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4
“어떻게 드래고니안이…!”
리소린은 아르카와 함께 달려오는 드래고니안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르카처럼 바소르도 드래고니안은 드래곤과 함께 멸종했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바소르 내 소수는 감옥과 감옥에 유배된 이들에 대해서 알긴 했다.
그러나 리소린은 그 소수에 낀 사람이 아니었다.
“대, 대장? 어떻게 합니까?”
릴버그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답은 정해진 상태였다.
“다 죽여라! 겨우 드래고니안 하나 나왔다고 달라질 건 없다!”
“흙이나 퍼먹는 지렁이 새끼들을 죽여라!”
“공격!”
리소린이 선창에 다들 소리를 지르며 땅에서 올라온 아르카에게 달려갔다.
평소 전면전에선 대부분 승리를 거뒀던 바소르였다.
패잔병들이 모인 것보다 승리한 이들이 강한 건 당연했다.
그 때문에 아르카는 게릴라전이나 기습, 땅굴 등으로 버텨왔다.
바소르에서 그들의 실력을 의심할 만했다.
다만, 그건 얼마 전의 아르카들이었다.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
그걸 먼저 눈치챈 건 선두에 있던 본부 소속 피셔부대였다.
“잠깐? 쟤들 뭘 입고 있는 거야?”
“위에 뭐가 떠다니는데?”
“얼른 가라고!”
“돌격! 다 쓸어버려!”
하지만 뒤에서 오는 부대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결국, 반쯤 떠밀려 그대로 전진했다.
“자, 잠깐!”
“몰라! 그냥 가!”
그러나 그들은 그걸 곧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카의 엘프들은 어느 정도 근접하자마자 무언가를 사용했다.
“노움!”
“노움!”
두드드!
노움이라고 말하자 위에 떠 있던 갈색의 무언가가 땅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그것들은 지진을 만들어냈다.
“뭐, 뭐야?!”
“으아아악!”
“땅이 꺼진다!”
지진은 땅에 모래 지옥을 만들어냈다.
선두에 있는 부대를 모두 삼킬 만큼 광범위하게 만들어진 모래 지옥에 선두로 달려오던 피셔부대는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부대들이 급히 멈췄으나 재앙은 이제 시작이었다.
“운디네!”
“운디네!”
쏴아아아!
이번엔 엘프들은 운디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갑자기 멈췄다.
“…?!”
정말 잠시였다.
찰나라고 생각할 만큼 잠시였으나 리소린은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빗물이 한곳으로 모였다.
촤아아!
“으아악!”
“우, 웁!”
빗물과 바닥에 고인 물은 한데 뭉쳐 바소르를 덮쳤다.
사방에서 덮친 물은 그들을 마치 슬라임처럼 감쌌다.
“아이스 볼!”
“에어 밤! 느, 능력이 안 통해!”
“왜 이렇게 위력이 안 나와?!”
몇몇이 저항하며 능력을 사용했지만 별 큰 영향을 못 줬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능력이 전보다 약해졌다.
약해진 능력으로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물방울을 막지 못했다.
“서, 설마… 정령?”
“정령이라니…! 어떻게 정령이!”
바소르 소속 다크 엘프들은 그제야 물을 조종하는 게 정령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눈치챘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딴 잔재주를…! 타이푼!”
리소린은 자신의 S급 능력인 타이푼을 사용했다.
화아아악! 휘이잉!
타이푼은 말 그대로 거대한 태풍이었다.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그건 순식간에 커져 면적을 넓혔다.
그러나 최대로 키우진 않았다.
최대로 키웠다간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피해가 생긴다.
적당히 물을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만 운용했다. 그리고 의도대로 물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허억! 허억!”
“사, 살았다!”
하지만 아직도 몇몇은 물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사이 아르카가 다가왔다.
“바소르에게 복수를!”
“공격! 공격하라!”
근접한 그들은 바소르와 부딪혔다.
바소르들은 부딪히기 직전까지 밀린다는 생각을 못 했다.
여기 모인 부대는 5개 상급부대와 25개 하급부대로 이뤄져 있었다.
하위 부대의 수준은 좀 들쑥날쑥하지만, 상급부대는 평균 A~B급으로 구성됐다.
보통 부대의 구성 수가 100명을 넘어가는 걸 생각하면 리소린 부대를 제외하고 무려 400명이 넘는 A~B급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하급부대도 물론 A급이나 B급이 있었으나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S급도 여럿 속해 있었다.
전체로 치면 적은 수일 순 있어도 질로 따지면 엄청났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능력에 당하긴 했으나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골골대고 능력도 달리는 그들과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변이 일어났다.
쿵! 까앙!
“으악!”
“무슨 놈의 힘이…!”
“밀린다! 막아!”
첫 충돌의 승리는 아르카였다.
능력이 아닌 순수 힘이었으나 그 순수 힘에서 졌다는 건 의미가 컸다.
그들이 절대 약하지 않다는 걸 알려준 거였으니까.
“에어 프레스!”
“라이트닝 볼드!”
파아악! 치지직!
첫 충돌 이후 겨우 정신을 차린 몇몇이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아르카에게 닿자마자 사라졌다.
“어, 어떻게?!”
능력이 사라지는 걸 본 한 바소르 소속 드워프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그 의문을 풀지 못했다.
바로 검이 복부로 날아왔기에.
푸욱.
“커억!”
드워프는 단말마를 내뱉고 그대로 즉사했다. 그리고 그 드워프를 쓰러트린 건 크루바였다.
크루바는 드워프를 죽이고 바로 다른 적을 공격했다.
스악! 서걱!
“커억!”
“윽…!”
크루바는 전장에서 검무를 췄다.
검무가 유려한 곡선을 그릴 때마다 적은 대여섯이 쓰러졌다.
“겨우 도마뱀도 되다만 새끼가! 오러!”
크리스 부대의 대장 크리스는 분노하며 자신의 검에 S급 오러 마스터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크루바에게 달려들었다.
“하아압!”
크루바는 크리스가 달려오는 걸 보고 바로 팔을 들어 막았다.
쿠웅!
분명 검과 팔이 부딪혔는데 들리는 소리는 묵직했다.
“미친…!”
겨우 팔에 오러가 막히자 크리스는 당혹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본 크루바가 피식 웃었다.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할 거다.”
“뭐?”
탁.
“이거 놓지 못해?”
그때 크루바는 갑자기 다른 팔로 크리스를 잡았다.
크리스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꿈쩍도 안 했다. 그리고 크루바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스으읍!”
“…?”
갑자기 크루바가 숨을 들이켜자 크리스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그게 뭔지 알아채곤 벗어나려고 했다.
“아, 안 돼!”
하지만 크루바는 손을 놔주지 않았고 크루바는 숨을 내뱉었다.
“크아아아!”
파아아앗!
“…!”
크루바에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금빛 브레스는 그대로 크리스를 덮쳤고 그는 비명도 못 지른 채 그대로 사라졌다.
브레스는 크리스의 상체를 잡아먹고도 모자라 뒤에 있던 이들에게 날아갔다.
콰아아앙!
“크아악!”
“아…!”
단 한 번의 공격에 백여 명이 지워졌다.
“…….”
“…….”
그 모습을 보곤 바소르들은 전의를 잃었다.
그러자 전장은 압도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리소린은 이미 패색이 짙은 전장을 바라보며 안색이 파래졌다.
“멋지네.”
형우는 전장의 후방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전장의 상황은 정말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바소르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놀고 있어도 돼?”
옆에 있던 성민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형우를 보며 말했다.
형우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이 정도면 도와줄 필요도 없어. 별 피해도 없을 것 같으니까 자신감 좀 회복하라고 놔둬.”
원래는 언제든 도와줄 수 있게 나서려 했으나 형우의 도움은 ‘인사니오의 군세’에서 끝났다.
인사니오의 군세는 쉽게 정리하면 광범위 버프였다.
하나가 아니라 한 번에 일정 범위에 있는 모든 아군의 능력을 올려줬다. 그리고 적의 능력을 깎아내렸다.
그 수치가 무려 10%.
아군을 10% 올려주고 적군을 10% 내려주니 그 효과는 엄청났다.
그러나 인사니오의 군세는 그저 양념을 뿌린 정도였다.
저들이 저렇게 압도적인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건 저들이 걸친 방어구와 무기 그리고 정령들이었다.
‘나도 이곳도 처음부터 등급으로 분류된 줄 알았는데…….’
형우는 그 말을 하며 손에 들린 아티팩트를 바라봤다.
이 아티팩트에는 방어력을 높여주는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능력이 아닌 진짜 마법이.
과거 1차 침공 이전 시절.
그때는 등급이란 이름으로 능력이 분류되지 않았다.
검과 마법, 정령 등 수많은 것이 존재했고 노력에 의해 성장했다.
각성하는 순간부터 능력이 정해지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엑시디움이 등장한 1차 침공부터 세상이 변했다.
그들이 등장하면서 능력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능력자로 각성한 이들은 본래의 능력을 쓸 수 없게 됐다.
본래 S급이 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가 E급으로 각성한 이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엑시디움에게 정말 허망할 정도로 쉽게 밀렸다.
그렇게 손쉽게 대륙을 지배한 엑시디움은 오티움을 입맛대로 뜯어고쳤다.
제일 먼저 없앤 건 마법과 정령이었다.
마법의 경우 모든 마법서를 없애버리는 오티움 버전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했다.
그런다고 마법이 쉽게 없어지는 건 아니었으나 그 기간이 수백 년이 넘어가자 소실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아티팩트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정령은… 사실 마법보다 막기 쉬웠다.
그저 정령들이 있는 정령계와의 연결을 막아버리면 됐으니까.
물론 2차 침공 이후 다시 정령계와 연결이 이어졌으나 그땐 이미 정령과의 계약 방법이 잊힌 뒤였다.
그런데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후일을 대비하기 위해 모아둔 건가?’
노아의 방주처럼 인사니오의 신전엔 정령의 계약 방법부터 마법서까지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
계약 방법을 알자마자 정령과 친화력이 가장 높은 엘프들에게 계약을 맺게 했다.
마법의 경우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정령은 아니었다.
바로 전력을 써먹을 수 있었기에 엘프들은 바로 정령과 계약을 했다. 그리고 거기에 온갖 마법이 각인된 병장기를 사용하니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그중에 압권은 크루바였다.
형우는 인사니오의 신전에서 조각을 흡수하고 신물도 찾아낼 수 있었다.
신물을 찾은 형우는 바로 감옥을 돌아가 크루바에게 전달했다.
신물을 넘겨받은 크루바는 드래곤의 전유물인 브레스 사용이 가능해졌다.
드레이크나 드라코와 다르게 브레스를 쓸 수 없는 드래고니안이 브레스를 쓸 수 있게 된 이유는 당연히 신물 때문이었다.
신물은 드래곤의 신 크락서스가 남긴 것으로 감옥에서 벗어날 힘뿐만 아니라 드래곤의 힘까지 줬다.
덕분에 크루바는 브레스를 쓸 수 있게 됐고 한층 더 강해졌다.
여하튼 그 이후 크루바와 이종족들은 형우와 함께 워프 게이트로 아르카 본부에 왔고 지금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방수혁 그 양반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러게. 어디서 죽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형우가 신물을 전달해주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구역 점령이었다.
정말 속전속결로 미점령지였던 B구역과 C구역을 밀어버렸다.
프로즌 케이브도 함께.
덕분에 지금 감옥은 이스케이프 길드에 의해 통일된 상태였다.
그 이후 통일된 병력으로 감옥 전체를 쥐잡듯이 뒤져봤으나 아직도 수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계속 찾으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형우는 다시 아르카 본부로 돌아왔다.
어차피 이젠 감옥에서 할 일이 없었다.
방수혁을 찾는 일이야 신전에서 찾아낸 통신구로 보고를 받을 수 있었으니 아르카로 오는 게 나았다.
이곳에 오면 적어도 바소르들을 죽이며 인사니오의 조각을 찾고 의뢰서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능력이 100개가 넘어가면…….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지금에 와선 솔직히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능력을 고르고 있기에 아직 흡수 안 한 것들을 모두 흡수하면 능력이 40개가 넘어갔다.
이 속도라면 탈출은 얼마 안 걸릴 터.
그러나 그건 가서 봐야 할 일이었다.
더 이상 탈출만이 능사가 아니게 됐으니까.
각설하고 형우는 아공간에 수많은 식량을 담고 돌아왔다.
덕분에 아르카들은 기력을 회복했고 그사이 전력을 엄청 강화했다.
때마침 공격해오는 바소르들이 공격을 해왔고 새로 얻은 힘을 확인하기 위해 땅굴 위로 나왔다. 그리고 형우는 후방에서 홀로 이익을 챙겼다.
“염력. 염력.”
형우는 전장을 바라보며 계속 염력을 사용했다.
어차피 지금은 아르카와 같은 파티로 인정되어 의뢰서의 조건은 알아서 충족됐기에 굳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전투에 참여 안 하더라도 영혼석은 챙겨야 했다.
형우는 피식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금덩이들을 염력으로 가져왔다.
‘역시 놀고먹는 게 최고라니까.’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의뢰서 조건을 채우고 영혼석을 얻고 있었다.
간간이 도움을 주긴 했으나 그건 도망가는 이들을 ‘통제’로 잡아두는 정도였다.
“쩝…….”
그 모습을 보며 성민은 대단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성민도 완벽히 아는 건 아니었으나 영혼석으로 능력을 흡수한다는 건 알았다.
‘저거 설마 다 흡수할 수 있는 건가?’
“와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성민은 속으로 그 생각을 하다가 환호성이 들리자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방적이었던 어느새 전투가 끝났다.
아르카는 적들을 모두 섬멸했고 도망가는 이들마저 모두 처리했다.
전면전으로 대승을 거둔 아르카는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정말 지난날 당해왔던 서러움이 싹 사라지는 전투였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반격의 시작.
이제 저들에게 제대로 복수를 해줘야 할 시간이 왔다.
형우에겐 능력을 쓸어담을 시간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