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11
촤아아. 촤아아.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다, 마치 도시들 사이에 둘러싸진 호수 같은 장소에 섬 하나가 외로이 떠 있었다.
섬엔 새하얀 등대가 보이는데 이 등대는 대한민국 역사 최초의 등대, 팔미등대였다.
이곳 팔미도에 1900년대 초반 세워진 팔미등대는 인천 상륙작전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치한 군사 주둔이 필요한 곳이었기에 해군이 주둔했다.
그러나 주둔하던 해군은 몬스터가 처음 나타나고 모두 전멸해버렸다.
하필 부대 행사로 모두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수중 몬스터가 나타나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그 이후로 계속 무인도로 남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그곳 지하엔 사람들이 있었다.
“······.”
“······.”
불 꺼진 어두운 장소에서 그들은 숨죽이고 있었다.
잠깐 숨소리가 나는 것조차 긴장되는지 억지로 숨을 참는 이도 보였다.
왜 그들이 그런 상태로 있는진 몰랐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르르릉. 그르르릉.
어디선가 바람인지 뭔지 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그 순간 누가 작게 그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뱉어놓고 그는 흠칫 놀라 입을 막았다.
그러나 다들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긴장한 표정으로 눈알만 빠르게 굴렸다.
쿵!
“···!”
“···!”
무언가 천장에 부딪히며 전체가 울렸다.
그것에 다들 소스라치게 놀라며 천장을 바라봤다.
쿵! 쿵! 부스스.
충격은 계속됐다.
계속 쿵쿵소리를 냈고 천장에선 가루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그 소리가 멎었다.
천장을 울리던 소리가 사라졌으나 그들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다들 처음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섬의 범위 10km 외부로 크라켄이 벗어났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누군가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표정이 풀어졌다.
“하아······.”
“후우······.”
“숨소리 크게 나올까 봐 죽는 줄 알았네.”
다들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흩어졌고 순식간에 지하는 몇몇 인원 빼고는 텅 비게 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많이 봐줘야 고등학교 2, 3학년 정도밖에 안 보이는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아, 불안해 죽겠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바로 신지영이었다.
헌터수사부의 2인자이자 대한민국 헌터계에서도 유명한 수사관.
그러나 지금은 그런 수식어는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이곳 팔미도에서 불안한 삶을 보내는 처지가 된 상황에선 말이다.
A급 멀티 소켓 능력자라도 S급과 어깨를 견주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게 바로 공권력이었다.
헌터수사부라는 거대 세력의 힘과 더불어 정부의 힘.
두 개의 힘 덕분에 자신의 실력 이상의 힘을 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일일 뿐.
지금은 그저 하루살이밖에 되지 않았다.
며칠 주기로 하루 한 번씩 팔미도 위로 몬스터가 올라왔다.
그 몬스터의 이름은 크라켄.
쉽게 비유를 하자면 거대한 문어였다.
그러나 그저 거대한 문어로 표현하기엔 크라켄은 커도 너무 컸다.
어린 크라켄의 경우만 해도 운동장보다 더 큰 크기였고 정말 오랫동안 살아남은 크라켄의 경우 여의도의 절반 크기만 하게 자랐다.
팔미도에 나타난 크라켄은 그 정도 크기까진 아니었지만 여의도 사 분의 일 크기로 절대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등급으로 치면 무조건 규격 외에 속했다.
여느 수중 몬스터가 그러듯 크라켄은 규격 외 몬스터들보다 더 위험한 몬스터였고.
다만, 지영은 그것 때문에 불안한 게 아니었다.
‘선우는 괜찮을까. 하아, 그냥 길드 들어간다고 할 때 내가 데리고 있을걸. 왜 그걸 도와주기까지 해서······.’
지영은 이전의 선택을 후회하며 자책했다.
선우가 블랙 길드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운 건 본인이었다.
가지고 있던 능력 자체가 워낙 좋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이 있었지만 그건 번외였다.
실력이 있더라도 다리를 놔주지 못하면 아예 들어가기도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지영은 그걸 후회하고 있었다.
‘하아, 용준이도 걱정되고··· 아주 미치겠어.’
지영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지하에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눈이 내리기엔 조금 이른 10월이었으나 이번 연도는 무슨 일인지 벌써부터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팔미도를 둘러보며 떨어지는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흉물스럽게 구겨진 어느 철조물이 보였다.
“하아······.”
지영은 그걸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흉물스럽게 구겨지고 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원래는 커다란 헬기였다.
원래 인천에 새로 꾸린 헌터수사부에 있던 지영은 3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두 달 전, 헬기를 타고 비상 탈출을 했다.
‘방주’프로젝트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곳으로 향할 계획으로 바로 움직였다.
그러나 하늘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와이번보다 빠르게 운행할 수 있는 기체거나 일정 고도 이상 위로 올라가지 못한 기체는 모두 하늘에 뜨고 나서 얼마 뒤 다 추락했다.
그나마 이곳 팔미도 비상착륙을 한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순 있었으나 좀만 늦어서 바다에 떨어졌다면 꼼짝없이 죽을 뻔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선 뭐가 다행이라 하기도 애매했지만.
“지영 씨.”
그때 지영에게 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 김길드장님.”
지영은 뒤를 돌아보곤 바로 아는 체를 했다.
지영에게 말을 건 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뒤에 긴 검을 맨 그는 블랙 길드의 길드장 김민철이었다.
김민철은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다가와 지영의 옆에 섰다. 그리고 지영과 똑같이 전방을 바라봤다.
“비축된 식량이 거의 다 떨어졌어, 지영 씨. 이대로라면 아무리 아껴도 일주일을 못 버틸 거야.”
“······.”
“언제 결단을 내려줄 거야? 이러다간 우리 다 죽는다고.”
“······.”
“나도 당연히 지영 씨가 결단 내리기 힘들다는 건 알아. 나도 솔직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반대였다고. 그런데 이대로 가다가 우리 전부 다 죽을지도 몰라. 한둘도 아니고 무려 백에 가까운 사람이야. 게다가 우리 블랙이 이기적인 놈들이라서 이러는 게 아닌 거, 더 잘 알잖아.”
“네, 알죠. 너무도 잘 알죠······.”
민철의 말을 묵묵히 듣던 지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블랙 길드도 3차 몬스터 웨이브를 때문에 인천으로 지원가는 도중 이곳 근처에 불시착했다.
다만, 지영과 달랐던 건 송도 밑 바다에 떨어졌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사히 팔미도에 도달했다.
땅이 아닌 바다에 떨어졌지만 민철의 강한 힘 덕분에 무사히 팔미도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도망친 건 좋았고 화마를 피할 수 있어서 좋긴 했으나 블랙 팀은 오히려 더 분통을 터트렸다.
다들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헌터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에 피해 자신들만 안전한 걸 수치로 여겼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바다에 나가면 크라켄이 있고 공중으로는 탈출할 방법도 전무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방법 중 하나를 지영이 쓸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핵은······.”
핵.
지영의 입에서 핵이란 말이 나왔다.
사실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몬스터가 나타난 이후 이곳저곳에서 핵이 남발됐다.
그것도 자국 영토 내에.
그러나 핵을 자국 내에 사용해서 생기는 피해보다 몬스터에 의한 피해가 더 컸기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헌터의 수가 많은 덕분에 어렵긴 했어도 충분히 몬스터들을 막았다.
그러나 문제는 북쪽에 있는 핵이었다.
북한은 결국 핵을 완성했다.
그러나 재진입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 도달하는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핵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인 무기였다.
운반이 힘들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터트릴 수도 있었다.
몬스터가 나타나고 북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지만 그 밑에 군부 세력들이 남아 있었기에 어떤 또라이짓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헌터수사부는 병력을 파견했고 다행히 큰 유혈사태 없이 핵을 빼왔다. 그리고 그 빼 온 핵은 헌터수사부 관리하에 지켜졌고 이번에 인천으로 본부를 옮기며 그곳에 핵이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지영은 그걸 원격으로 터트릴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인천에서 핵이 터지면 분명 몬스터들이 놀라서 도망칠 거야. 그때면 미리 수리해놓은 경비정들로 충분히 탈출할 수 있어.”
“그랬다가 그곳에 생존자가 죽으면 어떡해요?”
“생존자? 솔직히 얼마나 살아남았을 거라 생각해? 100명? 10명? 1명?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생존보다 우리의 생존이 더 중요해. 우리가 살아나서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이곳을 벗어나면 살려줄 수 있는 시민들 때문에 말이야. 그러니 지영 씨도 잘 생각해. 이렇게 미적대는 사이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는 계속 늘 거야. 아니, 이미 모두 죽었을지도 모르지.”
민철은 그 말을 하곤 지영을 바라봤다.
“······.”
지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민철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
심지어 블랙 길드는 ‘방주’프로젝트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주도가 아닌 인천으로 지원을 가던 이들이었다.
절대 이들이 개인의 목숨을 위해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분명 육지로 가게 되면 본인 목숨을 버려가면서 다른 이들을 구할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 분했다.
민철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은 더 초라해졌으니까.
지영은 차마 민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은 못 줘. 적어도··· 3일 내엔 지영 씨가 답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사이 숨겨놓은 경비정들이 파손되면 우리도 정말 답이 없어.”
민철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갔다.
민철이 가고 지영은 혼자 남아 먼바다를 바라봤다.
“후우······.”
지영은 그 뒤에도 한참을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하늘이 시끄러웠다.
“어? 뭐야?”
하늘을 바라보니 멀리서 수십의 와이번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와이번들은 동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었다.
개체 수가 적은 와이번은 영리하게도 자신들의 수가 줄면 하늘에서 다른 종족에게 밀린다는 걸 잘 아는 존재였다.
그래서 서로 다른 패거리라도 웬만하면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저 모습은 꽤나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싸움이 쉽게 끝났다.
“어?”
갑자기 한 쪽 패거리가 단체로 하늘에서 훅 떨어졌다.
풍덩! 풍덩!
일순간 일어난 일에 지영 말고도 와이번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자 남은 와이번 패거리는 그대로 팔미도로 향했다.
그건 그저 지나가는 게 아니었다.
고도를 낮춰서 정확히 지영이 있는 팔미도를 목표로 날아오는 거였다.
“전투 준비!”
“모두 얼른 모여!”
와이번 떼가 다가오는 걸 보며 다들 바삐 움직였다.
규격 외의 크라켄만큼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으나 와이번도 공중이라는 어드벤티지를 가진 몬스터였기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수가 적은 것도 아니었기에 헌터들은 긴장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런데 와이번 다가왔을 때 이상한 게 보였다.
“어? 길드장님! 와이번 위에 누가 타고 있습니다!”
“뭐라고?!”
자세히 보니 몇몇 와이번의 위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민철은 표정이 확 밝아졌다.
‘테이밍 헌터···!’
와이번이 변덕을 부려 인간을 태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와이번 위에 헌터가 있다면 아까 갑자기 추락한 와이번 패거리에 대한 의문이 바로 해소된다.
“어서 주변을 치워!”
빠르게 상황 판단한 민철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헌터들은 빠르게 움직여 와이번이 착륙할 수 있게 터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잠시 후 와이번은 얌전하게 팔미도에 착륙했다.
그런데 지영은 와이번에서 내려온 이들 중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났다.
“요, 용준아?”
“어?!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