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5
드래곤밸리 북부 검문소.
북쪽에 이 검문소는 다른 곳에 비해서 꽤 여유로웠다.
근처에 드래곤밸리가 있었으나 거대한 절벽으로 막혀 나올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바로 앞에 강이 흐르는 덕분에 들키지 않고 넘어오는 게 여의치 않았다.
깊은 강이라면 밤에 몰래 들어와 물에 몸을 숨길 수 있겠지만 그곳은 조금만 움직여도 흙탕물이 되는 얕은 강이었다.
덕분에 침입이 어려워 다른 곳에 비해서 이곳은 한가로웠다.
그렇기에 검문소장 베네트는 다른 곳보다 더 편하게 본인의 취미생활을 즐겼다.
“으흠…….”
베네트는 눈앞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노예들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이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봤다.
베네트의 앞에는 붙잡혀 노예가 된 이들이 종족별로 서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일반적은 종족이 하나도 안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이 다른 종족과 피가 섞인 하프들이었다.
“상태 좋은 하프들이 많군.”
“하하, 저희 세루스에선 최상급 품종으로 키운 하프들만 취급합니다. 당연히 상태가 좋을 수밖에요.”
“교육도 잘 끝내놨으니 어떤 년을 골라도 밤에 만족하실 겁니다.”
베네트의 말에 옆에 있던 노예 상인들이 대답했다.
사실 이들은 대부분이 가축으로 길러졌다.
오티움엔 바소르 말고 전문적으로 노예사냥을 하는 노예 상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사냥 부대처럼 노예들을 사냥했는데 이들의 목적은 좀 달랐다.
바소르 소속이면 전부 긁어모아서 다른 세계로 전송하는 데 쓰고 몇몇은 가축으로 키웠다.
물론 그 와중에 성노예로 쓸 이들을 빼는 건 당연했으나 노예 상인들은 그걸 좀 더 전문적으로 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이종 교배.
사로잡은 노예 중 상태 좋은 노예들을 골라 교배를 시키는 일이었다.
같은 종족인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종족의 교배도 많이 했다.
그 이유는 그만큼 하프에 대한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성노예에 대한 수요는 대부분 고위직.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인 노예에 이미 질린 상태였다.
그러면서 남색에서 관심을 가지고 이종 교배에까지 손을 뻗었다.
도덕적으로 절대 용납되지 않을 일이었으나 이 미친 세계에선 그게 합법으로 인정됐다.
이유는 뻔했다.
합법으로 만들 수 있는 고위직들이 그걸 원했으니까.
그 때문에 하프들의 수가 강제로 증가했다.
그렇게 자란 하프들을 노예 상인들이 팔았다. 그리고 베네트는 그 하프종들을 구매하는 VIP 중 하나였다.
“음…?”
베네트는 노예를 둘러보던 중 특이한 엘프를 발견했다.
그 엘프는 특이하게도 피부색이 갈색이었다.
게다가 수인족의 꼬리까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베네트가 음흉하게 웃었다.
“오호, 셋이나 섞였다고?”
“엘프와 수인족, 오크가 섞였습니다. 사실 운이 좀 좋았습니다. 가축으로 만든 년이 아니라 야생에서 잡은 년입니다.”
“그래?”
노예 상인의 말에 베네트는 더 관심을 보이며 갈색 엘프의 꼬리를 잡았다.
“꺅!”
갑자기 꼬리를 만지자 갈색 엘프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바로 손바닥이 날아왔다.
“감히 노예 주제에!”
짜악!
“꺄악!”
베네트는 갈색 엘프에게 화를 내며 손찌검을 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렸는지 베네트는 쓰러진 갈색 엘프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퍽! 퍽!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흑…….”
갈색 엘프는 맞으면서 계속 죄송하다고 말했다.
“검문소장님, 죄송합니다. 교육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야생에서 잡아서 그런지 좀……. 이 년은 바로 치우겠습니다.”
계속 두면 노예가 죽을 게 뻔했기에 노예 상인이 중간에 껴들었다.
그런데 베네트는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니야. 됐어. 이년을 사겠다.”
“예? 아, 알겠습니다.”
베네트가 손을 저으며 갈색 엘프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예 상인은 당황하면서도 바로 노예 문서를 꺼내려 했다.
그때.
콰아아앙! 콰아앙!
“뭐, 뭐야?!”
“꺄아악!”
“아악!”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베네트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했다.
노예 상인과 노예들도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다.
콰아앙! 퍼엉!
“바소르놈들에게 복수를!”
“인사니오께서 함께 하리라!”
우렁찬 구호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문소 안으로 아르카들이 나타났다.
아르카들은 처음 보는 이상한 능력을 쓰며 바소르들을 밀어붙였다.
“마, 막아!”
“윈드 커… 크헉!”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병력들을 보며 베네트가 소리쳤다.
“앞에 올 때까지 뭘 한 거야! 이 머저리들아!”
베네트는 그 말을 하면서도 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기습에 당해 잠시 밀린 거로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과 달리 전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캬가각!”
“드, 드레이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레이크까지 안으로 들어왔다.
드레이크는 거대한 발로 모든 것을 짓밟으며 검문소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이, 이건 못 이겨…!’
일방적으로 밀리다 못해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도저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베네트는 본인 살자고 위해 부하들을 버린 채 도주를 택했다.
정말 한결같은 지휘관들이었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 노예들을 사기 위해 후방에 있었던 터라 도망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베네트가 도망치자 노예 상인들도 덩달아 노예들을 챙겨서 달아났다.
그러나 베네트의 도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악!
“아악!”
무언가가 베네트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스친 게 아니라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온 거였다.
그걸 초인적인 감각으로 겨우 피해냈다.
그러나 완벽히 피하지 못해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털썩.
상처를 입은 베네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감히 내게 상처를…….”
베네트는 S급 능력자였다.
검문소 대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드래곤밸리 근처에 있는 7개 검문소엔 모두 S급이 배치됐다.
베네트도 그들 중 하나였고.
그리고 실력 면에서 최소 중간 이상인 이들로만 배치했다.
그들 중에서도 베네트는 상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베네트가 제대로 대응도 못 하고 당했다.
그나마 막판에 알아채고 피한 덕분에 이 정도였지, 조금만 더 반응이 늦었다면 심장이 꿰뚫려 즉사했을 터였다,
“누구냐!”
베네트는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그리고 곧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드워프를 볼 수 있었다.
“드워프?”
설마 드워프가 나타날 거라 생각 못 한 베네트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내 곧 정신 차린 베네트는 일어나 검을 들었다.
“어디서 드워프 따위가!”
“그 말 후회하게 해주마.”
휙. 휙.
드워프는 그 말을 하며 손에 들고 있는 배틀 엑스를 흔들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헉?!”
베네트는 헉 소리를 내며 검을 들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처음의 공격은 그저 기습이기에 그렇게 당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콰아앙!
“크윽…!”
검과 도끼가 부딪치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르륵!
베네트는 그대로 뒤로 밀렸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덕분에 베네트는 정신을 못 차렸다.
'겨우 아르카의 드워프 따위에게 이런 굴욕을…….'
그동안 드워프들은 꾸준히 죽어왔다.
호전적인 성향 탓에 뒤에서 숨어있길 싫어했고 A급만 넘어도 그 힘을 쓰고 싶어서 주체를 못 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드워프 실력자들은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새로 생겨난 S급들의 실력은 별로 좋지 못했다.
같은 S급이라도 경험과 실력이 따라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바소르들은 드워프를 제일 만만하게 봤다.
물론 역으로 바소르에 소속된 드워프들은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제대로 경험을 쌓은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바소르가 아닌 아르카 소속 드워프가 정말 압도적으로 자신을 밀어붙였다.
이건 아무리 S급이라도 해도 이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자신이 당하고 있는 건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이곳뿐만 아니라 나머지 5개 검문소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후아… 진짜 너무한다.”
“진짜 미친놈들…….”
북부의 검문소의 상황을 지켜보던 형우 일행은 따로 빠져나가던 노예 상인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노예 상인들이 끌고 가던 마차를 보곤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차 안에는 노예 상인들이 ‘만든’ 하프들이 있었다.
하프뿐만 아니라 일반 노예들도 있었는데 형우 일행을 더 경악시킨 건 그들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는 거였다.
유일하게 한 노예만이 표정 변화가 많았지, 나머지는 생기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있었다.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성민은 노예 문서를 찾기 위해 사로잡은 노예 상인에게 윽박질렀다.
“그, 그게 말입니다…….”
노예 상인은 더듬거리며 노예들에 관해 설명했다.
‘가축’과 ‘이종 교배’를.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형우 일행의 표정은 계속 구겨졌다.
“이, 이것들은 하프 중에서도 제일 특상품입니다. 외모도 출중하고 밤일까지 모두 최상급으로 교육한 년들입니다. 노예들을 모두 드,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노예 상인은 목숨을 구걸하며 품에 있던 노예 문서를 꺼냈다.
그러나 그게 그들의 화를 더 돋웠다.
지금 여기 있는 일행 반 이상이 노예로 팔린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도영과 성민, 봄이, 소정.
그런 이들에게 노예를 넘길 테니 살려달라는 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화를 못 참은 성민은 검을 뽑았다.
“사, 살라주… 으악!”
스악!
“후우…! 후우…!”
살려달라는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노예 상인을 죽인 성민은 진정이 안 되는지 계속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성민의 과격한 행동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성민 만큼 다들 분노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풀어주자.”
“예.”
형우의 말에 도영은 노예들을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노예 상인의 몸을 뒤져 열쇠를 찾은 뒤 한 명씩 수갑을 풀어줬다.
철컥.
“이제 자유입니다. 원하시는 곳으로 가셔도 되고 아르카에 합류하셔도 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도영이 수갑을 풀어주자 갈색 엘프가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다른 노예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저 정말 잘해요. 질리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
“왜, 왜 이러십니까?”
수갑을 풀어주고 자유라고 했음에도 노예들은 도영에게 달라붙어서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일행 전부가 당황했다.
게다가 몇몇은 옷을 벗으면서 달려들었다.
“…!”
“왜, 왜요?”
형우는 황급히 소정의 눈을 가렸다.
이미 어느 정도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 모습을 어린 소정에게 라이브로 보여줄 순 없었다.
“자유라니까요. 여러분을 모두 풀어드리는 거예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제발…….”
성민도 나서서 말을 했지만 통하질 않았다.
결국, 그들에게 안 버리겠다는 말을 하고서야 진정이 됐다.
“너무 불쌍해.”
봄이는 노예들을 보며 울먹였다.
처음부터 성노예로 길러진 그들은 자유라는 것 자체가 몰랐다.
그저 삶의 목표 자체가 주인에 대한 복종이었다.
그렇기에 도영이 풀어줬음에도 이런 반응을 보였다.
“…개새끼들.”
평소 욕을 안 하던 도영이 욕을 하며 하늘을 봤다.
다들 방금 일어날 일 때문인지 쉬이 진정을 못 했다.
“후우… 일단 아르카에 넘겨주자.”
형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마 정말 천천히 그들을 바꿔놔야 할 터였다.
형우 일행은 정리 중인 검문소에 들어가 노예들을 인계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그들을 인계받은 아르카들의 반응이었다.
아르카들은 이들을 보며 불쌍하다거나 형우 일행처럼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분노를 안 하는 건 아니나 이미 수백 년 동안 겪어온 일이었기에 무뎌진 탓이었다.
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적어도 지구만큼은 이렇게 안 만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