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19
“파이어 필드!”
“베리어!”
“오러 블라스터!”
콰아앙! 콰앙!
살벌한 폭음이 오가는 전장,
수많은 능력이 하늘 위로 높이 날아갔다.
그러나 그 능력들의 목표물은 오직 단 하나였다.
전쟁이라기보단… 레이드에 가까운 상황.
그리고 그 레이드 대상은 드래곤 크루바였다.
엑시디움과 바소르들은 죽을 힘을 다해 크루바를 공격하고 있었다.
맨해튼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었다.
각자 임무를 띠고 지구 전역에 퍼져있던 이들도 많았고 마계와 천계에 대기 중인 바소르의 세력도 많았다.
그들을 동원해 다시 지구에 탑을 건설하려 했다.
지구를 파괴할 탑을 건설해야 이 기나긴 싸움을 끝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탑은 에너지를 모으는 매개체일 뿐 위력을 내는 건 레닉이 회수했던 검은 영혼석이었다.
그것만 있으면 건설에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 에너지가 모인 상태면 검은 영혼석이 알아서 에너지를 충전했다.
건설에 들어가는 탑과 마법진은 보조적인 역할이었기에 공정률이 100%가 안 돼도 괜찮았다.
그렇기에 이제 시간만 끌면 됐다.
여하튼 덕분에 재건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작업은 다시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비상용으로 하나가 아닌 여러 곳에 동시 건설을 시작했다.
거기에 함정까지 여럿 만들고 나니 안전하다고 여길만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만이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면 바로 형우 일행과 크루바가 현장을 덮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찾아왔다.
나눠서 여러 곳을 동시에 공격하기도 했고 병력을 모아 한 번에 대항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다른 곳에서 공격하고 있는 이들이 공간을 찢고 나타났다.
물론 그들은 이게 맨해튼에서 패한 이후 한국이 미국이 가지고 있던 군사 위성을 획득해서 일어난 거라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여하튼 엑시디움은 차원 침략을 해온 이래로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된다!”
“계속 견제해라!”
“마, 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라고!”
“아아악!”
전장은 혼잡 그 자체였다.
크루바는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였지만 영악했다.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듯 함정엔 잘 걸리지 않았고 효과적으로 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크루바는 점점 이 상황을 즐겼다.
갑자기 어디로 이동되면 먹잇감이 충족한 곳으로 옮겨진다.
몇몇이 발악하긴 하지만 대부분 약했고 조금 밀리려고 하면 몸이 회복되고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다.
안 그래도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먹이가 고픈 상태였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먹이를 충당하지 않고 마나로 충분히 버텼겠지만 안타깝게 그런 머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엑시디움과 바소르들만 죽어났다.
“하… 어쩌다가 우리 엑시디움이 이런 꼴이 된 거지.”
한창 싸우던 와중에 이곳을 책임지고 있던 쿠라가 한탄하듯이 그 말을 내뱉었다.
주위가 시끄러워 그 말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지만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다.
어느 차원을 가든 최고 군림했던 게 바로 그들 엑시디움이다.
오티움이나 지구처럼 엑시디움을 모르는 차원도 있었지만 아는 곳에선 정말 대재앙으로 불렸다.
차원을 넘어오려는 낌새가 보이면 하위 차원 같은 경우는 그곳의 신들이 바로 차원을 버리고 도망갈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명성이 무력하게 인간들에게 당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형우 한 명에게 당하고 있었다.
팟! 팟!
“소멸!”
콰아아!
“크아아!”
“레닉 님이시다!”
“레닉 님이 오셨다! 지금 얼른 옮겨라!”
한창 밀리던 순간, 레닉이 빛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능력이 발현되면서 팽팽하게 유지되던 전장이 한쪽에게 우세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반기면서도 건설 자재를 옮기는 일만 빠르게 하고 있었다.
다들 이미 지금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끼이이익! 치이익!
“썩을! 이번엔 왜 이렇게 빨리 나타난 거야!”
“필요한 것만 챙기고 어서 철수해라!”
팟! 파바밧!
공간이 찢어지듯이 갈라졌고 그 모습이 보이자마자 다들 몸을 뺐다.
레닉과 테메도 마지막까지 크루바를 견제하다가 바로 도망쳤다.
크루바도 다들 사라지자 이곳에 관심을 잃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 덕분에 탑을 건설하던 현장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들이 몸을 다 빼자마자 찢어진 공간에서 나타난 건 작은 머리 하나였다. 그리고 그 머리의 주인은 용준이었다.
“다 갔나?”
용준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다들 사라진 걸 확인하고 완전히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용준은 홀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바보들이라니까. 어떻게 이런 거에 속지?”
혼자 실실 웃은 용준은 폐허를 돌아다니며 전리품을 챙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곳에 터를 잡게 되면 많은 게 필요한 법이었다.
식량과 건축 자재부터 마나를 품고 있어 마나석이라 불리는 물건과 천계, 마계에서만 나오는 금속 등.
많은 것들이 건설이 필요 혹은 보조했다.
그런데 공격을 받으면 당장 다 챙길 수가 없었다.
겨우 중요한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는 거의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용준은 그 남겨진 나머지들을 챙겼다.
“앗?! 멀쩡한 폰 가게가?! 우아, 상태 완전 S급!”
부수익도 챙기면서.
대한민국 서울 청와대.
몬스터에 의해 반 이상 무너졌던 청와대는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 완벽히 복구된 상태였다.
대한민국 건국부터 이어져 온 깊은 역사를 가진 상징적인 곳이었기에 다들 세심하게 복구를 했고 얼마 전 드디어 완공됐다.
“내가 여기에 다시 발을 들일 줄은…….”
주 대통령은 청와대 안으로 발을 들이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제 겨우 임기 2년 차로 넘어온 상태였다.
정치에 입문해 정치인으로서 20년간 과거 운동권 출신들을 정신을 계승했다고 하는 민족당에서 한결같이 지냈다.
물론 중간에 이름이 바뀌는 둥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기간을 모두 버티고 같은 당 출신인 전 대통령에 이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당선 후 1년 차에 다져놓은 정책들이 이제 겨우 효력을 발휘하는데 딱 대한민국이 망해버렸다.
나름 이루고 싶었던 게 많은 주 대통령으로선 정말 억장이 무너지고 거꾸로 피가 솟았다.
그런데 어찌어찌 구출도 된 이후 형우 일행이 몬스터도 처리해주고 건축 자재도 구해줬다.
주 대통령에겐 형우가 정말 최고의 은인이었다.
덕분에 다시 청와대를 밟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대통령님, 특별히 준비해놓은 공간이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시기 전에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특별히 준비한 것도 있습니까? 준비까지 해뒀는데 안 갈 수야 없지요. 어서 갑시다.”
주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전망대에 도착했다.
“오…….”
전망에 올라온 주 대통령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최초의 신도시이자 재건 도시인 종로가 지어진 뒤로 서울은 몇 개월 사이 큰 변화가 일어났다.
주변 몬스터를 확실하게 정리하면서 점점 영역을 넓혔고 형우 일행의 도움으로 북한까지 확실히 정리를 끝냈다.
그 뒤로 깔끔하게 정리된 한반도에 무한정으로 도시를 늘렸다.
물론 계획 없이 늘린 건 아니었다.
지어질 도시는 전부 제대로 기획을 해서 건설을 시작했다.
다만, 이게 가능했던 건 전 세계에서 건설 자재를 쓸어온 덕분이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에 의해 지구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지만 찾으려면 지구 전체를 찾는 만큼 대한민국 하나 복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형우 일행이 엑시디움에게 얻어오는 전리품들도 큰 도움이 됐다.
그 덕에 도시는 하나둘 빠르게 늘어갔고 첫 도시가 만들어진 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무려 20개의 도시로 늘어났다.
처음 단 하나의 도시를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빠른 속도였다.
물론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전 세계에서 무생물만 모아오는 게 아니라 생물도 모아왔다.
그 생물엔 당연히 사람이 포함됐고 사람 중엔 헌터도 많았다.
사실 몬스터가 세상을 뒤덮은 지구에서 아무 능력 없는 일반인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래서 구출해오는 사람 중 헌터의 비율이 꽤 높았다.
그렇게 헌터의 숫자가 늘고 건축 자재도 충분하게 채워지니 당연히 속도가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현재 종로 주변엔 10개의 도시가 생겨났다.
“얼마 전까지 폐허만 보였는데… 이리 보니 참 좋군요.”
주 대통령은 먼 곳까지 질서정연하게 세워진 건물 숲을 보며 슬쩍 눈물을 훔쳤다.
제주도로 넘어가지 못하고 폐허에 남겨졌을 땐 모든 게 망했다고 생각했었기에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
“…….”
그 모습을 보며 몇몇이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곧 감정을 추스른 대통령은 처음으로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 회의를 시작했다.
첫 내용은 지구의 통합 국가 설립이었다.
[좀 더 신성력을 끌어올려라. 아니, 아직 더 부족하다. 이번엔 마기가 많다. 생각하는 것도 잊지 마라.]
“끄응…!”
오티움 내 감옥.
형우는 무언가를 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인사니오는 계속해서 형우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영 기대에 못 미치는지 인사니오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형우의 입장에선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다.
‘아니,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란 거야?’
얼마 전부터 인사니오는 형우에게 이명을 알아내길 요구했다.
형우는 신의 지위이자 더 강한 힘을 얻게 해주는 이명을 가지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저 거기서 나오는 힘만 겨우 이용할 정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엑시디움과 바소르들을 밀어붙이는 덴 충분했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몰랐다.
지금도 크루바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밀어붙이진 못했을 터였다.
오히려 지금 재건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역으로 공격을 당해서 오히려 형우 일행이 집 지키기에 바쁜 형국이 됐을지도 몰랐다.
덕분에 적이 한반도를 공격할 생각도 못 하고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만, 언제까지나 크루바를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분명 한계가 있을 거고 적들도 어떠한 것이든 방도를 찾을 게 뻔했다.
게다가 인사니오가 엑시디움들에게 썼던 금제 또한 약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새로운,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사니오는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이명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 험난했다.
벌써 수십 번 장소를 바꿔가며 계속 밸런스를 맞추고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보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대는 힘을 쓰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는데 조절하는 건 많이 부족한 듯하군.]
“…밸런스란 걸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형우는 소심하게 반항하며 말했다.
하지만 인사니오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밸런스를 계속 유지하면서 사물을 떠올려라. 어떠한 형체이든 여러 형체를 구상하면서 이명을 찾게 된다면 그대는 신성력과 마기를 같이 가진 강력한 신으로 다시 태어날 거다.]
‘밸런스도 어려운데 무슨 형체를…….’
신성력과 마기를 그저 비슷한 비율로 맞추는 건 쉬웠다.
그렇게 회색 오러를 여러 번 써왔으니까.
그러나 정확한 비율로 맞추는 건 정말 어려웠다.
이 정확한 비율이란 것도 솔직히 형우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국, 한참을 끙끙대던 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거 유지하는 것도 벅찬데 뭘 떠올리는 것 자체가…….”
형우는 더는 못하겠다는 듯 그대로 감옥의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우웅.
“어?”
감옥의 문이 짧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