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2
쿵! 쿵!
와이번은 몸을 돌려 달려왔다.
“허억! 허억!”
민규는 와이번의 공격을 받느라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정말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무조건 죽으니까.
그러나 이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계였다.
더 이상 도망은 힘들었다.
날아서 오는 것도 아니고 달려오는 건데도 와이번은 엄청나게 빨랐다.
“선우야, 형우형 만나면 나 정말 열심히 했다고 꼭 말해줘. 증식”
“어? 그게 무슨 말… 꺄아악!”
휘이익!
용준은 가방에 있던 침낭을 꺼내 증식을 썼다. 그리고 크게 만든 하나 위에 선우를 올려놓고 멀리 던졌다.
많이 날아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리 끝에 있는 헌터들이 구해줄 수 있을 정도는 될 터.
그걸 노리고 선우를 던졌다.
“이런 아재랑 마지막이라니. 정말 최악이네요.”
용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억지로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민규의 표정이 이상했다.
“민규 아저씨?”
“미안하다. 마지막엔 좀 못 볼 꼴을 보이는구나. 그래도 너는 살아야지.”
푸욱!
“뭐, 뭐하는 거예요!”
민규는 억지로 용준의 손에 검을 쥐게 하고 자신의 배를 찌르게 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용준을 위해 민규는 희생을 선택했다.
그러자 어김없이 관리자가 빠르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민규는 이미 관리자가 헌터들 사이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많은 헌터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 이유는 뻔했고.
“이, 이게 최선이라… 미, 미…….”
피를 한 움큼 내뱉은 민규는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용준이 감옥에 오래 썩는 일이 없도록 조절하긴 했으나 검으로 찔린 건 충분히 중상은 중상이었다.
이미 리플렉트를 쓰며 몸 안이 다 상한 상태에서 검까지 찔렸으니 정신이 버틸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너무 큰 짐일까.’
민규는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용준을 걱정했다.
이 상황에서 용준이 사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철교 건너편의 헌터들?
아무리 빨리 와도 이미 둘 다 와이번에게 물린 뒤일 터.
여기서 한 명 더 살리는 방법은 이거 말곤 없었다.
그러나 민규는 혹시 이 일로 용준이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됐다.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겠지.’
민규는 그 생각을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한 달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들은 그 짧은 사이에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며 많은 정이 들었다.
용준과 선우는 모두 밝은 아이들이었고 누군가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했다.
물론 생사가 오가고 고통이 오가는 시간을 같이 겪은 것도 컸다.
여하튼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흐르며 정이 깊게 들자 민규는 둘을 정말 동생처럼 여겼다.
그 때문일까.
민규는 희생을 택했다.
어차피 자신은 감옥에 가도 살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A급의 힘을 겨우 D급으로 막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살행위였다.
포션으로 고칠 수 없을 만큼 속은 망가진 상태.
결국, 죽을 걸 알기에 그래도 살릴 수 있는 용준을 살리기로 했다.
“이 정신 나간 아재가! 도대체 왜 그랬어요!”
용준은 눈물 흘리며 민규에게 다가와 포션을 부었다. 그리고 포션을 다 부은 용준은 민규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벌였다.
푸욱!
“너, 너…!”
“으, 으윽…….”
민규는 놀란 눈으로 용준을 쳐다봤다.
민규가 그랬던 것처럼 용준도 똑같이 손에 검을 쥐게 하고 찔렀다.
그러는 사이 관리자가 도착했다.
“너희는 법정에 서게 될 것이며 판결에 따라 감옥에 수감 될 것이다.“
관리자는 그대로 용준과 민규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눈앞에서 먹이를 뺏긴 와이번은 괴성을 질렀다.
“끼아악!”
그러나 와이번은 관리자에게 덤비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의 학습도 있었고 관리자가 강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포기하고 남은 먹이를 먹으려 했다.
그러나 다른 먹이는 헌터들에 의해 구조되고 있었고 와이번은 짜증 어린 괴성을 지르며 서울로 날아갔다.
드래곤밸리 프로즌 미스트.
오티움 최대의 산악지대 드래곤밸리에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많았다.
그러나 수십 개나 되는 봉우리 중에서 사람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 프로즌 미스트였다.
프로즌 미스트는 봉우리들 사이에 감싸져 있었는데 그곳엔 냉기가 가득한 안개가 끼어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안개 내에 얼음 알갱이가 빛나 반짝였다.
그러나 완벽히 안으로 들어오면 모습이 매우 달랐다.
시계(視界)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안갯속.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길을 잃기에 십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분명 있을 터였다.
겨우 산봉우리 위에서 길을 잃어봤자 얼마나 길을 잃겠는가.
그러나 피델의 말을 듣고 그걸 우습게 여겼던 형우는 잔뜩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무슨 봉우리가 서울 한복판도 아니고…!’
프로즌 미스트로 들어선 형우는 겨우 앞만 안갯속에서 희미한 피델의 윤곽을 보며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솔직히 정상에 도착했을 때 바로 위에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드래곤밸리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넓지 않았다.
첨탑처럼 높게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넓어 봤자 운동장 반만 한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의외로 빨리 찾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와 보니 형우를 반기는 건 어둠보다 더 무서운 안개였다.
“진짜 뵈는 게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네.”
그래도 그때까진 괜찮았다.
안개가 있든 말든 금방 도착할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금방이 아니었다.
“피델 님,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사도시여.”
피델은 몸을 돌려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형우는 그게 얄밉게 보였다.
이미 그 말을 벌써 5번 넘게 들었으니까.
벌써 이곳을 움직여 다닌 지 한 시간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신물은커녕 목표한 곳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음…….”
형우는 불안한 눈으로 안개를 바라봤다.
처음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계속 움직이다 보니 몸 안에 한기가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기는 점점 크기를 더했고 어느새 춥다고 느낄 만큼 커졌다.
마치 그 한기는 허락 없이 발을 들인 침입자를 배척하는 듯했다.
그 순간 피델이 무언가를 형우에게 건넸다.
“이건?”
“드래고니안의 비늘로 만든 부적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한기가 침범하지 못할 겁니다.”
작고 네모난 사이즈의 비늘은 빛을 받지 못해 누렇게 보였다.
그러나 분명 드래고니안의 비늘이었다.
“이곳의 안개는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이 안갯속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데 이 부적이 그 길을 찾게 도와줍니다.”
피델의 말에 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곳은 한 번 와본 이가 아니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과 같았다.
이건 그저 둘이 길을 헤매서 빙빙 돌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직진으로 한창 움직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끝이 안 보였다.
이건 이곳에 무슨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런데 드래고니안의 비늘로 만들었던 비늘을 손에 든 순간 길이 보였다.
정확히는 보인다기보단 그렇게 느껴지고 있었다.
‘근데 피델은 이걸 어떻게 얻은 거지?’
형우는 몸 상태가 괜찮아지자 부적을 다시 건네며 방금 생긴 의문을 물어봤다.
“피델 님은 이걸 누구에게 얻으신 겁니까?”
“드래고니안의 마지막 생존자라 생각했던 바체라 님에게서입니다.”
“바체라?”
“바체라 님은 죽기 진전 저에게 부적을 넘겨주며 이곳으로 피하라 하셨습니다. 저는 부적을 가지고 이곳에 피했고 덕분에 저는 패배 이후에도 목숨을 구했고 이후 이곳 지하를 거점으로 아르카라는 세력을 모았습니다.”
바체라는 드래고니안의 수장이자 전(前) 아르카의 수장이었다.
아르카라는 조직은 사실 긴 역사를 가졌다.
엑시디움의 1차 침공 이후 2차 침공이 있기 전까지 생존한 대륙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조직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조직을 이끄는 이가 드래고니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만큼은 아니어도 긴 세월을 사는 드래고니안은 진득하게 조직을 키우며 오랜 세월을 버텼다.
그러나 강대한 엑시디움 앞에선 그 노력은 모두 수포가 됐다. 그리고 당시 아르카의 수장이었던 바체라는 죽기 직전 피델을 이곳에 보냈다.
“당시 그분께선 이곳에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약간의 병장기와 재물 말고는 얻은 게 없었습니다. 아, 저곳입니다.”
피델은 말하던 도중 앞으로 가리켰다.
형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끝을 향했다. 그리고 그 손끝엔 거대한 절벽이 보였다.
봉우리 위에 또 다른 절벽이 있다는 자체가 신기했으나 더 신기한 건 그 안의 틈이었다.
절벽 사이에 정말 작은 틈 하나가 있었는데 그 뒤로 넓은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엔 작은 제단이 있었는데 제단 너머엔 거대한 신전이 있었다.
‘설마?’
신전을 보는 순간 형우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안에 보이는 신전의 모습을 보곤 확신을 얻었다.
‘인사니오의 신전…!’
분명 그곳은 인사니오의 신전이었다.
아래를 굽어보는 거대한 눈.
신전의 지붕에 새겨진 그것은 분명 인사니오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피델이 마치 저게 안 보이기라도 하듯이 틈 근처에 있는 작은 인사니오의 제단만 바라봤다.
형우는 그걸 이상히 여기다가 그제야 신전 앞에 있는 투명한 막을 볼 수 있었다.
그 막은 일전에 드레이크 숲에서 발견했던 그것과 동일한 종류였다.
아마 저게 다른 이들의 출입을 막고 모습마저 감추게 한 듯했다.
“여기가 제가 말했던 곳입니다. 다만… 혹시 뭔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곳 말고도 다른 곳이 장소가 여럿…….”
“아닙니다. 이곳이 맞을 겁니다.”
화아악! 우웅. 우웅.
형우는 피델의 말을 끊으며 바로 인사니오의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자 투명한 막은 마치 서로 공명하듯이 울렸다.
“음?”
피델은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울리는 그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형우의 기운에 막이 사라졌다.
덕분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피델도 신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어…! 이게 도대체?!”
이곳에 여러 번 들렸던 피델은 그저 이 뒷공간을 벽이라고만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틈 사이엔 작은 제단과 약간의 병장기가 있었다.
그게 피델이 발견했던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들어가시죠.”
“예? 예?”
당황한 피델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나 형우가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바로 뒤따라왔다.
틈 안에 들어가자 밖에서 봤던 것보다 더 거대한 신전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작은 봉우리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지 의문이었으나 일단 그 생각은 접어뒀다.
지금은 처음 목표인 신물을 찾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런데 신전 안으로 발을 들이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다 무기야?”
“이럴 수가…….”
안엔 온통 무기뿐이었다.
검, 도, 창, 활, 메이스, 도끼 등.
정말 없는 무기가 없었다.
게다가 갑옷도 무기만큼 보였다.
갑옷의 종류도 장난 아니게 많았다.
‘이건 뭐… 신전이 아니라 무기상점 같은데? 아니, 무기 백화점인가?’
족히 수천은 넘어 보이는 그것들을 아르카의 전 병력을 무장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신전 복도뿐만 아니라 각 방마저도 무기로 꽉 차 있었다.
“희망이 맞았네요.”
“…….”
형우의 말에 피델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진즉에 이걸 발견했더라면 바소르에게 이렇게 밀리며 살진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이곳엔 무기와 갑옷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포션과 서적, 보물들이 존재했다.
형우는 거대한 책장에서 책을 하나 뽑아봤다.
“기초 마법서?”
책에는 기초 마법서라고 쓰여 있었다.
헌터로 각성하면 최고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모든 언어의 사용이 가능했다.
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은 쓰고 읽고 듣는 게 모두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건 다른 차원의 언어라고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책의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책을 읽던 형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사도시여! 이곳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때 다른 곳을 뒤지던 피델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형우를 불렀다.
형우는 바로 피델에게 달려갔다.
피델은 신전의 끝에 있었는데 그 끝엔 또 다른 거대한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에선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
형우는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곧 미소를 지었다.
‘이거 신물 찾으러 왔다가 더 좋은 걸 얻고 가겠는데.’
거대한 문 뒤에선 인사니오의 조각이 내뿜는 기운이 진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