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9
형우는 갑자기 들려온 일본어에 당황했다.
헌터는 모든 언어를 해석하고 자체 통역이 가능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왜 여기서 일본어가 들리고 왜 일본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나타나는가.
이게 문제였다.
'일본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군은?'
형우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 됐다.
"다들 움직이지 마! 멍청해서 못 알아 듣냐?! 어?!"
재차 일본군이 소리를 질렀다.
형우는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 너! 당창 멈추지 못해?"
움직이는 형우를 향해 일본군들이 총을 겨누며 바라봤다.
개중엔 총 말고 바로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대기 중인 헌터들도 보였다.
"책임자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겁니까?"
척!
"너희가 우리 일본의 영토를 불법으로 침입했기 때문이다!"
한 일본군은 형우에게 다가와 총부리를 얼굴에 겨눴다.
그러나 호기롭게 외친 것치곤 그 군인은 긴장하고 있었다.
갑자기 레이더에 수십 기의 비행형 몬스터가 감지됐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출동한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대공 무기를 잔뜩 끌어와 방어를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에 대부분 소진됐다.
최근 물에서 올라온 수중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쓰였다.
지상에서 쓸 무기도 부족해서 대공 무기마저 땅에 쓰는 상황이었다.
여하튼 덕분에 다 소모된 터라 그들이 먼저 출동했다.
"일본 영토?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형우는 긴장한 일본군에게 말을 걸며 다가갔다.
"멈춰!"
그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쳤다. 그리곤 바로 총을 쏘기 위해 방아쇠에 힘을 주려 했다.
그러나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그를 막았다.
"어허. 그만."
"예?"
"상황파악도 못 하는 멍청한 놈들에겐 설명을 해줘야겠지. 자네는 뒤로 가."
"예, 예!"
저벅저벅.
갑자기 나타난 일본 군복을 입은 중년 남자는 오만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압실한 표정을 다가오는 그는 별 두 개가 그려진 계급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형우가 그 계급을 알아보질 못했다는 거였다.
'저게 무슨 계급이지? 방금 병사도 별이었는데…'
일본군 계급장에 대해서 잘 모르는 형우였다.
그러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계급을 자랑하는 듯 잘 보이게 다가왔다. 그리고 형우에게 말했다.
"나는 대 일본군 소장 이시무라 하지메다."
이시무라 하지메.
일본 오사카 출신의 그는 원래 평범한 자위대 소속 군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생활은 몬스터들이 나타나며 끝났다.
하지메는 본인의 부대가 반쯤 전멸했을 때 몇몇 군인과 함께 각성했다.
그 이후부터 하지메는 삶은 크게 달라졌다.
무려 당시 제일 높은 등급인 S급으로 각성하면서 엄청난 대우를 받았다.
게다가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었기에 다른 능력자보다 더더욱.
일반적으로 능력은 근거리 공격, 원거리 공격, 힐, 디버프 4가지 정도로 나눴다.
그 4가지 외 능력을 이제 더 특수한 능력으로 봤다. 그리고 하지메의 능력은 그 특수한 능력 중에서도 희귀한 방어 능력이었다.
겨우 방어 능력이 뭐가 대단하냐 할 수 있었지만 이 능력 덕분에 일본이 위기를 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앱솔루트 실드를 안에서 밖으로 능력을 퍼부을 수도 있었고 탱커 역할을 하는 헌터의 목숨을 구해줄 수도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일본은 바다에서 나타나는 S급 몬스터들을 이기거나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한국 방향으로 쫓아내서 외교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지메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에서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주는 대상이었으니까.
이후에 멀티 소켓으로 A급 능력을 하나 더 각성하면서 일본은 하지메를 정말 극진히 모셨다.
덕분에 하지메의 점점 자신감이 커졌고 그 자신감이 오만함과 무례함으로 변하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제지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메가 일본이 맘에 안 든다며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갈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들 제지를 못 했다.
다행히 하지메는 자신의 쾌락만 만족되면 굳이 근거지를 옮길 생각이 없었기에 일본 정부는 최대한 맞춰줬다.
하지메는 그걸 즐기며 더 오만하고 방만하게 굴었다.
돈, 여자, 명예, 권력.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즐겁게 해줬다.
그러나 그 재미도 십 년이 넘게 흐르니 점차 질려갔다.
그러던 중 괴상한 취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문.
아무 여자든 납치해서 고문하는 괴상하고 악랄한 취미가 생긴 하지메는 그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본 정부는 하지메의 뒷처리를 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새로 생긴 취미는 멈추지 않았다.
지루한 일상에서 새로 생긴 취미는 그에게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이 얼마 전 깨지게 됐다.
3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일본 열도 전체가 전화에 휩싸였다.
결국, 일본 정부는 본토를 버리고 탈출을 했다.
많은 인원을 살릴 수 없었기에 인원이 정해졌고 그 중엔 하지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도 꼭 살려하는 헌터였다.
그랬기에 다른 S급 헌터를 버리면서도 하지메를 살려서 탈출했다.
그러나 정작 살아서 탈출한 하지메에겐 불만이 많았다.
'즐기지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무능한 내각 새끼들. 일본 하나 제대로 못 지켜서 날 이곳까지 오게 만들어?'
S급까지 소모하면서 살려왔더만 하지메는 오히려 자신을 살려준 일본 정부를 욕하고 있었다.
정상이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할 생각.
3차 몬스터 웨이브로 가장 많은 S급을 보유한 미국도 무너졌다.
아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무너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지메는 그걸 정부탓으로 돌렸다.
일본 정부에겐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하지메의 능력은 더더욱 소중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일본을 탈출한 그들은 처음 오키나와로 향했다.
가장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하고 바다 한가운데지만 몬스트 웨이브가 적게 일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오키나와는 이미 몬스터의 천국으로 변해있었고 차선을 택한 대마도도 똑같았다.
결국 일본 정부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이 바로 제주였다.
'내각 놈들도 참 신기하단 말이야. 맨날 조작, 선동만 잘하는 줄 알았더만 이런 능력도 있었어.'
제주도엔 이미 한국 정부가 '방주'라는 작전으로 모두 대피한 상태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한 건지 순식간에 제주도를 장악했고 하지메는 덕분에 다시 본인의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하지메는 제주도로 오는 와이번들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했다.
처음엔 거부했지만 이내 와이번들이 수백의 사람을 실어 나르는 걸 확인하곤 나왔다.
마치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처럼.
그리고 곧 형우 일행과 조우했다.
"음··· 저년은 코가 너무 낮아. 저년은 너무 늙었고······. 오, 딱 좋은데?"
자기소개만 툭 던진 하지메는 마치 품평회를 하듯이 여자들을 가리켰다.
여자들은 그 음흉한 시선을 보며 질겁했다.
형우는 하지메을 보며 잔뜩 불쾌감을 보였다.
지금 하지메가 하는 행동이 뭘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너희는 우리가 통제하겠다. 반항하는 놈들은 각오하도록."
하지메는 그 말을 하면서도 여자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곧있을 즐거운 시간을 생각하며 그는 히죽거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야?!"
블랙 2팀의 한 헌터가 하지메를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긴 너흰 이제 우리 대일본의 시민이 됐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제…"
"더는 못 들어주겠네."
"뭐?"
"통제."
형우는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하지메를 향해 통제를 사용했다.
물론 범위는 하지메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었다.
통제는 일본군 전체에게 걸렸다.
“모, 몸이 안 움직여!”
“이게 대체···?!”
일본군은 당황한 표정으로 눈알만 굴렸다.
오직 움직일 수 있는 건 눈과 입뿐.
하지메는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본 능력이 S급이긴 했지만 1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직후부터 헌터들은 고정된 등급이 아닌 그 이상으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메 역시 그 덕분에 지금은 S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자부했고.
그런데 그런 자신을 정체도 모를 디버프가 속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메는 아직도 오만함을 못 버렸다.
“끄, 끄응···!”
하지메는 힘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디버프를 해제하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그것 외에도 할 일이 있었다.
“앱솔루트 실드!”
우웅!
하지메가 능력을 사용하자 딱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방어막이 생성됐다.
“이 능력이 뭔지는 몰라도 내 방어막을 절대 뚫을 순 없을 거다! 아마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우리 본대가 오면 네놈들은······.”
퍼억! 쫘아악! 채앵!
“방금 뭐라고?”
“······.”
형우의 주먹 한 번에 방어막이 산산 조각나자 그제야 뭔가 잘못된다는 걸 안 하지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곧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악몽의 시간이 찾아왔다.
제주도청.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가 임시로 정부관사로 만든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 정부에 넘어간 상태였다.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게 말이다. 그리고 대통령실로 꾸며진 곳에 일본 정부의 수장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밖을 바라봤다.
밖에선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가 일본군에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쯧쯧, 불쌍한 놈들. 예나 지금이나 조선은 변한 게 없군. 그렇게 자기 나라는 못 팔아먹어서 안달인 놈들이 많으니 국민도 다 저런 운명일 수밖에.”
스즈키 쿠도 일본 내각 총리는 발길질 당하는 한국인을 보며 혀를 찼다.
솔직히 얼마 전까진 이런 상황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터를 잡으려 했으니까.
다만, 그게 무산되면서 차선으로 택한 제주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제주도를 일본 영토로 만든 상황.
본인이 했음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한국 내 친일파 정치인의 양성이 이런 결과를 낼 줄은 더더욱.
“그래도 뭐 나쁘진 않군. 이제 이곳에서 대일본국을 부활시키겠다.”
쿠도는 넓은 제주도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때 방 안으로 누군가 다급히 들어왔다.
쾅!
“초, 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쿠도는 다급히 들어온 자신의 비서를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공항에 주둔 중이던 4사단이 공격받았답니다!”
“뭐? 거기가 어떻게? 와이번이라도 새어 나온 건가?”
“그, 그게 아니라······.”
그런데 비서는 말을 망설였다.
그 모습을 보곤 쿠도가 재촉했다.
“뭔지 어서 말하게.”
“그··· 와, 와이번을 처리하러 갔던 우, 우리 군에게 우리 군이 공격을 받았고 5분 전 그 보고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비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보고가 그렇게······.”
“멍청한 놈! 제대로 알아보고 와!”
쾅!
“예!”
쿠도가 책상을 치며 비서를 질책했다.
그러자 비서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잠시 후 돌아온 비서는 더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4사단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
콰아앙!
그 순간 어디선가 폭발이 일어났다.
쿠도는 폭발로 흔들리는 몸을 다잡으며 창문으로 밖을 쳐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밖으로 보이는 이들은 쿠도가 잘 아는 병력이었다.
“저, 정말 4사단이잖아?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쿠도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도청으로 진격 중인 4사단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