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16
인사니오의 말을 들은 형우는 정신을 못 차렸다.
앞에 있는 거대한 도마뱀… 드래곤이 크루바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게··· 아니, 크루바 님이라고요?”
“네?! 크루바 님이요? 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민희는 형우의 말에 깜짝 놀라서 질문했다.
그러나 형우는 민희의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인사니오는 민희를 배려해서 자신의 말을 그녀가 들을 수 있게 해줬다.
그러자 임시지만 민희도 인사니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기운이 조금 변형되긴 했어도 분명히 드래고니안 크루바가 맞다. 그대도 신성력과 마기를 집중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거라. 그럼 알게 될 것이다.]
“······.”
형우는 그 말에 바로 신성력과 마기를 끌어 올려 힘을 확인했다.
그러자 왜 인사니오가 힘을 끌어올려 바라보라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드래곤의 신물.
그 기운이 크루바의 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엔 익숙한 크루바의 기운도 같이 느껴졌다.
다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또다른 의문이 있었다.
“그럼 저건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신물이 크루바 님의 몸에 들어가 있고… 왜 크루바 님이드래곤이 된 겁니까?”
[자세한 과정은 모르겠으나 차원을 이동하던 도중 신물이 크루바를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된 듯 하군. 원래 저 신물의 이름은 드래곤의 영혼이다. 그리고 그 신물의 이름 그대로 정말 드래곤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아마… 그게 지금 크루바의 모습에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으흠······.”
인사니오의 말에 형우는 낮은 신음을 내며 크루바를 바라봤다.
이전의 드래고니안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그나마 같은 건 단 하나였다.
‘금빛 비늘.’
그것 외엔 아무것도 알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형우는 달라진 크루바를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런데 그러면 더 좋아진 거 아닌가요?”
인사니오의 말을 듣고 있던 민희는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쪽 짜리 드래곤, 드래곤의 아류종, 색깔있는 파충류.
여러 별명으로 비하당하는 게 바로 드래고니안이었다.
실제 힘의 차이를 보자면 반쪽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크긴 했다.
그런 드래고니안이 진짜 드래곤으로 변했으면 당연히 좋은 게 맞았다.
그러나 아직 인사니오가 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드래곤이 됐다면 문제가 될 건 없다. 더불어 신물이 제대로 융화되었다면 더더욱. 아마 멸종한 드래곤이 크루바 덕분에 부활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그건 힘들 듯하군.]
“왜 그런가요?”
[직접 보도록.]
“네?”
인사니오의 말에 민희가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크르르…”
갑자기 사나운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방금도 자면서 작게 소리를 내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확실한 적대감이 묻어나는 소리.
절대 수면 중에 낼 수 없는 거였다.
번쩍.
그리고 닫혀있던 크루바의 눈이 떠졌다.
흠칫!
“크아아!”
“···!”
“···!”
크루바는 눈을 뜨자마자 가장 강한 생명체의 고함, 드래곤 피어를 내뿜었다.
바로 앞에서 드래곤 피어에 노출된 민희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실 형우 일행에서 두 번째로 강한 게 바로 민희였다.
다른 일행들과 다르게 그저 게임 스킬을 쓰듯이 능력을 써온 게 아니라 직접 마법을 배워 그걸 능력에 대입한 첫 인물이었다.
형우조차 그것에선 후발주자였다.
민희의 현재 마법 능력은 7서클과 8서클 사이.
예전이었으면 인간 중 가장 높은 경지라고 오티움 역사에 기록 남을 어마어마한 경지였다.
여기에 R급 능력이 더해지니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R급 능력의 이름은 마나.
이것 또한 구체적으로 능력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마나라는 이름만으로도 대충 예상이 가는 능력이었다.
R급 마나는 민희를 마나 그 자체로 만들어줬다.
이전보다 캐스팅 속도가 빨라진 건 물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능력이 펑펑 써댔다.
덕분에 다른 일행과 비교했을 때 같은 R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컸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드래곤 피어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물론 정확히는 그 피어에 저항중인 탓에 얼은 거였지만.
“스으으읍······.”
“브레스! 민희야!”
크루바가 브레스를 쓰려고 준비하자 형우는 피하려다가 얼은 민희를 보고 소리쳤다.
그러나 형우의 외침에도 민희는 반응하지 않았다.
방심한 상황에서 피어에 직격당한 터라 바로 정신을 차리긴 어려워 보였다.
형우는 어쩔 수 없이 민희에게 달려가 손을 잡았다.
“매스 블링크!”
“크아아아!”
파아아앗!
아슬아슬한 타이밍.
조금만 늦었다면 브레스에 가루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형우는 브레스의 진행 방향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키···!”
“···!”
그러나 같이 얼어있던 와이번 두 마리는 그대로 브레스에 휘말려 소멸했다.
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내부의 기운을 느낀 순간부터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전송’으로 지구에 온 모든 존재는 이성을 잃고 몬스터가 됐다.
엑시디움이나 바소르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그걸 막고 오히려 이동 중에 생긴 에너지를 빨아들여 더 강해졌다.
그러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그냥 넘어온 크루바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안타깝게도 신물은 크루바를 지키기 위해 합쳐졌으나 몸만 키워주고 정신은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형우와 민희를 바로 공격했던 거였다.
지성과 마법의 종족으로도 불리는 드래곤이 말이다.
내부를 들여다봤던 형우는 내부에서 진정되지 못하고 혼돈에 가까운 상태가 된 기운들을 봤기에 미리 피어와 브레스에 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크게 안 놀라긴 했으나 브레스의 위력엔 크게 놀랐다.
와이번 두 마리를 녹여버리고 밖으로 나간 브레스는 다른 산에 충돌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놀랍게도 브레스에 닿자마자 산이 사라졌다.
물론 하나의 산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여러 개의 산이 모두.
그러고도 모자라 땅을 향해서 내려가 큰 크레이터를 만들고 사라졌다.
‘무슨 위력이······.’
그 위력을 본 형우는 식겁했다.
[원래 드래곤은 하급 신에 가까운 힘을 가졌었다. 물론 신의 권능이 없는 반쪽짜리 신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 크루바의 경우엔 그 수준을 충분히 넘은 듯하군. 신물과 ‘전송’ 덕분에.]
‘···말 안 해줘도 피부로 잘 느끼고 있습니다.’
인사니오의 말에 형우는 속으로 대답했다.
정말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저 몬스터들이 준동한 원인을 찾으러 왔다가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은 형우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형우는 일단 민희를 정신차리게 하려고 소리쳐 불렀다.
“민희야? 민희야!”
“······.”
그러나 여전히 민희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포에 떨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그게 다행이니 마니 할 건 없었지만.
“슬리핑.”
스르륵.
형우는 아예 민희를 재웠다.
어차피 형우도 당장 싸울 생각이 없었고 민희가 일어나든 자든 상관없었으니까.
“크아아!”
쿵! 쿵! 쿠구궁!
그사이 크루바는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그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산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밖으로 머리를 뺀 크루바가 형우는 바라봤다.
“후우··· 나중에 또 봬요, 크루바 님.”
형우는 짤막하게 인사를 건네곤 바로 도망쳤다.
“매스 블링크! 매스 블링크!”
팟! 팟!
매스 블링크를 연달아 써서 도망치자 크루바가 밖으로 완전히 나왔을 때 형우는 이미 그 지역을 벗어난 뒤였다.
“후우··· 후우······.”
강원도 경계선 근처.
정신없이 블링크를 써서 도망친 형우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원래라면 어떻게 되든 싸웠겠지만 도저히 크루바와는 싸울 수 없었다.
그동안 봐온 정이 있었기에 웬만하면 원상태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인사니오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군.]
“왜 안 되는 겁니까?”
[이미 되돌릴 수 없다. 본능만 남는다는 건 이성이 마비된 수준 따위가 아니라 정신이 파괴된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다. 파괴된 정신은 살릴 수도 없고 설사 살린다고 해도 그건 원래 알고 있던 그 본인이 아니게 된다.]
“끄응······.”
인사니오의 말에 형우는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방법이 없다니 이젠 크루바를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진 못했다.
크루바와 지내왔던 추억이 한둘이 아니었다.
비록 깊게 친해진 사이는 아니었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부터 같이 오티움에서 싸워온 나날들.
마지막에 본인이 아닌 형우의 지인을 살리라며 도망가지 않았던 것까지.
첫 만남처럼 마지막 순간도 강렬했다.
그런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크루바를 쉬이 죽인다고 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형우 일행을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형우 형!”
“길드장!”
멀리서 달려오는 둘은 용준과 성민이었다.
둘은 허겁지겁 달려와 형우의 앞에 멈췄다.
“민희?! 길드장 어떻게 된 거야?”
“좀 일이 있었어. 민희는 그냥 자는 것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걱정스럽게 민희를 바라보는 성민에게 형우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고 원산 근처에서 있었던 일을 둘에게 말해줬다.
크루바를 만났던 이야기부터, 본능만 남은 크루바가 드래곤이 됐고 여기까지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말이다.
그러자 이야기를 모두 들은 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쩝··· 씁쓸하네. 문제는 그게 크루바든 드래곤이든 처리를 해야 하잖아? 놔두면 분명 여기에 피해를 끼칠 텐데.”
“그렇긴 하지.”
씁쓸하게 대답한 형우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리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둘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안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전해드려야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찾았대요.”
“응?”
“엑시디움이 있는 곳을요.”
“뭐? 정말로?!”
용준의 말에 형우는 깜짝 놀라 바닥에서 일어났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뭔가 계속 유입되고 사라지는 걸 보고 나서 찾아낼 수 있었데요.”
“위치는 미국의 뉴욕 맨해튼이란다. 비싼 것만 처먹는 종족이라 그런지 땅도 비싼 곳에 자리를 잡았더라고. 여하튼 거기 찾으면서 군사 위성 하나가 놀게 됐는데 그걸 경계선 너머 감시에 쓴 덕분에 바로 알았어. 그냥 막 둘러보면서 지도보듯이 찾는 건 줄 알았는데 군사 위성 성능이 진짜 좋더라.”
“으흠······.”
둘의 말에 형우는 뭔가 고민에 빠진 듯했다.
그러더니 곧 인사니오에게 말을 걸었다.
‘인사나오 님 혹시 통로를 또 사용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쪽으로 정통한 신이 아니다. 지금은 제일 높은 신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지만 나는 크레아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다. 다만… 세계수에게 힘을 빌려주는 방식을 쓴다면 얼마든 가능하겠지.]
“그럼 오티움에 갔다가 다시 여기 올 때 위치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까?”
[물론 가능하다.]
인사니오의 대답에 형우의 눈이 빛났다.
“그럼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