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1
대한민국 서울, 합정역 근처 거리.
인디밴드의 거리이자 젊음이 넘치는 곳 홍대에서 멀지 않은 2호선 지하철역.
또한, 홍대에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넘쳐나면서 밀려난 이들이 많이 몰린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몬스터가 등장한 이후 이곳은 더 커졌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면서 여러 거리를 만들어냈다.
이번엔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아닌 각각 특색있는 가게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 때문인지 어느새 홍대만큼이나 사람이 몰리는 곳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인디밴드들도 꽤 많이 활동했고 그 덕분에 라이브 카페도 꽤 번창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엔 을씨년스러운 바람만 불어왔다.
자유로운 인디밴드의 길거리 음악은 들려오지 않았고 대신 사람들의 비명과 절규만이 울려 펴졌다.
“크륵!”
“크르륵!”
“꺄아악! 살려줘요! 누, 누가 좀 살려줘요!”
한 여자가 오크들에게 쫓기고 있다.
오크들을 여자를 보며 진득한 침을 흘렸고 그 모습이 더 여자를 겁먹게 했다.
그러나 그녀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거리는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고 주변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출동했던 헌터들도 없었다.
“악!”
철퍽!
도망가던 여자는 발을 접질려 바닥에 넘어졌다.
오크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다가왔다.
결국, 여자는 오크들에게 포위됐다.
더는 도망갈 길이 없어지자 여자의 표정은 절망적으로 바뀌었다.
“제, 제발…….”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오크들에게 자비를 바랐다.
그러나 몬스터에게 자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여자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식사는 그들의 쾌락이 채워진 이후가 될 터.
곧 여자는 오크들에게 더 없을 치욕을 당했다.
그때 여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구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봤다.
남자 한 명이 슬쩍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과 눈이 마주쳤으나 오히려 등까지 돌렸다.
“…….”
그걸 보며 여자는 분노와 절망으로 어우러진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비명인지 분노인지 모를 외침은 남자에게 평생 남을 죄책감으로 돌아왔으나 그래도 몸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가 등을 돌려 잠시 걸어가자 골목 구석에 숨어 있는 두 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정용준과 박선우였다.
“어떻게 됐어요, 아저씨?”
“너무 늦었더라.”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살려줄 기회가 있었으나 이들에겐 거짓을 말했다.
그러나 둘은 그 말을 믿었다.
“내가 좀 강했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는데…….”
용준은 얼굴은 괴로움으로 얼룩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만 정신 차리고 가자.”
“하아… 응.”
용준은 선우의 말에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말 한마디에 나아지진 않았다.
억지로 억누른 것일 뿐이었다.
던전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대피소로 피한 둘은 안으로 난입한 오우거 때문에 큰 위기를 겪었다.
당시 문을 열어줬던 헌터가 목숨을 버려가며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 안 돼, 안에 있는 사람 반 이상 죽었지만.
여하튼 둘은 위기에서 벗어나 대피소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지영이 준 폰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게다가 다른 곳으로 피하는 와중에 계속 몬스터를 마주했고 신촌에서 합정역까지 겨우 2km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 무려 한 달이 걸렸다.
그 와중에 D급 헌터 김민규와 만난 둘은 지금까지 동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말 참혹한 것들은 많이 봐왔다.
나름 감옥에서 단련되었던 용준마저 토악질을 하게 할 만큼.
그래서 민규는 둘에게 그런 광경을 안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괜히 객기로 돕자는 말조차 안 나오게 하려고 거짓말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나름 잘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 정말 많이 죽는구나.”
민규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직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몬스터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었다.
헌터들의 빠른 대처와 강력한 힘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 덕분에 어렵게 어렵게 몬스터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다 정리됐다고 생각했을 때 또다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안 그래도 제일 많은 던전 게이트가 몰려 있는 서울이었다.
게다가 다들 지쳐있는 상황에서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자 순식간에 서울은 몬스터에게 점령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이 점령당하자마자 한강과 내부순환도로에 차단선 설치하고 몬스터를 막은 덕분에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어차피 빼앗긴 서울 수복을 포기하고 전국으로 눈을 돌렸다.
북한 지역은 포기한 지 오래였고 대신 중부 이하 지방의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처로 비록 서울을 잃었어도 다른 지역은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은 생존자 구출에만 온 힘을 쏟았다.
그게 최선이었다.
갑자기 강해진 몬스터들 상대로 이 정도도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로 국가 자체가 망한 곳도 많았다.
1차 웨이브에선 그래도 몇 안 무너졌으나 2차 웨이브에선 수십 개의 국가가 무너졌다.
물론 나머지도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헌터의 질이 높은 곳도 전국에서 나타난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버거웠다.
실제로 가장 헌터의 질이 높은 미국도 몬스터 퇴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국이 이 정도 한 것도 정말 대단했다.
다만, 생존자들에게 지금의 서울은 지옥이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정부는 구출 작전을 펼쳤다.
‘그럼 뭐해. 인력이 한참 부족한데.’
하지만 서울에 있는 모두를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구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탈출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목표로 잡은 곳은 서강대교.
신촌에서 거리상 제일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움직이면서 계속 경로가 바뀌게 됐다.
몬스터들을 피하다 보니 원래 생각했던 경로로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생존자를 위한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서강대교가 무너졌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 때문에 이왕 경로를 바꾼 김에 아예 다른 곳을 목표로 움직였다.
새로 목표로 정한 곳은 당산철교.
그들은 당산철교를 목표로 움직였다.
“강이다…!”
한참 걷던 도중 용준은 한강을 발견하고 작게 소리쳤다.
아직 좀 거리가 있긴 했다.
그래도 목표가 눈앞에 보이자 셋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게다가 좀 더 옆엔 당산철교로 보이는 다리도 있었다.
다행히 서강대교와 달리 당산철교는 멀쩡해 보였다.
이제 저곳만 넘어가면 한강 너머에 있는 헌터들에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좀만 더 힘내자, 애들아.”
민규는 둘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넵!”
“네, 아저씨!”
민규는 선우가 아저씨라고 부르자 얼굴이 팍 구겨졌다.
“어허, 아직 나 30대 초반이다. 선우야, 오빠라고 불러.”
“에엑? 차라리 용준이한테 오빠라고 부를래요.”
“에이, 30대 초반이면 이제 아재라고요. 바랄 걸 바라요.”
“이 시끼들이…!”
“킥킥!”
긴장이 좀 풀린 탓인지 그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시 이동했다.
다행히 가는 길에 몬스터가 없었다.
아무래도 철교보다 다들 양화대교를 대피로로 택해서 그런지 이쪽엔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도 안 보였다.
덕분에 지난 한 달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철교에 도착했다.
“이래서 주변이 깔끔했구만.”
“으으…….”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입구에 중간중간 흉물스럽게 부서진 곳이 많았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바보라서 이곳을 대피로로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몬스터가 그랬는지 폭격을 맞은 건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절대 건널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이 헌터였기에 일반인 한 명 데리고 건너는 건 쉬웠다.
“선우야, 일단 업혀.”
“응, 미안…….”
“에이, 뭘 미안해.”
선우는 이곳까지 오는 와중에 계속 짐만 됐다.
이제 겨우 재활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빨리 걷게 된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물론 여기엔 선우의 억지가 많았다.
계속 짐이 되었기에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선 무리였다.
일반인도 못 건너는 곳에서 객기를 부렸다간 강으로 빠질 게 뻔했다.
게다가 강엔 수중 몬스터까지 있었다.
빠져서 살았다 하더라도 수중 몬스터 때문에 순식간에 죽을 터.
그걸 알기에 바로 용준의 등에 업혔다.
그러나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가자.”
“넵.”
둘은 바로 다리 위를 건넜다.
그래도 앞부분만 건너면 이후부터는 안전했기에 이곳만 넘어가면 편하게 서울을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앞부분을 벗어날 때쯤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키아악!”
“와, 와이번이다!”
괴성을 내며 날아오는 놈의 정체는 A급 몬스터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은 정확히 그들을 노리고 날아왔다.
“피해!”
“으아악!”
둘은 허겁지겁 몸을 다리 아래로 숨겼다.
덕분에 위험하게 매달린 상태가 됐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아니라면 와이번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슈우욱! 까아아앙!
“키아악!”
와이번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러면서 철로 된 뼈대 하나를 뭉갰다.
그 충격에 다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으악!”
“꽉 잡아!”
둘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런 와중에 선우까지 신경 쓰느라 용준은 죽을 맛이었다.
“용준아! 빨리 올라와라!”
어느새 다시 위로 올라간 민규는 용준을 다그쳤다.
“네, 네!”
용준은 바로 위로 올라왔다.
선우 때문에 배는 힘든 상황이었으나 선우를 민규에게 넘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을 내며 움직였다.
“다시 오기 전까지 최대한 달려야 해!”
다행히 이제부터 달릴 다리는 무너진 부분이 없었다.
그저 앞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
물론 그런 만큼 단점도 있었다.
피할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
그나마 양옆에 피할 곳이 있긴 했으나 계속해서 숨을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와이번은 몬스터 중에서도 지능이 높았다.
몬스터 웨이브 이후 더 똑똑해졌을 테니 이 방법은 한 번밖에 안 통할 게 뻔했다.
그 말은 그 한 번에 철교를 돌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 한 번이면 충분했다.
등급이 낮긴 해도 둘은 헌터였다.
다리 하나 건너는 것 정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좀만 더 빨리!”
“후우! 후욱!”
둘은 정말 이를 악물고 달렸다.
어느덧 다리의 반 이상을 지났다. 그리고 다리 너머엔 헌터들이 보였다.
혹시나 이곳으로 넘어올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듯했다.
헌터들은 그들이 달려오는 걸 보고 도와주려고 움직였다.
“끼아아악!”
그러는 사이 와이번은 다시 선회해서 철교를 향해 날아왔다.
“또 온다! 옆으로 피해!”
탓!
다시 날아온 와이번을 피해 둘은 바로 옆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와이번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슈우욱! 쿠웅! 쿵!
철교를 스쳐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와이번은 몸을 틀어 철교 길 위를 날았다. 그리고 마치 비행기가 랜딩하듯이 다리 위에서 떨어졌다.
“뭐, 뭐야?!”
민규는 그 모습을 당황하며 바라봤다.
와이번은 아예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길을 막아버렸다.
덕분에 도와주려고 다가오던 헌터들이 멈칫했다.
진입했다가 와이번이 다리를 무너트리면 다 같이 죽는다.
그 때문에 헌터들은 망설였다.
“하아…….”
그걸 잘 알고 있는 민규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이제 어떡해요?”
“뒤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
민규는 멀어진 뒤를 힐끔 바라보곤 다시 용준을 바라봤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용준아, 내가 딱 한 번 막을 수 있으니까 그때 바로 빠져나가자. 딱 한 번. 딱 한 번은 막을 수 있어.”
“아저씨?”
“가자! 용준아, 넌 와이번 왼쪽으로 가!”
탓!
민규는 그 말을 하며 먼저 달렸다.
그 모습을 보곤 용준은 허겁지겁 따라갔다.
“끽?”
와이번은 달려오는 둘을 향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약해 보이는 먹이 둘이 불나방처럼 달려왔다.
그러나 어쩌건 와이번에겐 좋은 일이었다.
귀찮게 움직이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혹시 반항하다가 물 밑으로 떨어지면 물에 있는 놈에게 먹이를 뺏길 터였다.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와이번은 좋다며 날갯짓을 했다.
휘익! 휘익!
“끼악!”
그리고 그들이 지척에 달했을 때 와이번은 망설임 없이 먹이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때 민규가 능력을 사용했다.
“리플렉트!”
퍼억!
“꺄아악?!”
“커억!”
D급 리플렉트.
공격을 반사하는 능력이었다.
물론 A급 와이번에겐 큰 데미지를 못 줄 능력이지만 딱 한 번 놀라게 하는 덴 충분했다.
민규는 피를 토하면서도 빠르게 몸을 돌려 오른쪽 작은 틈으로 달려갔다.
“꺄아악!”
그제야 당했다는 걸 안 와이번이 꼬리를 민규에게 날렸다.
“헉!”
민규는 헉 소리를 내며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와이번을 피해 빠르게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아직 위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