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24
“음? 잠깐.”
안으로 움직이던 도중 형우는 이질감을 느끼고 멈췄다.
그러자 소정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네? 왜요, 오빠?”
“잠시만 멈춰봐. 다들 멈춰보세요.”
형우는 일행 전체를 멈추게 했다.
이제 좀만 더 이동하면 바소르 본부 내부였다.
본부 내부로 이동하게 되면 멀리서 보이는 저 거대한 장치의 정체와 수뇌부 암살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다.
원래 목적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알아내는 거지만 상황에 따라서 공격도 가능했다.
어차피 지금 타이밍을 맞춰서 아르카의 군단 전체가 진격 중이었으니까.
이번 일을 위해 아르카는 여러 가지 수를 썼다.
진격 중인 군단도 진격 방향을 세 군단이 하나로 뭉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 아이디를 낸 것은 박 사장이었다.
감옥에서 정예의 인원들도 추가되면서 질적인 면에서 더 나아졌으니 이참에 괜히 적의 의도대로 나뉠 필요 없이 하나로 모여서 진격하자는 거였다.
거기에 잠입도 곁들여서.
계속해서 시간 낭비가 될 바엔 이게 나았으니까.
여하튼 그래도 일행은 몸이 단 상태였다.
이제 목적지가 바로 코앞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짙은 마기. 뭔가 이상해.’
형우는 주변의 기운을 느끼며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지금 이곳은 마기로 가득 찬 상태였다.
어디선가 진득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로 일행들은 숨쉬기조차 불편했다.
그나마 형우가 주변의 마기를 빨아들이면서 버틸 수 있었다.
만약 형우가 없었더라면 A급이라도 순식간에 마기에 오염될 게 뻔했다.
“음?”
한참 주변의 살피던 형우는 이질적인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형우가 알고 있는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질리언?”
형우 일행에게 다가오는 이는 질리언이었다.
미국의 헌터이자 대량 학살자로 악명 높은 감옥의 죄수.
그런데 질리언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초점도 없었다.
조금만 더 걸렁하게 다가왔으면 B급 좀비물의 좀비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있었네.”
노르덴 이후 형우를 포함해서 아르카 전체가 다른 감옥의 죄수들을 못 봤다.
노르덴에서 그렇게 나서더니 아무도 얼굴이 비치지 않자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다만,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도망쳤기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졌던 질리언이 다른 죄수들과 함께 다가왔다.
그것도 똑같은 상태로.
“상태가 아주 이상한데, 길드장?”
“상태만 문제가 아니야. 상황도 문제지.”
형우는 성민의 말을 받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스윽. 스윽.
어느새 나타난 수십의 죄수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순간 일행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룽에게도 시선이 갔다.
“어떻게 들킨 거지?”
룽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한 건 모두 그였다.
그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자 가장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쯧쯧, 괜히 애꿎은 놈 의심하지 마라. 너희가 들킨 이유는 그게 아니니까. 이곳은 나의 세상. 모든 곳에 나의 마기가 뿌려져 있다. 그리고 나의 마기에 걸린 너희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지.”
그때 높은 건물 위에서 마족의 뿔을 한 미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오만하게 웃으며 형우를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 나의 이름은 데브릭. 위대한 마계와 이곳의 신이다.”
“신은 개뿔. 관리자들 시다바리 주제에…!”
드워프 칼리만이 데브릭을 보며 으르렁댔다.
오티움에겐 데브릭이 대한제국의 이완용이나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더 심했지만.
나라를 뺏긴 고통도 엄청나긴 하겠지만… 오티움은 아예 다른 개념이었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오티움은 이제 곧 소멸할 터.
바소르를 물리치고도 오티움을 살리기 위해 발악을 해야 했다.
그게 실패한다면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다른 차원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지만 그건 더 현실적이지 않았다.
만약 오티움이 아르카 손에 떨어지면 엑시디움은 분명 지구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닫을 게 뻔했다.
그럼 독자적으로 차원 이동 마법진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걸로 몇 명 정도 가는 거면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동해야 할 인원은 수십만이 넘었다.
처음부터 그것에 매달려도 만 명도 옮기지 못할 게 뻔했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데브릭은 세상에 둘도 없을 원수였다.
아니, 이런 말조차 너무 순화된 느낌이 들 정도의 악당이었다.
“천박한 난쟁이는 좀 닥치고 있도록. 난 네놈 따위가 아닌 보스랑 대화하고 싶으니까.”
“이익…!”
데브릭의 말에 칼리만은 발끈해 뛰쳐나가려 했지만 주변에서 말렸다.
그러는 사이 데브릭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실 네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쿠라 님부터 테메 님까지 골탕을 먹인 놈이 누군지 말이야.”
“쿠라? 테메?”
“아아, 그래. 너는 모르지. 쉽게 설명해주면 널 감옥에 집어넣은 장본인이자 나의 상관이자 주인이시다.”
“…….”
“음? 더 듣고 싶지 않은가?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군, 그래.”
“널 주먹으로 반쯤 묵사발 만들어놓고 들으면 되니까.”
형우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차피 더 듣고 싶은 건 데브릭을 이기고 나서 들어도 늦지 않았다.
아무리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알맹이만 쏙 뺀 이야기로 조롱을 할 게 뻔했으니까.
“풋! 미안하지만 불가능할 거 같군. 나도 원초적인 주먹다짐을 아주 좋아하지. 다만, 안타깝게도 이번 상대는 내가 아니라 이놈들이다.”
스윽.
데브릭의 말에 감옥의 죄수들이 다가왔다.
“익숙한 얼굴이지 않나?”
“질리언이 왜 그렇게 된 거지?”
질리언은 인형처럼 조종당해 데브릭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전혀 상상치 못했던 모습.
그 때문에 형우는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뭔 줄 아나?”
데브릭은 그 말을 하며 품에서 검은 돌을 하나 꺼냈다.
“음?”
형우는 검은 돌을 본 순간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보기엔 마기가 뭉쳐져 만든 돌 같았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키르의 씨앗이다.
“키르?”
“헉? 키르?!”
형우는 그게 뭔지 몰라 의문을 표했지만 룽은 키르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키르에 대해서 아십니까?”
“마계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꽤 희귀하긴 해도 마계에선 별 볼 일 없는 나무에 지나지 않지만 키르에서 나오는 열매가 상당히 특별합니다.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서 주변의 마기를 모아 열매에 저장하는데 그 열매의 마기에 현혹된 마수가 그것을 먹으면 이곳저곳으로 씨앗이 퍼집니다. 다만, 그걸 인간이 먹으면 좀 다릅니다. 인간이 먹으면…….”
“상당한 양의 마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씨앗을 복용하면 그 씨앗에 마기를 주입한 마족의 명령을 따르는 꼭두각시로 변하지. 이 씨앗엔 나의 마기가 들어갔고 보는 바와 같이 놈들은 이런 상태가 됐다. 또한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데브릭은 룽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하다가 손을 휘저었다.
손에선 마기가 흘러나왔고 그 마기는 죄수들에게 흡수됐다.
“크, 크아아악!”
“아아아악!”
그러자 질리언을 포함한 죄수들은 비명을 질렀다.
콰득! 콰드득!
뼈가 부러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죄수들의 몸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꽤 괴기스러워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변하지.”
그때 때마침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
그 함성을 들은 순간 형우 일행은 아르카가 드디어 바소르의 군단을 뚫고 본부까지 진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생각한 것보다 빠르긴 했으나 이미 형우 일행이 침투하기 전부터 공격하고 있었기에 시간상으로 보면 딱 맞았다.
“나름 뭔가 많이 준비한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칼리만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데브릭을 바라봤다.
마치 아까 당한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이.
그러나 곧 표정이 굳어졌다.
데브릭의 표정을 보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탓이었다.
수세에 몰렸음에도 데브릭의 표정은 변하질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마치 제 뜻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 듯했다.
“쯧쯧, 멍청하면 고생한다더니 딱 너희를 보고 말하는 꼴이구나. 지원군? 과연 저들이 너희에게 지원군이 될 것 같은가?”
“뭐?”
“제일 강자인 네놈이 여기 있는데 그동안 고착화됐던 전투가 전술 한 번에 풀렸다? 그것도 특별할 거 없는 평야에서? 과연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
그 말에 다들 이상함을 느꼈다.
확실히 남부에서 벌어졌던 전투 대부분은 별 성과 없이 상대가 방어만 하다가 끝났다.
계속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였기에 지금 이렇게 특공대가 바소르에 잠입한 거였다.
그전에 세 개로 나뉘었던 군단이 하나로 합쳐서 진격하기로 했고.
다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속도가 빨랐다.
아예 전투를 포기했으면 모를까 여기까지 너무 빨리 당도했다.
그 말은 뭔가 유인책을 써서 아르카를 본부까지 끌어들였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왜 저들이 그동안 방어만 했다고 생각하나?”
파지직. 파직.
그와 동시에 무언가 스파크가 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 봤던 거대한 전송 장치에서 빛이 모이고 있었다.
그 빛은 점점 커졌고 마기들도 그곳으로 모였다.
그러자 빛이 마기에 가려져 보이질 않게 됐다.
맥락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이상 현상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형우는 아니었다.
저걸 본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
‘서, 설마?’
“마, 막아야 해!”
“쯧쯧, 끝까지 멍청하군. 내가 왜 이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고 생각하나? 보내줄 생각이 없으니 그랬겠지? 그래서 네놈들을 위해 준비했다.”
콰득. 콰드득! 팍!
어느새 변이를 마친 죄수들은 이전에 인간이었다는 걸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마치 뼈와 핏줄로만 만들어진 거대한 괴물.
거기에 드문드문 밖으로 식물의 줄기 같은 게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키마저 3M가 넘었으니 보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과 혐오감을 줄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게다가 그들에게선 막대한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최소 R급.’
형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느껴지는 기운은 아무리 적게 봐도 R급 이상이었다.
문제는 그게 제일 강했던 질리언의 기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죄수들 전원에게서 R급의 힘이 느껴졌다.
‘이 정도 숫자면 다른 일행 보호가 문제가 아니라 나조차도 장담을 못 하는데…….’
다만,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S급이라도 겨우 인간 따위의 몸으로 마기를 견딜 수 없으니 반나절도 못 버틸 거야. 그러나 그 반나절 안에 너희가 살아남을지 의문이군.”
데브릭은 그 말을 하며 형우 일행을 비웃었다.
그러나 다들 그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변이한 죄수들에게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마기에 숨마저 막힐 것 같았다.
데브릭의 말에 반응하기보단 힘을 끌어올리고 검을 들어 언제든 싸울 수 있게 준비를 했다.
“내가 상대하고 싶지만… 너희가 예상보다 조금 빨리 온 관계로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준비가 끝난 뒤 왔다면 조금이라도 상대해줄 수 있었을 텐데…….”
데브릭은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최후의 만찬을 즐겨라, 버러지들아.”
그 말과 함께 변이한 죄수들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