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19
“와아아!”
“공격! 공격!”
“2진은 성벽 위를 견제해서 1진을 엄호하라!”
아르카의 병사들은 큰 함성을 지르며 펠리아를 향해 진격했다.
크루바의 브레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크루바의 몇 마디에 그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 동부 관문 펠리아만 넘으면 다시 오티움 전부를 찾을 수 있다!’
‘쫓기는 삶, 가축이 되는 삶, 본능만 남는 짐승이 되는 삶이 전부인 미래를 없앨 수 있다!’
‘나의 희생으로 오티움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그 세 문장의 뜨거운 말에 그들은 힘차게 달려갔다. 그리고 곧 격돌했다.
“파이어 에로우!”
“윈드 스톰!”
“워터 실드! 오른쪽도 막아!”
“적이 올라온다!”
“계속 올라가라! 요새 위로 올라가라!”
콰아아앙! 쾅! 콰아앙!
굉음과 함성이 오가는 전투가 시작되자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지금 전투는 크루바가 가슴을 뜨겁게 만든 연설과는 다르게 사이드 메뉴만 화려하고 메인은 빠진 요리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탐색전을 벌이며 주력 전력을 내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1차전은 서로 큰 피해 없이 종료됐다. 그리고 2차전도 똑같았다.
오히려 2차전은 사이드 메뉴마저 빠진 전투였다.
대충 몇 번의 충돌과 능력 공방만 나누고 끝날 것 같았다.
“으흠… 확실히 방어막은 일정 이상 요새에 데미지를 입힐 만한 공격이 있을 때만 가동되나 보네요.”
“그렇군.”
형우와 크루바는 요새 가까이에서 전투를 바라보며 이것저것을 품평하고 있었다.
처음 크루바의 공격을 막았던 어마어마한 방어막과 적의 움직임 등.
이것저것을 보고 말했다.
물론 그냥 보기만 해도 다 아는 정보만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요새 근처에서 적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운을 느껴서 말이다.
마기나 신성력에 예민해진 형우는 안에서 느껴지는 힘의 크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의 크기로 마족이 몇 있고 천족이 몇이 있는지 전부 파악했다.
그 덕분에 엘루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형우가 가장 먼저 느꼈다.
“…변화가 있는가?”
“이번에도 가만히 있네요.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답답하네요.”
주어가 없는 말에도 눈치껏 바로 알아들은 형우는 엘루나의 동향에 대해 말했다.
둘은 사실 그 기운이 타천사 엘루나의 것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그저 형우와 비견될 만한 강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둘은 제대로 전면전을 치르는 건 꺼렸다.
말이 좋아 비견이자 형우보다 한 수 위일 수도 있었다.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기운을 느끼는 게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엘루나의 기운은 이게 마기인지 신성력인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마왕 데브릭이 혹시 저 요새에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됐다.
여하튼 그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더 볼 건 없을 거 같습니다. 퇴각시키시죠.”
형우는 전장에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양념 없는 싸움에 재료마저 부실하니 더 나올 게 없었다.
크루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군. 부관, 병력을 퇴각…….”
콰아앙! 콰아아앙!
“아악!”
“커어억!”
“마, 마족이다!”
크루바가 막 퇴각을 외치려는 순간 약 100여 명의 마족이 등장했다.
그들은 요새 성벽에서 아래로 갑자기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아르카의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요새 공격의 선봉장을 맡고 있던 엘프가 빛나는 오러를 내뿜으며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마족은 그 모습을 가소롭게 바라봤다.
“아르카의 수준을 알만하구나.”
스악!
마족은 가볍게 위에 아래로 검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엘프는 갑자기 몸을 멈췄다. 그리고 반으로 토막 나 허물어졌다.
털썩.
“이런…!”
그 모습을 본 크루바는 먼저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형우가 막았다.
크루바는 자신을 막는 형우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제가 먼저 가서 마족들을 상대하겠습니다.”
“그대가?”
크루바는 더욱 의아한 시선으로 봤다.
그 표정을 보며 형우는 바로 말을 이었다.
“저 혼자라면 그 기운의 주인이 요새 밖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상대를 확인하고 제대로 전면전을 펼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흠…….”
“크루바 님은 언제든 올 수 있도록 준비만 좀 부탁하겠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저 하나 몸 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형우는 고민하는 크루바에게 자신감있게 말했다.
그러자 크루바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지.”
“예.”
탓!
크루바의 대답을 들은 형우는 바로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요새의 앞으로 가자 마족들은 물 만난 고기 마냥 아르카의 병사들을 학살하는 중이었다.
형우는 제일 앞에 있는 마족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턱!
“억?!”
갑자기 날아온 손에 마족 하나가 대처를 못 하고 그대로 멱살을 잡혔다.
형우는 그대로 마족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쿵!
“컥!”
강한 충격에 마족은 정신을 못 차렸다.
형우는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
죽이든 살리든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잡아두기만 했다.
덕분에 그사이 정신을 차린 마족이 형우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인간에게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음?!”
그런데 벗어나기 위해 힘을 주던 마족은 이내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
그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사태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걸 느낄 때쯤 마족의 몸에서 마기가 뭉텅이로 뽑혀 나오고 있었다.
“아, 아아아악!”
마족은 몸에서 자신의 근원이자 힘의 모든 것이 뽑혀 나가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순간 전투가 멈출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족의 몸에서 나온 마기가 형우의 몸에 흡수됐다.
‘대단한데?’
크레아에게서 신성력을 얻은 형우는 그 이후로 신성력이나 마기의 운용에 대해서 여러 방법으로 연구했다.
그중 인사니오의 도움을 받아 배웠던 것 중 하나가 흡수였다.
인사니오는 형우에게 신성력과 마기를 흡수하는 법을 알려줬다.
사실 노르덴 요새에서 형우가 했던 흡수는 사실 주먹구구식이었다.
연비 좋은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일부러 급발진, 급제동에 과속까지 하면서 연료를 소비한 것과 똑같았다.
그래서 인사니오에게 도움을 받아 흡수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다.
주먹구구식이 아닌 정말 제대로 힘을 이해하고 쓸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기간은 다행스럽게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사니오의 조각이 형우를 도와줬기에 단기간 내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툭.
형우는 금세 미라처럼 변한 마족을 바닥에 던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족들은 타겟을 바꿨다.
“저놈을 죽여라!”
“감히 인간 따위가…!”
“몸을 갈가리 찢어주겠다!”
마족 하나가 처절하게 당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그들은 당장에라도 죽일 기세로 달려왔다.
뭐 때문에 마족이 죽은 건지도 제대로 모르고 말이다.
“죽어라!”
제일 먼저 달려온 마족 하나가 형우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형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쩍 뒤로 피했다.
휙. 탁.
검은 허공을 지나갔고 마족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때 형우가 마족의 몸에 손을 대고 능력을 썼다.
“통제.”
“…!”
통제에 걸린 마족은 몸이 꿈쩍을 하지 않자 당황한 눈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상황은 이제 시작이었다.
형우는 바로 마족의 마기를 빨아들였다.
기본적으로 마족의 마기조차도 세상을 창조한 신에게서 나온 기운.
마계에서 더 악하고 더럽게 변형되긴 했으나 기본 바탕은 신성력과 같았다. 그리고 그 힘의 주체는 당연히 인사니오.
마신으로 불렸으며 진짜 마신이었던 인사니오의 힘으로 만들어진 마기였다.
다만, 기본 베이스가 인사니오의 힘일 뿐 지금은 좀 달랐다.
본래 그저 빛과 어둠처럼 조화를 위해 나뉜 기운이었으나 수천, 수만 년 마계를 돌던 마기는 크게 변형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세계에 반(反)하는 힘이 됐다.
인사니오도 마신으로 불리긴 했으나 악신은 아니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빛과 어둠의 조화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구성일 뿐이었으니까.
여하튼 기본은 인사니오의 힘이었다.
변형됐더라도.
그리고 그 인사니오의 조각을 가진 형우는 마치 청소기처럼 마족의 힘을 빨아들였다.
“크아아아악! 사, 살려줘!”
“더, 덮쳐!”
“하아압!”
마족들은 당황하면서도 끈적한 살기를 뿜어대면서 형우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형우는 약화와 속박, 통제를 번갈아 사용하며 마기를 빼앗았고 마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국, 100이 넘던 마족은 순식간에 반으로 줄었다.
그것도 점점 가속도를 받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펠리아의 바소르 병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게 뭐야?”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 거지…?”
성벽 위에 있던 바소르의 병사들은 마족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마족들은 바소르 내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 중 하나였다.
견줄 수 있는 건 오직 천족뿐.
개개인의 능력이 B급 이하인 마족이 없었고 대부분 A급 이상이었다.
그것도 마기와 같이 능력을 사용하면서 같은 동급에서도 더 강한 힘을 보여줬다.
강화의 돌까지 사용하면서 더더욱 강해졌고.
그런데 그런 마족들을 형우가 가볍게 요리하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그것도 그냥 요리하는 게 아니었다.
마기를 모두 빼앗기고 말라비틀어져 죽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타천사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족들이 저리 무력하게…….”
“가우디움 님, 저희가 나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살짝 피해만 주고 돌아오는 게 목표이지 않았습니까?”
한 천사가 그들 중 가장 강한 천사에게 말했다.
그 말에 가우디움은 아름다운 얼굴의 미간을 찌푸렸다.
남성에게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가우디움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금 천사의 말처럼 저들의 목표는 살짝 피해만 주고 돌아오는 거였다.
1차전이 허무하게 끝났는데 2차전은 더 허무하게 끝날 조짐이 보이자 엘루나에게 이곳의 지휘권을 받은 가우디움은 마족들을 보내 적의 전력을 탐색하려 했다.
더불어 적의 주력이 오기 전까지 어느 정도 피해까지 입히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며 마족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이들을 보냈다.
그런데 이대로 간다면 처음 임무였던 탐색도 제대로 못 하고 겨우 한 명에게 전멸할 판이었다.
“끄응…!”
가우디움은 심각하게 갈등했다.
지금 나서야 할지, 아니면 방관해야 할지.
그러나 이미 답은 정해진 거였다.
“…우리도 나선다. 천사들 모두 내려간다. 나머지는 혹시 모를 적의 기습을 대비하고 있어라.”
못해도 최소한 저들을 구해는 와야 했다.
저렇게 무력하게 소모할 전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우디움은 점점 형우의 마기가 점점 커지는 걸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이대로 두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결국 타천사들을 전원을 이끌고 성문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건 가우디움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구출하고 우리도 빠진다! 빠르게 움직… 컥!”
팟!
“안 그래도 올라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알아서 와주니 고맙네요.”
매스 블링크로 이동해 가우디움의 멱살을 잡은 형우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