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옥에서 재능 찾기-83화 (84/151)

▣ Chapter 4-8

툭.

데브릭은 뭔가 담긴 큰 자루를 내려놓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잡다하게 숫자만 많은 게 아니라 그들의 실력이 높다는 게 느껴졌다.

‘이놈들이 테메 님께서 말한 원군이군.’

데브릭도 현재 엑시디움이 차원에 간섭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원군이라고 해봐야 솔직히 S급 몇 명 정도로 생각했다.

그것만 해도 나쁜 건 아니었으나 전황을 바꿀 만큼 큰 조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질 좋고 큰 금덩어리들이 보였다.

그러니 데브릭이 좋아할 수밖에.

그러나 곧 데브릭의 얼굴은 구겨졌다.

“네가 관리자들이 말한 그 따까리냐?”

“허…….”

마치 다크 엘프처럼 검은 피부를 가진 인간의 말에 데브릭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이곳 오티움에서 데브릭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랬다.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이자 바소르의 지배자, 엑시디움의 대리자.

힘, 세력, 배경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지닌 게 데브릭이었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 감히 그에게 대들었다.

덕분에 방금까지 좋았던 기분은 싹 사라졌다.

그러나 상대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저 병신같이 생긴 놈 명령을 따르라니. 부족 사람들만 아니면…….’

데브릭에게 먼저 말을 건넸던 흑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의 이름은 에두아 지부.

아프리카 케냐에 소수민족 출신이었다.

수많은 아프리카 소수민족 중에서도 지부의 부족은 별다른 문제 없이 전통을 지키며 살았다.

그러나 원래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민족이 아닌 열강(列强)들의 아프리카 분할로 인해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민족들과 섞여야 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생겼고 결국 강제로 외진 곳으로 이주 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때 터졌다.

강제로 이주를 한 곳에서 던전 게이트가 생겨난 것.

그와 동시에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래도 다행은 부족 사람들 죽지 않았다는 거였다.

때맞춰 각성한 그 덕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던전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마나로 걸리는 마나 중독이라 불리는 병에 부족 사람들이 걸렸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까지.

지부는 이 모든 걸 정부 탓으로 생각하고 복수했다.

수뇌부 전원 몰살이라는 복수를.

덕분에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케냐 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지부의 복수로 인해 수뇌부를 잃은 케냐군은 몬스터에 의해 무너졌고 헌터로 각성한 이들은 다른 국가로 빠져나가면서 케냐는 사실상 죽음의 땅이 됐다.

물론 지부는 그것까진 못 봤다.

그전에 관리자에게 끌려갔으니까.

그리고 법정에서 무려 1,000년 형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관리자가 지부에게 은밀한 제안을 던졌다.

“너희 부족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주고 지켜주지. 대신 우리 지시에 따라라.”

지부는 께름칙했지만, 그 제안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감옥에서 평생 썩어야 했다.

마나 중독에 걸린 이들은 죽겠지만 안 걸린 이들도 많았다.

자신의 보호가 없으면 반은 병으로 죽고 반은 몬스터에게 죽을 게 뻔했다.

그때 이런 제안이 날아오니 당연히 악마의 제안인 걸 알면서도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부족을 볼모로 잡은 관리자에게서 지부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수년을 관리자들의 꼭두각시로 살았다.

그러나 그건 자신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저놈들도 비슷비슷하겠지. 자의로 그런 녀석도 있을지 모르지만.’

지부는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옆엔 동양인 패거리 둘에 서양인 패거리 둘이 있었다.

사실 이곳에 모인 다섯 무리는 각자 다른 감옥에서 나왔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아프리카.

이곳에 모인 이들의 국적이었다.

유일하게 아프리카만 대륙 전체였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한 감옥에 수용할 만큼 아프리카의 인원이 줄었으니까.

여하튼 그다지 좋은 이유로 모이지 않은 그들은 대놓고 데브릭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감히 이 데브릭 님께…!”

“이봐, 너나 우리나 대충은 비슷한 거 같은데 괜히 얼굴 구기지 말라고. 좋게좋게 가자고.”

“그만 좀 쉬고 싶은데 언제 본론을 말할 거냐?”

그때 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유들유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서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머지는 흥미롭다는 듯 지켜만봤다.

“…….”

그들의 태도에 데브릭을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놈들을 전부 도륙 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아르카 놈들 때문에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다니!’

으드득.

데브릭은 이를 갈았다.

이들은 전황을 바꿔줄 원군이었다.

게다가 엑시디움이 보낸 선물이기도 했다.

‘전송만 아니었어도…….’

현재 데브릭은 본부에 설치된 장치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그 장치의 역할은 전송.

엑시디움의 간섭을 못 하게 되면서 원래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데브릭이 하고 있었다.

덕분에 강한 힘을 가지고도 쓰지 못했다.

물론 이거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때까진 참아야겠지.’

결국, 성질을 죽인 데브릭은 옆에 있던 자루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받아라.”

“음?”

“영 찝찝하게 생겼는데…….”

“이게 뭔데?”

다들 데브릭이 내민 무언가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힘이다. 먹어라. 그리고 너희가 싸울 전선(前線)으로 안내해주지.”

데브릭이 그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데브릭의 손엔 검은빛이 나는 작은 돌이 들려있었다.

스르륵. 촤르르.

그리고 기울어진 자루가 엎어지며 손에 들린 것과 똑같은 돌들이 쏟아졌다.

쏟아진 그것들은 불길한 검은 연기를 진하게 내뿜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내려!”

“거의 다 되어간다! 잠깐! 윈드!”

“수평이 안 맞잖아! 이거 어떤 놈이 만든 거냐! 다시 깎아와!”

“블레이드!”

전(前) 바소르 서부지부, 현(現) 아르카 본부 외곽 건설 현장.

다양한 종족이 모여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정말 빨랐다.

일반 건설 현장이라면 몇 달이 걸릴 걸 일주일 만에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형우는 그걸 보며 감탄했다.

“이러니 건설업이 헌터들 손에 돌아가지.‘

건물을 짓고 있는 인부들은 모두 헌터들이었다.

이종족에게 헌터라 칭하긴 좀 어색하긴 했지만, 여하튼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힘을 이용해 건설 속도로 비약적으로 높였다.

지구에서도 중장비를 동원해야 할 기둥을 혼자서 나르고 지치지도 않았으니 작업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벽이나 기둥 제작도 두꺼운 바위를 검으로 가볍게 조각내 거대한 벽돌을 만든다.

벽돌은 마치 레고를 만들 듯 서로 연결할 틈새를 만들었기에 따로 접착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 건설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구는 건물 하나 짓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사실 지구는 이것보다 더했다.

작은 건물 같은 경우는 이미 만들어진 콘크리트 블록, 하프 PC(Half Precast)를 이용해 순식간에 지었다.

중간중간 콘크리트나 페인트가 마르는 시간만 제한다면 일반 주택을 조립식 주택을 만드는 속도로 지을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지구에 비할 순 없었으나 그래도 빠르긴 했다. 그리고 형우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건설이 끝났다.

“끝났다!”

“모두 조용!”

“인사니오께 감사의 인사를 먼저 올려라!”

건설을 끝낸 그들은 생뚱맞게 절을 먼저 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은 건 인사니오의 신전이었으니까.

‘멋지다.’

다 지어진 신전을 본 형우의 감상평이었다.

신전은 그렇게 특별하게 지어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신전치곤 평범하다 라는 말이 어울렸다.

투박하게 회색 돌로 지어졌고 크기만 좀 클 뿐 더 이상 뭐가 없었다.

외부나 내부 모두 텅 비었고 장식 하나 없는 상태.

그러나 형우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작업 과정을 모두 봐서 그런지 아니면 신전 중앙에 떡하니 새겨진 인사니오의 문양 때문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거로 벌써 5개째인가?’

사실 인사니오의 신전은 이번에 처음 지어진 게 아니었다.

서부의 반을 먹은 이후 아르카들의 세력은 이전보다 수십 배는 커졌다.

노예로 잡혀 있던 이들과 노예로 사로잡은 이들 덕분이었다.

그렇게 인력이 일어나자 남아도는 이들을 이용해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아르카의 지도부가 낸 의견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밑에서부터 올라온 의견이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티움의 유일신이자 우리를 위해 희생까지 마다치 않은 그분을 모실 신전을 지어야 한다.’

그 말이 위에 닿았을 때 지도부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중이긴 하나 남는 인력으로 신전을 짓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지킬 거점이 적으니 자연스레 남아도는 병력이 많았기 때문.

물론 이제 북부와 동부로 진출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그전엔 충분히 인력을 뺄 수 있었다.

그래서 지어진 인사니오의 신전은 중간 거점 네 곳과 본부에 지어졌다.

그런데 신전을 지으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인사니오의 신관.’

놀랍게도 신전이 지어지면서 인사니오의 신성력을 얻게 된 신도들이 생겼다.

이전엔 단 한 명도 없던 신관들이었다.

그런데 신전을 짓기 시작하자 신관들이 생겨났다.

피델은 그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사니오 님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심은 죽은 신마저 살려낼 수 있는 거룩한 힘이니까요.”

진짜 죽은 신이 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신앙심이 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맞았다.

자신을 믿는 신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강해진다.

덕분에 하위에 속한 신이 상위로 올라간 일도 있었다.

지금의 인사니오에겐 힘이 강해진다기보다 회복한다는 말이 어울리지만 말이다.

그 덕분에 신관들이 늘어나면서 힐러 역할을 할 이들이 생겨나 전황이 더욱 좋아졌다.

그러나 거기에 단점도 있었다.

“교황이시여.”

“인사니오 님의 대리자께 인사드립니다.”

“…….”

신관들은 신성력을 하나도 못 쓰는 형우를 교황으로 모시며 극존칭을 썼다.

그러다 보니 다른 평신도들도 덩달아서 똑같아 대했다.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다닐 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뭐, 어쩌건… 인사니오의 힘이 늘어나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여하튼 인사니오의 힘이 강해지는 건 형우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감옥 전체를 통일하고 인사니오를 만났을 때 형우에게 이런 말을 했다.

‘힘이 약해 나 또한 엑시디움에게 가한 금제가 일정 부분 적용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형우는 그동안 보인 인사니오의 행동을 이해했다.

자기가 강태공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낚시만 하나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형우가 아르카들과 접촉하면서 힘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인사니오의 조각을 모은 것도 도움이 됐고.

어차피 본인이 걸었던 금제였다.

힘만 회복되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티움이나 지구에서 일이 더 수월하게 풀릴 터.

그러나 명백히 한계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람이 없으니까.’

넓은 대륙에 비해 살아가는 이들의 수가 워낙 적었다.

나중에 저들의 본거지나 주요 ‘목장’을 털게 되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서부 인원을 다 모아도 인사니오의 신도는 얼마 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힘이 회복되어 봤자 완벽히 회복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도면 돼도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도움이 필요한가?]

“헉?! 인사니오?”

혼잣말을 내뱉던 도중 갑자기 들려온 인사니오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처음에 F급일 땐 누군지도 몰라 그냥 목소리라고 불렀던 그게 다시 들려왔다.

[그동안 힘의 회복에만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도움을 못 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괜찮습니다. 의뢰서로 충분히 도움은 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비록 자세한 설명을 못 들어 블랙 머천트에게 물어보거나 혼자 알아가야 했던 게 많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했다.

겨우 F급에서 살아가던 자신이 이제는 지구에 누구도 가지지 못한 새로운 등급에 올랐으니까.

그리고 사정이 있었다는데 속 좁게 여기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군.]

인사니오는 진심으로 고마웠는지 꽤 무게 있게 말했다.

“이제 따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론 회복하신 겁니까?”

[네가 신도와 신전을 늘려준 덕분이다. 그리고… 덕분에 오티움에 다시 나의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네?”

[북부의 노르덴, 그곳에서 죄수들을 처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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