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3
“흠······.”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인사니오의 기운은 더 크게 느껴졌다.
문 자체가 어느 정도 기운을 막고 있는 듯했지만, 인사니오의 조각을 가진 형우에겐 전혀 막힘 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탁.
피델은 문을 열기 위해 힘을 줘서 밀었다.
“끄응···! 문이 꿈쩍도 안 하는군요.”
문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무게가 상당하거나 이게 진짜 문이 아닌 건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나 형우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문을 여는 방법을.
“잠시만 뒤로.”
형우는 피델을 뒤로 물리고 거대한 문에 오른손을 올렸다.
문에 손을 대자 인사니오의 기운이 문을 통해 빨려 들어오는 듯했다.
그 느낌을 받으며 형우는 인사니오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문을 밀었다.
드륵!
“문이···!”
피델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힘을 줘도 밀리지 않던 문이 겨우 손바닥 하나에 천천히 밀리고 있었다.
그것도 별 힘을 주는 것 같지 않았는데 문은 확실히 밀렸다.
드르륵! 쿵!
곧 문은 끝까지 밀렸고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내부엔 제단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엔 금빛으로 빛나는 천이 보였다.
‘조각.’
E구역 던전 게이트의 신전, 드레이크 숲의 신전에서도 똑같이 제단 위에 인사니오의 조각이 있었다.
형우는 조심스럽게 제단으로 다가갔다.
제단 위에 올라가자 황금빛으로 빛나는 깃발 하나가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땐 그냥 천 같았는데 긴 봉이 같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천에는 인사니오를 상징하는 거대한 눈이 그려져 있었다.
“후우.”
탁.
형우는 망설임 없이 깃발을 잡았다.
그러자 깃발에선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이 터져 나오고 곧 형우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오···!”
피델은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엑시디움에게 두 번의 유린을 당한 오티움엔 더 이상 신의 빛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저항한 인사니오도 자신의 조각 하나를 다른 차원에 보내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랬기에 오티움에 존재하는 모든 신이 죽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 하나의 신일지 몰라도 신은 분명 살아남았다.
인사니오는 분명 살아있었다.
그걸 저 빛이 증명해줬다.
사실 신은 죽었어도 그들이 남긴 신성력은 오티움에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이전에 신관이었던 이들이나 신성력을 가진 아티팩트를 가진 이들은 미약하게나마 신성력을 사용했다.
정말 미약하고 그것도 오래가지 못할 힘이었지만.
그 때문에 피델은 완전히 형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인사니오의 사도라는 건 믿었어도 인사니오가 살아있다는 건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저 찬란한 빛은 분명 살아있는 신만이 내뿜을 수 있는 강력한 신성력을 보여줬다.
창조주의 힘마저 소멸한 차원에서 저 정도의 힘을 내뿜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인사니오가 살아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신이 살아있다는 건 아직 차원이 살아날 방도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창조주가 죽으며 창조와 파괴의 신이 된 인사니오라면 더더욱.
“아아, 인사니오시여!”
피델은 연신 인사니오를 외쳤다.
그러는 사이 인사니오의 조각은 형우의 몸에 완벽히 흡수됐다.
‘이제 다섯 번째다.’
이것으로 드디어 형우는 다섯 번째 인사니오의 조각을 획득했다.
이제 하나만 더 얻으면 형우는 외출권으로 24시간 동안 지구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선우와 만나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지구가 소멸하면 지금까지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그 때문에 만약 지구에 가더라도 선우와의 만남은 최소화로 할 생각이었다.
그사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인사니오의 군세.’
생각을 마친 형우는 새로 흡수한 인사니오의 조각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역시 유추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인사니오의 눈의 경우 대충 유추가 가능했으나 다른 것들은 전혀 감도 안 왔다.
다 장착을 하거나 인사니오에게 힌트를 듣고 알게 된 것들이었다.
‘장착을 해봐야 알겠지. 그전에······.’
형우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여전히 인사니오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는 피델에게 말했다.
“갑시다.”
“네?”
밑도 끝도 없는 형우의 말에 피델은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형우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반격을 해야죠.”
쿠궁. 철컹!
“안 돼! 포션이 필요하다고! 야, 이 새끼야!”
감옥의 문 앞, 용준은 처절하게 소리쳤다.
닫힌 문을 두드리며 사정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집행인은 딱 재판이 열리지 전까지만 소지품을 가지고 있게 해줬다. 그리고 판결이 끝나는 순간 모든 물건을 뺏었다.
그 때문에 용준은 민규의 치료를 위해 쓰고 있던 포션을 전부 압수당했다.
“쿨럭···!”
민규는 포션의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용준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민규에게 계속 포션을 들이부었다.
선우를 위해서 항상 병원에 많은 양의 포션을 비치해뒀다. 그리고 병원을 빠져나올 때 그걸 가져온 덕분에 꽤 많은 양의 포션이 있었다.
그 포션을 민규에게 정말 들이붓다시피 했다.
원래라면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을 수 없는 민규를 계속 포션으로 들이부은 덕분에 목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민규가 다친 건 포션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정말 겨우 현상 유지를 한 정도.
그러나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집행인이 포션을 압수해가면서 민규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 갔다.
이제 민규는 한계였다.
그걸 보며 용준은 하염없이 울었다.
“민규 형···! 민규 형···!”
포션을 가지고 계속 이동했다면 최소한 E구역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E구역에 도착한 뒤 형우에게 다시 포션을 받아 시간을 벌고 블랙 머천트의 상점에서 약을 산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젠 방법이 없었다.
포션 없이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할 터.
F구역이든 E구역이든 이곳에서 최소 반나절 이상 거리였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타났다.
“살리고 싶다면 따라와라.”
“···네?”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용준에게 말했다.
용준은 눈물로 가려진 눈을 닦으며 그를 바라봤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을 텐데.”
“네, 네!”
민규를 살려준다는 말에 용준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나타난 이는 용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감옥이기에 모두 못 믿을 사람이긴 했으나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축에 끼는 이였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이라도 지금은 앞뒤 안 가리고 따라갔을 거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용준은 민규를 업었고 그를 따라갔다.
그는 전(前) 감옥의 문지기이자 변절자(變節者) 차민이었다.
드래곤밸리 초입.
드래곤밸리는 바로 앞에 있는 리켄트 평야와 함께 기후변화가 극심한 곳이었다.
우박이 내리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태풍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최악의 기후는 아니긴 했다.
다만, 하루에도 여러 번 날씨가 바뀔 정도로 변덕스러웠다.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 다시 또 내리기를 반복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오죽하면 날이 계속 흐리기만 해도 좋은 날씨라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요즘 계절의 영향인지 비가 자주, 오래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쏴아아아.
세찬 비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
비가 내려서인지 땅은 수용할 수 있는 양을 초과했고 점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덕분에 근처 강은 범람한 지 오래였다.
첨벙. 첨벙.
“더럽게 많이 내리는군.”
발목까지 차오른 비를 밟으며 리소린은 인상을 썼다.
쿰의 마을부터 검문소까지 흔적을 밟으며 이동했다.
그러나 검문소 이후부터 흔적이 사라졌다.
비 때문인지 모종의 방법을 쓴 건지 더는 드레이크의 발자국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그런다고 못 찾는 건 아니었다.
검문소를 넘어서 갈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곳.
서부 내륙.
드래곤밸리.
남쪽 바다.
이 셋 중 선택지를 좁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부 내륙으로 가는 길엔 또 다른 검문소가 있었다.
만약 그곳에 반응이 온다면 언제든 길을 틀면 됐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드래곤밸리였다.
남쪽 바다를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만약 놈들이 아르카라면 이쪽으로 향할 게 유력했다. 그리고 서부지부 지부장 롤랑이 따로 내린 명령도 있었다.
‘아르카의 존재를 대륙에서 지워라.’
리소린이 출정 전 추가로 받은 명령이었다.
그래서 리소린은 드래곤밸리로 향했다.
문제는 빠르게 추격했어도 이미 적보다 늦게 이동했기에 대략 보름 이상 뒤처진 상태였다.
이 정도면 추격이라기보다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늦어진 덕분에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만약 서부 내륙으로 향했다면 길목에 있는 검문소에서 벌써 연락을 왔을 터였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다.
게다가 그사이 드래곤밸리에서 아르카를 공격하던 바소르 본부 ‘피셔’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 드레이크가 이곳으로 온 것을 봤다고 말이다.
“덕분에 일이 줄겠구나.”
리소린은 비 내리는 드래곤밸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리소린의 부대원들이 다가왔다.
“릴버그.”
고개를 돌리자 마른 몸에 키가 큰 남자가 리소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리소린 대장. 피셔, 블링키, 크리스, 덴버 부대와 휘하 병력까지 모두 만나고 왔습니다. 지금 그들은 차단선을 없애고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뚫었답니다.”
그 말에 리소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바소르는 아르카의 본거지로 진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러나 지하에 땅굴을 개미굴처럼 파놓은 터라 S급도 함부로 진입하기 어려웠다.
통로 전체를 무너트리면 S급도 죽었으니까.
게다가 가짜로 만들어놓은 땅굴도 많아서 지난 몇십 년 동안 아르카 때문에 골머리를 쌓아야 했다.
그래서 역으로 생각한 게 ‘우리도 땅굴을 뚫자’였다.
그러나 계획은 번번이 실패했다.
땅굴을 만드는 족족 중간쯤에 눈치챈 아르카가 땅굴을 무너트렸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엔 식량을 차단하며 관심을 돌렸고 그 덕분에 드디어 본거지까지 이어지는 땅굴을 뚫는 데 성공했다.
“작전권은?”
“모두 저희 측에 양도했습니다.”
“허, 본부 새끼들이 웬일로 순순히 넘겼데?”
릴버그의 말에 헤만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소르 내에서도 서로 반목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반목을 만드는 게 본부였다.
본부는 다른 지부의 인원들을 모두 무시했다.
서부지부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리소린 부대마저도 촌놈들이라고 깔보기 일쑤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부를 제외한 다른 곳은 출세와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지부장 정도면 모르겠으나 나머지는 더 올라가지 못했다.
그건 S급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처음부터 바소르에 속했던 ‘순혈’이 아닌 이상 본부에서 중책을 맡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본부에 속한 이들의 자존심은 상당했다.
쉽게 비유하자면 원사와 준위가 최대한 군 부사관과 별까지 달 수 있는 장교의 차이였다.
그러다 보니 본부의 말단마저도 다른 지부를 무시했다.
계급과 명령서가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합동 작전이라도 벌이는 날엔 작전권 때문에 싸움이 자주 붙었다.
“서부 촌놈 따위한테 작전권을 주면 망한다면서. 이랬다저랬다 웃기는 놈들이네.”
“본부 놈들 정신이 오락가락한 게 하루 이틀인가.”
“뭐 괜히 힘 안 빼면 그게 다행이긴 한데······.”
헤만의 불평에 다들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들 모두 조금씩 쌓인 게 있었으니까.
“그만. 빨리 끝내기나 하지.”
리소린은 그 말을 하며 이동했다.
대장이 움직이자 부대원들은 입을 닫고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4개 부대가 모였다.
그들은 꽤 불만 어린 표정으로 리소린을 바라봤다.
“본부의 명령만 아니면······.”
“우리 다 지은 밥상에···!”
본부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리소린 부대에 작전권을 주기로 했다.
그 때문에 다른 부대에선 불평을 못 하고 작전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평소 다른 지부와 반목해 온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본부의 명령을 무시하진 않았다.
그래서 겉으로만 불평했다.
대규모 작전을 앞두고 같은 편끼리 싸울 멍청이들은 아니었다.
“꾸물거릴 것 없이 바로 가겠다. 크리스 부대와 그 휘하 부대는 퇴로를 막는다. 나머지는 바로 출전한다.”
리소린의 말에 모두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사니오의 군세.”
화아아악!
“이게 무슨···!”
“바람? 아니, 도대체······.”
갑자기 끈적한 바람이 그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감기라도 걸린 듯 몸이 무거워졌다.
“힘을 끌어올려라!”
디버프 계열의 능력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리소린은 그 말을 외치며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무거워진 몸은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큰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
“인사니오께서 함께 하리라!”
“바소르에게 복수를!”
함성과 함께 나타난 이들은 아르카였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바소르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건 빛나는 금빛 비늘을 가진 드래고니안 크루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