고 오러나 마나를 수련하는 방법도 있었다.
형우와 민희처럼 말이다.
“말은 그럴싸하게 하고 보여주는 게 겨우 오러야?”
쿠라는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당연하지만 차민이 선택한 건 오러 운용법이었다.
근접 계열 전투를 벌여왔던 차민이기에 지금 와서 마법을 익히고 쓴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런데 막상 익혀보니 마나 운용법을 익혀서 마법을 써도 될 만큼 이해력이 뛰어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러 운용법과 마나 운용법을 같이 익히는 짓은 안 했다.
어차피 시너지가 제일 큰 건 오러 운용법이었고 마나 운용법을 익혀봤자 마법을 쓰는 것밖에 쓸 수 없었다.
마법 중에서 도움이 될만한 게 있을지 몰랐지만 결국 제대로 타격을 줄 만한 마법을 익히려면 정말 수년간 수련을 해야 할 터였다.
그 때문에 깔끔하게 마나 운용법은 배제하고 오러 운용법만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
다만, 그 성과가 엄청나다 하더라도 결국 최상위의 에너지 나투라에 대적하기엔 부족했다.
그 때문에 차민은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뭔가를 더 플러스시켰다.
그렇게 플러스된 건 바로 오티움의 모든 신들과 형우의 신성력이었다.
차민은 충만한 오러에 더욱더 충만한 신성력을 덧씌웠다.
그러자 힘이 몇 배는 더 증폭됐다.
“어, 어?”
무시하고 있던 쿠라는 힘이 증폭되자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데브릭도 안색을 굳혔다.
그 순간 차민이 튀어나갔다.
“여자한테 남자 둘이서 너무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둘이 덤벼서라도 내 속살이 그렇게 보고 싶어?”
“…….”
“…….”
테메의 말에 도영과 민규의 얼굴이 붉어졌다.
실제 그런 짓을 한다는 생각을 조금도 한 적도 없었지만 테메가 그렇게 말하자 그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싸움이 시작된 순간 도영과 민규는 형우의 말대로 테메의 앞을 막아서고 전투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한참 동안 전투 내내 뭔가 자꾸 호흡이 끊겼다.
싸우는 와중에 계속해서 색기를 흘리며 집중을 방해했다.
안 그래도 도영과 민규는 전투 계열이 아니었다.
둘은 철벽과 반사의 능력을 가진 방어 계열 헌터였다.
세세히 따지자면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여하튼 기본이 방어이기에 방어 위주의 전투를 펼쳐야 했다.
여러 가지를 응용도 해보고 오러도 배워봤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겐 R급 능력을 따라갈 만한 공격을 할 능력이 없었다.
그 때문에 근접 계열 전투를 펼치는 테메와 전투를 하며 상당히 곤란했다.
거기에 유혹과 19금까지 더해지자 정말 힘겨운 전투가 되고 있었다.
“미치겠네.”
민규는 자꾸만 아래로 쏠리는 피를 느끼며 머리를 흔들었다.
상황은 도영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여자에 큰 관심이 없던 도영마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테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 유혹의 기운이 가득 담긴 페로몬 때문이었다.
‘우리 능력으로는 이걸 이길 수가 없어. 진짜 그냥 이대로라도 최대한 버텨야 하나?’
이미 반사 능력으로 시험도 해봤다.
반사 능력은 물리적, 마법적인 능력 말고도 특수 계열 능력도 모두 반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반사는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자신이 뿜어낸 페로몬이기 때문인지 그것에 영향을 전혀 안 받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강하게 페로몬을 뿜어댔다.
‘지가 여왕개미야, 패왕색이야? 어우! 죽겄다. 죽겄어.’
민규는 과거에 유행하던 유행어를 말하며 속으로 투정을 부렸다.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유혹이 적립이라도 되는 듯 점점 버티기 힘들어졌다.
“무슨 생각해?”
휘이익! 퍽!
“큭…!”
잠시 한눈파는 사이 가깝게 붙은 테메의 주먹이 복부에 꽂혔다.
“민규 형!”
도영은 바로 테메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공격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혔다.
둘은 전체 일행의 공격력 순위 1, 2위였다.
뒤에서.
시너지고 뭐고 아무리 다른 걸 잔뜩 더해도 둘은 안타깝게 꼴찌였다.
“그래서 날 만족시켜 주겠어?”
“철벽!”
도영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일단 철벽으로 중간을 막았다.
푸아아앗!
빛으로 만든 거대한 장벽이 중간을 갈랐고 덕분에 잠깐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으흥. 난 이런 밀고 당기기는 싫은데. 바로 들어가는 게 좋은데…….”
스윽.
“…!”
그런데 철벽으로 밀어냈다고 생각했던 테메가 바로 뒤에서 나타나 도영의 뺨을 훑었다.
움찔!
그 순간 도영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이어서 테메는 도영을 도와주려던 민규마저 제압했다.
‘망했다…!’
“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좋더라. 이제 내 말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될 거지?”
스으으.
둘에게 더욱더 강한 페로몬이 뿜어져 나왔다.
그 페로몬은 성적 욕구를 강화하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끄으윽!”
“으으…!”
둘은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신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성민과 도영의 눈이 반쯤 풀렸다.
‘더, 더는…!’
둘은 머릿속으로 한계를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분명 테메의 성 노리개로 전락할 게 뻔했다.
둘은 테메에게 빠져 반쯤 정신을 놨고 아래로 피가 잔뜩 쏠리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정말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슈우욱!
“흡?!”
그것은 거대한 빛무리였다.
그런데 낙하하는 속도가 엄청났다.
“꺄악!”
쿵! 쿠웅! 쿵!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떨어진 그것에 테메는 그대로 공격을 허용했다. 그리고 거대한 흙먼지가 주변을 뒤덮었다.
다만, 그 범위에 민규와 도영도 속해있었다.
그 때문에 둘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흙먼지가 걷히고 나니 거대한 금빛 비늘이 민규와 도영의 앞과 위에 펼쳐져 있었다.
금빛 비늘 덕분에 테메와도 갈라지고 방어까지 완벽히 해결했다.
“용준이 GOOD!”
성민이 용준을 항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헤헤, 이런 날을 대비해서 크루바 님 몸에서 몇 개 뽑아놨죠.”
용준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바로 둘에게 달려갔다.
“이야, 용준이 너 정말 타이밍 기가 막히다. 어떻게 딱 맞춰서 도와주러 왔냐?”
“부실한 두 형이 힘들 것 같다고 미리 형우 형이 오더를 똭! 주셨죠. 가속도 제대로 붙여서 한 방에 끝내려고 하다가 좀 늦었어요. 거의 대기권 끝까지 가서 성민이형 낙하랑 제 증폭이랑 합쳐서 공격 날린 거거든요.”
“아아…….”
그 말에 둘은 긴장이 딱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형들 괜찮아요?”
“아니, 죽을 것 같다.”
민규는 무릎 꿇은 채로 대답했고 도영은 아예 대답조차 안 하고 수그린 채 몸을 돌렸다.
“응? 그런데 왜 그렇게 앉아 계세요? 둘 다 다리 다치셨어요?”
“…다른 다리가 좀 아파. 그러니까 먼저 가서 다른 애들 좀 도와줘라.”
민규는 그 말을 하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씨…! 다른 애들은 잘 싸우는데 우린 이게 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