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25
‘자포자기야, 뭐야? 저걸 쓰면 어떡하려고?’
형우는 그 모습을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 검은 영혼석이 어떤 의미인지는 형우도 잘 알고 있었다.
지구를 파괴해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인사니오가 걸어놓은 저주도 풀 수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구를 침략했던 목적이 그거였으니 당연히 저걸 지금 소모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대법관의 몸에서 검은 영혼석에 담긴 힘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신기한 건 흘러나온 힘은 기존에 대법관이 가지고 있던 힘과 절묘하게 융화되고 있다는 거였다.
힘이 절묘하게 잘 융화되자 원래 가지고 있던 것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시너지가 됐다.
덕분에 크루바만 고전하고 있었다.
“크아!”
크루바는 단 한 명에게 밀리자 분했는지 계속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힘이 강해진 대법관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근거리 계열 공격이 아닌 원거리 계열 공격으로 아예 접근도 못 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냥 다 쓰고 죽자는 건가?”
“허… 당황스럽네.”
다른 일행도 저것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계속 공격받는 사이 크루바의 상처가 크게 늘었고 어느새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중상을 입게 됐다.
“봄아! 나머지도 투입!”
“복구!”
봄이는 바로 복구를 사용해 크루바를 치료했다.
워낙 몸체가 커서 한 번에 큰 힘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통합군 전원이 엑시디움을 둘러싸며 전진했다.
“크아아!”
파아앗!
몸이 순식간에 회복된 크루바는 바로 브레스를 날렸다.
브레스는 그대로 대법관을 향해 날아왔다.
“게이트.”
우우웅!
그때 대법관이 처음 보는 능력을 사용했다.
게이트라는 말을 하자마자 거대한 문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브레스가 그대로 그 속으로 들어갔다.
다들 그것을 의아하게 바라봤으나 곧 그것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우우웅!
“피, 피해!”
갑자기 엑시디움들에게 달려가던 통합군의 앞에 문이 생겨났다.
그걸 본 한 헌터가 다급히 외쳤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팀들이 다급히 피했다.
그러나 바로 앞에 있던 팀은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콰아아앙!
“…!”
그 모습을 본 형우는 경악했다.
브레스로 인해 한 팀이 날아갔다.
한 팀의 숫자는 대략 50여 명.
그나마 브레스의 확산 범위가 좁고 실력자 위주로 팀을 꾸렸기에 피해가 이 정도에 그쳤다.
현재 전체 팀의 수는 대략 100여 팀.
전체 인원수로 바꾸면 5,000~5,500명가량이 된다.
그중 정말 소수가 죽은 거였지만 형우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저게 만약 밀집된 곳에 기습적으로 일어났다면.’
아마 지금의 10배 이상의 피해가 생겼을 터였다.
아니, 상황에 따라서 더 많은 인원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형우는 이 정도로 피해가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대법관을 노려봤다. 그리고 먼저 선공을 날렸다.
“제어!”
끼기긱! 콰악! 슈우욱!
형우는 엑시디움이 만든 철제 조형물의 기둥 하나를 뽑아서 날렸다.
목표는 대법관.
그러나 이번에도 비슷한 대응이 나왔다.
“게이트.”
우우웅! 콰앙!
“으악!”
“복구!”
게이트로 다른 곳에 날아간 기둥이 통합군을 덮쳤다.
봄이가 바로 힐을 사용한 덕분에 바로 치료는 됐지만 여전히 등골이 서늘했다.
‘근접전 위주로 가야 하나?’
머리에 드는 생각이 딱 그것밖에 없었다.
근접전에서도 무슨 문제가 생길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붙어서 싸워야 했다.
“다들 모여!”
형우는 자신의 일행들이자 길드원을 모았다.
그러나 모두 부른 건 아니었다.
원거리 계열 능력이나 특수 계열을 쓰는 소정, 용준, 성민을 제외시켰다.
민희가 좀 걸리긴 했지만 마법은 공격 외에도 보조로 쓸 수 있는 게 워낙 많았기에 엔트리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대법관의 앞에 섰다.
그러나 형우의 생각대로 팀을 꾸리지 못했다.
“오랜만에 보니까 참 반갑네. 자주 보다가 안 보니까 은근 서운해.”
먼저 모습을 드러낸 레닉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그 뒤로 테메와 쿠라, 데브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게, 레닉. 근데 어쩌나. 이제 서운한 것도 이번에 마지막일 것 같아.”
“서운하면 잡아다가 박제하면 되잖아?”
“아! 쿠라, 너 머리 좀 좋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며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더 긴장했다.
저들이 왜 여유로운지 이미 알기 때문이었다.
[조각으로 나눠서 분배했군. 저들 모두에게서 기운이 느껴진다.]
“…아주 작정을 했네.”
무슨 생각으로 검은 영혼석을 조각으로 나눈 것인지 모르겠으나 모두에게서 그 기운이 느껴졌다.
다만, 느껴지는 힘의 크기는 대법관보다 확실히 작았다.
검은 영혼석은 사실 에너지의 종합, 잡탕에 가까웠다.
마나도 들어있고 차원 에너지 나투라도 들어있고 마기나 신성력 등등 차원에 있는 모든 기운을 흡수하는 장치였다.
영혼석이 검게 변하는 이유도 그거였고.
사실 형우 일행이 이전에 사용했던 그것과 비슷했다.
‘생각해보니 이전에 이걸 발견한 SH 길드 놈들도 참 대단하네.’
형우는 이젠 형체조차 남지 않은 감옥의 SH 길드를 떠올렸다.
“으흠, 표정들 보아하니 벌써 눈치챘나 보네?”
그때 테메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 변화 없이 말하는 데도 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다들 질린 얼굴로 바라봤다.
전장에서 나오는 색기는 유혹이 아닌 도발이었으니까.
콰아앙! 쾅! 퍼엉!
“더 밀어붙여!”
“막아!”
두 그룹이 대치하는 사이 전투가 시작됐다.
치열하게 맞붙은 두 세력은 엑시디움의 간부 전체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지구의 헌터들이 말하는 규격 외에 속하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그룹에 안 참여한 성민과 용준, 소정이 선전을 하면서 엑시디움에게서 조금의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소정은 수많은 R급 몬스터를 테이밍했고 지금 모두 전투에 참여시켰다.
R급 몬스터는 일반 R급 헌터보다 더 강한 힘을 냈기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
게다가 성민의 낙하와 용준의 증폭, 두 능력의 콜라보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줬다.
덕분에 주력이 빠진 상황에서도 전장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크루바가 도주를 했다는 거였다.
“크, 크아!”
처음에 화가 나서 계속 밀어붙였으나 봄이가 치료를 해주고 다시 덤비는 상황이 반복되자 화는 줄어들고 점점 다른 본능이 깨어났다.
‘두려움.’
생명체라면 어떤 생명체라도 가지고 있는 감정이자 본능이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면 계속 달려들었겠으나 격차가 너무 심하니 도저히 버틸 재간이 안 됐다.
결국, 크루바는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크루바가 도망치자 대법관은 유유히 형우 일행에게 다가왔다.
“…….”
“…….”
대법관이 다가오자 형우 일행은 묘한 긴장감 속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사실 제일 먼저 알고 있던 엑시디움의 간부가 바로 대법관이었다.
법정에서 판결을 내려 감옥을 보낼 때 제일 처음 봤던 인물이 바로 대법관이었으니까.
그러나 제일 데이터가 없는 것도 대법관이었다.
그동안 특별히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었고 한 번도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처음으로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조금 의아한 것은 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냐는 거였다.
‘게이트’라는 능력을 봤을 땐 분명 기습을 했다면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만약 뭣도 모르고 R급 능력을 난발했으면 지금 있었던 피해는 아무것도 아닌 재앙이 일어났을 터였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참 멍청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형우는 그렇게 생각 안 했다.
‘자신감.’
대놓고 능력을 드러낼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본인이 강해졌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기선제압에서는 이미 지고 들어갔다.
엑시디움의 간부들은 시종 여유로운 표정인데 형우 일행은 모두 굳어있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무조건 지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의 힘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기선제압을 당한 건 전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정식 대면을 하게 되는군. 반갑다, 지구의 버러지들아.”
“…….”
대법관의 입에서 모욕적인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나 다들 반응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 튀어나와도 지금은 굳이 반응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형우가 나서서 대표로 말했다.
“버러지? 우리가 버러지면 그쪽은 기생충이네. 남의 차원이나 쪽쪽 빨아먹는 기생충. 그러다가 저번에 제대로 혼나서 지금까지 고생 중인 기생충 말이야.”
“감히…!”
“영광스러운 우리 엑시디움을 겨우 기생충 따위로 말하다니!”
형우의 도발에 걸려든 레닉과 쿠라가 소리쳤다.
그러나 이내 대법관이 제재했다.
다만, 굳이 도발 당하는 걸 막으려고 제재한 건 아닌 듯 보였다.
“기생충이라. 과거에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었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손에 파괴되고 흡수됐지. 네놈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짓을 하지 마라. 네놈들의 죽음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대법관은 살기가 가득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마치 너흴 무조건 죽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가득한 미소였다.
그 미소에 다들 흠칫했다.
그러나 형우는 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 죽이겠다고 칼 들고 오는 놈들 그냥 보고만 있다가 죽으라고? 게다가 내 집까지 부수러 오는 기생충들에게? 이미 다른 집에서 제대로 한 번 혼난 경력이 있는 놈들인데 오히려 너희가 한 번 더 혼나는 게 예정돼 있지 않을까?”
“풋!”
“킥킥!”
형우의 말에 다른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감옥 생활 3년이면 말솜씨 하나는 제대로 배우는 듯했다.
형우는 제대로 엑시디움의 심기를 건들고 있었다.
덕분에 일행들은 긴장을 풀고 엑시디움의 간부들을 비웃었다.
“으드득…!”
그 모습에 레닉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간부 중에서 제일 장난기가 많으면서도 호전적인 게 레닉이었다.
게다가 이미 몇 개월간 계속 당해온 것도 있었기에 레닉이 화를 못 참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레닉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곧 충돌이 예정되어 있었다.
“잡다한 말은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스아아아.
대법관은 그 말을 하며 기운을 뿜어냈다.
차원 에너지 나투라와 검은 영혼석의 기운이 진하게 흘러나오며 근처를 모두 끈적하게 뒤덮었다.
그 기운이 상당했는지 상대적으로 약한 봄이는 인상을 썼다.
다만, 그 모습을 보며 상대편인데도 형우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간 모아온 에너지 이렇게 막 쓰면 너흰 어떻게 저주를 풀려고? 정말 그냥 자폭하려는 거야, 뭐야?”
그런데 대법관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네놈만 있으면 부활할 수 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