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5
와이번은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곧 다음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도 다음 섬의 이름의 선재도.
선녀가 내려와 머물렀던 곳이라 불릴 정도로 주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끝나는 않는 행렬에 전부 가려진 상태였지만.
“질린다, 질려.”
성민은 질린 얼굴로 뮤턴트 오크들의 행렬을 바라봤다.
저쪽 세상에 있던 뮤턴트 오크들 전부가 이곳에 온 건지 도무지 끝이 안 보였다.
아직 선재도의 앞부분만 보였지만 조금 더 지나 영흥도까지 보이면 그곳에도 오크들이 있을까 봐 두려웠다.
분명 오크들의 끝엔 더 많은 오크가 모여있을 게 뻔했다.
물론 그래 봤자 형우 일행에겐 겨우 일반 오크들이 모인 수준이지만 말이다.
“음?”
그런데 그때, 선재도에 가까워지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투두두. 쾅!
뭔가 폭발하는 소리만 조금 크게 들리고 나머진 아주 작게 들렸지만 그건 분명 누군가 총으로 싸우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는 진원지는 선재도에 붙어있는 작은 섬이었다.
“일단 저기로…….”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괴성이 들려왔다.
“캬아악!”
“캬악!”
대략 10여 마리쯤 되어 보이는 와이번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왔다.
이 와이번들은 까마귀처럼 오크들이 죽어서 생긴 부산물을 챙기기 위해 온 놈들이었다.
와이번 자체가 A급 몬스터지만 뮤턴트 오크들에겐 상대가 안 됐다.
1대1이라면 그래도 하늘에서 날아다닌다는 장점을 이용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었다.
다만, 저렇게 단체로 있으면 상대는커녕 아래로 내려간 순간 바로 당할 게 뻔했다.
그래서 좀 만만해 보이는 형우 일행을 향해 아가리를 돌렸다.
그러나 놈들에겐 더 최악의 선택이었다.
“소정아.”
“지배.”
스으으.
형우가 소정이의 이름을 부르자 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은 마치 가루가 뿌려지듯 와이번을 덮쳤고 기세 좋게 날아오던 와이번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도 전에 얼어버렸다.
“이야… 대단하다. 아까도 느꼈지만 정말 대단하네.”
성민은 소정의 능력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전의 테이밍은 조건이 필요했다.
아무리 낮은 단계의 몬스터라도 어느 정도 단계를 거처야 했고 그 단계를 거치는 시간도 이렇게 빠르진 않았다.
정말 순식간에 A급 몬스터 10여 기를 길들였다.
그러나 이건 테이밍과 좀 달랐다.
테이밍은 어찌 보면 프렌드쉽이었다.
어느 정도 명령 체계는 있지만, 상하관계라기보단 서로 친구와 같은 관계가 되는 거였다.
그런데 ‘지배’는 그게 아니었다.
완벽한 상하관계.
한마디로 저 능력은 걸어 다니는 노예 문서 같은 거였다.
“어떡하냐, 뀨우? 네 역할이 이제 없어졌어.”
“뀨우…….”
봄이의 말에 뀨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 손맛에 빠져서 중원… 오티움을 평정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뀨우는 아쉬운 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나눠서 타자. 안 그래도 애 너무 힘들어 보였어.”
“하하, 하긴…….”
한 와이번에 타고 있는 인원만 7명+1마리였다.
와이번 자체가 워낙 거대했기에 위에 다 탈 수는 있었지만 오래 비행하긴 힘들었다.
“끼이… 끼이…….”
안 그래도 낑낑대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상태.
일행들은 바로 다른 와이번으로 건너갔다.
1인 1와이번이 되자 일행은 바로 아까 소리가 났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소리의 진원지에선 처절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선재도 아래 있는 측도.
사실 선재도보다 유명하지 않아 그저 옆에 딸린 작은 섬 정도로 여겨지는 곳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바다 풍경도 남쪽보다 북쪽이 더 괜찮았기에 두 풍경을 모두 보면서 측도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조금 실망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기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찌 됐거나 개인 취향이란 게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개인 취향 따윈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섬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평화로운 섬에서 전쟁터로 변한 그곳은 군인과 헌터가 섞여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투드드드! 퍼엉! 펑!
“옆으로 샌다! 막아!”
“탄알집! 탄알집 다 떨어졌어!”
“체인 라이트닝!”
그들은 재래식 무기와 능력 두 가지를 동원해 최대한 뮤턴트 오크들을 막았다.
재래식 무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등급의 몬스터였지만 한 헌터의 특별한 능력 덕분에 재래식 무기로도 오크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중대장님! 다음이 마지막 보급이랍니다! 이일준 헌터가 더 이상 능력을 펼칠 수 없답니다!”
“뭐?! 이런 썩을! 소대장, 병사들에게 최대한 조준 사격해서 탄을 아끼라고 전해!”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중대장은 소대장의 말에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곳에서 계속 버틸 수 있던 것도 이일준 헌터의 오러 블릿 능력 덕분이었다.
일반적인 오러 블릿 능력은 자신이 직접 총기를 사용해 발사했지만 이일준 헌터의 능력은 좀 달랐다.
다른 이도 발사할 수 있는 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능력으로 그는 후방에서 탄을 생산했고 생산한 탄으로 일반 병사들이 K-2 소총에 장착해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그 보급이 다음번에 끝난다.
안 그래도 조금씩 막기가 버거워지는 타이밍에 보급까지 막히면 이젠 답이 없었다.
“아직도 저렇게나 수가…….”
중대장은 끝없이 밀려오는 뮤턴트 오크들을 보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처음 측도에 진입한 순간부터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폭탄으로 끊어버렸다.
다리이자 도로인 그곳을 끊었으나 놈들은 끈질기게 섬 안으로 진입했다.
덕분에 다리는 수천 마리의 오크 시체로 다시 채워진 상태였다.
놈들은 동족의 시체를 밟고 안으로 꾸역꾸역 진입하고 있었다.
“뭔 놈의 몬스터 특성이 ‘한 번 본 상대는 죽일 때까지 포기 안 한다.’ 야?”
뮤턴트 오크들은 일반 오크와 다르게 지성이 높은 편이었지만 한 가지에선 영 오크보다 더 지능이 떨어졌다.
한 번 목표로 잡은 상대는 얼마를 피해를 보던 무조건 죽인다.
이게 놈들의 본능이자 성격이었다.
문제는 이 특성 때문에 안 그래도 오크보다 번식력이 떨어지는 뮤턴트 오크들에게 많은 개체 수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줬다.
“어쩔 수 없군.”
중대장은 안색을 굳히며 옆에서 헌터들을 지휘하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박민주 헌터, 헌터들에게 최대한 힘을 아끼라고 전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최후의 일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백린 연막탄으로 시간을 좀 끌겠습니다.”
“배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민주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겉모습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박민주였지만 외모가 워낙 뛰어나 30대라는 외모조차도 미에 플러스 될 정도였다.
그러나 중대장은 지금 그 외모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반 배로는 수중 몬스터를 전부 따돌리고 갈 수 없을 겁니다. 지금이야 오크들 시체가 많아서 저쪽에 달려들겠지만 저희가 움직이면서 몬스터들이 쫓아오게 되면 얼마 못 갈 겁니다.”
“뭐 하나 찾으셨다면서요? 그건 어떻게 됐죠?”
민주는 작은 희망을 담아 말했다.
그러나 답변으로 들려온 현실은 냉혹했다.
“근처에서 좌초된 육군 경비정 하나를 찾긴 했는데… 저희 쪽에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원이 없습니다.”
“하아…….”
민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
‘구출 2팀 팀장이 구출 당해야 할 상황에 오다니…….’
민주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전장을 바라봤다.
사실 민주는 블랙 길드의 구출 2팀의 팀장이었다.
체계적인 블랙 길드는 여러 팀을 두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구출 팀이었다.
레이드나 작전 중에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주는 역할이었는데 전국이 난리 난 상황에서도 블랙 길드는 침착하게 2팀과 4팀이 갇힌 영흥도로 파견을 보냈다.
문제는 거기부터 시작이었다.
헬기로 이동하던 그들은 중간에 와이번의 습격으로 선재도에 비상착륙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대부도의 한 군부대와 합류해 지금까지 버텨왔다.
영흥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영흥도는 다리가 끊긴 상황에서 만조에 도착했기에 어쩔 수 없이 측도로 피해 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 상황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
같이 온 헌터들은 이미 리타이어 직전이었다.
나름 교대하며 휴식을 취하긴 했으나 놈들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더는 그런 여유가 없어졌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네? 그게 어떤 건가요?”
중대장이 망설이며 이야기했으나 민주는 바로 반응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어떤 방법이라도 쓸 수 있었다.
“저희 쪽에 백린탄이 있습니다. 이 백린탄을 사용하면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게 아시다시피 인체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터라 이미 어느 정도 효과가 죽은 탄이라도 아군에 피해를 줄지 모릅니다.”
중대장은 망설이며 백린탄을 말했다.
백린탄은 쉽게 말하면 화학무기였다.
인이 공기와 접촉해 발화하면서 생기는 독성 가스는 인체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줬다.
2,000도가 넘는 열로 사람을 순식간에 녹이는 등, 과거 세계대전에서도 사용한 적 있는 최악의 화학무기였다.
“그래도 그거라도 해야죠.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그러나 민주는 백린탄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동반 자살할 무기라도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든 동원해보는 게 옳았다.
잘못하면 그냥 자폭이 될 수도 있었지만 민주는 일단 그거라도 해보기로 했다.
“부팀장. 말 좀 전해주세요.”
민주는 일단 팀원에게 동의를 받기 위해 부팀장에게 말을 전했다.
아무리 죽을지 모르는 길이라도 중대장은 그저 명령을 내리면 되지만 길드에 소속된 그들은 좀 달랐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작전을 할 경우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물론 동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들 어차피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거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준비를 했다.
다행히도 지금 타이밍은 정말 좋았다.
막 간조에서 만조로 넘어가는 타이밍이었다.
아직 썰물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선재도에서 영흥도를 이어주는 영흥대교의 밑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만조기에 조금만 버티면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었다.
영흥도에서 구출을 요청한 팀에게 도움을 받으면 충분할 터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그들은 위기를 맞았다.
“끼아악!”
“꺄악!”
“와이번…!”
“아아, 끝났어…….”
중대장과 민주는 하늘에서 날아오는 와이번을 보곤 절망에 빠졌다.
오크들을 어찌한다고 해도 와이번까지 따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한 소대 규모의 와이번이라면 더더욱.
하늘에 백린탄이 타격을 줄 수 있긴 했지만 그것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한쪽에 올인을 해야 할 상황에서 백린탄을 나눠서 쓰는 건 작전 성공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 때문에 측도에 있는 병사들과 헌터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그런데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다.
“제어!”
촤아아아!
“…?!”
“파도가…!”
와이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파도는 엄청난 크기로 불어나 다리에 있는 오크들을 덮쳤고 그것도 모자라 선재도에 있는 오크들까지 모두 밀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며 모두 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와이번에서 사람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