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8
영흥 화력발전소.
한때 인천, 경기도 전력의 30% 이상을 책임졌던 장소였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전력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동을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
다른 곳과 달리 몬스터에게 뺏기지 않은 지역이었지만 가동을 해봤자 소용이 없었고 그 때문에 화력발전소의 대피소로 전체 인원이 대피한 상황이었다.
블랙 2팀과 4팀은 그저 안에 있는 설비만 가져오면 끝나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대피소로 피하면서 역할도 붕 뜨게 되고 구출을 기다리는 상항이 됐다.
그 상황에서 구출 2팀마저 같이 고립된… 혼돈의 상황.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형우 일행을 만나게 되면서 둘 다 구출됐다.
덤으로 화력발전소에 남아 있던 일반인과 몇몇 경비로 고용된 헌터들도 포함해서.
그들은 방금 전까지 거대한 두 몬스터의 싸움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들을 구출하러 나타난 이들이 두 몬스터를 쫓아내 줬으니까.
다만, 툭 터져 나온 한 마디에 그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후우… 다행이긴 한데……. 소장님, 저흰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 음.”
한 직원의 말에 화력발전소 소장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바깥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3차 몬스터 웨이브 전에 전해진 소식부터 구출 2팀이 파견되던 상황에서의 정보.
그 외에 계속해서 수집했던 정보들도 많았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 갈 데가 없지…….”
“하아…….”
다들 한숨을 쉬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초토화된 상태였다.
그나마 지키고 있던 과거 휴전선의 라인은 뚫린 지 오래였고 그 여파로 전방 지대에 몰려 있던 병력도 모두 쓸려나갔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거점을 두고 어느 정도 버티고 있을 터.
여하튼 현재 대한민국은 전체가 몬스터의 땅이 됐다.
그나마 버티는 곳은 제주도.
이곳도 미리 ‘방주’ 프로젝트라는 대이주 계획을 세워놨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지금쯤 해양에서 올라온 몬스터들로 이미 폐허가 됐을 터였다.
“저걸 타고 횡단하면 되지 않습니까?”
“힉?! 미쳤어?”
“정신 나간 새끼! 저걸 타고 가겠다고?!”
한 직원이 와이번을 가리키자 다들 기겁을 하며 나무랐다.
화력발전소 근처에서 와이번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와이번 떼를 보고 다들 놀랐지만 지금은 다들 어느 정도 적응했다.
그러나 적응을 한 거랑 그걸 타고 가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들은 와이번을 다시 힐끗 바라보곤 고개를 저었다.
저 와이번들을 타고 그것도 제주도까지 가게 된다면 가는 와중에 기절할 것 같았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형우는 선우와 재회하고 계속 붙어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못 만났던 연인이 만난 거라고 오해할 정도로 정말 형우는 선우만 졸졸 따라다녔다.
선우도 정말 오랜만에 만난 오빠와 떨어지기 싫었는지 재잘재잘 떠들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이야…….”
형우는 선우의 말을 흐뭇하게 들으며 잔뜩 리액션을 해줬다.
그 모습에 다들 부럽게 바라봤다.
“거참, 가족 없는 사람 서럽네.”
용준은 심술 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친해진 선우나 민규밖에 없었다.
다만, 둘 다 다른 곳에 가 있었기에 용준은 차민을 바라봤다.
“아저씨는… 아…….”
용준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몇 개월 같이 지내면서 차민의 사정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왜 엑시디움, 관리자들과 계약을 했느냐였다.
사연은 정말 간단하고 진부했다.
그러나 그 진부함 만큼이나 차민의 아픔도 비례했다.
차민이 계약을 맺은 이유는 전에 만났던 아프리카 소수 민족 출신 에드가 지부와 비슷한 이유였다.
다만, 그 대상이 전체가 아닌 자신의 딸 하나에 국한됐다.
딸은 관리자와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부터 희귀병에 걸렸었다.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구하던 중 차민은 감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감옥에 들어왔다.
그때 관리자는 감옥으로 들어온 차민에게 희귀병에 걸린 딸을 치료해주겠다 말했다.
그 말에 바로 계약을 맺고 관리자들의 꼭두각시로 살아왔다.
그러나 에피리아의 일이 끝난 이후 아공간 능력자를 통해 딸의 소식에 대해서 듣게 됐다.
딸의 병세가 호전됐는지 듣기 위해 따로 고용했던 헌터였다.
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딸의 죽음.
그리고 그 소식을 듣게 된 차민은 바로 에피리아에서 몸을 숨겼다.
에피리아에서 죽은 것처럼.
그 뒤에 관리자들에게 복수할 요령으로 장고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방수혁을 죽인 뒤 용준과 민규를 만났고 지금까지 왔다.
“괜찮다. 이제 가슴에 다 묻어뒀으니까.”
“…….”
차민은 이미 다 안다는 듯 용준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기에 용준은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몰래 한숨을 쉰 용준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후 형우 일행은 블랙 2팀 부팀장, 화력발전소 소장과 함께 회의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 같습니다.”
“으흠… 제주도라…….”
형우는 2팀 부팀장의 말에 고심을 했다.
영흥도에서 계속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영흥 화력발전소엔 소규모 태양력발전소도 있었고 풍력 발전소도 있었다.
전력이 끊길 일은 없었고 식량을 구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화력발전소 내 대피소에 비상식량이 꽤 많이 적재되어 있었고 섬 내부에 밭도 있었기에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했다.
조석간만의 차에 따라서 썰물 때 물이 많이 빠지면 갯벌로도 그냥 섬과 섬 사이를 넘어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수비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두 대형 몬스터가 난리를 치면서 수심이 더 높아진 덕분에 그 걱정도 없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여기서 버티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계속 있어도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닌 현 상태 유지 정도였다.
게다가 형우 일행이 빠졌을 때 이들이 과연 잘 지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제주도로 이동하길 원했다.
형우 일행도 이들을 그냥 버리고 갈 수 없었기에 제주도로 가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많은 인원을 옮깁니까? 나눠서 가면 되긴 하지만 한두 번 나눠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너무 걸리니…….”
“와이번 한 마리당 6명이 탄다고 하면 대략 2~3번은 왕복을 해야 합니다.”
“계속 체력을 회복시켜줄 수 있긴 한데 그래도 한계가 있으니 좀 여유 있게 하려면 인원을 나눠서 최소 4번 왕복에… 쉬는 시간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걱정했다.
여기 있는 인원은 대략 150명이었다.
몬스터를 피해 대피한 인원도 있고 기존 화력발전소 인원과 군 병력, 블랙 길드원 등.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그 때문에 이동에 제약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형우가 끼어들어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네?”
“좋은 방법이 있어요.”
형우는 그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제주 해협.
한반도부터 제주도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항해하기 거친 면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거부터 많은 선박이 다녔고 덕분에 대한민국 사의 중요 혹은 오점을 남긴 여러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던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을 지금은 선박이 아닌 와이번이 지나는 중이었다.
펄럭펄럭.
“까아악!”
“끼익!”
푸르른 창공, 10여 기의 와이번이 날고 있었다.
놈들은 각자 괴성을 지르며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그런데 그 와이번에겐 철로 된 밧줄들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밧줄 밑에는 거대한 철판이 걸린 상태였다.
철판엔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위로 150여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반 이상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여유롭게 있었고 몇몇은 아직도 불안한지 아래를 힐끔 바라보길 반복했다.
“진짜 말이 안 나온다. 이렇게 옮길 줄이야…….”
블랙 2팀 부팀장은 150명이 넘는 인원을 가볍게 옮기고 있는 와이번을 보며 경외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경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광경.
솔직히 좀 무리해서 2번 왕복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번에 모두를 옮길 수 있을 거라곤 전혀 떠올릴 수 없었는데 여기엔 또 비밀이 있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사실 형우가 낸 아이디어였다.
선우를 찾아 조금의 여유가 생기긴 했으나 이젠 엑시디움을 찾아야 했다.
지구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모르는 엑시디움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가는 길에 지구 서해안 쪽 방향의 도시들을 한 번 쭉 둘러보면서 갈 수 있었으니까.
물론 두 번을 하는 건 문제였기에 형우는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게 이거였다.
거대한 철판에 안전을 위한 난간을 설치하니 150명이 타기도 문제없는 이동수단이 만들어졌다.
다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제어. 염력.”
형우는 일정 주기마다 능력을 갱신해서 사용했다. 그리고 두 능력 덕분에 와이번들은 150명이라는 많은 인원에 대한 무게를 좀 덜 수 있었다.
“규격 외 등급의 수준이 아닌데…….”
“그 이상 등급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부팀장과 민주는 형우의 능력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강렬했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감탄은 끝없이 이어졌다.
“저걸 보면 그냥 동생 바보인데…….”
“하하.”
민주의 말에 부팀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능력을 갱신한 형우는 다시 옆에 있는 선우에게 달라붙어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상당히 괴리가 있는 모습이었으나 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선우에게 어떤 영혼석을 줄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 어떤 영혼석을 줘야 할까. 보통은 본인의 주력 능력으로 R급을 받긴 하던데… 그걸 쓰고 해야 하나……. 하나밖에 못 하니까 고민이 너무 많네.’
검은 영혼석엔 사실 비밀이 있었다.
소켓을 비우지 않고도 능력을 채울 수 있는.
그러나 그건 단 한 번밖에 안 됐다.
한 번 검은 영혼석으로 채우게 되면 소켓이 비어있지 않은 이상 검은 영혼석을 쓸 수 없었다.
만약 선우가 멀티 소켓 능력자였다면 고민 안 하고 바로 넘겨줬겠지만 안타깝게도 선우의 소켓은 하나였다.
‘그냥 줘도 되긴 하는데 지금 힐 능력은 봄이가 워낙 출중해서 더 필요가 없는 게 문제네.’
다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형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인사니오에게 받고 아직도 안 쓴, 꼬깃꼬깃 접혀 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소켓 증여.’
E구역에 있을 때 얻어놓고 아직도 사용하지 못했던 보상이었다.
이걸 써서 R급이 아닌 어떤 능력인지 알고 있는 S급 능력을 일단 얻어놓고 R급을 받으면 더 좋은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끼아악!”
“끼익!”
형우가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와이번은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도에 도착하자 와이번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와이번이 내려간 곳은 제주공항의 활주로였다.
이들을 안전하게 내려놓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였기에 착륙 장소를 활주로로 잡았다.
펄럭펄럭. 쿵.
잠시 후 와이번은 가볍게 내려오면서 사람들은 안전하게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아, 드디어 땅이다.”
“바다도 좋긴 했지만 그래도 땅이 좋네.”
다들 편안한 표정으로 철판에서 내려왔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형우는 당연히 제주도로 이주한 대한민국 정부군이라 생각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형우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うごくな!(움직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