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14
“계속 쫓아라! 모두 사로잡아라!”
“항복하는 자는 살려주겠다! 검을 놓고 항복해라!”
“하, 항복!”
“끄아악!”
노르덴 요새에서 대승 이후 추격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오만했던 질리언이 북부 전체와 동부의 병력을 끌어와 전투를 벌인 덕에 각 거점에 주둔하는 병사의 수는 A급 몇 명만 와도 쓸릴 정도로 소수였다.
덕분에 추격전을 하는 와중에 엄청난 영토와 노예들을 얻었다.
얻었다가 잃었던 지역을 수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부 관문에 다다를 정도로 점령했다.
그렇게 아르카는 순식간에 대륙의 반 이상을 점령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서부와 북부, 동부 일부는 적의 진짜 세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서부지부처럼 사냥 부대를 운용해 ‘전송’을 위한 제물을 모으는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배기는 전송 장치를 지키고 있는 남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승리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니었다.
탄압받았던 그들이 이젠 대륙의 반 이상을 얻고 과거 하나뿐인 제국 포스튠 제국보다 더 큰 영토를 가지게 됐으니까.
그리고 오늘 형우 일행은 멸망한 포스튠 제국의 수도로 입성했다.
늦은 오후, 해가 저물어가는 평야의 대도시.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저 대도시지만 이곳 ‘레시스토’에 처음 오는 외부인에겐 이곳은 그저 큰 도시가 아니었다.
마법이 발달했던 포스튠은 수도 전체를 마법으로만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가로등부터 수도꼭지, 배수시설, 마법으로 움직이는 마차 등.
현대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오티움에선 전혀 흔한 게 아니었다.
나름 오티움에서 2번째로 잘 나갔다던 카나리온 왕국의 수도도 이렇진 않았다.
카나리온의 수도이자 지금은 아르카의 본부가 된 리튼은 형우가 알던 전형적인 중세 도시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형우는 처음 레시스토에 온 순간 근대의 도시를 떠올렸다.
“산업시대의 영국을 보는 느낌인데?”
형우는 레시스토를 그렇게 평했다.
마치 19세기에 영국에서 활약했다던 잭 더 리퍼가 있던 시기의 영국 런던 같았다.
돌로 정갈하게 만들어진 건물과 도로, 중간중간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가로등.
정말 딱 그 말이 어울릴 정도로 레시스토는 근대화된 도시였다.
이게 현대 과학도 아니고 마법으로 이뤄졌다는 것에 더 감탄했다.
“이거 모두 영구 지속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요!”
민희는 감탄을 하며 마법 가로등을 살폈다.
해가 저물어가자 가로등은 자동으로 점화됐다.
덕분에 저녁에 왔음에도 도시를 환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도시를 비추는 그 빛들이 모두 영구적인 거였다.
“대단한 거야?”
“당연하죠! 스마트폰을 계속 쓰는데 배터리가 계속 100%인 거라고요. 이건 정말 수준 높은 마법이에요. 그런데 그 수준 높은 마법이 겨우 가로등에…….”
“오호.”
그제야 마법 가로등에 대해 이해한 형우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마법에 문외한인 형우에겐 그 정도 반응이 다였다.
만약 피델이나 마법을 조금 배운 이들이 봤다면 정말 놀라 기절할 수준의 마법인데도 말이다.
“이거 어떻게 베낄 수 없을까? 어떤 방식으로 구동되는 걸까?”
어느새 마법사가 다 된 민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로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형우가 억지로 끌고 가기 전까지 말이다.
“아! 잠깐만요, 오빠!”
“이제 좀 저녁 먹으러 가자. 그리고 내일부터 워프 게이트 복구하려면 오늘 푹 쉬어야지.”
“으으…….”
민희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형우 손에 이끌려 도시 중앙으로 갔다.
이곳 레시스토엔 워프 게이트가 있었다.
처음 워프 게이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형우는 지호의 능력인 A급 워프 게이트를 떠올렸다.
다만, 둘은 같으면서 좀 달랐다.
지호의 경우, 워프 게이트를 작동할 때마다 지호가 있어야 했고 미리 설치해놓아야지만 1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갔다가 다시 A지점으로 돌아오려면 A지점에 워프 게이트를 2개 설치해야 했다.
그러나 레시스토에 있는 워프 게이트는 마력만 주입해주면 지호가 아니라도 다른 이가 사용할 수 있었다.
‘마나석만 있다면 말이지…….’
마나를 담은 결정 마나석이 있어야 하지만 여하튼 영구적이기까지 했다.
한 번 소모하면 사라지는 지호의 워프 게이트와 달랐다.
그래서 이곳의 워프 게이트가 필요했다.
본부에도 워프 게이트가 있으니 서로 인원과 물자를 교류하려면 말이다.
그런데 하필 이곳의 워프 게이트는 훼손된 상태였다.
다른 건 하나도 훼손 안 해놓고 워프 게이트만 망가트려 놔서 지호와 민희가 복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복구가 끝나는 순간 워프 게이트로 증원이 끝나면 바로 동부 관문으로 진격할 예정이었다.
한창 기세를 얻는 중이었으니 이 기세를 얻어서 공격하려면 워프 게이트의 복구가 시급했다.
그나마 다행은 리튼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익혀놓은 상황이었기에 복구가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란 거였다.
‘이곳도 새로 본부로 쓰이려나?’
사실 초반에 리튼도 본부로 쓰기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한계는 확실했다.
방어에는 효율적이지만 중심을 잡아주기엔 부족했으니까.
게다가 본부와 이곳의 거리 차이가 너무 컸다.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더라도 문제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동부 관문마저 뚫어낸다면 거의 100% 이곳이 본부로 쓰일 것 같았다.
“으으, 궁금해. 궁금해.”
형우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민희는 마법 가로등의 마법진이 궁금한지 계속 뭐라 중얼거렸다.
‘애가 마법을 배우더니 이상해졌네.’
형우는 여전히 마법 가로등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민희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마법사들이 호기심에 미친 이들이긴 했다.
진리는 탐구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본인 호기심 채우는 족속들이었다.
그렇기에 금단의 길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배운 민희가 저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나중에 하나 뽀려… 가져와 줄 테니까 진정 좀 해.”
“앗! 넵!”
그제야 민희는 조용해졌다.
형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숙소로 향했다.
잠시 후 숙소에 도착한 형우 일행은 간단히 식사하고 이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지호와 민희는 바로 게이트 복구에 투입됐다.
소정이는 드레이크들과 함께 주변 정리에 동원되었고 봄이는 계속해서 부상자 치료를 했고.
그런데 형우를 포함해서 성민과 도영의 역할이 붕 떠버렸다.
나름 레시스토 보호라는 거창한 임무가 부여되긴 했으나 실상은 휴가나 마찬가지였다.
워프 게이트를 복구하려면 최소 5일이 걸릴 터.
덕분에 형우에게 다시 오러를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다만, 오늘은 오러 수련을 하지 않았다.
성민, 도영과 함께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수도 안에 수도.
제국 안의 또 다른 국가라 불리는 크레아 교단의 터에 와 있었다.
“쯧, 아주 제대로 부숴놨네.”
형우는 무너진 크레아 교단의 터를 보곤 혀를 찼다.
잘 보존된 레시스토와 다르게 크레아 교단이 있던 장소는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게다가 파괴된 곳을 치우지도 않고 무너진 그대로 놓은 상태였다.
그것도 레시스토 안에 있는 크레아 교단을 말이다.
“허어… 과거 그렇게 큰 성세를 자랑했던 크레아 교단이건만…….”
엘프 카림은 무너진 크레아 교단을 보고 침통한 표정으로 넋을 놨다.
카림은 원래 크레아 교단의 사제였다.
크레아는 창조의 신으로서 엘프나 인간, 드워프 등을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은 종족이 믿는 신이었다.
카림도 그중 하나였고 유일하게 제일 최근 크레아 교단을 방문했던 이기도 했다.
물론 그 최근이라는 게 무려 700년 전이었지만.
여하튼 700년 전이지만 이곳에 들렀던 경험이 있었기에 형우는 그에게 안내를 청했다.
인간과 달리 700년이 지나도 드래곤만큼 기억력 좋은 엘프들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광 가이드를 데려오듯 카림을 데려온 건데…….
‘이러면 가이드고 뭐고 필요가 없잖아.’
뭐가 있어야 알려줄 게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부서진 잔해 정도?
‘이 돌덩이는 1,100년 전에 만들어진 석상의 몸통 부분입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카림도 거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형우 일행은 카림을 두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쩝… 인사니오 님은 왜 이런 곳을 가보라고 한 거야?’
사실 형우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인사니오 때문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니오는 형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크레아 교단에 가보라고 말했다.
어차피 할 일이 오러 수련밖에 없었기에 형우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이 꼴이었다.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눈도 생겼으면 여기가 무너진 것도 알 거 아냐?’
형우는 속으로 투덜대며 발로 잔해를 치웠다.
탁. 우르르르.
기둥의 한 부분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돌이 발에 맞아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런데 굴러가는 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평범한 바위 둘이 겹쳐져 있었는데 그사이에 작은 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 안으로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막? 설마?”
“응? 뭐라도 찾았어?”
성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형우는 대답해주기보단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스르륵.
바위 사이로 손을 뻗자 막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사니오의 신전 때와 다르게 막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덕분에 형우의 손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헉?!”
갑자기 형우의 손이 사라지자 성민은 기겁했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도영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그리고 곧 도영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긴 또 뭘까?’
인사니오는 아직 살아 있는 신이었으니 이런 공간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사니오에게 힘이 넘어간 창조의 신 크레아의 교단에 왜 이런 게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됐다.
그때 인사니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 보아라.]
‘인사니오 님?’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가라는 말에 형우는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대에게 해가 되지 않을 터.]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으십니까?’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부족했던 걸 이곳에서 채워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네?’
아리송한 인사니오의 말에 형우는 머리는 더욱더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들어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 그대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라.]
‘예.’
인사니오가 형우에게 해가 될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동안 도움을 주면 줬지 해가 되는 쪽으로 말한 적이 없었기에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형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성민과 도영에게 안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일단 들어가 보자.”
“예?”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무작정 진입합니까?”
“인사니오 님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네?”
형우는 둘에게 인사니오와 나눴던 대화를 알려줬다.
그러자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인사니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형우와 똑같은 판단을 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퉁! 퉁! 스르륵.
“어? 헉! 길드장님?”
“길드장!”
그런데 막은 오직 형우만으로 통과시켰다.
성민과 도영은 튕겨 나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우를 둘은 넋 놓고 바라봤다.
“이게 뭐야?!”
“왜 길드장님만…!”
둘은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성민과 도영은 형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