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18
동부 관문 펠리아.
펠리아는 사실 원래 없던 곳이었다.
그 이유는 펠리아는 북부와 서부에 흐르는 강, 프로그 강 중앙에 있는 수상 도시였으니까 말이다.
원래 없던 곳에 다리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면서 많은 이점이 생긴 곳이었다.
프로그 강은 배가 없으면 건너는 건 불가능했다.
강의 유속이 빠르고 수심이 깊었기에 맨몸으로 수영한다면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뗏목이나 작은 배는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옆으로 쓸려갔다.
그러니 큰 배로 이동하거나 프로그 강 중앙 다리에 있는 펠리아를 지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펠리아 안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빨리 문 열어!”
진득한 마기를 내뿜으며 말하는 그는 노르덴 요새에서 이곳까지 도망쳐온 질리언이었다.
그는 쫓기고 쫓기는 추격을 뿌리치고 동부 관문에 도달했다.
‘끈질긴 새끼들···! 무슨 원수라도 졌나. 정말 짜증 나게 쫓아왔네.’
질리언은 쫓기던 과정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정말 질리도록 쫓아왔다.
혼자만 도망쳤다면 질리언의 다른 능력 ‘동화’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딸린 식구가 있어 그러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버리고 오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었다.
안 그래도 자신의 기반인 스카치 길드의 길드원 대부분을 잃고 패주했다.
질리언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력이 없으면 아무래도 바소르 내에서 발언권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정치적으로 머리를 돌린 질리언은 억지로 억지로 나머지 죄수들을 살려왔다.
그사이 많은 설득을 했고 지금은 모두 질리언의 아래로 들어온 상태였다.
드르르륵. 쿵!
성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길이 열렸다.
이미 멀리서부터 마기를 뿌려대며 와서 그런지 아무런 확인 없이 문을 열어줬다.
아르카엔 마기를 쓰이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사실상 프리 패스인 셈이었으니까.
“오? 꽤 좋은걸?”
“이야. 여기 물 좋은데?”
동부 관문 펠리아에 들어온 감옥의 죄수들은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저 강 위에 있는 요새 정도로만 생각했던 펠리아는 생각보다 더 화려했다.
마치 수상 도시 베네치아를 보는 듯한 내부와 은은하게 도는 방어 마법은 도시를 아름답게 비췄다.
거기에 마력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에 만든 공성전을 위한 마도구들이 멋을 더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그게 아니었다.
지구의 연예인과 비교도 안 될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다크 엘프들.
그들을 보며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피부가 검은 것을 제외하곤 엘프와 다를 바 없는 게 다크 엘프였다.
오히려 검은 피부가 더 매력을 더해주는 부분도 있었다.
그 다크 엘프들을 보며 질리언이 입맛을 다셨다.
“그동안 적적했는데 꽤 재밌게 놀겠어.”
그 말을 끝으로 질리언의 패악질이 시작됐다.
다크 엘프든 인간이든 좀 괜찮다 싶으면 데려가서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온갖 분탕질을 저질렀다.
하지만 다들 제지를 하지 못했다.
질리언을 포함해서 생존한 S급의 수는 여섯.
S급의 반 이상이 죽긴 했지만 이곳 동부 관문에 있는 S급의 수와 같았다.
그러다 보니 바소르의 간부들도 함부로 대하질 못했다.
아예 제지조차 없자 그들은 더 과감해졌고 날이 갈수록 바소르 내의 평판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러던 사이 검게 물든 날개를 단 여성이 천족, 마족이 포함된 대군을 이끌고 펠리아에 입성했다.
“오셨습니까, 엘루나 님.”
동부 관문의 관문장 렉스는 여성을 하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엘루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어수선한 분위기에 인상만 쓰며 기분 나쁜 심기만 드러냈다.
“분위기가 왜 이따윈가요, 렉스?”
“그, 그게······.”
렉스는 더듬으며 말을 쉽사리 못 꺼냈다.
엘루나가 지적하는 바는 당연히 바로 알았다.
그러나 바로 대답할 수 없는 게 지금의 문제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도 있었다.
감옥의 죄수들을 완벽히 컨트롤은 못해도 이곳의 책임자로서 최소한 부대의 분위기를 흐리지 않을 정도로 제지해야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것도 본인보다 강한 이들을 막기란 힘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입 밖으로 꺼내봤자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이며 말을 못 꺼냈다.
“됐어요.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대충은 짐작이 가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그들이 저희보다 강해서 통제할 수가 없······.”
“말하지도 않아도 된다고 했죠, 렉스?”
말을 끊은 엘루나는 렉스를 노려봤다.
그 순간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히익! 예, 예!”
살기에 깜짝 놀란 렉스는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하곤 입을 막았다.
혹시라도 엘루나가 맘에 안 든다며 렉스를 당장 죽일 수도 있었다.
렉스가 S급이라는 소중한 자원이라도.
그녀는 그 정도로 강했고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안내해주세요.”
“예!”
군기가 바싹 든 렉스는 바로 질리언이 있는 곳으로 엘루나는 데려갔다. 그리고 곧 질리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에 있습니다.”
끼익.
“이, 이제 그만해주세요. 제발······.”
“그만? 네가 한 10번 정신을 잃는다면 생각해볼게.”
“아아악! 제, 제발······.”
차악! 차아악!
렉스가 안내한 곳에선 온갖 변태스러운 행위가 이뤄지고 있었다.
질리언은 벽에 묶인 다크 엘프를 향해 채찍을 내치고 있었고 부하로 보이는 이들은 수십의 여성들을 데리고 난교 파티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엘루나의 표정이 더 차가워졌다.
“감히 엘루나 님이 오셨는데···!”
“됐어요.”
엘루나는 나서려는 렉스를 제지했다.
그러곤 질리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예?”
렉스는 반문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엘루나는 렉스를 무시하곤 계속 질리언을 봤다. 그리고 잠시 후 엘루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더니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잘 숙성되고 있네요,”
“예? 어떤 게 말입니까?”
“당신은 몰라도 돼요. 이제 날 다른 곳으로 좀 안내해주겠어요?”
“예, 예! 물론입니다. 어디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렉스는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저자세로 엘루나를 안내했다.
그들이 떠나면서 쾌락으로 가득한 그 방의 문은 닫혔다. 그리고 닫히기 전 작은 틈 사이로 검게 물든 질리언의 눈이 보였다.
척! 척! 척!
프로그 강 근처 듀란 평야에 수만의 군대가 말을 맞추며 걸어왔다.
사실 중간중간 안 맞는 걸음 소리도 많았지만 맞는 걸음이 더 많다 보니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무려 10만 대군.
노르덴 요새에서 7만, 그것도 피해로 줄었던 수가 어느새 10만으로 늘어났다.
그것도 각 주둔지에 병력을 넉넉히 두고 와놓고도 10만이었다.
게다가 이 10만이라는 숫자는 오직 전투할 수 있는 병사의 수만 집계한 거였다.
보급이나 다른 행정의 일을 하는 병사까지 포함한다면 10만의 2, 3배는 넘는 인원이 이 전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아르카는 그렇게 대군을 이끌고 동부 관문 펠리아에 도착했다.
거기엔 지휘관들과 같이 이동한 형우 일행도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제일 앞에서 대군을 이끌던 크루바는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수상 요새를 보며 잔뜩 얼굴을 구겼다.
“동부 관문 펠리아······. 저 귀찮은 곳에서 싸워야 한다니.”
동부 관문은 정말 공격하기 험난한 곳이었다.
긴 다리를 건너 도달하기까지 무슨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고 한 번 물에 빠지면 높은 등급이고 낮은 등급이고 거센 물살에 그대로 쓸려나갈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곳에 긴 다리를 만들고 중간에 요새까지 지어놨는지 감탄만 나왔다.
그렇다고 여기서 강의 빠른 유속을 견딜 수 있는 범선을 만들기엔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다른 곳으로 돌아갈 길도 없었다.
동부 절반과 남부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넓은 프로그 강에 의해 분리됐다.
개중엔 좀 강폭이 좁은 곳도 있었지만 그래도 넓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그냥 따로 섬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다들 이 생각을 하며 불평했다.
바소르의 본부가 있는 곳도 그렇고 펠리아도 그렇고.
“크루바. 아무래도 적들이 단단히 준비한 듯하다.”
크루바의 옆에 있던 드워프 칼리만은 망원경으로 펠리아를 보며 말했다.
칼리만은 크루바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망원경을 받아든 크루바는 바로 요새를 봤다. 그리고 안색을 굳혔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려나 보군. 타천사와 마족이라…….”
크루바의 눈에 흰 날개와 검은 뿔을 단 이들이 보였다.
그들은 바로 천사와 마족들이었다.
천사와 마족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이 오만한 표정으로 아르카들을 내려다봤다,
물론 그들은 일반적인 천사들이 아니었다.
신을 배신하고 마족과 엑시디움의 편에 선 타천사였다.
힘에 굴복한 이들도 스스로 신을 배반한 자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저 엑시디움의 충실한 종이었다.
더불어 아르카의 강력한 적이었고.
어찌 보면 1인자인 데브릭을 제외하곤 마족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이들이 타천사들이었다.
마족이라면 신성력이 약점이고 천사에겐 마기가 약점이다.
그런데 아르카엔 마족이 없으니 그 약점을 활용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신을 배신하고 신의 힘을 빼앗아 나눠 가지면서 더 강해졌다.
그 때문에 그동안 아르카들에게 있어 천사들은 마왕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젠 대안이 생겼다.
신성력과 마기를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형우가 있었으니까.
“그대에게 맡길 짐이 많군.”
크루바는 뒤돌아 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우가 두 기운 다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몰랐다.
다만, 저번 전투에서 마기를 사용하는 걸 봤기에 크루바는 걱정하면서도 형우가 타천사를 효과적으로 상대해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형우는 근심 가득한 크루바를 향해 씨익 웃었다.
타천사와 마족들이란 말을 듣는 순간 형우는 오히려 기대감이 생겼다.
진다는 걱정은 하나도 없었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저런 곳을 게임에선 이벤트 사냥터라고 하지, 아마?'
형우에게 펠리아는 전혀 두려운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힘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기회의 장소였다.
‘마기고 신성력이고 다 먹어치워야겠다.’
더불어 형우는 이참에 능력 100개의 의뢰도 클리어할 생각을 했다.
요새가 워낙 커서 그런지 주둔하고 있는 병사의 수도 엄청났다.
그걸 떠나서 이미 노르덴 요새에서 상당한 양을 얻었다.
이제 저곳에서 어느 정도 숫자만 채운다면 이제 능력을 채우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이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지만.
‘인사니오의 조각보다 재능을 먼저 채우게 되는 아이러니긴 한데… 뭐 어차피 이제 상관없으니까.’
지구 귀환이 아닌 엑시디움의 지구 말살 계획을 막는 것으로 방향이 선회한 지 오래였다.
능력 100개는 이제 그것에 밑거름일 뿐이었다.
“부대 정지!”
그때 크루바가 손을 들며 병력을 모두 멈추게 했다.
척!
10만이 넘는 대군은 군령에 바로 걸음을 멈췄다.
병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크루바는 홀로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뭔가 하려는 듯 자세를 잡았다.
“일단 간을 좀 보도록 하지.”
크루바는 그 말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스으으읍! 크아아아!”
파아아앗!
크루바는 기선 제압을 위해 신물의 힘을 빌려 강력한 브레스를 쏘았다.
브레스는 모든 걸 집어삼킬 기세로 펠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요새에 브레스가 닿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로 일어난 연기에 순간 펠리아 전체가 가려졌다.
그 정도로 브레스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브스스.
“뭐, 뭐야?”
“멀쩡하잖아?”
그런데 연기가 걷히고 멀쩡한 요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사이로 태양의 빛을 받아 번쩍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방어막…!”
“브레스를 막을 정도의 방어막이라니!”
다들 낭패한 기색으로 요새를 바라봤다. 그리고 역할을 다한 방어막은 스르륵 사라졌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이제 겨우 경고의 화살 하나 쏘아 보낸 것일 뿐.
이거 하나 안 통했다고 해서 벌써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본격적인 전쟁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