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12
형우는 민희가 능력을 쓰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법을 배우게 한 건 잘한 선택이었어.’
마법과 S급 마나 마스터의 콜라보는 훌륭했다.
사실 일대일이라면 이 정도의 효율이 나올 수 없었다.
잘해봐야 지금 마기로 강화된 S급 헌터와 밀리지 않을 정도?
그러나 마법사는 다수와 싸울 때 더 강해진다.
검사가 검 한 번에 수십을 학살한다면 마법사는 마법 하나로 수백, 수천을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적이 요새로 들어오는 입구로 밀집된 탓에 피해가 더 커졌다. 그리고 형우 역시 오러의 덕을 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오러 운용법을 배우길 잘했어.’
민희가 마법의 덕을 보고 있을 때 형우도 오러 운용법을 찾아 배웠다.
오러 운용법은 다행히도 마법과 달리 스승이 많았다.
마법은 마법서가 없으면 전체가 전승되어 내려오기 힘든 학문이었다.
한 마법사가 그 전체를 알기 힘들었고 고위급에 속하는 마법사들은 1차 침공 이후 대부분 전사했다. 그리고 방대한 양의 마법서가 모두 소실되며 살아남은 마법사들은 더 위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장됐다.
그러나 오러는 아니었다.
검술이 사장될 순 있어도 오러 운용법만은 계속 내려왔다.
오러 운용법을 익히면 얼마든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오러 또한 엑시디움의 탄압을 받았다는 거였다.
마법서와 같이 분서갱유 당한 오러 운용법은 알음알음 전승되어 내려왔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전승되는 와중에 이해에 따라서 점점 변형된 것.
덕분에 지금의 오러 운용법은 대부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것도 하위 수준밖에 안 됐다.
오러는 단계에 따라 오러 유저, 익스퍼트, 마스터로 불렸는데 그나마 제일 많이 쌓았다는 이도 익스퍼트 초급이 한계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정상적인 오러 운용법이 적용되자 익스퍼트 중, 상급으로 성장했다.
그 덕분에 형우에겐 스승이 많았고 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오러를 익혔다.
단계는 벌써 오러 유저 최상급.
그 덕분에 S급 오러 마스터의 능력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오러와 마법으로 더 강해진 둘 덕분에 전장은 아르카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Fuck!”
패색이 짙은 전장을 보곤 질리언이 욕을 내뱉었다.
본래 그들은 요새를 아예 밀어버릴 생각으로 돌진했다.
그래서 높은 등급의 실력자들을 모두 끌고 왔다.
어차피 크루바를 제외하곤 다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크루바 말고 괴물 같은 인간이 하나 더 있었다.
게다가 민희라는 복병까지 있었기에 점점 피해가 누적됐다.
심지어 크루바는 처음 이후 브레스도 안 쓰고 버티는 중이었다.
이 요새가 계속 버텨온 이유는 좁은 요새 입구에서 날리는 브레스 때문.
그런데 그걸 안 쓰고 버틴다는 건 크루바가 한 번에 쓸어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거였다.
그걸 안 순간 질리언은 퇴각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퇴각! 퇴각!
뿌우우우!
퇴각을 알리는 긴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바소르들은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갔다.
“스으으읍!”
크루바는 퇴각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내뱉었다.
“크아아아!”
파아앗! 콰아아앙!
“아…!”
“…!”
무방비 상태로 브레스를 맞은 바소르의 병사들 수백이 비명도 못 지르고 가루가 됐다.
그 모습을 보며 아르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이겼다!”
“아아, 인사니오시여!”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동안의 전투는 꾸역꾸역 막은 거지, 이긴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전투는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에게 큰 피해를 줬다.
거기에 덤으로 아군 피해마저 적었다.
다만, 추격은 하지 못했다.
적의 병력은 아직도 많았다.
굳이 장점을 버리고 섣부르게 문을 열고 돌진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 정도로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가 끝났다.
“퇴각! 퇴각!”
“와아아! 또 이겼다!”
새벽의 기운이 사라진 아침, 아르카의 병사들은 도망가는 바소르의 병사들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형우가 전장에 합류한 이후 아르카는 바소르가 공격하는 족족 막았다.
처음과 달리 공격이 적극적이지 않아 죽는 병사의 수가 적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바소르의 피해는 누적되고 있었다.
이번이 벌써 4번째 공격이었으니까.
다만, 적의 행동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노르덴 요새에서 벌어진 전투를 모두 합하면 이번이 10번째였다.
앞선 6번의 전투는 그래도 이해가 갔다.
계속 아르카에 피해를 줬고 뚫리기 일보 직전까지 갔으니까.
그러나 형우가 합류한 6번째 전투부터 바소르가 일방적으로 손해만 입었다.
그런데도 적들은 격일 단위로 계속 요새를 공격했다.
“진짜 지치지도 않고 공격하네.”
형우의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될 행동이었다.
“저쪽 지휘관이 이상한 걸까요? 아니면 뭔가 있는 걸까요?”
“저번에 겪어본 바로는 둘 다 일지도?”
민희의 말에 형우는 나름 개그가 섞인 말을 했다.
그러나 듣는 대상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질리언이면 확실히…….”
민희도 질리언이 감옥에 들어간 이후에 감옥으로 들어왔기에 질리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미국 아니, 세계 제일의 살인마 질리언은 이상하다는 말론 표현 못 할 미치광이였다.
어느 누가 몬스터가 쳐들어왔을 때 일일이 대피소를 찾아다니며 시민들을 학살한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그 정도 또라이였기에 민희는 형우의 개그를 그냥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하하… 뭐 그래도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야. 크루바 님도 계시고 이제 우리 지원도 올 테고.”
“하긴.”
“자자, 걱정은 그만하고 이제 식사하러 가자. 왜 쟤들은 자꾸 밥 먹을 때마다 오는지 몰라.”
형우는 민희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민희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2일 뒤, 어김없이 격일로 바소르가 쳐들어왔다.
이번에도 아침 시간에 공격했다.
막 아침 식사를 위해 숟가락을 들던 병사들은 한 숟가락도 제대로 못 뜨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하도 식사시간에 쳐들어와 배식을 조금 앞당겼는데도 그걸 귀신같이 알고 맞춰서 쳐들어왔다.
“바소르 이것들은 오우거한테 예의를 팔아먹었나? 밥 좀 먹자!”
“에이, 쓰벌놈들! 다 아주 위를 쑤셔주마!”
아르카의 병사들은 짜증을 내면서도 숙련된 움직임으로 빠르게 성벽에 자리 잡았다.
그러는 사이 적들이 가깝게 다가왔다.
“전군 돌격!”
“돌격!”
“돌격하라!
서부지부 지부장 롤랑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소르의 병사들은 소리를 지르며 진격했다.
형우가 참전한 전투에서 대패를 한 이후 질리언이 아닌 롤랑이 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드워프 칼리만은 달려오는 바소르의 병사들을 보며 아군에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놈들의 식사가 형편없는 모양이다! 식사 때마다 쳐들어오는 걸 보니 우리 걸 뺏어 먹으려 하는 거 같은데 놈들의 배에 밥 대신 창과 검을 꽂아줘라!”
“하하하!”
“밥 먹을 때마다 온다고 욕했던 게 미안해지는데?”
“놈들에게 우리 아침밥을 뺏기지 말자!”
칼리만의 위트 있는 연설에 다들 크게 웃으며 떠들었다. 그리고 곧 전투가 벌어졌다.
“라이트닝 스톰!”
“오른쪽 성벽을 막아라!”
“성문을 좀 더 견고하게 막아야 한다!”
“아아악!”
전투는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바소르는 아르카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고 계속 병력만 소모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퇴각할 타이밍이 됐음에도 롤랑에게선 퇴각이란 말이 안 나왔다.
오히려 공격하는 병력을 더 추가시켰다.
“2차 부대 진격!”
롤랑이 이끄는 1차 부대에 2차 부대까지 더해졌다.
1차 부대의 병사 수는 1만.
2차는 4만이었다.
소모되는 인원이 충당되어 적은 계속 10만의 수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전체 전력의 반이 공격에 투입된 거였다.
다만, 5만이나 와도 소용이 없었다.
입구가 좁아 실제 공격할 수 있는 병력의 수는 한정됐다.
게다가 밀집해서 들어오면 크루바의 브레스나 민희의 더블 캐스팅에 더 큰 희생이 있을 터.
절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뻔히 알 텐데 2차 부대까지 진격시켰다.
‘뭔가 이상한데?’
형우는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형우만 가진 의문이 아니었다.
다들 석연찮은 표정으로 적을 상대했다. 그리고 잠시 후 2차 부대에 1차 부대와 합류했을 때 형우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어?’
형우가 감지한 기운은 마기였다.
물론 마기는 지금도 계속 느끼고 있는 기운이었다.
지금 성벽엔 마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곳곳에 감옥의 죄수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그들을 느낀 게 아니었다.
성벽과 전방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느껴지는 마기가 있었다. 그리고 곧 형우는 그것의 의미를 깨닫고 크루바에게 그걸 알리려 했다.
“크루바 님! 적들이 산…!”
“와아아아!”
그러나 형우가 말해주기 전에 요새의 좌우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그 함성과 함께 수만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적?!”
“어떻게 적이 저기서?!”
놀랍게도 적이 넘어온 곳은 산맥의 위였다.
노르덴은 지형이 워낙 험악하고 곳곳에 절벽이 많아 병력이 이동하기 힘든 곳이었다.
소수의 별동대라면 모를까 저렇게 많은 인원이 넘어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적은 그걸 해냈고 요새의 양옆에서 족히 5만은 되어 보이는 병력이 무용지물이 된 요새를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넘어온 거야? 아니, 그걸 떠나서 5만이나 넘는 병력이 언제 지원 온 거야?’
아르카도 나름의 첩보부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첩보부대는 적의 동향뿐만 아니라 합류하는 지원군의 숫자 또한 파악했다.
그런데 최근 합류한 부대의 수는 천을 넘지 않았다.
근처에 만 명 이상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도 없었고.
그러나 곧 첩보부대를 속인 5만 명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스르르. 스르륵.
“뭐, 뭐야?! 저게 다 환영이었어?”
“저렇게 많은 수를 다 환영으로…!”
놀랍게도 멀리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모두 환영이었다.
기습을 당하자마자 연기처럼 5만의 병력이 사라졌다.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크루바는 다급히 명령했다.
“우리도 예비 병력을 투입한다! 산맥에서 물러나라! 그리고 성벽에 병력은 위치를 고수해라!”
크루바는 그 말을 하며 형우에게 달려왔다.
“오른쪽을 부탁한다.”
“예.”
많은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형우는 우측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형우는 오른쪽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질리언의 기운이 이쪽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뒤늦게 출발할 줄이야…….”
질리언은 영악하게도 일부러 늦게 출발했다.
마기를 숨겨도 느낄 수 있는 형우를 속이기 위해 일반 병사들을 먼저 보내버렸다.
어차피 달려오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적은 아르카 전원은 물론 형우까지도 속였다.
“버러지들을 죽여라!”
“오늘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다!”
바소르의 병사들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다.
크루바는 지휘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드워프 칼리만과 함께 좌측으로 갔다.
그러나 좌우만 쳐들어온 게 아니었다.
“후방에도 적이 왔다!”
“아악! S급이다!”
후방엔 많은 수가 오지 않았다.
다만, 그게 하필 S급들이라 혼란이 더 가중됐다.
아르카의 S급들은 성벽에서 물러나 요새의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자 곧 전장은 안정됐다.
기습을 당하긴 했어도 형우가 합류한 뒤로 병력의 질에선 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연히 질 거란 생각은 안 했다.
문제는 이렇게 싸우다간 병력의 소모가 너무 클 것 같았다.
‘이러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닌데…….’
형우는 전장을 살피며 안색을 굳혔다.
높은 등급의 고급 인력도 중요했지만 전체 병력의 수도 중요했다.
그저 싸우는 게 다가 아니라 점령한 지역의 안정화나 보급, 첩보, 잡일, 포로 처리 등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안 그래도 전체적인 숫자에서 밀리는 아르카가 큰 피해를 본다면 이기더라도 다음 진격에 제동이 걸릴 게 뻔했다.
그 때문에 크루바의 수심이 깊어졌다.
그러는 사이 적의 주력도 도착해서 전장에 합류했다.
“준비!”
요새에 도착한 질리언은 자신의 길드원들과 함께 형우의 대형을 갖췄다.
그것도 지구에서 헌터들이 쓰는 전형적인 레이드 대형으로 말이다.
‘내가 보스몹이냐?’
형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첫 만남에서 호되게 당했던 질리언은 제대로 앙갚음을 할 생각인지 오자마자 형우를 노렸다.
질리언은 선두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달려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며칠 전 형우에게 뺏겼던 마기를 질리언은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다시 마기를 회복한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잡아서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
형우는 그 생각을 하며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캬가가각!”
“캬가각!”
“이게 무, 무슨 소리야?!”
쿠구구궁! 쿠궁!
그때 괴성과 함께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은 멈출 줄 몰랐고 점점 더 커졌다.
곧 요새 뒤로 드레이크 열 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제일 큰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작은 도마새 하나가 포효를 질렀다.
“뀨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