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15
“…톤…….”
“안…….”
“으흠…….”
“안톤!”
“헉!”
“히이잉!”
갑자기 잠에서 깬 안톤이란 남자는 놀랐는지 타고 있던 말의 고삐를 세게 쥐었다.
덕분에 말이 놀라며 앞발을 들었고 사고로 이어질지도 모를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숙련된 솜씨로 말을 안정시킨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을 부른 이를 쳐다봤다.
“안톤, 또 말에서 졸다가 바닥을 구르려고 조느냐?”
안톤에게 다가온 중후한 인상의 중년 기사는 책망하는 눈빛으로 안톤을 바라봤다.
그 표정에 기가 죽은 안톤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조심하거라.”
“예, 펠 님.”
펠은 바로 말을 돌려 가던 길을 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하여간 안톤은 여전하다니까.”
“이보게, 안톤. 또 말에서 떨어져 다치면 이번엔 반만 치료해주겠네.”
“하하하!”
안톤은 웃으며 놀리는 그들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그러던 안톤의 표정이 급변했다.
‘잠깐! 내가 왜 안톤이야?’
안톤… 아니, 형우는 벙찐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분명 난 그냥 막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건 대체…?’
처음 겪는 현상에 형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 형우를 혼란스럽게 만든 건 알지도 못하는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는 거였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상황.
다만, 그것도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정말 이름밖에 모르는 이도 있었고 상황도 무언가를 운송 중이라는 것 외에 전혀 알지 못했다.
‘도대체 이 어떻게 된 상황이야?’
전혀 이해 못 할 상황에 형우는 갈피를 못 잡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대략 100명? 도대체 뭘 옮기는 거지?’
대충 행렬을 둘러보니 약 100여 명쯤 되는 인원이 마차 5대를 호위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마차는 모두 짐마차였다.
안에 뭔가 가득 들어있었는데 내용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지금 형우가 빙의된 안톤이라는 남자는 이곳에서 거의 겉절이 같은 역할이었다.
비유하자면 수습 기사?
그 정도의 위치였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는 정보가 더욱더 적었다.
문제는…….
‘여기서 뭘 하라는 거야? 그냥 따라가면 되나?’
이쯤 되면 누가 되었던 뭘 해라, 뭘 얻어라 등 말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아무 말이 없었다.
방치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형우를 내버려 뒀다.
잠깐 주변 상태를 파악하는 사이 10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덕분에 가이드라인 없는 퀘스트를 깨는 느낌으로 형우는 멀뚱멀뚱 이동했다.
그나마 다행은 말을 타고 가고 있다는 거고 이 몸의 원주인인 안톤이 승마에 익숙해 불편함이 없다는 거였다.
다만, 어색함과 지루함을 참을 순 없었다.
어디로 이동하는지 목표 의식도 없는데 그냥 따라가고 있으니 정말 심심했다.
그러던 중 일행들의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 이러다가 어떻게 될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카나리온은 벌써 망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국도 수도까지 버려가면서 계속 방어를 하고 있다고는 하던데…….”
“후우… 이러다 제국이 밀리고 엘핀 왕국마저 밀리면……”
젊은 3명의 기사는 서로 속닥거리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뭔가 상황이 잘 안 풀리고 있는 건지 얼굴색도 별로 좋지 못했다.
다만, 잠깐 들은 대화 속에서 형우가 아는 단어가 나왔다.
‘카나리온? 제국?’
카나리온은 현재 아르카가 본부로 삼고 있는 도시 리튼의 옛 왕국이었다.
오티움에 제국이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 제국은 당연히 포스튠이었고.
게다가 마지막에 나온 엘핀 왕국은 현재 바소르가 본부로 자리 잡은 곳의 옛 왕국 이름이었다.
형우는 머리를 최대한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때 나이 든 신관 하나가 다가와 그들을 작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어허, 입조심들 하게. 괜한 소리로 분위기를 흐리지 말게들. 안 그래도 제피루스 교단의 일 때문에 심란한 이들도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세르모 님.”
“제피루스 교단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기사들은 죄송하다는 말을 해놓고 바로 제피루스 교단에 관해 물어봤다.
“커흠…….”
노신관 세르모는 헛기침을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는 길에 제국군 병사 하나가 말해준 건데… 아무래도 제피루스께서 소멸당하신 것 같네.”
“헉! 제… 흠흠. 제피루스 신이 말입니까?”
놀라서 큰 목소리를 냈던 한 기사가 재빨리 입을 닫곤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다네. 그래서 얼마 전 제피루스의 종 전원이 신성력을 잃었다는군.”
“하… 제피루스 신마저…….”
“그럼 벌써 열두 신 중 일곱의 신이 소멸한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연전연패 중인데 정말 큰 일입니다.”
“요즘 크레아 님의 힘도 약해지고 있는데…….”
“어허…! 입조심 하라니까. 여하튼 괜히 부스럼을 안 만들 거라 믿고 가네.”
세르모는 다시 한 번 기사들에게 주의시키고 자리로 돌아갔다.
젊은 기사들도 주변 눈치가 보였는지 입을 다물었다.
‘신이 소멸해? 이거 설마…?!’
그제야 상황이 맞춰졌다.
대충 상황을 보니 형우는 오티움의 과거에 와 있었다.
신이 소멸했다는 건 2차 침공 때라는 거였고.
1차 침공 땐 신들이 참여를 안 했다.
‘그럼 지금이 2차 침공 때라는 건데. 내가 여기서 뭘 해야 나갈 수 있는 걸까?’
여전히 그게 문제이긴 했다.
상황을 파악했어도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대충 시기와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됐다.
가이드라인이 없긴 해도 계속 이렇게 상황을 알아가다 보면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수도 있었다.
형우는 계속 다른 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그런데 그때 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이 보인다! 오늘은 저 마을에서 머물 것이다!”
멀리서 작게 점으로 마을 하나가 보였다.
펠은 마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랜만에 노숙을 면하겠군.”
“좀 씻고 싶은데 씻을 수 있으려나…….”
다들 마을이 보이자 반기는 기색이었다.
안 그래도 일행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꽤 오래 야외에서 생활했는지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얼굴이나 머리카락도 오래 못 씻은 티가 났고.
그런 와중에 마을을 발견했으니 다들 기쁠 수밖에 없었다.
다들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마을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마을로 가면 갈수록 일행의 표정은 굳어졌다.
이게 마을인지 피난촌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
겨우 나무 목책으로 마을의 경계를 만들고 대충 덧붙인 판자로 만든 집들은 언제 허물어져도 모를 정도로 허름했다.
그나마 다행은 자경단이라도 유지되고 있다는 거였다.
그들 일행이 마을로 다가오자 자경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이 마을에 무슨 볼일이요?”
자경단 단장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흠…….”
그 모습에 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엘핀 왕국에서 온 지원군이요. 그리고 나는 크레아 신전의 성기사 펠이라 하오. 잠시 이곳에 머물다 갈 수 있겠소?”
“지원? 으흠…….”
자경단 단장은 의심의 눈초리로 일행을 훑어봤다.
그러다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길을 비켜줬다.
“내일 떠나시오.”
“고맙소.”
어차피 내일 아침 다시 떠날 예정이었기에 펠을 감사의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콘! 안내해줘라.”
“예!”
단장의 말에 콘이라 불린 단원 하나가 달려왔다.
콘은 그들을 마을 중앙으로 안내했다.
마을 중앙에 가니 빈 판잣집 몇 개와 공터가 있었다.
“이러면 노숙이랑 다를 바가 없겠구만.”
“쩝…….”
그 광경을 보곤 다들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나마 이거라도 감사해야 했다.
아직 전화(戰火)가 미치지 못한 엘핀의 경우도 척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하물며 전선에 속한 곳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몇몇 체력 안 좋을 이들에게 바람을 피할 곳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터였다.
“기사들은 야영 준비를 해라! 나머지는 저녁 준비를 하고!”
“예.”
“예.”
펠의 말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을 안에서 야영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으나 다들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준비할 뿐이었다.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형우도 그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곧 모든 준비가 끝났고 다들 빠르게 저녁 식사를 끝냈다.
사실 식사라고 해봐야 멀건 죽에 딱딱한 빵이 다였기에 오래 먹고 싶어도 오래 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 일행은 빠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또 움직이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대충 들어보니 내일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거 같은데… 끄응, 내일이면 밝혀지겠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네. 막 여정을 떠날 시점에서 시작했으면 이 지루한 걸 몇 달이나 겪었을 테니…….’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나 곧 다시 깨어나야 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얼른 다 죽여!”
“마차에 있는 걸 모두 꺼내라!”
“헉?! 이게 무슨 일이야?”
아직 해가 뜨기 전,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형우는 소란스러운 주변을 보며 당황했다.
눈을 뜨고 본 건 놀랍게도… 마을 자경단과 일행들이 싸우는 장면이었다.
마족이나 엑시디움도 아니고 왜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정신 차려라, 안톤! 마을을 벗어나야 한다!”
그때 펠이 다가왔다.
펠은 큰 상자 하나를 형우에게 건넸다.
“네, 네?”
“얼른!”
“네!”
다그치는 목소리에 형우는 허겁지겁 펠을 따라 마을을 벗어났다.
‘힘이 하나도 안 써지니까 답답해 죽겠네.’
안톤이 원래 가지고 있는 힘만 쓸 수 있는지 형우가 가지고 있던 능력들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덕분에 어른에서 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후욱! 후욱!”
‘이건 뭔데 이렇게 무거워?’
형우는 상자를 들고 도망치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상자에 뭐가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무거웠다.
덕분에 금세 지쳤다.
그나마 다행은 마을을 벗어난 뒤 다른 일행들이 합류하고 상자가 형우의 손을 떠났다.
다만, 아직 추격이 끝난 게 아니었다.
“저깄다! 잡아라!”
“죽이고 뭐든 값나가는 걸 빼앗아!”
자경단원들은 끈질기게 쫓아왔다.
펠은 그들을 피해 계속 달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의아한 게 있었다.
‘왜 제대로 상대를 안 하는 거지?’
이제 보니 다들 자경단을 제대로 상대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에만 급급했다.
이건 일행의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니었다.
싸움을 피하려는 듯 최소한의 행동만 했다.
펠은 어리둥절해 하는 형우를 보곤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저들은 그저 살기 위해 저러는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소용없을 게 뻔했으니까.
‘쩝… 살았으면 됐지.’
형우는 말하길 포기하고 펠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던 중 헤어졌던 다른 일행도 합류했다.
전원이 모두 모인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대부분이 무사한 모습이었다.
사실 겨우 마을 자경단 정도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긴 힘들었다.
펠의 관용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죽는 건 그들일 게 뻔했다.
각설하고 다시 일행이 모이자 목적지를 향해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이동하던 그들은 점심을 넘긴 후 드디어 목표했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후우… 드디어 왔구나.”
펠은 길게 숨을 내쉬며 작은 신전을 바라봤다.
사실 이곳은 포스튠의 수도 안에 있는 크레아 교단까지 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는 곳이었다.
현재 크레아 교단은 고립된 상태였다.
수도에 제국군은 철수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남아 수도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종의 임무와 지원을 위해 이곳까지 왔다.
그들이 적은 숫자긴 했으나 실력은 상당했다.
펠만 해도 대륙 10위 안에 드는 강자에 속했으니까.
여하튼 사건이 있었지만 무사하게 도착했다.
“들어가자.”
펠은 짧게 말하곤 먼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음?!”
스릉!
펠은 무언가를 느끼곤 급히 몸을 피했다.
휘이익! 콰아앙!
무언가 날아와 땅에 박혔다.
그곳은 방금까지만 해도 펠이 있던 자리였다.
펠은 식겁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탓! 타앗!
그때 신전 지붕 위에 검은 로브를 쓴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머리에 쓴 두건을 벗으며 씨익 웃었다.
“무덤에 온 걸 환영한다, 신의 버러지들. 킥킥!”
“…!”
그들은 검은 피부에 붉은 뿔을 달고 있는 마족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