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123화 (124/151)

▣ Chapter 5-23

벽에 걸려 있는 글은 길지 않았다.

지구의 신 그란디티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시작된 내용은 짧게 마무리됐고 그 짧은 내용만으로도 대충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아주 희생적인 신이네요.”

[하위 차원의 신이 가질 수 없는 희생정신이지. 그대가 이 차원에 태어난 건 이것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하위 차원의 신이었다면 벌써 자신의 차원을 버리고 도망갔을 테니까.]

“흠…….”

형우는 인사니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장소는 사실 지구의 신 그란디티스가 만든 장소이자 그의 마지막 무덤이었다.

왜 지구의 신이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는지 의아했지만 곧 이유를 알게 됐다.

지구의 신은 본인을 희생해서 모든 힘을 다 내놓았다는 걸.

“그래서 고정됐던 등급이 오를 수 있게 된 거였네.”

원래 등급은 고정된 게 맞았다.

이 등급을 만드는 것 자체가 엑시디움이 영혼석을 모으기 위해 강제로 영혼을 각성시키는 거였다.

강제로 이뤄진 힘에 성장이란 게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 이후 그 리미트가 해제됐다. 그리고 리미트가 해제된 이후는 그란디티스의 희생 덕분이었다.

그란디티스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차원을 살리려고 했다.

혼자서 저항하는 건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겨우 중급과 상급의 사이에 있는 신이 하급 차원에서 이 정도 성과를 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런데 의외네요. 저는 지구가 상급 차원에 속해있을 줄 알았는데요. 우주도 넓고 발전도 빨라서.”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차원의 등급이 높은 경우는 한 차원에 많은 종류의 신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고등 생명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등 생명체는 신의 힘에 근접한 마나도 태어날 때부터 다룰 수도 있어야 하고. 그러나 이곳 지구엔 유일신인 그란디티스만 있는 차원이다. 지구의 생명체들 역시 고등 생명체라 불리는 이들이 없다. 인간은 안타깝지만 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등의 생명체가 아니다.]

“끄응… 그렇게 들으니 더 씁쓸하네요.”

제대로 팩트 폭행을 당하니 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별거 아니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태어난 차원이 겨우 하급에 불과하다는 말을 그냥 흘려듣긴 힘들었다.

“그건 그렇고… 남은 건 이제 관인가?”

형우는 관을 바라봤다.

그란디티스의 마지막 글귀엔 곧 이곳을 발견할 누군가에게 남기는 선물이란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어감이 상당히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이 타이밍쯤 발견할 것이라 예상하고 쓴 느낌이었다.

그래도 상급 신에 가까웠던 그란디티스였고 한 차원의 주신이었기에 예언의 능력이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상급 신이든 주신이든 아무리 강하다고 해서 예언의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아마 오티움은 1차 침공 때 모든 신이 나서서 방어했을 터였다.

툭툭.

형우는 관을 툭툭 건드려봤다.

관 자체가 꽉 차 있을 리는 없으니 당연히 속이 빈 소리가 났다.

“이 관 안에 뭐가 있을까요?”

[열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

이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듯 인사니오는 그저 열어보라고만 말했다.

형우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관을 열어봤다.

드르륵!

“드럽게 무겁네!”

관의 뚜껑을 밀자 정말 엄청난 무게가 느껴졌다.

그냥 돌덩이 정도로만 봤는데 도대체 뭐로 만들어진 건지 형우의 힘으로도 쉬이 안 밀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그래도 계속 밀린다는 거였다.

쿠웅! 콰지직!

“미친…! 뭐 이딴 돌이 다 있어?”

겨우 관 뚜껑을 밖으로 밀어내자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런데 그 떨어진 곳을 기점으로 주변이 모두 금이 갔다.

쿠우웅! 콰아!

게다가 결국 무게마저 견디지 못해 그 부분이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높은 위치도 아니고 조금 떨어트렸을 뿐인데 이 정도라는 건 이 관 뚜껑의 무게가 정말 엄청나다는 거였다.

“하아. 힘겹다, 힘겨워.”

한숨을 돌린 형우는 관 안을 들여다봤다.

“시체?”

관 안에는 하나의 시체가 있었다.

누구의 시체인지는 뻔했으나 신이 죽어서 허물을 남긴다는 건 처음 봤다.

그러나 시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것이 들고 있는 동그란 구체가 중요했다.

“어디서 많이 본 건데…?”

그런데 동그란 구체가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었다.

형우는 그걸 한참을 들여다보며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때 뭔가가 떠올랐다.

“아! 설마?”

“후우-”

밖으로 나온 형우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곳에서 실제 보낸 건 반나절도 안 됐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거의 온종일 있었던 거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안에서 얻은 물건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오죽하면 인사니오마저 놀라서 제대로 답변을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 잠시 후 안정을 되찾고 차분히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조각이 아닌 정수라… 이거만 흡수하면 새로운 이명을 얻을 수 있다니…….”

안에서 얻은 건 그란디티스의 정수였다.

쉽게 말하자면 그란디티스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전(前) 주신이자 현(現) 빛의 신인 크레아의 조각을 발견했을 때 봤던 구체와 비슷해서 사실 그란디티스의 조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활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힘을 남겨둔 거였다.

물론 마지막의 자신을 희생하면서 힘의 제한이 풀리게 했기에 많은 힘이 담기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담긴 이명이었다.

정수를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순간 새로운 이명을 얻게 된다.

이명을 두 개나 얻게 된다는 건 한 차원의 지배자 될 수 있는 조건을 얻게 된다고 인사니오가 설명해줬다.

물론 이것 말고도 방법이 있고 주신이 되는 절차가 간단한 건 아니지만 지금 아예 주신이 사라진 이 지구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이 차원에서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의 힘을 더 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때문에 형우는 흥분했다.

하지만 이내 인사니오의 말을 듣고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크레아의 부활처럼 간단히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조건이 맞아야 쓸 수 있는 귀물(貴物)이다.]

그래도 일단 획득한 이상 나중에 언제든 쓸 가능성이 있었기에 형우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후우… 좋은 걸 얻었으니 이제 목표로 가볼까? 너무 늦었다고 뭐라 하려나.”

도영에게 갈라파고스 제도로 가달라고 말을 들은 지 벌써 7시간이 지났다.

이 정도 시간이면 다른 곳에 있는 일행이 먼저 수색을 마치고 복귀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뭐라 말할지 생각하며 형우는 주변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와이번에게 다가갔다.

[치지직! 소장님! 소장님! 응답 부탁드립니다!]

띠디디! 띠디디!

그때 와이번에게 달린 무전기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있었다.

이 무전기의 반경이 넓지 않은 걸 생각하면 근처에서 누군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위성 전화로도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받았…….”

[오빠!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았어?!]

전화를 받자마자 말을 끊고 선우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게…….”

[전화도 안 받고 지금까지 뭐했어! 오빠,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하하…….”

전화를 받자마자 쏘아붙이는 선우에게 형우는 진땀을 빼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이야기가 다 풀린 이후 선우는 형우에게 이 말을 했다.

[엑시디움들을 드디어 찾아냈어요.]

“뭐?!”

형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복귀했다.

“…함정일 가능성은요?”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혹시 몰라 주변이나 전 세계 곳곳을 다 뒤지면서 지하까지 수색하고 있는데 더 발견되는 곳은 없습니다. 계속 수색은 하고 있으나 이번에 지하를 탐색할 수 있는 장비를 노획한 덕분에 수색의 정밀도가 높아졌습니다. 아마 추가 발견은 없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으흠…….”

종로의 군사령부.

형우는 한국으로 복귀하자마자 엑시디움 종족이 발견된 장소에 대해서 장교에게 브리핑을 들었다.

다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많이 이상했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의심스러운데 발견된 장소가 하나뿐이라는 거였다.

이전엔 여러 곳에 함정도 만들어두고 미리 발각될 걸 대비해 다른 곳에도 장소를 만들어놨었다.

“아무래도 적은 총력전을 펼칠 생각인가 봅니다.”

도영은 브리핑을 다 듣고 나서 그 말을 꺼냈다.

이런 경우엔 딱 한 가지밖에 생각이 안 되는 경우였다.

적이 마지막 결사항전을 한다는 것.

아무래도 그거 외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 음흉한 놈들이 총력전을 펼치려고 할까?”

“음… 그게 의심이 들긴 하지만 다른 장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설사 저곳이 함정이라 해도 공격을 들어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도영의 대답에 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다 모여 있다는 건 이번에 엑시디움의 세력을 모두 일망타진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함정이어서 더 총력을 기울였다면 그게 더 땡큐였다.

귀찮게 이제 찾아다니지도 않고 한 번에 적을 처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영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긴 한데…….’

형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브리핑 자료들을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갈라파고스 제도는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있었어?”

자료를 보다가 형우는 그 일이 생각났는지 도영을 보며 질문했다.

그러자 도영은 짧게 대답했다.

“잠깐 몬스터 떼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여서 확인을 좀 해달라는 거였답니다.”

“그래? 여하튼… 총력전이면 우리도 총력전을 해야겠네.”

“예, 그래야겠죠.”

“흠흠… 이번에 전투가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온 자료가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때 군사령부의 한 준장이 말을 꺼냈다.

둘만 너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끼어든 느낌이었지만 형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하셨다니 당연히 봐야죠.”

속으로는 영혼이 없는 멘트긴 했다.

어차피 실질적으로 실행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크루바로 함정을 확인한다.

확인 후 병력을 투입한다.

공격한다.

승리한다.

간단한 4문장으로 이뤄지는 전략이 다였다.

그러나 장성의 말을 들어주는 이유는 군의 질서를 위해서였다.

모든 전략과 전력을 헌터에게 아니, 형우 일행에게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의존도 아니고 그냥 격차가 너무 심하다 보니 딸려오는 거였지만 여하튼 군의 입장에선 썩 유쾌하지 못했다.

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당연히 국방을 위해서였고 그 국방을 대부분 도맡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저 겉절이 수준이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형우 일행이 가진 힘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아예 배제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형우 일행이 그들을 무시까지 한다면 군 수뇌부의 사기나 최종적으로 군을 통제하는 정부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형우는 웬만하면 군의 의견이나 방향에 대해서 들어주고 시행도 해줬다.

“그래서 이번에도 처음은 함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드래곤 크루바를 먼저…….”

“으흠…….”

이미 예상했던 이야기가 나오자 형우는 살짝 지루해지는 걸 느꼈다.

형우는 시선을 돌려 장성의 뒤에 있는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엔 엑시디움이 새로 근거지로 잡은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아이슬란드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