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20
“푸하핫!”
“풉!”
“하하, 하하!”
종로의 중앙로 2번가 어느 건물 안, 무언가에 큰 소리로 웃고 있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로는 새로 재건되면서 행정구역이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엔 북악산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북악산이 북쪽 끝을 차지했다.
대신 중구였던 곳이 종로에 포함되면서 네모난 형태의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도 가장 가운데에 있는 곳이 바로 종로의 중앙로 1번가다. 그리고 청와대를 제외한 모든 핵심 기반이 모인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핵심을 뽑으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이스케이프 길드의 길드 본부를 뽑을 터였다.
이스케이프 길드 본부가 다른 건물에 비해 크거나 화려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빠르게 도시 건설을 해야 했기에 시간을 고려해 높아 봐야 7층을 한계로 설정하고 건설했다.
이스케이프 길드 본부는 거기에 못 미치는 5층이었다.
다만,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중요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은 모두 재건되는 도시가 형우 덕분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2번가에서 핵심을 뽑으라면 무조건 이 장소였다. 그리고 그 길드 본부 안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그 웃음이 좀 이상했다.
뭔가 많이 비웃음 같았다.
“감옥의 신이라니, 감옥의 신이 뭐냐? 킥!”
“오랜만에 우리 길드장 오빠가 장난친 거 같은데 좀 받아줘요, 푸웁!”
“…….”
넓은 강당에서 형우는 자신을 비웃는 성민과 봄이를 보며 고개를 떨궜다.
평소라면 충분히 반격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도 안 들었다.
인사니오와 함께 이명을 알아내기 위해 보름 넘게 수련을 했다.
여러 형상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명을 찾아내야 했기에 장소를 계속 바꿔왔고 바로 어제 오티움의 감옥 내에서 수련했었다.
그런데… 한참을 힘쓰다가 힘들어 나가려는 상황에서 드디어 이명을 알게 됐다.
다만, 그 이명이 형우가 전혀 예상치 못한 거였다.
‘불의 신, 땅의 신도 아니고 감옥의 신? 아니, 신도 얼마 없는 마당에 그냥 원소 계열로 주지 무슨 감옥의 신이야?!’
형우 입장에선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인시나오는 이명에 대해 알려줄 때 원소 계열의 이명을 가진 신들이 가장 강하다고 말해줬다.
가장 기초가 되는 속성이기에 가장 강력하다고 말이다.
물론 그 위에 창조와 파괴가 있었지만 그건 현재 인사니오가 둘 다 가진 상태였다.
여하튼 얼마든 나올 수 있는 많은 속성이 있었지만 형우는 하필 감옥이라는 이명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인사니오 님은 이미 알고 계셨잖아? 그래서 수련 장소를 감옥으로 택한 건가?’
인사니오는 이명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이곳을 택한 듯했다.
아니, 어찌 보면 이곳을 오기 위해 다른 곳에서 전초전을 치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틈을 노린 듯싶었다.
그래야 이명을 찾기 쉬웠을 터니까.
“아, 그런데 오빠. 그럼 감옥의 신은 어떤 힘을 쓸 수 있는 거예요? 이명이 있으면 신마다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서요.”
소정이는 나름 말을 돌려준다고 주제를 돌렸다.
그러나 그 말에 형우의 안색이 더 굳었다.
나름 돌려준다고 돌렸지만 이걸 설명하면 한 번 더 웃음이 크게 터질 게 뻔했으니까.
형우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직은 잘 몰라.”
그저 변명을 내뱉었지만, 속으로는 열불이 터져 나왔다.
‘이명으로 할 수 있는 게 수감이라니. 나보고 교도소장을 하라는 거야?’
감옥의 신 박형우가 돼서 할 수 있게 된 게 바로 수감이었다.‘
어찌 보면 감옥의 신이라기보다 지옥의 신 느낌이었다.
죽은 자를 다루지 않고 산 자를 다루기에 감옥의 신이었지만 권한이 확장되어 영혼까지 다루게 된다면 정말 그럴듯한 능력이 된 듯했다.
‘문제는 그런 건 없다는 거지…….’
나중에 운이 좋아 영혼을 다루는 신의 이명을 얻는다면 몰라도 그전까진 그냥 간수장일 뿐이었다.
가두는 것도 사실 제약이 좀 많았다.
특정 조건을 채워야 했는데 그 덕분에 생긴 새로운 무기가 있었다.
‘포획의 사슬.’
‘이송의 대검.’
‘수감의 철퇴.’ 겉보기에 그럴듯한 이름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다 그냥 칼날 달린 검이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검으로 대상의 특정 신체 부위에 상처를 내면 감옥에 수감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순순히 당해주겠냐고.’
각각 손, 발, 복부였다.
싸우는 중에 무기를 바꿔가며 확실히 노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형우는 더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좋은 점은 분명 있었다.
첫째로 힘이 강해졌다는 거였다.
이명을 알기 전에도 분명 강했는데 이명을 알고 난 뒤로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 같았다.
이제 크루바의 도움이 없어도 엑시디움을 압도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힘 말고 다른 하나 더 좋은 점이었다.
“후, 너무 웃었더니 배가 다 땅기네. 길드장, 삐진 건 아니지? 그만 웃을 테니까 표정 좀 풀어. 그것보다 아까 너만의 신계가 생겼다며. 길드장, 우리 좀 거기에 데려가 줘라. 응?”
“하아… 그래.”
“와아!”
형우가 한숨 쉬듯이 대답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성민이 먼저 말하긴 했지만 내심 다들 형우의 신계에 가보고 싶은 눈치였다.
신계는 이명을 얻게 된 순간 자연스럽게 얻어졌다.
신이면 당연히 생기는 공간이고 좀 개별적인 차원이기도 했다.
일전에 형우가 인사니오를 만났던 오두막 있는 강가가 바로 신계였다.
다만, 형우의 신계는 좀 특별했다.
“문.”
촤악!
멋도 하나 없는 시동어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나타난 문은 넓은 강당의 한 면을 꽉 채울 만큼 컸다.
철컥. 끼이익.
문은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아!”
“미쳤다…! 역시 신이 쩔긴 쩌는구나.”
“음… 근데 이 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다들 신계를 이어주는 문을 보곤 감탄을 했다.
다만, 도영만이 묘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어디서 많이 본 무언가였다.
규모가 좀 달라서 바로 알아보진 못했지만, 계속보다 보니 무언가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길드장님, 이거 혹시 감옥…….”
“자자, 어서 들어가자!”
형우는 도영의 말을 끊으며 안으로 일행들을 밀어 넣었다.
뭔가 말하려던 도영은 그대로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형우는 한숨을 푹 쉬고 뒤따라 자신의 신계로 발을 움직였다.
끝없는 심연의 나락.
끊임없이 이어진 어둠의 차원, 그곳은 언제나 어두웠다.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가 없었고 그곳에 있는 이도 없었다.
오직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
이곳에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뿐.
그러나 그곳에도 생명체는 있었다.
아니, 생명체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스으으.
액체인지 기체인지 불명확한 무언가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인다는 표현보다 그저 흐름에 따라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그 기이한 현상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긴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건 저것 빼곤 이 공간 내에서 움직이게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지이잉.
어둠밖에 없던 공간에 빛이 생겨났다.
금방이라도 어둠에 먹힐 것 같은 위태로운 빛이었지만 생겨난 빛은 겨우겨우 본인의 형태를 유지하며 작은 문을 만들었다.
저벅저벅.
그리고 그 문에서 누군가 나왔다.
“…….”
문밖으로 나온 건 엑시디움의 간부이자 리더 역할을 하고 있던 대법관이었다.
대법관은 상당히 굳은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원래 표정이 없긴 했지만 이건 표정이 없다는 것과 달랐다.
분명 표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의 의미는 긴장이었다.
딱 보기에도 긴장했다는 것이 밖으로 보일 정도였다.
무엇에 그리 긴장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대법관은 그 표정 그대로 계속 걸어갔다.
그때 액체인지 연기인지 모를 그것이 대법관의 앞에 모여들었다.
스으으.
그것은 점점 크기를 불렸고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났다.
잠시 후 거대한 산처럼 커진 뒤에야 늘어나지 않게 됐다.
“엑시디움 종족의 지배자이자 모든 차원의 지배자이신 엑시디움 님을 뵙나이다.”
대법관은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예를 표하고 일어났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나의 아이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
그 말에 대법관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이런 불충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신께 사죄를 구하옵니다. 저희가 부족해서 누를 끼치…….”
[사죄는 나중에. 무슨 일인지부터 먼저 고하라.]
고개를 조아리며 다시 엎드리려 하자 엑시디움이 말을 끊으며 제지했다.
“방해꾼이 있어 준비해오던 일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간의 일을 정리해드리면…….”
대법관은 차근차근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두 말했다.
본인들의 실수이든 적 때문이든 가감 없이 그대로 고했고 엑시디움은 듣는 내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모든 기반을 잃은 상태입니다. 동족의 피해 또한 있기에 이대로라면…….”
대법관은 말을 흐렸다.
물론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뜻은 전해졌다.
그러나 완벽히 끝까지 말하진 못한 건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엑시디움을 대법관이 봤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수천, 수만 년을 같이 보낸 대법관이기에 그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
“…….”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어느새 대법관이 나온 문은 어둠에 먹히듯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자 다시 공간은 어둠에 물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말을 안 하자 어둠이 점점 무서워지는 듯했다.
그때 엑시디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타깝고도 안타깝도다. 겨우 하나가 남았을 뿐인데… 그동안 수많은 차원을 지배했고 흡수했던 내가 고작 단 하나의 차원 때문에 이렇게 조마조마해야 한다니. 참 웃기구나, 나의 아이야.]
“저희의 불충을 용서하소서.”
대법관은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이 몸을 숙였다.
그러나 그건 엑시디움이 바란 대답이 아니었다.
[타계할 방법은?]
“최선을 다해 끝까지 노력하겠나이다. 동족이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을 맺겠습니다.”
대법관은 고개를 숙인 채로 그 말을 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서 잔해라도 가져오라. 잔해가 되어 가루가 되더라도 가져오라. 설사 오랜 시간을 다시 소모하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치욕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가져온다면 너의 모든 죄를 사해주겠다.]
“예, 나의 신이시여.”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 그러나 대법관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대법관은 이곳을 벗어났다.
대법관이 사라지자 공간엔 다시 어둠과 적막으로 꽉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