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92화 (93/151)

▣ Chapter 4-17

[반갑구나, 인사니오의 종이여.]

처음 들어본 목소리.

그러나 형우는 듣는 순간 상대가 누구인지 바로 상대를 알 수 있었다.

“크레아?”

[나의 이름은 크레아. 대륙을 만들었으며 이 차원의 첫 신이란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대에겐 제대로 날 소개하고 싶구나.]

“반갑습니다, 크레아 님.”

형우는 보이지 않는 크레아를 향해 인사했다.

그러자 뭔가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그런데… 죄송한 말이지만 소멸하신 게 아닙니까?”

분명 크레아가 소멸하며 그 힘 대부분을 인사니오가 흡수한 거로 알았다.

그래서 지금 인사니오의 신관들이 크레아와 같은 신성력을 쓰고 있었고.

그 때문에 어떻게 크레아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뭔가 마법 같은 거로 남겨둔 게 있는 건가?’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오직 구슬에서만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의심해 보려면 구슬밖에 없었지만… 그 구슬도 방금 금이 가며 깨졌다.

쩌저적. 째애앵!

구슬이 깨지면서 신성력이 흩어졌다.

마치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듯이 사라진 신성력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여전히 크레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단다. 방금 인사니오의 힘을 불어 넣어준 그것이 나의 조각이었으니 말이다.]

“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인사니오처럼 크레아도 자신의 조각을 남겨 소멸을 면한 듯했다.

그러나 인사니오와 다르게 크레아는 온전한 자신의 힘을 남기지 못한 듯싶었다.

[본래대로라면 최소 5개 이상의 조각을 남겼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단다. 엑시디움을 상대로 온 힘을 다 쏟던 중이었기에 그나마 작은 힘을 남기는 것밖엔…….]

최초의 엑시디움의 힘을 봉인하는 동시에 본인을 조각으로 나눠 소멸을 면했던 인사니오와 다르게 크레아는 작은 조각 하나밖에 남기지 못했다.

가장 최전선에서 싸웠던 신이었고 결정적으로 인사니오의 봉인에 힘을 보태줘야 했기에 온전한 힘을 남길 수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몰래 남기려다가 마족들에게 걸릴 뻔했다.

사실 펠 일행의 목적지는 레시스토 내에 있는 크레아 교단 본부가 아니었다.

형우가 안톤으로 빙의해 들어온 이곳.

이곳이 바로 목적지였다.

최소한 크레아 본인이 소멸하지 않도록 만든 조각을 이곳에 숨기려 했다.

결론은 그게 성공을 했고 형우가 나타나면서 크레아는 부활할 수 있었다.

물론 창조의 신이라는 이름에서 다른 신의 이름으로 격하된 상태로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제 창조란 이름은 인사니오에게 넘겨줘야 할 듯싶구나. 지금 내가 가진 힘은 기껏해야 하급 신의 수준. 나중에 힘을 최대한 회복하더라도 상급 신이 한계일 것 같으니…….]

“으흠…….”

하급 신과 상급 신의 수준이 전혀 가늠이 안 됐기에 형우는 일단 잠자코 들었다.

[그래도 그대에게 선물 하나 못 줄 정도는 아니니 내 선물을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구나.]

“선물이요?”

형우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나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답변 대신 방안에 신성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스으으.

한데 모인 신성력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빙빙 돌며 몸집을 불리더니 형우에게 들어왔다.

“…!”

스르륵.

안으로 들어온 신성력은 그대로 형우에게 흡수됐다. 그리고 형우의 왼손등에 문신이 새겨졌다.

‘특이하네?’

손등에 새겨진 문신은 마치 옛 고대어 같았다.

마치 뭔가를 본떠 그린 듯한 상형문자의 느낌.

크레아는 바로 그것에 관해 설명해줬다.

[빛. 그 문양이 뜻하는 바이자 나의 새로운 이명(異名)이니라.]

그 말을 하며 크레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이게 한계구나. 아이야, 나머진 인사니오가 설명해줄 것…….]

“크레아 님?”

결국, 크레아는 본인의 말을 전부 다 하지 못했다.

그때 인사니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작은 조각으로 부활한 크레아다. 그대에게 힘까지 주었으니 금세 지칠 수밖에 없지.]

“힘이요?”

[그대에게 크레아가 준 건 교황에게만 내리는 신성의 증거다. 그러나 원래는 자연스럽게 계승되어 따로 크레아가 힘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직접 내려주어 꽤 부담됐을 거다. 여하튼 그대는 이제 신성력도 쓸 수 있다.]

“오호…….”

그 말에 형우는 바로 소켓을 확인했다.

어느새 마기처럼 소켓 하나를 새로 만들고 들어온 ‘신성력’이 느껴졌다.

다만, 밑바닥부터 올라온 마기와 다르게 신성력은 S급이었다.

문제는 S급은 S급인데 뭔가 많이 부실했다.

“이거 S급이 너무 부실한데요?”

프스스.

그냥 보기에도 부실한 신성력이 형우의 손에서 펼쳐졌다.

S급은커녕 잘 봐줘야 C급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았다.

[크레아의 신도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강해질 것이다. 다만… 그대는 크레아보다 내가 우선순위임을 잊지 말아라.]

“하하…….

인사니오의 말에 형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만, 인사니오의 말엔 동의했다.

어차피 이제 마지막 인사니오의 조각을 얻은 뒤 6개의 조각을 건네면 신성력을 쓸 수 있게 될 터.

본인 입으로 하급 신 수준이라 했던 크레아보다 인사니오의 힘이 훨씬 나을 게 뻔했다.

그럼 당연히 더 강한 인사니오의 힘을 키워주는 게 나았다.

[물론 그것 말고도 방법이 있긴 하다.]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오티움을 배반한 건 마족만이 아니다, 타(墮)천사.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힘을 빼앗아라.]

첫 배반은 마족이 먼저였다.

그러나 이후 인간, 다크 엘프, 드워프 등 오티움의 배신자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거기엔 천사마저 있었다.

자신이 모시던 신을 죽이고 그 힘을 빼앗은 뒤 엑시디움의 개가 된 타천사들.

물론 말이 좋아서 타천사지, 실제론 새로운 신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원래 신들이 모두 부재했고 그들의 힘을 천사들이 가졌으니.

여하튼 그런 만큼 그들을 죽이면 분명 큰 신성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길 원래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다. 흠… 것보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거다.]

“예?”

[곧 무너질 거니까.]

쿠르르릉! 쿠웅!

“이, 이런 건 좀 빨리 말해주면 안 됩니까?!”

탓! 형우는 투덜거리며 바로 문 앞으로 달려갔다.

마족들도 뚫을 수 없는 문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상관없었다.

뒤에 뭐가 있는지 이미 과거에서 봤기에 바로 블링크로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매스 블링크!”

팟!

매스 블링크를 쓰자 문 너머로 넘어왔다.

그런데 문 너머로 나오자 땅에 검을 박고 죽어있는 해골이 보였다.

‘펠…….’

마지막까지도 모든 생명을 불태워 자신을 희생한 성기사 펠은 해골이 되고도 수십 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형우는 펠에게 경의의 표시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블링크를 연달아 사용해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형우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곳은 완전히 무너졌다.

쿠우우웅! 콰아앙!

형우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일직선으로 땅에 무너졌고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후아…….”

형우는 뒤돌아 자신이 나온 곳을 바라봤다.

형우가 나온 곳은 펠 일행이 들어갔던 입구가 아니라 크레아 신전 바로 근처의 통로였다.

그때 성민과 도영이 달려왔다.

“헉?!”

“길드장님!”

뭔가 무너지는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온 성민과 도영은 땅이 아래로 무너지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그 무너진 곳에서 형우가 밖으로 튀어나오자 둘은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2시간 동안 뭘 했고?”

“2시간밖에 안 지났어?”

“안에서 뭐 살벌한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2시간이라는 말에 형우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안에서 거의 하룻밤마저 보내고 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겨우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크레아와 인사니오와 대화한 시간을 제하면 정말 적은 시간 동안 안톤에게 빙의됐었다.

‘…모르겠다.’

“아냐. 쩝, 가면서 말하자. 좀 길어.”

형우는 그 말을 하며 무너진 신전의 터를 힐끗 바라보곤 발걸음을 돌렸다.

“으아아악! 아아악!”

음침한 지하 감옥.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펴졌다.

그 비명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고 한참이 지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쇠붙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컹.

고문실에서 누군가를 고문하고 있던 드워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질긴 놈. 그냥 빨리 불지 더럽게 오래 끌었네.”

드워프는 그 말을 하며 온몸을 피칠갑을 한 누군가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정신을 잃은 듯 간헐적인 발작만 보였다.

“이보게, 테인.”

드워프는 고문실 문밖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테인이라 불린 인간 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끝났습니까, 카론 님? 아니면 물통을 한 번 더 리필 해드려야 합니까?”

“물통은 됐어. 물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물을 그렇게 많이 쓴 건지… 쯧. 대리자께 이제 끝났다고 말을 전해줘.”

“오! 드디어 끝났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개뿔. 어서 다녀오기나 해.”

“예, 바로 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테인은 바로 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형우가 고문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카론 님. 역시 아르카에서 제일 뛰어난 고문 기술자답습니다.”

“커험…! 뭐 별거 아니었네.”

형우의 칭찬에 카론은 헛기침했다.

아르카 내에서 제일 고문을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 카론이었다.

카론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본론을 말했다.

“들을 걸 이야기해주겠네. 이 자의 이름은 에두아 지부라고 하더군. 그리고…….”

카론은 고문하며 알아낼 것들을 알려줬다.

에두아 지부는 본인의 이름, 나이, 고향 등 모든 것을 낱낱이 고했다. 그리고 왜 관리자들과 계약을 했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모두 내뱉었다.

덕분에 모든 설명을 들은 형우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럼 더 나올 수도 있다는 거잖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감옥이 형우가 나온 곳으로 포함해서 겨우 6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유럽의 감옥 몇 개와 중동, 인도, 남아메리카, 호주 등 아직 오티움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감옥의 수가 꽤 존재했다.

형우가 있던 감옥처럼 실패한 곳도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반만 성공해도 지금까지 나온 죄수의 두 배를 더 상대할지도 몰랐다.

물론 형우가 그들을 못 이기는 건 아니었다.

크루바도 있었고 이제 새로 얻은 마기와 신성력 덕분에 더 강해진 상황.

문제는 각자 병력을 나눠서 별동대를 운영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는 거였다.

형우와 크루바의 몸은 하나지만 적들은 많았다.

안 그래도 바소르보다 수가 적은 아르카였다.

뒤에서 인원을 채워줄 병력의 수도 부족했기에 몇 개의 별동대만 활동해도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컸다.

‘베트남전의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려나…….’

형우는 인상을 쓰며 에두아 지부를 바라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에두아 지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피해줄 생각도 없었고 그저 자신의 부족과 평화롭게 살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다른 부족들이 가만두지 않아 이런 상황까지 와버렸다.

형우는 에두아 지부를 측은한 눈으로 봤다.

‘그러고 보니 차민도 사연이 있는 건가.’

블랙 머천트가 있던 에피리아에서 차민은 형우와 엘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걸로 봐선 에두아 지부처럼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사연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지금은 아예 모습조차 안 보였다.

‘쩝… 만나야 뭔가 알 텐데……. 우리 감옥은 무슨 블랙홀인가. 한 번 사라지면 보이질 않네.’

형우는 인상을 쓰며 속으로 계속 수색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많아 기분이 안 좋은데 뒤마저 구린 상태니 기분이 더 별로였다.

그때 고문실 안으로 성민이 들어왔다.

“길드장, 워프 게이트 설치 끝나서 물자 넘어오는 중이래. 이제 3일 뒤 출발할 거 같아.”

“그래?”

성민의 말에 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최대 접전지가 될 동부 관문으로 이동할 시간이 됐다.

형우는 바로 고문실을 나왔다. 그리고 3일 뒤, 어느새 대군이 된 아르카의 진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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