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13
푸앗! 쿠릉! 쿠릉!
세계수는 정말 끊임없이 자라났다.
형우가 말한 것처럼 잭과 콩나무가 될 것 같이 솟아올랐고 다들 질린 얼굴로 그걸 바라봤다.
“진짜 콩나무는 아니겠죠?”
소정은 넋이 나간 얼굴로 세계수를 바라봤다.
세계수는 순식간에 아파트 10층 높이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똑같은 높이만큼 더 커졌다.
“말이 씨가 되겠는데···?”
형우는 괜히 먼저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다행히 성장은 거기서 얼마 안 가 멈췄다.
폭풍 성장을 한 세계수는 아파트 약 25층 높이 정도까지 자랐다.
사실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게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나무 하나가 그만큼 자란 거였다.
게다가 두께도 장난이 아니었다.
성인 열 명이 모아서 나무를 둘러싸도 부족할 정도였다.
“우아······.”
“이게 세계수······.”
성장이 끝나자 이제야 세계수의 멋이 보였다.
그저 징그럽게 거대한 나무 정도가 아니었다.
푸르른 잎사귀와 진한 갈색의 몸통은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오빠, 위에서 한 번 보는 게 어때?”
“그거 좋네.”
선우의 말에 형우가 손뼉을 쳤다.
아래서는 기껏해야 올려다 보는 게 전부였지만 위에서 좀 떨어져 보면 전체가 아주 잘 보일 것 같았다.
형우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와이번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이곳에 뿌리내리게 해준 이가 그대인가?]
“···?!”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형우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어디서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목소리의 주인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세계수?”
[음··· 나는 세계수이자 엘프들의 신 엘리안이다. 나를 이곳으로 옮겨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아······.”
세계수, 엘리안의 말에 형우는 작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사실 세계수의 씨앗이라는 건 엘리안의 조각… 즉, 신의 조각이었다.
크레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조각을 숨겼던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그 씨앗을 맡겼다. 그리고 엘프들은 후일을 도모하는 한편, 세계수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왔었다.
“무슨 일이에요?”
“오빠?”
“응? 아. 잠시만.”
세계수와 나누는 대화가 둘에겐 하나도 안 들리는지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형우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곤 세계수에게 다가갔다.
[이곳의 터는 상당히 좋은 편이구나. 꽤 좋은 장소를 택했어. 그런데··· 조금만 나가도 땅이 오염되어 있군.]
“그런 것도 바로 아실 수 있습니까?”
[나는 땅과 하나가 되어 세계의 정보를 모두 느낄 수 있다. 물론 이제 뿌리를 내린 내가 모든 정보를 알기 위해선 족히 10년은 걸릴 것이다. 기껏해야 이 근방의 정보만 먼저 알아낸 것뿐이니.]
“음······.”
혹시 바로 엑시디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형우는 낮은 신음을 냈다.
그러나 이제 막 부활한 세계수에겐 그게 한계였다.
그래도 세계수는 순식간에 길게 늘어트린 뿌리로 한반도 내의 정보는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대가 바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바람을 들어줄 순 없을 것 같구나. 대신 선물을 주마.]
“선물이라고요?”
푸스스스.
그 순간 세계수의 가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뭔가 공기가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계수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
“흡!”
“꺄악!”
“···!”
갑자기 엄청난 파동이 그들을 지나쳐갔다.
그 파동은 멀리까지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 소리가 들려왔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형우는 바로 주머니에서 위성 전화를 꺼냈다.
군사 위성의 경우 기가 복구로 시일이 걸렸지만 다행히 일반 통신 위성은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통신 능력을 가진 능력자를 대동하는 게 아니라 위성 전화로 통신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충성! 1사단 정보과장 박도민 대위입니다, 소장님!]
전화를 받자 박 대위라는 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했다.
다급해 보이는 데도 관등성명부터 대는 걸 들으며 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예, 충성. 무슨 일입니까?”
[지금 남부, 중부에 있는 몬스터들이 모두 북쪽으로 대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몬스터 웨이브 현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모두 무언가에 겁을 먹고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부와 중부에 있던 던전 게이트들이 모두 소멸했습니다!]
“예?!”
박 대위의 말에 형우는 깜짝 놀랐다.
왜 갑자기 몬스터들이 그런 이상 행동을 보인단 말인가.
그러나 곧 눈치챘다.
“설마?”
[내가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선물이 하나 더 있으나··· 그건 그대에게 선물이 될진 모르겠구나. 이건 선물을 주는 내가 그대의 반응을 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도대체 무슨 선물이기에······.”
푸스스.
다시 한번 가지가 흔들렸다.
이번엔 저번보다 큰 흔들림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형우를 더 놀라게 했다.
세계수, 엘프의 신 엘리안 덕분에 대한민국의 복구는 탄력을 받았다.
무슨 능력을 쓴 건지 모르지만 단번에 남한 지역에 있던 몬스터 모두를 쫓아버렸다.
덕분에 남부나 해안가로 도망친 몬스터들을 처리하니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 깨끗이 정리됐다.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휴전선 지역에 다시 경계가 만들어졌다.
그게 세계수의 한계였는지 그 이상으론 효력이 미치지 않았다.
여하튼 그렇게 경계가 정해지니 대한민국은 빠르게 복구됐다.
전자 장비나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것들의 복구는 더뎠지만 건설 분야에서 복구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헌터는 최고의 노가다꾼이라는 별명답게 단 한 달 만에 겉보기엔 그럴듯한 도시가 생겨났다.
이것도 PC블럭 같은 공정 과정을 최소화하는 물품이 준비되어 있으면 더 빠르게 가능했을 터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제주도에 있는 한정된 자원으로 복구를 시작했다.
나름 모든 생활 물품이나 건설을 해결할 수 있을 수준으로 가져갔으나 그건 제주고 한정일 뿐, 대한민국 전체에 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도시 하나가 빠르게 완성되고 전국 곳곳의 대피소에서 생존자들이 발견되며 점점 속도가 늘어갔다. 그리고 오늘 임시 숙소에서 지내던 피난민들이 새로 지어진 도시에 입주했다.
“이야··· 역시 헌터들이 대단하네. 한 달 만에 도시를 예전 모습으로 돌리다니······.”
“완전히 예전은 아니지. 근데 아예 싹 밀어버리고 다시 지으니까 이게 더 깔끔하고 좋은 거 같아.”
안으로 들어온 시민들은 헌터들의 능력에 감탄했다.
지금 그들이 들어온 곳은 과거 서울의 종로구라는 곳이었다.
사실 도시 재건에 첫 재건지 위치 선정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선택된 이후는 정부의 기밀 문건이나 핵심 기술의 잔재가 남아 있는 청와대가 존재했다.
터는 많이 무너져 내렸지만 아직도 지하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일단 서울이기에 복구하며 얻을 것도 많았다.
그래서 종로구가 첫 재건지로 선정됐다.
“그러면 뭐하냐. 전자제품은 제대로 쓸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어찌 보면 빛 좋은 개살구라고.”
시민 중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불평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 말에 다른 시민들이 발끈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다른 나라들은 다 망했는데 우리나라는 이렇게 빨리 복구도 해주잖아.”
“정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당신은 무슨.”
“그리고 헌터들이 없었으면 한 달이 뭐야? 한 일 년은 노숙했겠구만. 그거 생각하면 이것도 감지덕지해야지.”
“······.”
핀잔하는 말들이 들려오자 그는 뻘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시민들 대부분이 충분한 상황 설명을 들은 덕분에 대부분이 정부와 헌터들을 신뢰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국가, 심지어 몬스터에게 반격까지 가하고 땅을 되찾아 재건 중인 나라.
그렇기에 다들 친정부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대통령이 정치를 아주 잘하네.”
형우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주 대통령이 잘 한 것도 있었지만 아무리 잘했어도 원래의 생활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시민들의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아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부를 옹호했다.
그건 모두 세뇌의 결과였다.
구출해올 때부터 임시 숙소에서 이동할 때까지 계속 주입을 했다.
우리나라만 살았다.
다른 곳은 다 죽었다.
유일하게 복구되는 나라다.
이런 내용으로 말이다.
‘뭐 맞는 말이기도 하지.’
다만, 맞는 이야기라도 계속 주입되고 좋은 말로만 들려오면 또 달랐다.
과거 부패 정권들이 자주 써먹었던 거지만 이건 실제 팩트였으니 효과가 더 컸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복구도 척척 되고 시민들의 지지도도 높았지만 문제는 식량.
이건 어떻게도 해결되기 힘들었다.
형우도 원래 꽉 채워놨던 아공간 주머니의 식량을 이번에 블랙 머천트에게 물건들을 받으면서 대부분 소모했다.
그래서 식량 문제 때문에 다들 골머리를 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식량 문제를 해결해준 건 엘프들이었다.
‘설마 세계수가 통로가 되어줄 줄이야······.’
놀랍게도 세계수가 말한 두 번째 선물은 엘프들이었다.
지구와 오티움을 이어주는 새로운 통로를 세계수가 열어줬다.
그게 가능한 건 에피리아에 있는 세계수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세계수의 허물이라 말하는 게 어울렸지만.
세계수가 자신의 몸을 임시로 에피리아 만들어준 거였지만 그게 오티움과 지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역할을 했다.
덕분에 그 통로로 엘프들이 넘어왔다.
지금은 힘이 부족해 에피리아에 있는 엘프들만 넘어왔지만 나중에 힘을 회복하면 오티움의 다른 이종족들도 넘어올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엘프 몇몇이 남아 다른 종족들을 데리러 갔다.
‘다 못 데려온 게 한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지.’
만약 그들이 그대로 오티움과 함께 소멸됐다면 평생의 한이 됐을 터였다.
이제 다들 지구로 넘어오면 일단 한 가지 문제는 해결이었다.
여하튼 먼저 넘어온 엘프들은 형우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게 바로 식량이었다.
농작물의 성장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고 어떠한 땅에서도 식물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해주는 엘프들의 능력 덕분에 한 달 만에 꽤 많은 양의 식량을 축적했다.
그렇게 식량 문제가 해결되자 모든 일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지금까지만 말이다.
“소장님!”
“아, 왜 또······.”
또 누군가 형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형우는 안 들리게 작게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소령 계급장을 단 군인이 형우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군인이었지만 전쟁은 군인의 계급을 비정상적으로 높여줬다.
다만··· 그게 하는 역할이 좀 문제였다.
얼마 전까지 중위였던 김상진은 2계급을 특진해서 영광스럽게도… 형우의 전담 통신병 역할을 하고 있었다.
“충성! 전방에서 긴급으로 걸려온 전화입니다.”
“예.”
형우는 상진에게 위성 전화를 건네받았다.
“네, 받았습니다.”
형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들어 위로 올라갔던 몬스터들이 북한에 너무 밀집되면서 서로 식량 경쟁이 치열해졌는지 자꾸 식량을 찾아 밑으로 내려왔다.
대규모로 여러 몬스터 부대가 내려온 적도 많아서 형우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 생각하고 받았다.
“예? 전체예요?”
그런데 이번엔 그 규모가 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