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10
투두두두! 콰아앙! 쿠웅!
“마, 막아!”
“이 배신자들! 감히···!”
“그 소리 할 시간에 총 한 발 더 쏴!”
“아아아악!”
아비규환.
정말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정도로 혼잡했다.
제주 공항에 주둔했던 4사단의 경우 망설임없이 공격하고 있는데 제주도청을 방어하고 있는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모두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있으니 적아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반면에 4사단 인원은 적아 구분 없이 밀어붙였다.
그러다 보니 방어하는 쪽은 순식간에 방어선이 밀리고 있었다.
군인들 중엔 일반 병사들 말고도 헌터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능력자들이 능력을 쓰려고 하는 순간마저 누군가에 의해 처리됐다.
“프리··· 읍···!”
“바인딩! 바인··· 헉?!”
무언가 휙휙 날아다니며 헌터들을 제압했다.
제대로 보이지 않을 속도로 전장을 휘저어 다니는 무언가 덕분에 일반 병사들의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
지휘부조차도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넋을 놨다.
“다들 뭐하는 거야! 얼른 막지 못해?! 폭탄으로 다 쓸어버리든 근처 부대들을 모두 끌어오든! 뭐든 하라고!”
“예! 총리님!”
도쿠는 그 지켜보며 노발대발했고 비서와 군 장성들은 일본의 1인자에게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추느라 바빴다.
일촉즉발의 순간에서도 인간은 살기 위해 줄을 타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였지만.
“지원이다!”
“헉?! 아니, 적이다! 막아! 으아악!”
그러나 지원이라고 근처 오는 병력들도 어찌 된 일인지 적으로 돌아가서 일쑤였다.
덕분에 수만이 넘던 군대는 순식간에 반 이하로 줄었다.
“항복해라! 항복하면 목숨은 보장하겠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 어서!”
그쯤 되자 적은 그들에게 항복을 권유했고 도저히 일반 병사로는 헌터들을 이길 수 없었기에 속속 전향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형우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걸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해야 하나?”
“동족상잔? 네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너무한 거 아냐?”
성민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나 형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난 것 같았다.
“뭘 너무해. 남의 땅을 지네들 땅이라고 우기고 지들 멋대로 점령한 놈들이 너무한 거지. 여하튼 이것도 보는 맛이 있네. 옛날에 했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그거 생각난다.”
“··· 그래?”
피가 튀고 살이 튀는 광경을 보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떠올린 형우를 보며 성민은 별종 보듯이 봤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곤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옥과 오티움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수십 번 겪어놓고 이제 와서 별종 보듯이 보는 것도 내숭이었다.
그런 일을 다 경험해놓고 피 좀 튀는 거로 내숭부리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다.
‘마음도······.’
그러는 사이 전장은 어느덧 정리가 되고 있었다.
도청을 방어하던 약 5만의 군대는 무려 반 이상인 3만이 전사했다.
나머진 중상자 3천여 명을 제외하고 약 1만 7천 명이 포로로 사로잡혔다. 그리고 스즈키 도쿠 총리는 자신의 군대에게 도청에서 끌려 나왔다.
“이 정신 나간 놈들! 네놈들이 어떻게 대일본국을 배반하고 날 이따위로 취급한단 말이냐! 놔라! 놔!”
도쿠는 끌려오면서도 기가 죽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더 악을 쓰며 소리쳤다.
물론 그래 봤자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악을 써도 상황은 변하지 않으니까.
털썩.
“윽···!”
병사들을 밖으로 끌고 온 도쿠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덕분에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었지만 도쿠는 신경 쓰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흠··· 뭔가 되게 싱거운 느낌이네.”
형우는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예전부터 일본에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형우였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인 걸 떠나서 헌터의 세계에서도 일본 헌터들의 질이 안 좋기로 유명했다.
던전에 같이 들어갔다가 안에서 일본 팀만 살아서 돌아온다든지, 공격받아서 중상으로 밖으로 나온 헌터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형우와 친하던 한 처리반 F급 헌터도 그렇게 세상을 타계했다.
거기에 나중에 역사적, 정치적 문제를 들으니 더 안 좋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본이 이번엔 땅을 빼앗았으니 더 열이 오를 수밖에.
“너, 너는··· 아니, 당신은 누굽니까?”
반말을 하려던 도쿠는 급히 말을 바꿨다.
‘무슨 살기가 이렇게 진하게······.’
그도 한두 명의 헌터를 만나본 게 아니었다.
총리로 있으면서 수많은 헌터를 만나봤고 국내 S급 헌터든 해외 S급 헌터든 여럿을 봤다.
그들 중엔 적대감을 표시한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기본적으로 헌터들은 국가의 상황을 떠나서 자신의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차원이 달랐다.
형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살기를 피워대고 있었는데 거기에 닿은 도쿠는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이전의 경험과 일본의 대표로서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벌써 무릎 꿇고 빌었을 터였다.
“음··· 이 땅의 주권자입니다.”
“예?”
“이 땅의 주권자. 대한민국의 국민.”
“······.”
형우의 말에 도쿠는 고개를 숙였다.
그저 듣기엔 이 땅은 대한민국 땅이라고 하며 원래 것을 되찾는다는 말 같았지만 도쿠가 듣기엔 의미가 달랐다.
일본의 패망.
그 말처럼 들려왔다.
실제로도 맞았다.
그들에게도 겨우 제주도에 터를 잡아서 이제 부활을 꾀하고 있었는데 그게 한순간의 꿈으로 전락했으니 맞는 말이었다.
물론 한국 사람 입장에선 개소리였지만.
“데려가서 심문하고 아는 거 다 뽑아내세요.”
“예.”
“예.”
형우의 말에 두 일본 병사가 도쿠를 데려갔다.
비록 일본을 포기하고 탈출한 총리였지만 이렇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니 처량해 보였다.
물론 형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밌게 풀었네. 노예 문서가 여기서도 이렇게 쓰일지 몰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노예 문서를 수만 장이나 가지고 계신 겁니까? 이건 거의 블랙 머천트 상점에 있는 걸 다 쓸어온 느낌인데······.”
“다 쓸어온 건 아닌데 많이 얻어오긴 했지.”
도영의 말에 대답한 형우는 피식 웃었다.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블랙 머천트를 한 번 만났었다.
원래는 같이 넘어오기 위해서 만난 거였지만 블랙 머천트는 형우 일행이 어렵게 차원을 넘어갈 것을 예견했는지 형우에게 블랙 머천트 상점에 있는 물건을 바리바리 넘겨줬다.
아공간 주머니가 꽉 찰 정도로 말이다.
그중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노예 문서였다.
형우는 노예 문서를 사용해 처음 조우한 일본군과 제주 공항의 4사단 인원을 모두 흡수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그들로 제주도청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형우 혼자 쉽게 처리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나름 괘씸함에 대한 복수였다. 그리고 그 복수는 통쾌하게 끝났다.
해놓고 보니 막 크게 통쾌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 쓸어버리는 것보단 나아 보였다.
‘앞으로 노가다꾼으로 써먹을 노예들도 얻고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까 블랙 머천트가 그걸 줬었지?’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작은 씨앗 하나를 꺼냈다.
푸른 빛을 띠는 신기한 씨앗이었다.
이 씨앗은 블랙 머천트가 물건들과 함께 형우에게 준 거였다.
지구에 심어달라면서 말이다.
‘때를 봐서 적당한 곳에 심어줘야겠네.’
“근데 길드장. 동생도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줘도 돼?”
도영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이 모습을 보고 선우가 형우에게 실망하던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음··· 그냥 힘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굴복시킬 걸 그랬나?”
형우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선우의 모습은 의외로 괜찮았다.
나름 지금까지 고생을 많이 했는지 이 정도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놓고 또다시 선우에게 달려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어휴, 저 동생 바보. 그동안 길드장 오빠한테 카리스마를 느꼈던 내가 한심스럽다.”
봄이는 형우를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정말 실망한 건 아니었다.
이내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뭐, 어때. 그래도 보기 좋잖아.”
“네! 그런 거 같아요, 성민 오빠!”
성민의 말에 헤헤거리며 봄이가 대답했다.
“그냥 둘 다 똑같은 거 같은데.”
“응······.”
뒤에서 그 희극을 바라보던 용준은 소심하게 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소정이도 그것에 긍정을 표했다.
그러나 소정은 맘속에 다른 감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가족······.’
제주도청을 점령한 형우 일행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한편 제주도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스즈키 도쿠 총리에게 그들은 정리당한 뒤였다.
기껏 다른 기회를 노리고 조국을 배반했지만 결과는 죽음이었다.
다들 그들의 멍청함을 욕하며 손가락질했다.
여하튼 내부 정리를 하면서 그들은 간단한 재판을 열었다.
제주도를 점령하면서 한국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 모든 일본인에게 처벌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일본군이 제주도를 점령하고 많은 기간이 지난 건 아니었으나 그들은 과거처럼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모두 사형했다.
몇몇은 본보기로 몬스터에게 밥으로 던져주기도 했다.
그 잔혹함에 포로가 된 일본군 모두가 겁이 질렸다.
그 뒤에 투항을 이야기하자 몇몇 소수를 제외하곤 모두 전향했다.
덕분에 4사단 인원이었던 만 명을 포함해 도청에 있던 병력과 제주도 전체 퍼져있던 병력의 생존자 약 6만 명이 형우에게 흡수돼버렸다.
개인으로선 전무후무한 병력을 보유하게 된 형우의 길드는 순식간에 세력이 커졌지만 그들 대부분이 노가다꾼 용도였다.
제주도의 수비는 형우 일행과 블랙 2팀과 4팀, 일본군에 잡혀있었다 풀려난 한국군이 맡았다.
처음처럼 무식하게 만이 넘는 인원을 노예로 만드는 게 아닌 상위 헌터 몇몇만 노예로 만드니 관리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형우는 선우에게 능력을 줬다.
“이러면 된다고, 오빠?”
“응.”
“정말?”
“응. 찢으면 바로 소켓이 생길 거야. 생기면 이거로 새 능력을 얻고 다시 한번 더 써서 새로운 능력을 얻으면 돼.”
“으응······.”
형우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꾸깃꾸깃한 종이를 바라보는 선우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이상한 눈으로 바라봐도 형우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어서 하라는 듯 기대감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형우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지만 선우는 영 떨떠름했다.
그러나 이내 형우가 시킨 대로 종이를 찢었다.
찌이익. 팟!
“읏?!”
종이를 찢자 밝게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에 놀란 선우는 움찔했지만 곧 진정됐다.
“오빠? 이게 끝이야?”
“응. 잘 된 거야.”
뭔가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결과는 영 허무했다.
소켓이 늘어나 봐야 보통 헌터는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그걸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러니 선우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형우는 변화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인사니오의 눈.’
[박선우/B급/1소켓-B급 패스트 힐, 2소켓-E급 재생력 증가(미구현)]
형우는 이미 인사니오의 눈으로 선우의 소켓이 늘어난 걸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보였다.
어떻게 조각을 모두 인사니오에게 넘겨준 형우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사니오가 이후에 새로운 능력을 줬다.
이전처럼 6개 능력을 모두 주진 못했지만 형우에게 인사니오의 눈과 인사니오의 의지와 똑같은 효과의 능력을 건넸다.
정확히는 약간 다운 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쓰기엔 거의 똑같았다.
다른 능력들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형우는 인사니오가 이어서 한 말에 다른 기대감을 가졌다.
[그대도 신의 지위를 갖게 되었으니 이명을 깨닫는 날 그대만의 새로운 능력을 얻을 거다.]
어떤 능력인지 아직 모르지만 이미 가진 지위였으니 곧 만나게 될 터였다.
그 기대감에 형우는 사라진 조각의 능력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음. 자, 그럼 이제 이걸 써보자.”
형우는 바로 검은 영혼석 두 개를 건넸다.
하나는 비교적 최근 만든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처음 제주도에서 만난 일본군 장성 이시무라 하지메였다.
S급 앱솔루트 실드를 가졌던 하지메의 능력을 선우에게 전해주기 위해 다른 능력과 합성을 했다.
다만, 합성에서 R급이 되면 능력이 아예 변질되었기에 형우는 조금 낮은 등급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 결과 S+급에 해당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검은 영혼석이 됐다.
사실 이 영혼석은 형우의 사심이 가득 담겼다.
이 영혼석을 쓰고 나서 R급 영혼석을 쓰면 분명 방어와 관련된 능력이 나올 터.
그걸 기대하고 만든 영혼석이었다.
“후우, 오빠. 나 쓸게.”
선우는 심호흡을 하더니 검은 영혼석을 차례대로 썼다. 그리고 곧 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